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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흩어지는 글을 모아서

Uncanny Valley

두번의 봄 2016. 11. 5. 20:28
어떤 소녀형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그런데 너무 사람다워서 버림받았다. 그러다가 어떤 외로운 소년이 그 아이를 발견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 아이를 소중하게 인형처럼 갖고 놀다가 무심결에 입을 맞췄고 그렇게 버려져서 전원마저 꺼져있었던 소녀형 안드로이드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봄'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자신이 그 소녀를 함부로 깨우는 바람에 이름도 모르는 소녀를 괴롭혔다고 생각했고 그 낯선 소녀가 이름이 없다고 하기에 외떡잎식물 중에서 가장 크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나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봄이는 나리를 그저 정교한 인형 즈음으로 생각해서 자신이 나리를 괴롭혔고 조만간 자신은 잡혀갈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순진하기 그지없는 소녀형 안드로이드는 자신에게 나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새로운 주인이 상당히 유약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봄이와 나리는 그저 친구와 같은 관계로 지내며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가 지닌 섬세한 감정으로 정말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아무리 나리의 행동이나 감정이 인위적인 프로그램이라 해도 봄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가 문제라면 봄이가 보기에 나리는 한없이 귀엽고 착한 소녀지만 뭔가 행동이나 말투가 어눌한 면이 있었다. 그래도 서로 친구라는 것이 무엇이랴. 봄이와 나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만 알아차리고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끝까지 서로를 귀여워하는 새하얀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소심한 소년과 순진한 소녀형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끝나면 좋겠다.

하지만 나리는 봄이와 꽤 오랫동안 있을 수 없었다. 나리는 세월이 갈 수록 구동계의 마모와 시스템의 붕괴가 심해졌고 봄이도 나이를 먹어 늙어갔다. 그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가 낡아 고장나고 있지만 처음에 만났던 그 때 그대로의 모습인 나리와 모습이 점점 변하는 봄이는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서로가 이렇게나 다르고 누군가가 먼저 멈춰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아차렸다. 하지만 하나는 내부의 붕괴가 있을 뿐, 겉은 첫만남 때와 다름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외부도 내부도 모두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행인지 이 둘 모두 같은 날 한시에 멈춰섰다.

뭐, 이야기로 '불쾌한 골짜기'라는 이론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내가 인식론과 형이상학에 기초한 생각을 하고 있고 인격이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보통 사람과 다를 것 없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낭만적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보통의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굉장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런 속에서 인간은 안드로이드를 그저 '인간을 닮았고 모방하는 기계'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어떤 안드로이드가 지나치게 사람답고 심지어 섬세한 감정도 가졌다면 도대체 당신은 이 이야기처럼 행동할지 진지하게 묻고싶다.

나는 어떻냐고? 외로운데 말을 걸어주고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고 오래 참아준다면 그것이 인간이든 안드로이드든 인공지능이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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