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나가고 있다. 이딴 크리스마스는 빨리 지나갔으면 해서 동쪽의 와이너리에 와인을 사러간다. 일단은 원하는 맛을 정해놓고 전철을 타고 가다가 한 번 갈아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서 와인 두 병 정도를 사고는 집에 돌아가서 퍼마시는게 목적이다. 전철이 연착이다. 그리고 버스도 그랬지만 전철도 성탄빛으로 반짝였다. 기분이 퍽 상하고 갈아타는 역의 환승통로도 성탄빛으로 빛나고 갈아탄 열차도 성탄빛, 지하에서 전철이 나오자마자 보인 것도 성탄 트리다. 기분이 더 나빠져서 볼을 부풀리고 말 없이 혼자 삐치고 내릴 역을 놓칠 뻔한다. 도착한 와이너리. 드라이는 싫다고 했는데 포도 농사가 망해서 스위트는 없다는 통에 싸울 뻔했다. 어쩔 수 없이 드라이한 것으로 두 병을 안아들고 또 다시 집으로 향한다..
조금은 캄캄한 방 안에 꽤 귀염성 있는 구체관절인형 하나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모두들 귀엽다고 칭찬할 만큼이나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왜 이 방에 홀로 있을까 해서 괜히 불쌍한 마음에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천천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누군가를 알아챘는지 움직이던 아이는 이내 몸의 텐션이 끊어져 산산히 분해되고 말았다. 인형가게에서 겨우 그 아이를 다시 이루어냈을 때, 인형가게에서 텐션을 맡고 있는 누군가가 참 귀엽고 실제 사람 크기라 무섭기도 하다면서 잘 다루라고 말해주는 가운데, 아이가 깨어났다. 흔한 일이라고, 오래된 인형이나 우울한 주인을 둔 인형은 스스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면서 인형옷을 선물로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봄이는 내일 자살..
하유중앙행 전철이 지금 막 궤도 구간을 벗어났다. 철도에 올라 속도를 높이는 전철이 어디로 가는지는 정해져 있으니 내가 내릴 곳만 정하면 되겠지만 도로 위의 자동차와 같이 달리던 전철이 따로 마련된 철길 위로 올라가자마자 갑자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다. 전철 안에는 출근하는 무리와 목적지를 갖고 전철에 오른 무리, 그리고 정처 없이 그저 전철에 탄 내가 있다. 전철 안 승객 중에서 나만 목적지 없이 공허함에 전철에 올랐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뭣같아서 내릴 곳을 찾아 노선도를 보았지만 역시 내가 내릴 곳은 거기에 없는 것 같아 다시 자리에 앉는다. 무엇을 위해 전철에 올랐는지는 모른다. 그게 전부일 뿐, 뭔가 더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전철은 종착역인 하유중앙역에 닿았다.
정신을 놓았나 보다. 갑자기 클러치 페달을 떼서 자동차 시동을 꺼뜨렸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고 빨리 가야 한다고 상향등을 번쩍이는 놈들도 있다. 어쩌겠어, 다시 시동을 켜고 비상등을 잠시 켜주는 수 밖에는 없지. 그런 상황이 요새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운전이 피곤하고 내가 가려는 곳에는 전철이나 버스도 닿지 않으니 구태여 차를 몰고 가야 한다고. 그렇게 쌓인 피로와 약한 분노는 클러치에 입질이 오는 그 느낌마저 잊게 하기에 시동을 꺼먹는 짓을 하는 거겠지. 막히는 도로에서는 여기가 하유섬이라는 것을 종종 잊게 된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로 위에 정차하는 전철로 한 정류장이나 가서 내리면 집이다. 도대체 이런 의미없는 짓에 의미를 담으려고 몇 번이고 노력하는 삶이 무료하다. 일을 해도 지루하고 ..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해가 안 된다. 세상이 무엇이었나. 단순하지 않았었나. 이제는 이해조차 못하겠다. 자, 보아라. 이게 내가 원하던 바냐? 아니다. 그러면 뭘 원하는거냐? 이러는 가운데에서 내가 뭘 또 외치면 그것을 트집잡으러 득달같이 몰려올테지. 진실은 그래서야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바는 여기 없다. 진실로 바라는 바는 내가 나로 되는 것. 밖에서 바라는 바는 내가 남으로 되는 것. 마치 외계인 손 증후군처럼 내가 안팎이 따로놀고 심지어는 서로 갈등하라는 것인가. 이해를 바라려면 그 이해의 예시를 주렴은.
일상이 호러다. 뭐만 하면 죽음이 기다린다. 옷장을 열자 기괴한 생물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싸늘하고 축축한 날씨다. 몸의 상태는 건강하지 못하다. 안심하고 싶지만 안심하면 죽는다. 일을 하면 실수한다. 실수가 저주로 변한다. 저주로 주변에서 쓰러지는 소리 들린다. 주변의 쓰러진 이는 악령이 붙는다. 쓰러진 이가 일어나 모두를 해친다. 장소를 뜨면 안 된다. 그래서 전부 당하는 꼴을 보고 만다. 나는 더더욱 장소를 뜨면 안 된다. 내가 장소를 뜨면 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장소를 떠난다. 징계를 받는다. 그리고 다시 장소로 떠넘겨진다. 나까지 해쳐진다. 해쳐진 모두가 무사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이 유지될 리가 없다. 나는 정신을 놓고 그저 닥치고 있는다. 일상이 호러라서 사회가 무섭다.
누덕누덕 기우고 베고 잘라서 자, 여기까지 왔어. 하지만 아무래도 부족해. 더 누덕누덕 기우고 베고 잘라서 이제야 좀 정상같네. 그렇게 버텨온 하루하루가 너무 무의미해서 너무 무의미해서 너무 무의미해서 너무 무의미해서 이제는 죽고 싶어져. 무너지는데 아무도 모르고 내가 스스로 뭔가를 할 수도 없는 지금, 진짜 뭘 해야 하지 진짜 뭘 해야 하지 진짜 뭘 해야 하지 진짜 뭘 해야 하지 다 잊어먹어서 경고만 늘어나. 자, 네 손으로 나를 죽여줘. 이렇게 만든 네가 나 정도는 죽일 수 있겠지?
아무래도 내가 여러모로 여러분들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글러먹은 모양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입장에 서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그러지도 못하겠지요. 나는 원래 이랬으니까…. 아무래도 틀려먹은 삶이 모든 것을 짓누른다면 나는 우선 나라고 나를 참칭하는 것들을 베어내고 진실된 나로 살고싶다고 하겠지만 이제 그런 과정을 견디기가 너무 괴롭고 힘듭니다. 내가 아닌, 하지만 내가 만들어 낸 수많은 거짓된 모습 속에서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요? 나는 이제 내가 만들어 낸 가짜 나를 구분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고 여러분들께 작별을 고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서 더 이상의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무엇이죠? 이겨냄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이제 나는 더 이상 그 두 가지의 의미를 알 수도 없고 알 일도 없겠지요. 그나저나 심하..
어느 마을이 있었다. 인형과 요정과 사람이 함께 사는 마을.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는 아니다. 옛날 이야기라면 내가 이 이야기를 쓰고 싶지도 않았을거야. 그렇게 어느 마을을 내가 방문하게 된 것은 아마도 길을 잃고 추위에 떨다가 괜찮으면 이리로 오라는 상냥함에 이끌려서겠지. 그리고 나는 그 상냥함에 부합하는 대접을 받았다. 그 마을의 모두는 남을 보살펴 줄 여유를 가지고 있었고 마음씨는 모두 기본적으로 마음씨가 착한데다 여리기까지 했다. 어떤 아이가 긴팔 옷소매를 자꾸 잡아당기기에 무엇 때문에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아이에게 구체관절인형의 관절 비슷한 것이 보였던 것도 있고 그리고 내게 무슨 상처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어떤 하인 복장의 누군가가 내 무릎을 살펴 쓸린 상처를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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