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서늘한 여름 한낮이었어요. 날이 좋아서 공영주차장에서 스쿠터를 꺼내왔죠. 시동이 걸리려나 모르겠는데 여하튼 걸려줬으면 좋겠네. 좀처럼 탈 일이 없고 많이 걸어다니니까 자동차세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주유할 검 타려고요. 시동이 계속 걸리다 말다해서 뒤로 밀면서 겨우 걸었어요. 일단 주유소로 갑니다. 휘발유를 넣겠죠. 그리고 딸려있는 편의점에서 충분한 간식거리와 물을 사서 짐칸에 넣지요. 그리고 언제 기름값이 올랐나요 하면서 영수증을 찡그린 얼굴로 확인하고 돈 내고 출발. 많이 올라서 기분이 좀 상하네요. 주유소를 벗어나서 트램과 함께 달리는 도로를 따라 남동구 표지판이 나올 때까지 계속 스로틀을 당깁니다. 파도에 잠기는 낮은 다리를 건널거예요. 잠수교 입구에 있는 해일이나 풍..
오늘도 차를 몰고 사탕무가 자라는 너른 밭으로 들어간다. 설탕이 만들어지는 그 장소를 지나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 너머로 합성석유 공장이 있다. 설탕 만드는 곳에 합성석유 공장은 왜 있냐 하겠지만 여긴 하유섬이다. 중동산 원유를 아예 안 들여온다고. 그 안에서 모두와 인사하며 사탕무 찌꺼기를 알코올로 만든 것을 메타포밍 반응기에 넣고 제올라이트 촉매가 어떻게 반응되는지 그려진 도표를 지나 새로 도입된 또 하나의 메타포밍 반응기를 본다. 공장 내부에 은근히 자리가 많아서 놓을 자리는 충분했다고 하네. 나는 여기에서 휘발유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는 입장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알코올에 의한 나프타 개질은 마법이다. 솔직히 나프타에 알코올 섞고 제올라이트 촉매를 넣어 반응시키면 옥탄가가 올라간다는 것이 ..
반클러치가 서툴러 가파른 언덕길에서 구르는 자동차. 그리고 그 언덕을 걸어서 넘어가는 인파와 그 언덕을 내려오는 통근객으로 가득 찬 버스. 또 언덕을 넘어 구를 하나 넘어 향하는 트럭과 그 트럭이 지나간 길을 따라 어느 정류장에 서서 사람들을 토해내는 버스. 열녀문사거리의 좁은 커브를 돌아 또 더 가서 우회전 면허증을 받으러 접수하는 인파와 그 건물을 나와 또한 언덕이자 숲길인 그 도로를 끝까지 지나면 나오는 어느 고속도로 입구와 또한 제한속도가 내려간 어느 도로와 지하보도, 고가차도. 굽어있는 정지선을 출발하여 들어선 공단에서 또 언덕을 만나면 직진하고 두 번째 포켓차로 들어서서 좌회전으로 크게 돌아 제일 가장가리에 붙어 가장 가파른 언덕은 직진에 두고 우회전 하면 또한 급곡선 치는 언덕과 위험한 좌회..
솔직히 그랬다. 그리고 자동차를 팔아도 팔아치운 돈은 바로 들어오지 않을거라면서 나를 좌절시키는 딜라 새끼가 양아치 같다고 그 곳을 나오며 질러대고 집으로 가는 트램에 오른다. 사고처리가 스트레스를 불러와서 그런가, 내 집과 가까운 트램 정류장이 무슨 저심도 지하에 있는 줄 착각했던 나는 이제 정신을 조금씩 차렸고… 다니던 회사에서 짤렸다. 이유야 자본가 새끼들이 늘 그렇듯 네놈이 지각하면 너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손해라며 어깨를 두드리며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하면서 너는 짤렸다는 우회적인 표현을 하며 퇴직금을 선물이라고 주며 내쫓는 것을 당한 것이다. 그 돈은 고스란히 교통카드 충전하고 전부 통장으로 들어갔지마는 갚아야 하는 청구서가 아직 오지 않았다. 어차피 올 청구서에는 관심을 끄고 지냈으며 집 앞..
하기 싫은 일들을 무더기로 겪고 있어서 힘든 와중을 보내고 있지요. 날씨는 갈수록 더워지고 모두들 이럴 때는 카페에 가서 쉬어야 맞지만 일은 해야 한다고들 하지요. 트램 안에서도 분주하게 뭔가를 하는 사람들과 부딪혀서 죄송하다고 했고요 그렇게 도착한 시험정원에서 향기로운 여름 꽃냄새를 맡았죠. 향기로웠어요. 하여튼 이렇고 있는 일들이 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약간 숙여 정류장에서 도로를 바라봐요. 타고 온 트램이 떠나가고 자동차와 버스가 분주해요. 안녕, 귀여운 인형이네. 모두들 나를 보고는 인사하지요. 그래서 북동쪽에 사냐고 물어보는데 아뇨, 저는 남서쪽 살아요 하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더운 탓에 널부러진 고양이와 함께 벤치에 널부러지기도 하고 즐거워요.
자동차 사고가 났다. 다른 차를 박은 것은 아니고 나 혼자 표지판 기둥에 박았다. 난감하다. 우선 보험사에 연락하고 렉카를 기다리고 도크에 도착해 접수까지 하니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중앙구의 도크에서 남서주택단지의 집까지는 전철로 30분이다. 차를 맡기고 전철로 돌아온다. 남서주택단지역 출구로 나와서 희끄무레한 하늘을 본다. 어쩌면 이게 내 심정과 그리도 닮았는지 우울하고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저심도의 지하철역 출구로 나오니 나를 맞아준 희끄무레한 하늘이 나 대신 눈물을 흘리고 우산을 갖고오지 못한 나는 당장 집으로 뛰어들어 간다. 뛰어들어간 집에 누가 있으랴. 당장 나 혼자 사는 집에 누가 있을 리 없다. 도크에 들어간 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철 시간표를 외우고 버스를 갈아타고 늦어서 죄송하다는..
그렇게 해안 쪽으로 걸어간다. 무엇이 보이냐 하면 악천후 시 통행금지라고 되어있는 바다 수면에 거의 닿게 되어있는 다리와 그 위를 놓여있는 왕복 2차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보였다. 인도에서 가만히 쪼그리고 앉으면 바다가 만져지는 신기한 도로라서 모두들 여기로 찾아오는 것이겠지. 그렇게 바닷가로 나있는 낮디낮은 다리를 건너며 저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걷는다. 걸어서 도착한 곳은 그냥 해수면에 닿을락말락하는 다리의 건너편. 굳이 설명하자면 미개발지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남동구와 카페가 들어선 예쁜 거리로 유명한 북동구의 경계 정도 되겠지. 어차피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데다 카페로 가기 위해서는 구계를 넘어야 하기도 해서 일단은 가까운 카페를 찾아 버스를 ..
이것 봐요! 엄청 투명해요! 너무 맑고 깨끗해서 기분이 좋아질 정도예요. 그리고 내 옆에서는 오붓한 가족의 식사자리예요. 그 사람들은 내 고기로 만든 스튜를 맛있게 먹고 있어요. 맑고 깨끗한 유령은 그렇게 자신이 먹혀서 사라지는 광경을 마치 식사자리를 지키는 하인처럼 보고 있어요. 맛있나요? 맛있었어요? 그렇다면 나에게 정말 맛있는 고기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해주시겠어요? 안 그러면 이 집에 눌러붙을거고 풀터가이스트 일으킬거야. 다들 노린내가 심하지만 기름기가 많았다고 이야기해요. 문득 슬퍼졌어요. 그래서 나는 스르륵 사라져서 어느 공원에 닿았지요. 그리고 풀밭에 누웠어요. 풀밭은 대단히 보드라워서 잠을 자기가 편하고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그 날, 요정을 만났어요. 푸른 요정이었죠. 우울함을 가져가 주겠다..
내가 사는 곳은 이상한 곳이다. 그런 나라에서 오늘도 자동차 몰고 꽃배달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닐거고, 농사 짓고 꽃을 기르고 사탕무로 설탕 만들고 관광객 들이는 것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금방 망하니까 농사나 원예나 제당산업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BTL을 시도해 유전 없는 산유국이 된 작은 섬나라가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하겠지. 그리고 백금은 비싸니까 다른 방법 없냐고 해서 찾아낸 메타포밍인가 하는 것으로 휘발유를 개질하는 것도 특이하다 하겠다. 또 이것을 주민들에게 납득시키려고 몇 년을 허비해서 외울 정도로 된 때에 최초의 주유소가 생기고 이렇게 꽃배달 다니는 녀석한테서 BTL이니 메타포밍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정상은 아니거든. 기름 얘기는 그 쯤하고 내가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살..
심각한 꿈을 꾸고 일어났다. 트램이 없어진 도로 때문에 집에 틀어박힌 내가 냄비를 돌려주려 뻘짓하는 꿈이었다. 도로에는 여전히 자동차와 달리는 트램이 건재했고 냄비 얘기는 꿈 속 얘기인 것 같다고 안심하자 새끼손가락을 물렸다. 푸른 요정 하나가 싫은 표정을 띄고 나타났지. 일단은 나가보자. 트램은 그대로 누군가를 태우고 여기저기로 떠나고 있다. 버스도 트램을 보조하고 있고 자동차와 택시는 그 둘을 경멸하는 것도 같았다. 망상이 아마도 꿈에서 나타난 느낌이다. 그런 만큼이나 내가 얼마나 몰려있나 싶어서 그런가 싶어서 일단은 나가보았다. 남서쪽의 분주함이 여전히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어쩌겠어, 여기가 하유섬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니까 내가 적응해야 해. 추워서 옷을 껴입고 나가는 지금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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