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생각은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을 바라고 있어. 그러면 어떤 순진한 인형이 나에게 물어보지. 그런 사라짐이 과연 어떤 의미냐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면 갸웃거릴테고, 사람들이 그것을 원할 뿐이라고 하면 놀랄테고,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면 생각만 하다 고장날테지.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좋을까. 나는 아무것도 몰라서 조용히, 조용히 있었어. 그런데 순진한 인형이 말하길, 내가 울고 있대. 우울하면 자신을 껴안고 쓰다듬어도 좋다고 자신은 인형이니까 그래도 좋다고 제발 행복해지라고 걱정하는 표정으로 얘기해. 나는 이리 오라고 하며 순진한 인형을 쓰다듬어. 그리고 말해주지. 오늘날의 생각이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을 바라는지를. 바로 네가 우울하면 자신을 껴안고 쓰다듬어도 좋다고 자신은 인형이니까 그..
은빛이 도는 하얀 인상에 비단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요정 혹은 인형 소년. 어딘가의 섬에 숨어살고 있다. 꽤 귀엽게 생겼다고 듣지만 자신은 그 말을 싫어하는 모양. 기본적으로 상냥하거나 착한 성격이지만 그에 나사가 빠져서 얼빠져보인다. 적당히 말하면 도움이 되지만 너무 말해버려서 폐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말재주가 모자른 이유가 다 자기가 멍청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말하는 것에 대해 겁이 많은 편이다. 거절을 잘 못한다. 기본적으로 순하고 착해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편이지만 한 번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면 차갑게 변해버린다. 하지만 꽤 귀염성이 있어서 누군가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경우가 많지만 기본설정이 망가진 덕분인지 호의 속의 악의를 걱정한다. 굉장히 순하고 신비..
나를 무엇에 비유하고 있지? 인형, 요정, 안드로이드, 그저 그런 사람, 고양이라고? 그것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왜 나는 그것에 나를 비유하고 있을까? 부족함과 불안함, 태생적인 우울함과 바보같음이 나의 삶에 얼마나 많은 방해를 주지? 호기심과 상냥함을 잃어버리고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과연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나는 강함과 힘을 얻었을까? 나는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호기심과 상냥함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얀 꽃을 좋아하는 걸까? 유리종도 좋아하는 걸까? 은방울꽃과 블루벨 한 송이 씩 기르면 기분이 좋아질까? 왜 로즈메리하고 타임은 꼭 기르고 싶어질까? 나는 유리로 만든 종소리를 좋아할까?
자, 모두들 내 이야기를 들어보아요! 엄청 사랑스러운 세계를 꿈꾸고 있어요. 숲과 온실과 하얀 인형들과 요정들이 있는 세계예요. 하얀 꽃과 맑은 물가와 상냥한 우울함이 있는 곳이에요. 조그만 열차가 달리는 철길과 자그마한 샛길이 사랑스럽고 인형들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톱니바퀴 소리가 깨질 듯이 아름다워요. 물론 인형들의 무브먼트 소리를 듣느라 그 아이들 가슴에 귀를 기울이면 난감해하면서 부끄러워 하지만. 나의 집은 온실이랍니다. 온갖 향기롭고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무들을 심어 가꾸지요. 포근하고 조심스러운 고양이 녀석들이 들어와서 야옹거리기도 하고 귤나무에 열매가 열려 새콤함을 즐기기도 하고 박하와 백리향 향기에 진정하기도 해요. 하지만 역시 혼자 인형처럼 놓여있다가 우울함을 가져가주는 요정에게..
전철은 플랫폼을 떠났다. 그렇게 떠난 전철은 바닷가를 지나서 나를 허탈하게 했다. 바다 가까이로 와서는 그대로 짜증나서 가만히 죽을까 말까 생각하고 있었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미래가 삭제당한 어떤 젊은이가 멍청히 있다. 그리고 가만히 일어나서 바다를 보고 앉았다가 바다를 향해 한 걸음을 딛었다가 다시 뒤로 한 걸음 걷고 멍청하게 전철역이 있는 뒤를 돌아보고 계속 바닷가로 전진했다. 와다다다 뛰어가서 바닷물 바로 직전에 멈춰선다. 죽고싶어 환장한 어떤 인형은 전철로 집에 돌아온다. 누군가 있지도 않고 그저 환멸 화아안며어얼 만이 기다리는 하루하루는 이 북서쪽 바닷가의 그 어떤 느낌을 가만히 간척하고 말아서 그저 오늘 하루도 탁자에 다트핀을 꽂아 세운다. 탁 하고 박히는 그 다트핀의 소리가 경쾌하지만 그 나..
새하얀 인형. 오늘도 꿈 속에 나타나 주었지. 항상 폭 안겨서 자기를 싫어하고 있냐고 묻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 너무 순하고 귀여운 아이지만 매우 우울하고 덧없는 아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한껏 귀여워해줄 수도 없어. 나인 것 같아서, 이 아이가 우울해하는 이유가 어쩌면 나와 비슷한 이유 같아서. 어쨌든 그 아이는 정원섬에 살고 있는 굉장히 순하고 하얀, 그리고 웃는 얼굴이 귀여운 아이. 나는 오히려 그 아이랑 만나서 여러가지 말 없이 서로를 소중한 인형처럼 데리고 노는 것을 즐겼다. 서로의 이야기도 조금씩 나누고 귀여운 옷도 입혀주고 또한 서로가 가진 새하얀 무언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했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
"저는 하자품입니다. 어서 버려주세요." 나와 어느정도 같이 있었던 안드로이드 녀석이 갑자기 에러를 뿜은 것은 한 3년 전 정도였다. 자기를 하자품 내지는 검수가 되지 않은 불량품으로 취급하며 나한테 꼭 우울한 아이처럼 안겨서 울기도 하고 내가 돌아오는 시간 즈음에는 우울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수리를 맡겨도, 좀 이상한 것 같지 않냐고 그 아이에게 물어봐도 문제없다는 결과만 계속 나왔다. 안드로이드 녀석들이 우울증 걸리거나 하는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고 자부하던 안드로이드 녀석들 수리에 짬이 차오른 수리기사도 '이쯤되면 평범한 사람의 우울증 수준'이라면서 모르겠다고, 리셋해드릴까 하는데 제발 이 아이 리셋은 하지 말아 줘. 그냥 우울한 안드로이드의 주인으로서 그 아이가 갸웃..
누가 대화다운 대화의 형식을 제게 알려주었으면 해요. 저는 대화다운 대화를 못하고 있고 그게 뭔지도 몰라서 사람들한테 진짜 말하는 법을 모른다고 한소리 듣는데 도대체 대화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람보다는 인형에 가까운 저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도 사람된 이상, 외람되지만 알아야 해서 말이에요. 사회성 떨어진다고, 아는 것만 많고 생각만 많고 다른 것은 다 안됐다고 듣기는 더 이상 싫어. 비유를 들면 대부분 못 알아듣더라고요. 그리고 어려운 이야기라면 테세우스의 배라던가 거짓말쟁이 크레타인같은 얘기를 말하나요? 그리고 평범한 일상은 무엇이고 관심사가 같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는거죠? 사회성이 떨어..
향기로운 차를 준비해 놨고 달콤한 과자도 준비했어요. 알아차리고 와주세요, 병든 심리의 가시덤불과 알 수 없는 명제의 숲 너머로. 숲 속, 답이 존재할 리 없는 딜레마를 헤치고서요. 여기, 내가 준비한 것들은 당신을 위한 것. 하지만 당신은 주머니칼로 나를 죽이려들고 나는 알아버리죠. 나는 있으면 안 돼. 남에게 폐만 끼치는 멍청이잖아. 그러면서 가시덤불이나 딜레마 명제의 숲을 얘기하면 나는 모를 수밖에 없어요. 나는 여기에서 줄곧 있었으니까요. 숲 속이나 숲을 가로질러 있는 곳은 모르니까 가르쳐달라고 순진하게 웃으면 목을 긋고 목을 긋고도 피가 흐르지 않아 몇 번이고 찌르고 그렇게 귀엽고 하얀 모습이 망가져버리면 그것이 매우 달콤한 악몽이겠죠. 후회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이미 망가져있어요. 애초에 망가져..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은 공포다. 그래서 그 공포를 무마하기 위해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하며 관철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공포에 빠져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해서 해결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지는 것이나 아니면 관철의 과정에 격정이 올라오는 것이나 비슷하다면 둘 중에 하나만 하게 되었으면. 그리고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 만큼이나 많은 판단을 요구하는 복잡한 체계에 갇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사람에게 실망하는 누군가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은 사람 대신에 인형을 좋아하기도 한다. 인형이 아니라 그 다른 무언가일 가능성도 높다. 대다수는 마약에 손을 대거나 재미로 사람을 죽이거나 돈에 미쳐서 무슨 일이든 한다. 이렇듯 쾌락범으로 굴러떨어지는 부류보다야 인형에 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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