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있다. 일본어가 강세인 이 거리에서 나는 무슨 생각으로 서 있을까? 그것도 우산도 쓰지 않은 채로 말이다. 북동보다 남쪽으로 남동구에 속하는 이 곳에서 뭐를 하고 싶었을까?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고 처음 뵙겠다고 야옹거린 그게 전부다.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나아가고 싶은데 안 된다. 그게 다다. 뭐가 좋은건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싶어. 그리고 애매하고 우울한 여기 사람들의 본성이 나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서로서로 자기만의 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낌만 심하게 들어버리는 것이 나는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작정 택시를 잡는다. 깨져버린 것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고 비 오는 카페 창가에서 오늘도 기다리지만 안 돼. 여기 사람들은 절교하면 다시..
신기한 일들은 그렇게 쉭쉭 지나가고 진짜 그곳에 암초가 있는지 확인하려 구태여 남동 바닷가에 가보기도 하고 나리에게 인형 마녀를 만난 얘기를 하니까 그런 애였냐고, 왜 여기를 그렇게 소문냈는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내긴 했어.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딱히 없는 보통 하루가 흘러갔다. 카페는 평소대로 손님이 없고 숲은 가깝고 심심해서 켜본 뉴스에서는 먹을 것을 안 축내는 대체에너지 제작 공정을 도입한다고 해서 피셔-트로프슈 합성이네 뭐네로 시끄러웠다. 그리고는 이제 곧 비식용 바이오매스 연료화 공정이 도입되니 연료사용제한을 피셔-트로프슈 합성법으로 제조한 블루크루드에 한해서 풀어버린다는 보도였다. 나는 우려스럽지만 따르라면 따라야지. 한 번은 프로판 창고가 터져서 미세먼지로 죽어났던 하유섬이 갑자기 유하게 변한..
미묘함이 감도는 어느 오후였다. 아침에 피칸토를 타고 출근한 카페는 손님이 좀 오는 편이었고 오후에는 아예 없어지는 양상이었다. 손님 없는 카페를 정리하며 나리가 들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동안에 누군가 카페에 찾아왔다. 금발벽안의… 마녀! 딱 그거다. 고양이귀 로브를 걸치고 나리랑 동족인 느낌인데 마녀라고. 인형 마녀라니 특이해서 그냥 정면 응시를 못 했다. 그것이 다다. 그리고 나리는 그 마녀를 보더니 갑자기 또 다른 자기를 본 것처럼 뭔가 불길해 했다. 그리고 마녀가 카페를 나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가지고. 마녀의 등장은 나리를 좀 당황하게 만든 듯한데, 나는 그런 나리의 행동이 좀 뜬금 없어서 당황했지만 뭐, 어때. 동족끼리 안 좋은 감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마도 그런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
밤고양이 소동도 지나가고 나는 어찌저찌 또… 출근했다. 그냥 그랬다. 미니라는 자동차가 이제 마음에 들게되어 프라이가 위험하다. 그 정도로 끝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프라이드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어디에서 계속 나오고 있지도 않고 그냥 가지면 만족으로 끝나는 미니는 부품수급이 좋다, 그 뿐이다. 그리고 영국에는 이제 자동차 회사가 하나 빼고 다 없어졌지 않는가. 그런 것으로 고민하느니 차라리 나는 지금 있는 내 차라도 지키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니까 차가 모자르든 아니든 일단은 있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길가에서 차를 몰고 있노라면 서툰 실력에 힘입어 저런 고물차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이 나에게 경찰을 만나게 해준다. 휘발유를 밀수했느냐는 말에 이미 ..
아무래도 아무것도 되지 않아. 다들 다른 곳을 보고 있고 얼마나 더 움직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최대한 아주 멀리 나갔어요. 그리고 내 태엽이 다 풀렸어요. 태엽이 조금 감기고 이내 태엽이 다 되어 풀리는 동안, 멎어가는 나를 소중히 다루는 사람들. 그 때, 나는 깨달았어요. 두 번 다시 내 태엽은 감길 일도 없고 다시 내 태엽을 감아줄 사람도 없고 태엽을 감지 않은 채로, 그냥 그렇게 되어서 내 태엽은 망가지고 그저 움직이지 않아 얌전하고 꿈꾸는 듯한 아주 정교하고 귀여운 인형이 되어 버린 것을.
하유국 외무부는 최근, 외신들이 '하유는 평행세계의 싱가포르'라고 표현한 데에 강력한 유감을 표시한다. 하유국 정부는 개국 초기에 일본, 한국, 북조선, 대만, 중국 등과 수교하며 '첫 수교의 빌딩'에 그들의 대사관 및 대표부를 마련하고 한국, 일본과는 '하일한 상호 동반자 협정'을 체결, 상호 3개국 간의 여행사증 면제와 무역과 교류 편의를 도모함으로서 그 이듬해에는 국제연합에도 가입하는 등, 적극적이고 포용적인 외교행보를 보여왔다. 허나, 하유국 국체를 3권분립도 애매하며 아직도 검열이 만연하고 파업과 시위도 단 하나의 장소에서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만 가능하고 노조는 불법인 싱가포르에 빗대는 일부 외신의 행태에 대해 하유국은 그저 와신상담하며 굴복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보이게 되었다. 하유는 상냥함..
하유국은 작은 섬나라일까 아닐까 한다면 일단 맞다. 초반에는 1,210.5㎢ 면적의 섬 하나에서 시작해서 점점 불어나가는 그런 셈일테다. 일단 중심되고 이야기의 중앙에 있는 땅덩어리, 하유섬은 작은 섬이고 이 섬의 기후는 애매하다 못해 일단 상춘기후와 냉대습윤기후의 특징이 섞인 하유국만의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봄 가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 년내내 계속되는 서늘함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 특징을 정말 전형적이면서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섬의 날씨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정도 살아보곤 학을 떼고 도망가버린, 아무도 살지 않는 사실상의 무주지였다가 결국에는 그 섬의 북서쪽에 누군가 다시 상륙하고 몇 시간 뒤, '하유'라는 나라가 세워졌다. 그렇게 세계 표준시보다 10시간이 빠른 시간이 흐르는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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