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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자동차 사고

두번의 봄 2020. 5. 15. 12:42

자동차 사고가 났다. 다른 차를 박은 것은 아니고 나 혼자 표지판 기둥에 박았다. 난감하다. 우선 보험사에 연락하고 렉카를 기다리고 도크에 도착해 접수까지 하니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중앙구의 도크에서 남서주택단지의 집까지는 전철로 30분이다. 차를 맡기고 전철로 돌아온다.

남서주택단지역 출구로 나와서 희끄무레한 하늘을 본다. 어쩌면 이게 내 심정과 그리도 닮았는지 우울하고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저심도의 지하철역 출구로 나오니 나를 맞아준 희끄무레한 하늘이 나 대신 눈물을 흘리고 우산을 갖고오지 못한 나는 당장 집으로 뛰어들어 간다. 뛰어들어간 집에 누가 있으랴. 당장 나 혼자 사는 집에 누가 있을 리 없다. 도크에 들어간 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철 시간표를 외우고 버스를 갈아타고 늦어서 죄송하다는 표시를 하고 눈치를 봐야 하겠지. 어디나 사무실은 그러니까 하유섬이라고 다르지 않다. 먹다남은 냄비요리를 다시 데우고 비가 소강상태라 잠시 우편함도 확인하고 텔레비전에서 광고에 주로 집중하다가 정파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도크에 들어간 자동차를 걱정하는 꿈을 꿨다.

저심도의 지하철역에 전철이 끼익하고 선다. 분주하게 타는 모습은 내리는 이가 없는 바쁜 시간임을 알려주고 겨우 끼어서 하유중앙역 지나고도 두세 역을 지나 미니버스에 타고 사무실이 있는 빌딩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내려서 사무실을 찾아 허둥지둥 뛰어 문을 열고 죄송합니다! 그 우렁찬 소리에 다들 내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앉으라고 한다.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자니 동료가 커피를 들고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나는 갑자기 얼굴색을 바꿔서 뭔 일 있겠는가 대답하고 동료가 간 뒤에 긴 한숨을 쉰다. 도크에서 연락이 오기를, 부품이 문제가 되나 빨리 고치겠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또 뭔가 조급해져서 내 상사 자리에 잠시 들르려 한다.

상사는 임금을 미리 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모두와의 약속이고 개인적으로 나에게 돈을 줬다간 여권 뺏기고 생판 모르는 나라 감옥에 가게 될거라며 더욱 더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 하루 종일 식은 땀 속에 업무를 봤다. 점심을 먹더라도 항상 먹던 것보다는 가장 싼 것을 골라 먹게되고 통장잔고도 연신 확인하며 이 사람이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날을 보냈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자 아침에 커피 들고 온 동료가 또 다시 커피를 들고 와서 진짜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한숨 쉬고 진실을 말한다. 바보같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표지판 기둥을 살짝 박았네. 도크에서는 언제 고쳐질 지 모른다더군. 돈문제가 생긴거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 어딘가에 맡겨두었다면 돈문제가 생길 법도 하겠군요 하면서 커피 한 잔을 내 자리에 놓고 간다. 계속해서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좀 있으면 퇴근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미리 버스 시간과 전철 시간을 봐둔다.

미니버스는 중앙업무지구역에 선다. 하유중앙역이라는 지상역을 떠나 남서주택단지역이라는 조그맣고 얕은 역에 도착하기까지 약 25분. 도크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니 냄비요리는 바닥을 보였고 바깥에서는 고양이가 운다.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참치캔이라도 따서 줬을텐데 지금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심란함에 심란함을 더한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기를 내가 고양이라면 자동차 사고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지.

오늘은 꼴좋게 전철을 놓쳤다. 그렇게 남서주택단지보다 국제터미널 방면으로 더 많이 가는 전철을 욕하며 몇 분 몇십 분을 기다렸다. 중앙업무지구역에 도착해서도 미니버스가 배신을 해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결국에는 사무실에 늦었다. 내 상사는 오늘 지각의 이유를 묻지 않겠고 결국에는 늦었으니 내 월차를 하나 소진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그렇게 오늘은 회사를 쉬게 되었다. 이 참에 차를 맡긴 도크에나 가서 얼마나 고쳐졌는지 물어보자고. 도크에 도착하고 접수처에서 내일 즈음이면 다 되실거라고 안심하라고 하며 미소를 지어주는데 나는 그 미소의 이유가 더더욱 불안했다.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장기를 떼거나 하는 것은 하유에서 불법이다. 개인파산을 알아보자니 나는 이미 일자리가 있고 보험사에서는 자기가 낸 사고 자기가 책임지자 하면서 보장은 기본선에서 끝이라고 했다. 이렇게 된 이상에 내가 도크에서 차를 꺼내오고 렉카 이용료나 낼 수 있을 지 모르겠어서 삶의 의욕을 점차 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무것도 알 턱이 없는 수리비용 문제와 영수증, 그리고 나를 멀리 보내줄 밧줄의 매듭을 생각하고 겨우 편히 잠들었다.

쉬고 출근한 느낌이 어떠냐고 상사가 묻는다. 나는 잘 쉬었다고만 얘기하고 내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도크에서 차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일이 끝나고 들르겠다고 하고 오늘도 뭔 일인지 모를 내 업무를 마치고서 도크로 향했다. 그리고 보험은 어떻게 적용되냐고 하고 하는 수 없이 나중에 갚을 작정으로 신용카드를 썼다. 다시 내 차에 시동을 걸고 도크를 나섰다. 신용카드를 쓰다니 정신이 나갔구먼 하지만 그래도 당장 내지 않아도 되는 기쁨에 다시는 차를 몰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중고차 시장으로 향했다. 이 애물단지를 팔아서 신용카드 빚을 돌려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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