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러저런 일들로 끌려다니는 그런 느낌도 많아서 짜증나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전철로 남서중앙으로 가서 영점 카페로 들어가면… 금배지 단 양복 두 명에게 질질 짜는 지수가 있었다. 자꾸 추근대지 말고 어서 탈세했다 불으셔라고 하는 양복들은 세무서 직원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짜보고 이 가게를 뒤집어도 밀린 세금은 낼 수 없어라고 머리 싸매고 울고 있는 그 광경을 보다 못해 문을 닫는다. 어차피 문을 조금만 열고 구경하는 꼴이란. 그리고 전철 기다릴 즈음에 근처 영점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그 양복 둘이서 지수를 끌고 간다. 탈세 혐의로 세무서에 구금되는걸까 하고 순간 생각했다. 그리고 가게 정문에는 '탈세자 동결자산'이라고 붙여져 버렸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약간 놀라서..
그냥 그렇게 일이 다 진행되어 가는 봄날이었다. 그런 한 편으로는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로 전철을 타고 의미 없이 아무 곳이나 쏘다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일하게 된 '영점'이라는 카페는 남서구 중심지에 있었지만 왜 개점휴업 같은 꼴인건지 모르겠고 '왜 홍보 안 해요'라고 지수에게 물으면 그저 고개를 젓는다. 그냥 가게를 붙잡고 있는 것도 힘들다며 언젠가 큰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한숨 쉬며 자리에 앉는다. 나도 한숨 쉬며 일하기 싫다는 뜻으로 고개 저으며 그저 에스프레소 기계 앞에 앉아있었다. 그러자 지수가 이쯤 하자며 일어나 돈봉투를 내게 건넨다. 월급이라니 순간 당황해서 얼었지만 가져가라니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무슨 월급 지급이 이렇냐 하면서 짜증을 내는 것 보다는 가만히 있는 ..
그렇게 대충 만남은 일단락 되나 했는데 아니었다. 아직도 구직활동은 구질구질하게 계속 해야 하고 그런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표리부동한 철면피였다. 그나저나 왠지 집에 눌러붙은 푸른 요정은 아무것고 자기는 모르겠고 이불은 폭신폭신 하면서 잘 쉬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걔를 따라 게을러져서 구직활동은 그만 두었다. 취직 못하고 구직활동도 못하면 나라에서 나오는 취업장려금도 끊기겠지만 그런 걱정은 나중에 하자는 식으로. 그러던 중에 마을사무소에서 부르기에 좀 불려나가니 마을을 개발하는 건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왠지 노면전차 뜯고 지하철 짓자는 얘기가 나오고 그런다. 그런 자리에 참관으로 있던 동백통 사람들이 그럴 바에는 내각을 설득해서 교통이 불편한 동백통으로 노면전차를 연장하는 편이 낫지 않냐고 말했..
세계 표준시보다 열한 시간이 빠른 시계는 똑닥거렸고 일자리를 얻지 못한 누군가는 하유섬 한 가운데를 걸어다녔다. 전철 타고 쭉 가니 어느샌가 여기에 닿았고 여기서 해안가에서 근처의 집으로 걸어간다 한들, 나라한테 빌린 집. 살고 있는 동네가 바닷가랑 가까워서 언제나 막힐 때마다 바닷가로 가는 멍청한 니트는 남서구 한귀퉁이에 있는, 나라에서 빌려준 집에 살고 있다. 진짜로 나라가 조그마해서 주택을 배급한다고. 그런 입장에서 외람되지만 빨리 일을 해야하는 나의 처지는 한심하다 못해서 짜증난다. 이런 일상이 끝나기를 바라며 '적어도 사랑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매일매일 바라는 바보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오늘, 내가 타려던 게 몇 시에 온댔었나 하고 좀 더 일찍 일을 잡으러 나갔다면 탈 수 있었을..
눈을 뜨면 나는 정원에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꿈이라는 것은 생각해봤자 건강해지지 않는 느낌이 나지만 여하튼 이곳은 꿈과도 같았다. 정원을 걸으며 상쾌한 향이 나는 박하와 진정하게 해주는 향의 라벤더, 특이한 향의 백리향이 바람에 흔들려서 향기로웠다. 저 너머에서 새하얀 아이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긴다. 만나서 반가워. 오늘은 날씨가 좋네라고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를 상냥하게 대해준다. 섬에는 봄과 가을 밖에 찾아오지 않아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이 섬에 사는 사람은 나, 단 하나. 나머지는 숲 속의 순한 동물들과 착한 요정, 그리고 내 마음을 깃들인 새하얀 자동인형들. 그렇게 모두가 여기의 다정함에 조금씩 물들어가며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만들어나갔다. 결국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서 조금 슬..
힘들게 견디기만 하다가 결국 사표를 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전철에 흔들리며 남서중앙역까지 와서는 시내버스나 노면전차로 갈아타고서 남서해안으로 와서는 또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그저 지칠 뿐. 오늘의 일이 그다지 대견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그저 소리를 한 번 빽 지르고 힘들다 하면서 항상 질리던 회사의 일을 그만 두었다. 항상 전화소리에 지쳐 노이로제 생기는 것도, '감히 일개 회사따위의 직원이 내 여행계획에 공구질이야' 하는 것도 이제는 끝이다. 다행이기는 하나, 한 가지 걸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럼 오늘 있었던 일을 천천히 말해보도록 한다. 우선 나는 여행사 직원이었고 그 중에서도 아주 아랫쪽 일인 예약을 받고 예약사항에서 항상 부득이하게 생기는 변경사항을 알려주는 것이 내 업무였다. 당연히 전..
오늘도 신경긁는 전화에 졌다.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는 내 신경을 긁어놓고도 퇴근의 시간, 세계 표준시로부터 열 시간 빠른 하유섬 표준시로 오후 5시의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날 뿐이다. 그나저나 퇴근시간인데도 큰 길가 전철역에서 여기 골목으로 들어오는 버스는 아직 나를 집에 데려다줄 생각을 안 한다. 뭐 어떻게 내가 버스 타려고 서있고 시간표가 바뀌건 뭐건 나는 다른 사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공포스러워 숨고 싶었다. 버스타고 이윽고 도착한 전철역에서 나를 태우고 출발한 전철이 바닷가가 보이는 남서쪽으로 향하며 뭔가 불안한 느낌에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차창을 바라보는 사이에 전철은 남서주택단지에 섰다. 여기에서 집은 걸어서 3분이니까 걷고 걸어 집에 닿지만 걷는 걸음은 썩 지쳤다. 내일 또 하얀 ..
눈을 뜨면 나는 정원에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꿈이라는 것은 생각해봤자 건강해지지 않는 느낌이 나지만 여하튼 이곳은 꿈과도 같았다. 정원을 걸으며 상쾌한 향이 나는 박하와 진정하게 해주는 향의 라벤더, 특이한 향의 백리향이 바람에 흔들려서 향기로웠다. 저 너머에서 새하얀 아이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긴다. 만나서 반가워. 오늘은 날씨가 좋네라고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를 상냥하게 대해준다. 섬에는 봄과 가을 밖에 찾아오지 않아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이 섬에 사는 사람은 나, 단 하나. 나머지는 숲 속의 순한 동물들과 착한 요정, 그리고 내 마음을 깃들인 새하얀 자동인형들. 그렇게 모두가 여기의 다정함에 조금씩 물들어가며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만들어나갔다. 결국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서 조금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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