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신기한 일들은 그렇게 쉭쉭 지나가고 진짜 그곳에 암초가 있는지 확인하려 구태여 남동 바닷가에 가보기도 하고 나리에게 인형 마녀를 만난 얘기를 하니까 그런 애였냐고, 왜 여기를 그렇게 소문냈는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내긴 했어.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딱히 없는 보통 하루가 흘러갔다. 카페는 평소대로 손님이 없고 숲은 가깝고 심심해서 켜본 뉴스에서는 먹을 것을 안 축내는 대체에너지 제작 공정을 도입한다고 해서 피셔-트로프슈 합성이네 뭐네로 시끄러웠다. 그리고는 이제 곧 비식용 바이오매스 연료화 공정이 도입되니 연료사용제한을 피셔-트로프슈 합성법으로 제조한 블루크루드에 한해서 풀어버린다는 보도였다. 나는 우려스럽지만 따르라면 따라야지. 한 번은 프로판 창고가 터져서 미세먼지로 죽어났던 하유섬이 갑자기 유하게 변한 이유가 이런 계기라는 것은 여기 사람들 여기저기에 애매함이 있기 때문일까나 하는 지리멸렬을 즐기려다가 나리가 집에 가자고 가게를 닫아서 그냥 퇴근. 피셔-트로프슈 합성법으로 원유 성분을 물에서 추출하는 블루크루드를 도입하면서 휘발유와 경유는 블루크루드 기반으로 된 것만을 연소한다는 조건으로 풀려버린 휘발유와 경유 판매가 얼마나 하유국을 괴롭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도 나랑은 상관 없으니까. 나는 그냥 계속 트램 타고 CNG 쓸거다. 기름과는 인연이 없을테니까.

의외로 간선도로는 소통원활. 뉴스나 보다가 퇴근한 오늘은 일한 기분도 나지 않아서 언짢아. 그나저나 중학교 과학을 배웠다면 일산화탄소 더하기 수소는 탄화수소라는 것을 모르는 작자는 없겠지만 어째서 그렇게 액체연료를 만들 수 있냐 싶어 연금술 취급했는데 그게 된다고? 의아함에 싸여 집으로 돌아온다. 축축한 저녁이다. 차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어차피 출퇴근용과 재미를 위해서 차를 몰고 피셔-트로프슈인가 뭔가 하는 공정도 비쌀테니까 그냥 닥치고 CNG차를 모는 것이 이득이다. 다만 트렁크가 문제지만. 오늘도 집 대문을 열면 푸른 메이드가 오셨냐면서 푹 쉬라고 일러둔다.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폭신한 침대에 누워서 다음 날 아침까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은 루미가 눈 비비고 일어나는 순간 히익하고 놀랄 만큼이나 일찍 일어나 어느 자동차 판매점을 구경하고 북동으로 가자. 블루크루드 냄새를 맡았는지 벌써 휘발유와 디젤, LPG와 CNG가 전부 전시되어 있었고 트렁크를 모두 쓸 수 있다고 광고하는데 그럼 이제 CNG는 퇴물인건가 하면서 다시 차에 올라타 간선도로로 진입, 나리네 카페에 도착한다. 손님도 없고 큰 변화가 하유섬에 생겼는데도 그게 좀 이상하고 그리고 북서쪽에서 블루크루드 관련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카페거리에 몰려와서는 오랫만에 카페가 붐비는 꼴을 보기도 했다. 나리도 이쯤되면 문 닫아도 되겠다 농담조로 말하고 말이지. 그리고 CNG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섬은 지금 반대로 가고 있네, 미래에서 과거로 가네 그러는데 그러지 마. 불안해지잖아.

문득 잠깐 바람쐬러 나와서 피칸토 주유구를 열어본다. 원래부터 바이퓨얼인 녀석이라 블루크루드인지 그 녀석의 은총을 받을 수는 있다. 왜냐하면 기름통이랑 가스통이랑 같이 있고 기름통을 뗀 적이 없으니까. 그건 됐으니 주유구를 닫고 갑자기 앵겨오는 새끼 고양이와 놀아주며 바람 쐬는 시간을 보냈지만 이내 카페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같이 따라와서 조금 난감할 무렵, 블루크루드 관련으로 식사하러 왔던 사람들은 다 나가고 고양이 내쫓지 말라는 나리와 같이 가게를 보다가 또 퇴근이다. 일하는 느낌이 안 난다. 간선도로는 노란빛 상황이었다. 상당히 밀리지도 않는데 밀린다. 근처의 PA를 찾아서 들어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로 목을 축이고 같이 있는 운전자들에게 안녕하세요, 많이 밀리는군요 인사하며 다 쉬었다 싶을 때에 PA를 빠져나와 아직까지 막혀서 미여울을 건너지도 못한 상황을 좀 짜증내며 차라리 전철 타고 오면 좋았을까 하면서 곧 이어 나오는 나들목으로 일제히 빠져나가는 차를 한 번 째려보고 내가 가려던 길이나 잘 가준다. 시험정원 나들목까지는 막히지도 않았다. 덕분에 시험정원을 오른쪽에 끼고 남서중앙 공영주차장 도착.

도착한 주차장의 경비가 이제 우리 섬은 블루크루드 때문에 죽을거라며 나에게 같이 환경자원부에 시위하러 같이 가자고 졸랐다만 나는 그냥 부드럽게 고개를 젓고 나올 뿐이다. 누구에게는 재앙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고 원하던 것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 편의점에서 폰 요금과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초콜릿 두 개를 산 뒤에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집에서 기다리는 푸른 메이드에게 선물하자. 대문을 열자 루미가 메이드처럼 깍듯이 나를 반기는데 언제 그만 둘거냐고 하니까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처음 만났을 때도 도와줄테니 죽이지 말아달라고 했던가 싶은데 그러니까 루미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며 메이드 놀이를 하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만 하자. 나는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뭔가 언짢냐고 물어보는 루미에게 웃으며 초콜릿을 건넨다. 역시 우울 요정은 달콤하고 먹는 순간에 행복해지는 것을 좋아하지만 생설탕은 입 끈적해진다며 싫어한다는게 사실이구나. 조용해진 루미와 고요한 집 안이 행복하게만 느껴져서 이제 잡생각 대부분은 물러나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틀면 블루크루드 반대시위가 벌어졌다는 것과 연료계통 원상복구를 문의하고 실제로 연료계통을 다시 휘발유나 경유로 바꾸는 경우가 생겼다는 보도들.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

마당으로 나가면 또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온다. 고양이 오뎅꼬치를 흔들며 펄쩍펄쩍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니 귀엽고 하찮아 죽겠다. 7번 국도를 노래하는 샹송이 떠오르는 햇살과 동네가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역시 궤도에 잡힌 트램이요 창문닦이나 하는 와이퍼려나 하니까 뭔가 체념하게 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걸어서 산책하는 것은 매우 도움이 된다. 그저 그래. 그리고 작은 북이 울리면 그대로 기분이 주저앉지. 가스 충전소에는 블루크루드 판매개시라고 붙어서 무려 네 개나 되었던 CNG 충전기가 두 개로 줄어들고 그 줄어든 두 자리에는 블루페트롤과 블루디젤 주유기가 생긴 것, 그렇게 북동쪽의 인형들이 북동쪽에서 인형 괴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면 경찰에 연락해서 적절한 보상절차를 밟고 또한 아픔을 치유해 주겠다는 포스터와 내 뒤의 그 인형괴담 퍼뜨린 장본인인 인형 마녀가 있었다. 당신이야, 앨리? 당신도 인형이면서 왜 아무도 못 믿겠다는 이유로 그런 괴담을 지어 퍼뜨렸지? 그러자 앨리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순진하게 씨익 웃는다. 뭐, 이렇게 여기가 나사 빠져서 블루크루드 한 방에 연료제한을 풀어버리고 한 개인이 나라가 생기던 초기에 퍼뜨린 괴담이 커져서 그걸 나라가 수습하고 있고, 잘 돌아간다. 그러자 앨리는 갑자기 내 눈을 가리더니 여기를 뜨자고 하며 내 허리를 자기 무릎으로 눌러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앨리, 무릎의 구체관절 때문에 아파.

실컷 장난이나 치던 앨리는 그렇게 장난 다 쳤으니 안녕이라 하고 다른 길로 샜다. 그렇게 앨리에게 실컷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가만히 보면 가로수로 심긴 체리나무와 느릿느릿 지나가는 트램과 그 옆의 버스와 자동차들이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관심이 많이 어느 한 군데에 박힌 터라 계속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보여서 나도 좀 지쳤을라나. 집에서 가까운 시험정원에서 벤치에 눕다 가야 겠다. 뭔가를 생각하고는 잊어버리고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다음으로 이제 5월을 맞아 피어나는 잉글리시라벤더를 구경하고 트램에 올라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차장에 고이 모셔놓은 미니의 가스통을 떼려고 공업사에 갔더만 그냥 가스통을 한 단계 작은 것으로 바꿔서 트렁크만 만들어 놓고서는 블루크루드에 기대갖지 말라고 하더라. 그러고서 변속도 뻑뻑하고 게르릉거리는 차를 잘 몰고 계신다고 하더라. 뭐, 그렇게 블루크루드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얼마나 계속 될 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게 뭔지 자동차는 한동안 거들떠도 안 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돈은 필요하고 꼴 뵈기 싫어서 죄다 팔았거든.

자동차 충전소에서 페트롤이 얼마고 디젤이 얼마에 에탄올은 또 얼마고 LPG는 CNG보다 얼마나 비싸며 전기 충전 한 번 하면 얼마나 낭비되련지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자동차를 팔고 걸어다니라는 소리가 뭔지 이해가 될 즈음, 자기 선물을 팔아버리는 인간은 처음 본다고 나리가 버럭인다. 물론 돈필요하면 주겠는데 얼마 안 가서 자동차를 또 갖게 될거라고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는데 나는 여태까지 남의 차를 탔고 그 선물받은 자동차를 어째서인지 운 좋게 그냥 받았고 보험이나 그런거 모르고 살았지만 이제 안 되겠다고 진심을 얘기하자 어차피 면허 있고 양보 다 해주니까 하유에서 뭔 보험까지 드냐고 하네. 그래도 싸움 붙고 내가 다 물어주는 것보다는 보험사 보증을 두는게 낫지 하자 자기도 무보험이고 여기서 차를 박는다는 것이 마치 없는 일인 양 얘기해서 현실감각이 날아간 채 일을 하다 오늘도 그렇게 일 끝. 오늘 가게 문이 딛히면 휴일 포함해서 사흘을 쉬는데 할 일이 없어졌고 그래서 결국 나리 말대로 나는 차를 다시 뽑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트램 타고 집에 갔다. 연착이다.

집에 가는 길, 봄이가 가로수 뒤에서 빼꼼히 나를 보길래 천천히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젓는다. 용건이 있으면 말해줘. 절레절레. 그럼 왜 빼꼼히 쳐다본거야? 이유 없다고 하는 봄이와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집에 가라고 하는 나. 봄이는 그 길로 히익거리며 자기 집으로 가고 내 눈 앞에는 화난 얼굴을 한 앨리가 있었다. 놀래라. 너 차 팔았지? 끄덕. 돈 받았지? 끄덕. 그 때 바다 건넌 차도 팔았지? 끄덕. 그거 내가 받아뒀는데 돌려줘? 나는 놀란 눈으로 앨리스를 바라보고 앨리스는 나에게 머리가 돌았냐는 손짓과 함께 공영주차장으로 나를 사실상 끌고 갔다. 그리고… 멀쩡히 주차라인에 서 있는, 하지만 분명히 나는 팔아치운 피칸토가 있었다. 어째서라고 놀라기도 전에 타라고 하며 조수석에 타는 앨리스와 아닌데 갸웃거리며 운전석에는 타주는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고 반클러치 걸고 주차장을 나서고야 말았는데, 아차. 비상등 켜고 길어깨에 차를 세우고 기어 중립에 놓으려는데 앨리스가 내 오른손을 친다. 아파. 홀린 상태에서 운전하면 안 된다고 말하니까 앨리스는 차를 조종하기 전에 내가 몰았으면 한다고 협박하네. 그래서 일단은 CNG 모드로 상록숲까지 갔다. 앨리가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가서 마을 바깥의 깊숙한 어느 나무집에 도착해서야 앨리는 나를 놓아주었다.

나무집 문에는 풍경이 바람 따라서 맑은 소리를 내고 앨리는 부드럽게 미소짓지만 나는 찡그렸다. 팔아치운 차 중에서 가장 새 것을 거의 훔치다시피 돌려받은 기분에 앨리가 사는 나무집까지 거의 반강제로 와버렸으니. 앨리는 집의 뒷쪽에 네가 팔아치운 나머지 두 대도 있으니까 알아서 가져가라면서 가벼운 무표정으로 당최 왜 그렇게 돈이 집착하고 이런 물건에 집착하냐며 하려던 얘기를 다 끝냈다. 앨리는 마녀니까 마법으로 옮겨줄 수 있지 않냐고 하니까 화난 얼굴로 그래놓고 자기 실신하면 자기 갖다가 인형놀이나 할 거냐고 하다가 하나 둘 셋 세는 정도가 지나 한숨 한 번에 옮겨 주겠다고 친구들을 부른다. 역시 마법은 아니고. 탁송이니 돈은 주겠다고 하자 자기는 마녀고 돈은 너나 많이 쓰세요 하면서 거절. 도대체 이런 일만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싶은데 까고 보면 앨리가 아쉬워서 다 자기 돈으로 산 뒤에 돌려주는 것이겠지.

이제 자동차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아졌고 앨리는 탁송 나간 인형 둘이 차를 세우고 전철로 돌아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나와 얘기를 시작했기에 두 시간 정도의 깜짝 반환쇼는 끝났다. 그리고 앨리는 나에게 바짝 다가와서는 수상하다는 듯이 찡그리고 나를 빤히 보더니 물러서며 다시 장난스럽게 웃는다. 딱히 여기로 부를 이유도 없었다고 하면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자 권하는데 완전 귀여워! 한가운데에는 국물요리가 조려지는 냄비와 화톳불이 있고 자그마한 침대와 옷장, 옷걸이가 놓여있었다. 창가의 허브를 약간 잘라내어 주전자에 넣은 뒤에 화톳불 위에 올려놓으면 보글보글 끓는 허브티를 대접받고 탁송 나갔다 돌아온 그 애들과도 같이 허브티와 국물요리를 먹을 뿐이었지. 웃음소리 아니면 무음 만이 가득했지만 뭔가 애틋하고 귀여워! 그렇게 같이 아무 말도 없어서 어색하기는 했지만 해맑은 인형 마녀와 조용하고 귀여운 인형 남매가 남서에서 상록까지 남의 물건을 자리에 갖다놓고 돌아와 조용히 식사를 겸하는 티 타임을 즐기는 지금, 나는 약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지만 애써 미소지었어.

다시 돌아온 집에는 무료하게 미니카를 갖고노는 푸른 요정과 마당의 냥이들, 불어오는 하유 특유의 시원한 여름바람이 노크한다. 바닷가로 나가서 모래를 만져보기도 하고 바닷가까지 따라온 하얀 냥이가 냐앙거리는 조그만 행복함에 그냥 뭐, 무료하게 있자는 생각을 하면서 햇빛을 충분히 쬐기도 하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얼마나 지나가나 세어보기도 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트램에 올라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하자마자 종점인 시험정원에 내리고 시험정원에 피는 조그만 꽃들을 음미할 뿐이다. 향이 강한 녀석들이 엄청 많아서 기분은 황홀해지고 일단은 뭐, 그런 나른함과 잉여로움을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