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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고양이 소동도 지나가고 나는 어찌저찌 또… 출근했다. 그냥 그랬다. 미니라는 자동차가 이제 마음에 들게되어 프라이가 위험하다. 그 정도로 끝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프라이드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어디에서 계속 나오고 있지도 않고 그냥 가지면 만족으로 끝나는 미니는 부품수급이 좋다, 그 뿐이다. 그리고 영국에는 이제 자동차 회사가 하나 빼고 다 없어졌지 않는가. 그런 것으로 고민하느니 차라리 나는 지금 있는 내 차라도 지키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니까 차가 모자르든 아니든 일단은 있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길가에서 차를 몰고 있노라면 서툰 실력에 힘입어 저런 고물차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이 나에게 경찰을 만나게 해준다. 휘발유를 밀수했느냐는 말에 이미 가스개조가 완료된 타인 명의의 자동차라고, 출퇴근 문제로 빌린 형태라고 얘기해도 우회등록이니 특정대기오염물질 밀수라니. 그나저나 하유국에서 휘발유나 디젤 같은 보통의 화석연료를 태워도 잡혀가고 소지도 불법이고 타는 것 중에 특정대기오염물질이 아닌 것은 장작과 가스연료 및 수소와 알코올 계열 연료 뿐이다. 그래서 일단 나를 호송할거면 차고증명이 있는 곳까지는 내가 가게 해달라고, 자동차 두 대를 확인하고 압수해야 되지 않느냐고 해서 타고 있던 프라이드는 현장에서 가스차인지 아닌지 확인한 뒤에 통과. 그래서 주차장에 세워진 2CV도 가스개조 완료고 대포차 관련이면 프라이드는 여기 경비원한테, 2CV는 지금 적어주는 연락처로 연락하면 대답할 북동구에서 자영업하는 인형에게 물으라고 하고 나는 뒷문을 안에서 여는 문고리가 없는 무료 택시에 올라 중앙경찰청 유치장에 넣어졌고 뒤늦게도 찾아온 나리가 사건경위를 말해주고 모든 죄목에서 무혐의로 풀려난 뒤에야 그 곳에서 도게자를 하는 형사 녀석을 벌레 보듯이 보곤 나올 수 있었다. 이게 뭔가 싶은 상황인데 나리 말로는 수입차는 가스 개조가 안 되는 경우도 있어서 이렇게 조지고 본다며 자기도 당해봐서 안다고 한다. 아무렴, 깡통이 깡통을 모니까 신기했겠지 하면 어렵게 들어간 일자리를 잃으니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내가 몰고 있는 그 깡통이 수입이었구나.

지구를 지키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떠올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어째서 경찰에게 걸린거냐고 나에게 물어보는 나리에게 '지구는 지키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란다'라는 구절을 불러준다. 하유섬에서 고물차를 몬다는 사실 하나로 경찰에 걸려서 특정대기오염물질연소죄와 타명의차량무단운행죄를 받을 뻔한 그 나쁜 기억은 참 오래갈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골치가 아픈 가운데, 저혈압 증세가 좀 뻗히는 그런 남서구의 시내도로를 달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골치가 아프다. 그냥 그 길로 집에 가서 쉬는 중에도 루미는 옷자락을 잡으면서 뭔 일이 있냐고 갸웃거리며 두어번 묻다가 내가 고개만 돌리니까 볼을 부풀리고 자기 방으로 튀어버렸다. 알 수 없는 녀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주차장에 들른다. 하나는 2CV라는 차고 진짜 깡통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프라이드 베타로 실은 사이파 131이다. 원래는 네 문짝 달린 해치백인데 뒷범퍼를 좀 더 늘리고 세단형 차체를 붙여서 만든 야매세단이다. 물론 전부 설계는 고물차와 다름없지만 나는 프라이드를 좀 더 좋아하는데 단종된지도 오래된 한국에서도 아직까지 현역인 녀석이고 이란에서는 에어백과 ABS까지 달고서 새 차로 나오는데다 2CV의 난방에 질리면 이 만한 천상의 준마가 따로 없다. 또 뭘하러 돌아다닐까 하지만 자동차에는 정나미가 떨어져서 이번 트램을 놓치기 전에 남서궤도 승강장으로 뛰어간다.

궤도선을 벗어난 전차는 천천히 북서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중간 역에서 내릴 생각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어차피 오늘 일은 마음 좀 추스리고 오라며 나리가 사정을 봐줬다. 하늘이 노랗게 뜨는 그 빛깔이 아름다워서 전철 안에서 소리를 치고 뭔가 될 일도 없고 짜증나서 큰 소리로 노래부르는 것은 속으로 삭혔다. 그렇게 사탕무 농장 한 가운데, 기분은 다 으스러진 채로 기분은 짜증나서 맘껏 뛰라고 나에게 명령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 되는 기분이라 일단은 참을 만큼이나 참아본다. 그게 전부다. 어디에서 내릴지를 정하지 못한 터라 그냥 아무런 중앙에서 내리자 하고 정말 사탕무 밭의 중앙에 내리고 말았다. 관리인들이 뭐하러 왔냐고 물은 것 같지만 애초에 통제구역은 아니니까 마음대로 다니다가 이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 작정으로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려다 여기서 길 잃으면 재미없을 줄로 알라고 구내운반 열차를 모는 누가 기관차 경적을 울리며 나에게 경고한 성 싶었다. 재수없어서 경찰 만나기 싫으면 타라나. 그래서 강제로 북동쪽 벼랑으로 도착한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집 외에는 갈 곳이 없는데. 북서쪽에는 뭐가 뭐가 있는가. 첫 상륙의 마을과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에 사람들이 완충지로 정해둔 곳인 경계선 녹지가 있다. 그리고 방금 북동쪽과 중앙의 경계선 녹지를 넘어 열차는 남쪽으로 힘차게 내달렸다. 답답함은 경계선 녹지를 넘어 열차가 다시 지하로 들어가는 그 즈음에서 풀려들어가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순진하고 촉촉한 무표정으로 내 볼을 쿡쿡 눌러대는 푸른 요정 루미와 내가 그냥 있었다. 그렇게 시간 흘러가는 동안에 또 무엇을 생각하면 인생이 그냥 덧없을 뿐이지. 영양가도 없는 망상 따위는 치우면 좋을텐데 지리멸렬하게 헛소리나 하고, 이런게 여기같이 정원과 같은 곳에서 짜증나게 사는 모순이라면 나는 그냥 멍청하게만 있으면 그만인건가 하다가 최근에는 결근이 심하다는 나리의 문자 한 방에 나는 바로 차로 뛰어갔다. 고를 새도 없이 프라이드를 타고 북동쪽에 도착했다. 멍청하게도 내 일을 잊어먹었다. 애석하고 외람되게도 나는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다. 그런 상황이다. 그냥… 그렇다. 그리고 카페에 주차까지 다 하고 시동을 끄려던 순간, 눈 앞이 흐려져서는 일어나니까 짜증나게도 왜 기절이냐 묻는 가게 주인과 이제 정신 차렸으면 응급환자 많으니까 나가라는 눈빛을 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다. 뭔 장난이냐, 내 몸아. 정 일하기 싫으면 말을 하라면서 즉석에서 짤라주겠다고 성을 내는 나리에 응급실은 무료니까 퇴원수속 끝내고 나가라고 버럭이는 의사와 정신이 없어 또 기절한 내가 이제 가라고 간호사가 독촉하는 타이밍. 나리 녀석은 길게 일을 쉴거면 그만 두라고 쏘아붙이며 어차피 가게에 사람은 없고 노력하면 벌이는 생기니까 나를 고용하는 거라고 무슨 길고양이 불쌍하니 죽지 마라고 참치캔 적선하는 누군가라도 된 양, 나를 고양이 취급했다. 문득 저 자식은 찌질하고 불쌍한 녀석을 고양이로 인식하는 알고리즘이라도 있나 생각했지만 그게 진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 나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나리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냐는 말과 함께 비틀거리며 일어나 언제든지 일이 꼴릴 때 와서 일하라며 돈은 그만큼 주겠다고 자기네 가게로 돌아갔다. 사실은, 나도 나리네 가게 앞에 차를 세워놔서 따라가야 하는데! 내 자존심은 돈 주고 못 사고팔고 또 자동차는 비싼 물건이니까 걔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든 말든 나는 내 자동차를 몰고 카페를 떠났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자존심보다 자동차가 비싸서 그랬나 싶고.

그리고 차를 집으로 몰지도 않았고 절대 어딘가에 세우지 않았다. 어쨌든간에 하던 일에서 짤릴 뻔했고 안 그래도 거의 짤렸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타고 있는 것의 설계는 굉장히 낡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이란에서는 새 차로 뽑을 수 있는 자동차라 그런지 파워 스티어링이니 에어백이니 ABS니 하는 것들이 다 있어서 마음에 들지만, 그 뿐이다. 그냥 그렇다. 그 뿐이다. 그냥 그렇다. 그 뿐이다. 그냥 그렇다. 그 뿐이다. 반복은 기분 탓이 아닐거다. 그란단 트라픽지클로에서 어느 방향으로 갈 지 몰라서 일단 중앙구에 속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다른 행정구역으로 향하게 되는 커다란 회전교차로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것도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겠지. 길을 제대로 찾아서 나가려지만 나가는 것도 일이 되어버린 지금 상황과 나가고 싶지 않다가 강하게 느껴지는 상황은 짜증날 뿐이다. 이러다 경찰과 같이 큰 회전교차로를 돌게 되면 나는 곤란해지고 경찰관과 단란한 한 때를 보내게 되겠지. 그런 상황 만큼은 피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면 문제는 없지만 우선은 그런 생각 조차도 안 하고 싶다.

비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면 메이드 놀이를 하는 우울 요정과 완전 새하얗게 불타기 직전인 찌질이가 마루에 나란히 누워있는 형상이 되었다. 그만 두라고 해도 메이드 놀이를 그만 두지 않는 루미와 마당에 갑자기 나타난 샴고양이 한 마리, 거의 짤릴 뻔한 일을 나는 너무 신경썼다. 그런 탓에 상당히 복잡한 마음을 안고 바닷가로 가면 사각거리는 새하얀 느낌이 내 머릿통 위에 가만히 턱을 올려놓는다. 봄이구나. 내가 누구인지 알아채자 탑 쌓기를 그만 두고 내 옆에 앉는 하얀 자동인형 소년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눈을 살포시 감고서 바다는 아름답다고 읊조리듯 이야기 한다. 나는 봄이가 부럽다. 어쩌면 이렇게 심약한 마음씨를 곱게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아름다운 섬에서 살고 있을까. 아무리 인형이라고 해도 마치 아름다운 성 안에서 소중하게 다뤄지며 온갖 세상의 나쁘고 슬픈 것들을 접해본 적도 없는 순진한 왕자님 같아서 더더욱 불쌍하다. 내 얼굴을 살피더니 촉촉한 회색 눈동자가 당황한다. 내가 울고 있어서 곤란하구나. 하지만 나를 울게 나둬 줘. 잘못하면 내가 봄이 목을 조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누가 자기 목을 조르더라도 내가 직접 졸라서 죽는다면 기쁠지도 모르겠다고 봄이는 말해. 더 슬프군.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는 마당의 고양이와 마주쳤다. 엄청 복슬복슬하고 하얀 고양이라서 마치 누가 떠오르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 녀석이 내 발목 언저리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맙소사! 그런데 자동차 하나도 간수 못하는 집사를 간택하면 끝이 비참해질 거라고, 너 참 불쌍타 하며 그냥 집에 들어갔다. 끝. 그 다음 날, 출근은 마치 계속 이어지는 철길을 배경으로 하는 영상으로 유명한 어느 일렉트로니카와 같이 줄어들었다 커졌다 하는 것 같은 느낌의 믿음직한 철도를 이용했다만 딱히 도로요금과 가스값이 아까워서 그런 것은 아니지 말이다. 발차 벨과 멜로디를 남기고 플랫폼을 떠나는 열차는 이제 막 지하로 들어간다. 급행이기 때문에 역을 몇몇 지나쳐서 경적을 울리거나 혹은 인버터 소리를 좀 더 높이며 다시 상록숲의 지상을 달리고 교외의 느낌이 강한 북동쪽으로 향하는 낮은 입구의 열차에서 문득 찾아오는 졸음에 내릴 역과 정류장을 놓칠 뻔했다. 그렇게 졸면서 도착한 일터의 주인장 인형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일하러 왔냐 하면서 준비하던가 말던가라고 하곤 손님 없는 가게에서 일해서 자기만족 외에는 뭐가 남냐고 손사래를 치면서 휴게실로 들어갔다. 기분이 묘해져서 휴게실로 들어가봤지만, 그 뿐이었다. 휴게실 한가운데에 놓인 나무의자에 진짜 움직이지 않는 인형처럼 눈을 감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쿡쿡 찔러봐도 반응은 없었지만 갑자기 움찔이며 몹쓸 짓만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다시 마네킹이 되는 나리를 차갑게 쏘아보고 일이 끝날 때까지 카페를 지켰다. 오늘 손님은 단 두 명 뿐이었고 나리는 계속 휴게실의 마네킹으로 있었지만.

찝찝했던 하루 일이 끝나고 휴게실에서 인형처럼 있다가 반짝 눈을 뜨고 나온 나리는 퇴근시간이라며 집에 가도 좋다고 말하며, 일할 의지 충분해 보이니까 내일부터 오라며 길고양이 불쌍해하는 눈빛으로 어린 아이 쓰다듬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표정이 살짝 녹아내렸을까. 나리는 나를 포옥 안아주고 토닥이고는 집에 가자고 상냥하게 말한다. 그렇게 집으로 자동차를 몰아서 가는 간선도로 위에서 왠지 또 다시 마주치고 싶은 우울한 행복이 느껴지는데 여기서 울면 사고나겠지. 집까지 무사히 가자. 그게 우선이다. 그리고 자동차 충전소까지 오니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했고. 아마도 충전소에서 취급하는 연료 중에서 수소와 전기는 냄새를 모르고 메탄도 무색무취이니 아마도 에탄올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휘발유나 경유를 구할 수 없는 이 섬의 저녁하늘도 역시 광공해 때문에 별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곳의 미세먼지 상황이 없어 쾌청하고 맑다. 외딴 섬이라 미세먼지가 날아오다 지치고 휘발유나 경유를 연료로 쓰지 못하니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하면서 프라이드에 CNG를 충전한다. 휘발유나 경유를 연료로 하는 내연기관에서 연료 분사와 점화 쪽만 손보면 가스와 에탄올을 태울 수 있다고 해서 하유국 정부에서 내연기관 차량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메탄가스나 에탄올을 연료로 쓰도록 개조해야만 차량 등록을 시켜주는 '몽니'도 부리니까 어쩌면 녹색에 집착하고 그게 나라의 정체성이자 돈벌이 수단이 되는 정원국가답다. 그도 그럴게 어떤 외딴 섬나라가 면적은 어느 나라 수도의 두 배인데 원예와 관광으로 먹고 살고 국민성은 우울하고 상냥한데 자기네 섬에 군대나 교도소 만든다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화염병을 던지고 휘발유와 경유 사용은 완벽히 금지된 곳이라면 미친 나라라고 하겠지.

방향지시등 딸칵거리는 소리가 몇 분째다. 이 나라에서 휘발유 경유를 못 태운다 성 싶어도 CNG의 주성분은 메탄, 메탄은 온실가스기 때문에 공회전도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충전소에서 나온 뒤, 계속 길이 막힌다. 샛길로 가려면 지금 신호가 끝나야 하는데 신호가 길다. 신호등이 망가진 모양이다. 경찰에 전화를 걸어본다. 일반 민원이죠? 남서중앙 본6교차로에 신호등이 망가졌어요. 네? 서25교차로도 고장이오? 난리났네, 차가 못 가고 있다고! 네? 답답한 것은 피차일반이잖수? 그렇게 말싸움 하느니 전화를 끊지. 모두들 차에서 내려 신호등이 망가져서 갈 수 없으니 바람이나 쐬자는 듯이 삼삼오오 모였다. 집에 가고 싶어서 짜증난 것은 모두가 같았다. 교통을 정리할 경찰은 그러고도 25분이나 더 지나서 앞의 차들부터 수신호로 보내주기 시작했고 나는 딱 끼었네. 그렇게 살짝살짝 차들이 빠져나가고 겨우 집에 도착하고 메이드 놀이를 하는 우울 요정과 마주치고 무료해져서 방 안에 들어가고 그대로 잠들고 하루가 간다. 신호등은 고쳐져서 정상 작동하지만 트램 안은 붐빈다. 역시 어제 데였으니 오늘의 불확실함에 도박하지 않겠다는 하유 사람들의 애매함이 이런데서 나온다니까. 의외로 좀 더 들어가서야 나리네 카페가 나오니까 이거 원, 좀 더 큰 길가에 가게를 차리지 하면 그 아이가 나를 째려볼 것이 뻔하다.

아침을 깨워 기지개를 켜고 속삭이는 바람 그에 손 흔드는 일상이 가능한 섬나라라고 해도 사람과 인형은 일을 해야 하는 여기는 그래도 현실적인 정원국가다 싶어서 멍 때리던 도중에 볼이 쿡. 일을 하면 오늘은 일찍 보내줄거라고 하는 아무도 잘 찾아오지 않는 카페의 주인인 나리는 그러고서 팔을 벌리고 웃는다. 하기사 도시 바깥의 숲 외곽에 있는 이 외진 카페를 찾아올 누군가는 의외로 없어서 이러고서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이런 카페 주인에게서 자동차도 선물받았으니 이게 뭔가 싶지만 외람되게도 불로소득은 부자들의 착취수단이고 또한 돈이 돈을 낳는 꼴이 아닌가. 이런 개연성 없는 자유연상에 오늘도 멍 때리면서 일하면 또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일 끝나고 나와서 전철 타고 남서쪽에 도착해 도로교 위를 함께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니 오늘은 차가 막히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 들르고 싶어서 찾아온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꽉 차있고 오늘 꽉 찼다고 능글맞게 웃는 경비와 같이 주차장을 거닐다 어느 주차장에나 하나씩은 있다는 버려진 자동차를 발견한 것 같다. 경비 녀석도 이상하다고, 주차장을 구석구석 안 돌아봐서 그런가 이상하게 버려진 차를 본 적이 없었다고 의아해 하는 하는 동안, 나는 그 차를 거저먹을 생각을 하니 글러먹었지. 그렇게 버려진 차에 눈독 들이는 바보가 경비의 도움을 받아 얼마나 버려져 있는지 모르는 클래식 미니의 주인이 되는 것을 묵인받았다.

경비 녀석은 자기가 차를 빌려주는데도 이런 것에 눈독들이는 거지 녀석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퇴장하고 나는 문고리에 얌전히 걸려있는 그 차의 열쇠로 차 문을 연다. 켈록, 먼지가 심하다. 그리고 시동을 걸려는데 초크를 걸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아마도 조건부 통관 차량이군 하면서 경비 동무, 돈 좀 주지 않겠수 하면서 미니의 열쇠를 보여주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경찰? 저지하려다가 저지당했다. 장기 방치차량이 있는데 사용 가능하게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한 모양이다. 경비가 부른 사람이 오고 1971년식 미니는 곧 이어 전체적으로 닦고 광내고 CNG로 굴러갈 수 있게만 개조되기 위해 정비소로 끌려갔다. 그리고 지인찬스 발동되는 동안에 방치차량을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경비의 친구 정비공에게 물어보니 시동이 안 걸린다는 것은 대부분 연료가 없다는 뜻이고 먼지가 앉았다는 것은 내리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기에 CNG 개조도 안 된 장기방치된 차를 몰아도 상관없을 거라면서 내일 아침에 수리 다 하고서 주차장에 갖다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경비 녀석은 다시 일을 하러 사무실로 들어갔고. 집으로 들어가니 루미는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나를 보고는 폭 안겨왔다. 여전히 메이드 놀이는 그만 두지 못한 채로. 이제 메이드 놀이 그만 두라고 하자 고개를 갸웃. 당최 네가 왜 나를 자발적으로 돕는지 이해도 가지 않고 그냥 짜증나니까 하는 소리인데 그 소리를 곧이곧대로 했다가는 얘 또 삐치겠지. 하늘이 꽤 흐리지만 상관없다.

다음 날, 남서해안 공영주차장. 클래식 미니를 다 고쳐와서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고서 나랑 악수만 하고 메카닉에게서 차량 인수 끝. 다시 건네받은 열쇠로 미니의 문을 열고 시동을 건다. 부다다다다다다… 아차 초크를 걸어야지. 그리고 드디어 걸리는 시동. 그렇게 뻑뻑한 기어봉과 경찰생도처럼 각진 스티어링이 특징인 엄청 자그마한 미니를 타고 출근길에 오른다. 정말 운전자세가 불편해지지만 그래도 공짜로 얻은 차라서 그 정도의 낡음은 참을 수 있다. 조그만 차를 좋아하는 그 자체로 행복하지만 그래도 소중함은 좀 덜한 느낌이야. 경비 녀석은 자기가 준 프라이드는 잘 타고 다니냐면서 물었고 그나마 안전한 차라 잘 타고 다닌다고 얘기하고 말지. 오늘 일하러 가는데는 미니를 타고 갔고 안 탈 양이면 자기에게 다시 주라며 농담 아닌 농담도 건네고 그렇게 도착한 일터의 인형은 노려보는 눈빛으로 나에게 손을 흔든다. 일 시작.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전부 다 준비해놓고 둘이서 잘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퇴근. 그 사이를 견디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경비가 나를 부른다. 프라이드 탈 거야, 안 탈 거야 묻는다! 타겠소! 절대로 타겠소! 적어도 ABS랑 에어백이 달린 놓치기 아까운 고오급차를 그렇게 놓칠 수야 없지! 그러고는 미니의 자동차 열쇠를 경비에게 건네주었다가 다시 돌려받는다. 장난이래.

그렇다고 해도 자동차세나 기타 다른 것들을 낼 형편이 되지 않는 나는 왠지 자동차를 두 대나 빌리고 한 대는 주웠다는 상황에 대해서 매우 이상함을 느꼈다. 그래서 일단 다 돌려주려고. 일단 2CV는 다시 북동쪽 차고로 들어갔다. 원래 2CV의 주인이었던 나리는 차가 추워서 못 견디겠다고 하는 나에게 얼마나 춥길래 이 차를 돌려주냐고 면박을 줬고 프라이드는 경비에게 돌려주려 넌지시 말했는데 그럴거면 그냥 팔으라고 들었으며, 미니는 ABS와 에어백도 없는 진짜로 낡은 차라 일단은 팔까 말까의 기로에 섰다. 안전하게 몰더라도 일단 ABS와 에어백은 필요하고 자동차세를 낼 형편은 안 되니 미니는 조금 후하게 받고서 팔았고 프라이드도 팔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프라이드는 그나마 탈 만해서 이란에서는 새 차로도 뽑을 수 있는 차겠지 하는 대목이다. 냉난방 되고 ABS와 에어백만 있는 경차면 천상의 준마인 것이다. 일단 가난하고 차도 얻어타는 거지인 내 입장에서는 말이지. 그렇게 하루가 가버린 즈음에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뻗어버렸다. 통장으로 들어간 차를 팔아치운 비용이 꽤 적었다. 그래서 더 이상 자동차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기가 싫기에 편하면 타고, 아니면 말고로 생각하기로 했다. 트램이 자꾸 공사판이 되어서 선물받은 것이었지만 이제 트램은 공사판이 되기를 멈췄고 나는 오늘 북동쪽 카페로 트램 타고 출근해서 카페에 출근하자마자 투명 유리로 된 진열장 위에 턱을 손으로 괴고 있는 가게주인 인형소녀가 차고에 있는 2CV 가져가라고, 냉난방이든 ABS든 이제 신경쓸 만한 것이 아니지 않냐고 한다. 음, 아주 그래.

퇴근은 나리가 가게 문을 일찍 닫으며 했다. 그리고 나리가 가져가라고 했으니 진짜로 차고의 2CV를 알아서 몰고 갔다. 그리고 차 판 돈은 안 돌려줘도 되는데 내가 판 미니는 안 산다고 이상한 문자가 왔고 조금 기대되는 마음으로 주차장에 들어가보니 내가 팔은 1971년식 미니가 프라이드 옆에 주차되어 있고 나에게 모자를 벗으면서까지 경례하는 경비 녀석을 보았다. 뭐야하는 기분이 드는 가운데, 남서해안 공영주차장에 타고 온 2CV를 세우고 나오니 왠지 내가 타고 온 차를 빤히 쳐다보는 하얀 소년인형이 귀여워. 차가 궁금하면 태워주겠다고 해도 난감한 얼굴로 거절할 봄이에게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고 주차장은 이야기 하기에 그다지 좋은 장소가 아니니까 나가서 말하자고 하며 주차장을 나간다. 나는 이 폭신하고 보드라운 소년이 좋은 것 같아. 그런데 걔는 당황하고 나는 그 애랑 같이 중앙의 어느 카페에 들러서 날씨와 어울리지도 않는 차가운 것을 먹고 있는거지. 그리고 우리 둘이 불쌍하게도 비가 내려서 비 그칠 때까지 나가지도 못해. 봄이는 삐친 표정을 짓고 나는 손으로 이마를 움켜쥔다. 할 말도 없고 난감할 뿐이야. 그렇게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가만히 있다보면 서로는 바라보기 무안해지고 밖으로 나가게 되지. 다시 주차장으로 나가 프라이드의 문을 열고 시동을 켠 뒤에 D단에 넣고 출발. 조수석에는 난감하게 플죽은 표정을 한 봄이가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그런 곤란한 얼굴을 하면 내가 무슨 위로를 해야 하고 잘못한 것이 있나 생각을 해봐야 하는 거겠지만 그냥 봄이를 집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차를 돌려서 주차장에 도착한다. 요즘은 역시 아무것도 되지 않아서 괴롭구나. 차 세우고 마을을 걷는다. 차를 포기하는 즐거움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시험정원으로 돌아가 향기로움에 잠겨본다. 그런 향기로움이 황홀해서 잠시 잠들 것 같다. 그렇게 복잡하게 말해서 생긴 불안함이 잠든다.

트램에 올라 남서중앙에서 좀 더 나가면 나오는 남12서6교차로 정류장에 내리면 백화점이 있다. 의외로 백화점 구경하는 취미는 없어서 잘 오지는 않지만 오늘은 비싼 식사를 먹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6층으로 올라가 경양식집. 일단은 들어가서 모두들 먹어보라는 것을 먹는 도중에 도착한 계산서를 째려보면서 창가를 본다. 흐린 와중에 개는 하늘과 분주히 지나가는 누군가들, 자동차와 트램이 어지럽다. 문득 식사를 하면서 생각하기를, 이런 생활도 어쩌면 오늘로 끝날 지 모른다는 정신으로 살면 하루하루가 불행하더라도 위험해질 경우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가 하며 오늘 여기에서 고기를 썰어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다. 쓸데없는 고민이라 들어도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보통의 바깥 세상이 아닌 여기, 하유에서도 그래야 하나? 여기는 모두가 착하다. 요정과 인형도 산다. 관광과 원예로 먹고 사는 정원국가야. 모두가 애매하고 심약해서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고 하면 국적이자 영주권인 하유국 여권을 뺏고 추방시켜. 그런데 보통의 폭력적이고 모두가 불쌍할 뿐인 여기 바깥에서 생활하듯이 생활하면 있잖아, 인지부조화 비슷하게 오잖니. 그리고 생각을 떨쳐버린다. 그냥 그래.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나 혼자 자리에 앉아서 고기 썰고있을 뿐이고 먹고 정신 차리자.

주차장. 경비에게 너무 낡아서 쓰기 싫은 프라이드를 다른 차로 바꿔온다 하니까 같이 가재. 같이 프라이드를 타고 도착한 중고차 매장에서 프라이드를 넘기고 가져올 경차나 소형차를 구경한다. 앞으로 차 몰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낡은 차만 있는 지금은 끝내야 한다. 우선 하유국에는 자동차 공장은 없고 그냥 공방 비슷하게 있다. 거기서 미니와 2CV를 만들기는 하는데 한 번 고소가 들어오고도 계속 만들고 있지. 그건 그래. 그러면서 계속 자기네들이 만드는 깡통에 ABS와 에어백을 다는 실험을 하면서 관문섬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좋다고. 그런 낡은 차에다 ABS와 에어백을 달고 연료계통도 손봐서 CNG나 도수가 80% 이상인 에탄올로 굴리는 요상한 이 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공방에서 수제로 만드는 낡은 설계의 깡통이라 딱 그 정도라서 중고차 매장에 가도 전부 연료계통을 수리하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CNG, 에탄올, 전기 구동계로 만들어진 자동차들 뿐이다. 여기서 디젤이나 휘발유차는 시동만 걸어도 여권 뺏기고 차와 함께 추방당하니까 뭐.

아, 잡담이 길었다. 프라이드를 원하는 차로 바꿔서 새로 타게 될 자동차 열쇠를 받고 번호판을 떼어 새로 타게 된 차에 달고서 중고차 시장을 나오는 중, 스톱하라는 소리. 창문 여라고 똑똑. 창문을 여니 전에 팔았던 미니를 돌려준 사람이라고, 준 돈은 잘 받았냐며 내게 묻는데 나는 그런 해괴한 담보는 처음 봤다고 가려 했다. 부릉, 덜-컹. 망할 스톨이 났다. 될 대로 되라고 사이드 걸고 시동을 끈 뒤, 말하려는 요점만 얘기하자고 부탁. 그러자 미니를 타고 다니는 것이 낫지 않겠냐면서 내 사정이 궁하면 자기 찾아와서 차라도 닦고 돈 받아가란다. 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 할 때,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듯 손인사를 하고 다시 시동 걸고 사이드 풀고 출발한다. 스톨 없이 경쾌하게 매장을 나갔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일단 주차장으로 다시 가자. 경비는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되려 나에게 수고했다고 하고서 차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서는 조금은 무서운 듯이 기둥 뒤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봄이가 있었는데 흠… 주차장에서 만나는 것은 벌써 두번째지? 무엇을 하고 싶니? 손가락으로 미니를 가리킨다. 타보고 싶은 모양인데 열쇠로 차문을 열어준다. 끄덕이며 조수석에 타는 이 소심한 아이는 곤란한 표정을 계속 지으면서 기어봉을 만지작. 좀 어디 가도 좋을까? 봄이는 말없이 끄덕이고 나도 운전석에 올라 키를 돌린다. 부다다다다다. 아차, 초크를 당겨야지. 초크 당기는 것을 깜빡해서 헛시동을 걸다 초크를 당기고 액셀을 좀 밟아서 시동을 건다. 봄이는 약간 미소지었다. 카뷰레터가 말이지, 초크가 귀찮아라고 하면서 1단에 기어를 넣고 출발. 봄이는 분명 공항을 본 적이 없을 터다.

관문섬으로 이어지는 해저터널로 들어가기 직전, 봄이는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근처 편의점에 잠시 들르자는 얘기였는데 하는 수 없어서 차를 잠시 근처 편의점에 세우고 나도 급한 일부터 봤다. 폰 요금을 충전하고 봄이가 냉장고 앞에서 우물쭈물 하는 이유를 듣고 도와주었지. 새하얗고 말이 그다지 없는 인형소년은 그렇게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볼을 쿡 찌르고는 다시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쿡쿡하고 웃는데 어쩌냐, 미니에는 컵홀더가 없어. 웃던 표정이 다시 난감한 표정으로 변하며 봄이는 실망한 듯이 차에서 내렸다. 마시고 가야 한다는 말은 이해한 것 같아서 기쁘네. 편의점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관문섬으로 출발한다. 터널 앞의 요금소에서는 차가 귀엽다고 해주는 한 편, 요금을 잘못 받았다. 경차를 소형차로 보고 요금을 더 내게 만들다니. 자, 보렴. 지금부터 바다 밑으로 가지만 신기하게도 바닷속은 안 보여 하면서 봄이를 호기심에 부풀게 하고 나는 경차를 소형차로 보고 요금을 더 내게 만든 요금소 직원과 쭉쭉 닳는 가스, 어쨌든 나가야 하는 돈을 생각하면서 무언의 짜증을 낼 뿐이다. 봄이는 관문섬에 다다르자 와본 적이 없다고 기뻐했지만 나는 그 기쁨을 이해하면서도 가까운 충전소가 어디있는지 둘러볼 뿐이었다. 봄이는 그저 조수석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살포시 감고 있었고 나는 가스 충전기 미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울고 싶더랬지.

관문섬에 들어와서는 관문섬 그 자체인 공항과 항구를 구경시켜주고 그렇게 한없이 하얗고 순한 아이를 웃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이내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해서 결국에는 자기가 어떠면 좋을까 난감해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역시 안쓰러워. 그리고 은근히 가스를 쭉 빨아먹는 미니가 조금 경멸스럽다고. 봄이는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꾸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짤막한 말을 했지만 아주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건 뭐지. 여하튼 관문섬의 빈 도로와 그 빈 도로가 이끄는 해당화가 만발하는 공원과 공항과 항구가 있는 섬이라고 조경이나 그런거 엄청 신경쓴 티가 나지만 본섬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하지만 하유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감탄한다는 그 풍경 속에서 생각보다 연비가 좋지 않은 미니를 몰고 조심스러운 하얀 소년과 함께 다시 해저터널을 지나고 있다. 정말 인형처럼 눈을 감고 잠든 봄이를 깨워서 집에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기는 하지만 여튼. 나갈 때는 요금소에서 제대로 요금을 받았다. 그래, 미니는 경차야 바보들아.

이제 더 이상 자동차에는 관심 두기 싫었다. 그래서 집 앞에서 철도선으로 들어가는 열차편으로 출근했다. 정리권을 끊고 자리에 앉아서 북동카페거리 정류장까지 타고 가는 여정은 고요했다. 내가 직접 클러치와 브레이크,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줄 필요가 없고 버스보다 많은 사람을 나른다는 것이 철도의 존재의의고 하유제당이 자기네들 이득을 위해 짓는다고 했을 때는 반대가 심했던 철도다. 그래봤자 문이 두 짝이라 타고 내릴 때에는 지옥도가 펼쳐지지만 오늘도 정상운행인 것을 봤을 때는 모두가 이런 상황에 길들여진 것이 분명하다고 밖에 못 한다. 그렇게 열차는 궤도선을 벗어나 철도선으로 들어간다. 남서중앙을 통과해서 아침 통근급행으로 운영되는 이 열차에 흔들리는 것이 참 오래간만이라 풍경을 다시 익히고 노선을 어떻게 따라가는지 보여주는 차내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졸기도 해보다가 미여울을 건너는 열차 밖의 풍경과 지하로 들어가는 광경, 통근의 피곤함과 나른함 만이 오늘은 운전대를 놓길 잘했다 생각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유중앙역에서 내리고 타고 그런 무거운 아침의 느낌을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폰이나 책에 얼굴을 묻고 현생을 잊자는 식으로 구는 부류도 있었다. 그렇게 아침시간의 북동쪽벼랑행 통근급행 열차는 지하에서 나와 상록숲을 빗겨나 다시 북동궤도선으로 들어간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그렇게 도착한 일터, 주인장 소녀인형,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채로 월마다 돈을 받아가는 멍청이가 북동쪽 카페에 같이 있었다. 카페 특화거리라 그런가 카페는 많지만 오늘같은 날이 굳이 아니더라도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하루에 한두 명이 될까말까한 수준이라 나리도 이마를 짚을 지경이지만 여하튼 나는 여기서 일하고 있다. 몇 시간이고 몇 분이고 자동차를 몰고 열차를 타고 와서 아무도 찾아올 일이 없을 카페를 위해 만전의 준비를 하다가 하얀 인형소녀에게 잘리고 싶냐고 면박을 듣는 것, 그것이 일상이다. 일상 같잖은 일상이지만 나는 그 덕분에 돈도 벌고 있고 짜증도 줄었다. 다만 좀 더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직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 뿐이다.소녀인형,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채로 월마다 돈을 받아가는 멍청이가 북동쪽 카페에 같이 있었다. 카페 특화거리라 그런가 카페는 많지만 오늘같은 날이 굳이 아니더라도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하루에 한두 명이 될까말까한 수준이라 나리도 이마를 짚을 지경이지만 여하튼 나는 여기서 일하고 있다. 몇 시간이고 몇 분이고 자동차를 몰고 열차를 타고 와서 겨우 몇 시간 일하고 수고했어 끝나고 철도선을 지나가는 트램이나 내 자동차에 올라 집으로 가면 하루가 끝나게 되는 것이 참 허무하기 그지 없다고. 그런 일상에 익숙해져야만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하유에서는 거짓말이다. 그도 그럴게 요정한테 홀려서 서로가 너무 좋아하게 되고 요정 특유의 귀여움과 먹지 않아도 힘이 생기는 그런 것에 빠져서 요정과 결혼하고 아무런 경제활동도 안 하는 애들도 있거든. 다만 그런 애들이 주거신고나 여권 재발급 따위를 할 이유가 없어서 나중에 거류등록말소라던지 여권 만료기간 3년 초과로 하유국 국적과 영주권이 만료돼서 죽은 사람과 없어진 요정 취급 받아도 나는 뭐, 걔네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 그럴 자격도 없고.

집에 돌아오면 또 메이드 놀이를 하고 있는 푸른 우울요정과 마주치고 일상은 변함이 없다. 바닷가 근처의 장기임대주택단지에 살면서 그저 하루 벌어서 사는 이런 거, 어찌보면 나는 이렇게 정원으로 꾸며진 예쁘고 심약한 섬나라에서도 이렇게 죽을 운명인가 하면 푸른 요정이 갑자기 뒤에서 포근하게 껴안고 속삭인다. '나약한 병신'이라고 말이다. 싫은 표정을 짓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메이드 놀이를 하는 푸른 요정에게 정곡 찔리기는 싫어. 집을 나선다. 주차장으로 가서 미니를 닦고 2CV의 먼지를 턴다. 프라이드를 내놓고 바꿔온 피칸토는 참 민첩한 차다. 엄청나게 가벼운데다 경차답게도 작은 공간을 엄청 잘 이용한 느낌이야. 그렇게도 작은 차만을 원하고 그런 느낌을 살려서 이런 좋은 차를 탈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작은 차를 탄다고 무시당할 것 같은 느낌 엄습한다. 하유섬에는 그런 사람 없고 그러는 문화도 아니지만 말이다. 오히려 길도 좁고 궤도교통 이용률이나 도로교통 이용률이나 엇비슷한 조그만 섬나라에서 뭘 바라는가 궁금해지지만. 그리고 애매한 것을 선호하는 하유국의 기질 때문인지 수동변속기를 모는 숫자가 많은 것도 있긴 한데 오늘은 왼쪽 종아리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계속 중립에 넣고 다리를 주무르고 또 기어봉을 휘젓고 중립 넣고 종아리 주므르고 하니까 왠지 뒤에서 깜박이를 켜고 달리며 나를 째려보는 느낌이야. 손인사를 하고 길어깨로 빠져주자. 그리고 그 김에 다시 주차장으로 간다. 주차가 비뚤게 되어버렸지만 일단은 적당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