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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정원섬 배경의 이야기

다시 걸어서

두번의 봄 2019. 7. 16. 14:44

자동차 시동은 잘 걸리지 않아서 초크를 좀 더 열고 액셀을 밟으며 다시 시동을 걸어보았지요. 그래봤자 부다닥거리며 시동은 걸리지 않아요. 오늘도 그냥 걸어가야 겠네요. 어차피 여기는 여름도 사늘하니까요. 그렇게 옥수수와 콩을 심어둔 쪽으로 걸어가요. 천천히 걸어가면 물가가 나오고 양동이에 물도 긷고 내가 왜 자동차와 부족한 먹을거리 때문에 이 섬을 나갔다가 돌아와야 하는지 혼자 스스로에게 욕도 하면서요. 하지만 그래서 뭔가가 되는 것도 아니라서 숲을 벗어나 제일 먼저 마주치는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따먹어요. 달고 물기 많아.

자동차는 앞으로 나가지를 않아서 뭐가 문제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또 마을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나요. 아마도 부조다 뭐다해서 나에게 엄청난 돈을 뜯어내려고 할지 몰라요. 하지만 자동차가 없으면 섬을 한 바퀴 돌 수가 없어요. 자동차가 구태여 필요없기도 한데 철길을 쓰기에는 증기기관차에 불을 지피면 연기에 숨이 막히고 또 불을 지펴놓은 것이 아까워 차마 연소실에 불을 지펴놓은 채로 브레이크만 걸면 철길을 마치 토끼처럼 나돌아다닐테고 전기선에 전기를 통하게 해서 전차로 움직이면 전기가 깨나 낭비돼서 밤중에 정전이 일어나기도 하더라고요. 결국 화나고 난감한 표정으로 배에 고장난 깡통 자동차와 가득 따놓은 무화과 바구니를 싣고 마을이 있는 큰 섬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겠지요.

무화과 한 바구니의 가격으로 자동차를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부조문제면 섬에 숨어살며 마을이 있는 섬과 행정적으로 하나가 되자는 얘기를 무시하는 제가 여기에서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요. 그렇게 선창에 내 쪽배를 매어두고 자동차를 뒤에서 밀어 가까운 공업사를 찾아가요. 주머니에는 동전이 딱 알맞게 두 개니까 경사로 위로만 올려놓으면 렉카를 부를 수 있을거예요. 그리고 오해 마세요. 나는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섞이기 힘들어서 마을섬 쪽의 행정구역이 되길 거부하는 거고 원시적인 생활을 하지도 않지요. 누가 도와주냐고 내가 물었을 때, 나는 내 무릎의 구체관절이 들킬까봐 두려웠어요. 하지만 자동차가 고장나서 고쳐야 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무섭냐면서 대신 렉카를 부르고 수리점까지 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죠. 나는 믿었어요.

몇 시간 뒤, 수리비용을 무화과 한 바구니로 주려고 하니까 자기는 무화과 흰 즙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무화과를 돈으로 바꿔오는 편이 좋겠다고 수리점 주인에게 들어요. 그러면 차를 몰아야 하는데 그러면 외상이잖아요. 흠, 그러면 내가 조수석에 타면 되지. 그렇게 무화과를 돈으로 바꾸기 위해 시장으로 떠났고 수리점 주인이 현물로 받기 곤란해서 꼭 팔아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여러 군데를 들러서 가장 비싸게 부른 곳에 내 무화과를 팔았어요. 근데 이상해요. 역시 제 마디마디에는 구체관절이 있어서 나를 멸시하던 가게의 주인도 수리점 주인이 흥정할 때는 가만히 가격을 적당하게 쳐주고 따귀를 때리거나 꺼지라고 성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도 않더라고요. 그리고 거래가 끝나 집에 가도 좋을 시점에 나는 다시 운전석에 앉아 한숨을 쉴 뿐이었어요. 이내 수리점 주인이 흥정을 끝내고 돈을 받아 나에게는 이제 섬으로 돌아가도 좋을 거라고 말하지만 저는 역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가격을 후려치고 윽박지른다고, 아저씨는 제 가격으로 무화과를 팔 수 있으니까 부럽다고 하니까 수리점 주인도 한숨을 쉬며 수리점에 데려다 달라고 말하죠.

그렇게 정원섬에 도착했습니다. 이게 당최 무슨 개 같은 경우인지 다시 시동을 걸어보면 경쾌하게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를 타고 숲을 달렸습니다. 다시 온실로 돌아와 가스포집통의 미터기를 보니 적절히 차올라 바늘이 꽉 찼다는 곳 근처에서 짤각짤각거리는 것을 보니 이제 마음이 놓여서 집에 들어가 가스등을 켜고 오늘의 저녁을 요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요. 한 번 이상한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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