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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흩어지는 글을 모아서

마을 이야기

두번의 봄 2019. 10. 19. 21:49
어느 마을이 있었다. 인형과 요정과 사람이 함께 사는 마을.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는 아니다. 옛날 이야기라면 내가 이 이야기를 쓰고 싶지도 않았을거야.

그렇게 어느 마을을 내가 방문하게 된 것은 아마도 길을 잃고 추위에 떨다가 괜찮으면 이리로 오라는 상냥함에 이끌려서겠지. 그리고 나는 그 상냥함에 부합하는 대접을 받았다. 그 마을의 모두는 남을 보살펴 줄 여유를 가지고 있었고 마음씨는 모두 기본적으로 마음씨가 착한데다 여리기까지 했다. 어떤 아이가 긴팔 옷소매를 자꾸 잡아당기기에 무엇 때문에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아이에게 구체관절인형의 관절 비슷한 것이 보였던 것도 있고 그리고 내게 무슨 상처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어떤 하인 복장의 누군가가 내 무릎을 살펴 쓸린 상처를 찾아내곤 가볍게 쓰다듬고 나니 쓸린 상처가 사라진 것도 있었구나. 신기한 그 마을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냥 평범한 현대의 마을: 다만 조금 울창한 숲 속에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수상한 점은 없는 그런 마을이었다. 참 사랑스러워서 마음에 들었어.

그러다가 왠지 여기에서 하루 묵고 가는게 낫지 않냐고 제안하는 하인 복장의 누군가(아마 요정이겠지)가 나에게 얼마간 비어있었다고 말하는, 하지만 그런 것 같지않게 깨끗한 집을 소개하고 장작을 난로에 넣고 부싯돌로 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위장된 호의"라는 아주 끔찍한 것을 말이다. 호의적으로 다가와 의도적으로 사람을 해치는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화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요정의 얼굴에는 별로 악의가 들어가 있지 않아보였다. 괜히 의심해서 미안해. 그렇게 고개를 두 번 연신 저으면서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한다. 확실히 얘네들이 자고 가라고 할 만한 시간대였다. 그렇게 멍하게 저녁을 보내다가 갑자기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고양이를 귀여워하고 난로 가까이에서 요정 하인과 서로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어색한 이야기를 하다가 고양이가 나가고 요정 하인이 날이 밝으면 처음 만났던 그 곳으로 오라는 얘기만 하고 내가 묵을 집에서 나가줬다. 왠지 이 누군가들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나는 바깥에서는 돈을 줘야지만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상냥함에 울다 잠이 들었다.

아침은 거친 노크 소리로 시작되었다. 분명 마을 중앙의 집으로 오라고 했을텐데 그러지를 않았다면서 화를 내는 요정 하인은 수줍은 인형 소년과 손을 잡고서, 그리고 덩굴로 만든건가 싶은 소풍 바구니를 들고서 나를 찾아왔다. 아침을 거르는 것은 안 된다고 하면서 바구니에서 납작한 빵과 버터를 꺼내주었다. 여기서 전부 만들고 있는 것이라며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은근히 맛있었다. 여기를 나가서는 느끼지 못할 그런 맛이야. 서로 미소로 대답하며 결국에는 바구니와 수줍은 인형 소년만 남았는데 얼굴을 붉히는 소년의 특성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든 생각은 "이제 여기를 떠나야 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숲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몸을 움직이니 인형 소년이 내 옷자락을 잡았다. 가지 말아달라고, 나가면 힘들거라고 나에게 애원하는데 나도 바깥에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으니 만날 수 있을 때 다시 만나자고 그 아이를 달래고 그 마을을 나왔다.

아우 기분 나빠. 내가 이 숲 속에서 무슨 마을을 마주쳤는데 다들 마음씨가 착하고 여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여기, 이 창구에서는 무조건 대답을 해줘야 하고 또한 시간도 안 간다. 누군가를 적대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일을 대신하는 노예가 되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효율이라는 것이 있고 그런 것이 바로 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럴 때마다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여 준 그 마을이 생각나 얼마간 시간을 내서 그곳을 찾아간다. 그러면 현실과 환상이 무너지는 신호로 수줍은 인형 소년이 나를 알아보며 다가온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까지 약지 않으면서 그렇게까지 순진하지 않았지만 역시 여기에 오래 있으면 경쟁하며 전투하듯이 사는 바깥보다야 즐겁다고 느끼게 된다. 모두가 우울하지만 행복하고 게으르지만 부지런하며 순한 인상을 가지고 바깥의 경쟁사회를 잊게 해준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내민 손이 통장에 때가 되면 들어오는 월급보다 낫다고 생각한 나는 이미 그들 쪽으로 기울었다. 바깥의 경쟁사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다.

살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