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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어차피 나는 인형이니까요.

굉장한 아이예요. 포근하고 깨질 듯한 마음씨를 가졌고 상당히 귀엽게 생겼어요.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자기를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주인님으로 부르는데다 좋아하는 옷차림도 쓸데없이 귀여워요. 그리고 나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떨어져 있어야 하면 싫은 소리를 내요.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싫지는 않아요. 언제까지 이 아이가 내 곁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쓰다듬어주면 눈을 살포시 감고 보드랍다는 듯이 녹는 표정을 짓는 귀여운 아이일 뿐이에요. 나는 이 아이를 봄이라고 불러요.

봄이는 항상 내 눈치를 살피면서 오늘도 즐겁고 귀여운 하루가 되기를 빈다고 하죠. 하지만 솔직하게 그런 하루를 보낼 자신이 없다고 하면 눈 앞에서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을 본 듯이 놀란 표정을 짓지요. 그리고 나를 꼭 안아주며 자기는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형이니까 포옥 안겨서 위로받길 바란대요. 어째서 봄이는 자기를 인형이라고 생각할까요.

쓸데없이 귀여운 옷차림을 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도 슬픈 표정을 짓는 여린 아이. 왠지 생각할 때마다 애틋하고 마음이 보드라워져요.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집에 가요 주인님이라고 하면 왠지 이 아이가 싫어져. 봄아, 자꾸 네가 인형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도 너를 이상하게 볼 테고 나도 너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돼. 하지만 계속 봄이는 자기가 인형이라 그러네? 그러면서 봄이가 흘리는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며 말하죠. 하지만 봄이는 자기는 인형이 맞고 위로하는 인형인데다 내가 없으면 그냥 평범한 인형으로 변해버리니 하찮아지기 싫대요. 무슨 말을 더 해줄 수가 없으니 그냥 봄이를 꼭 안아줄 뿐.

봄이는 가슴에 손을 얹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면서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미안해.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봄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 나도… 봄이랑 비슷하게 인형이 되어가는 것 같아. 그런 얘기를 하자 봄이는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이 놀란 표정으로 살짝 바뀌면서 당신도 그랬구나, 결국 우리 둘은 같은 처지였네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라서 봄이를 끌어앉고 울어버려. 봄이는 어리둥절하고 나는 슬픔에 잠기지.

봄이는 확실히 인형이었어. 하얗고 귀여운데다 여리고 섬세한 마음을 지닌 위로하는 인형. 위로하는 인형은 같은 위로하는 인형을 알아보고 서로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줄 수 있나봐. 하지만 어느 날, 귀여운 마녀가 찾아왔어. 위로하는 인형을 만드는 마녀인가봐. 어느 카페에서 너희들을 만든 이유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사람이 되든 요정이 되든 알아서 해야 한다고 경고를 했어. 그리고 알아차렸어. 우리를 만든 마녀도 외롭고 힘들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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