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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원하는 대로 인형이 되었지요. 구체관절이 좀 삐걱거리기는 해도 옷도 귀엽고 외모도 엄청 귀여워요! 그리고 이제 사람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마땅히 다른 사람들을 도울 용기도 생겨요. 그래서 번화한 거리에 섰지만 나는 그냥 멀뚱히 서있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이야기를 붙이면 왠지 들어주다가도 인형이라는 점 때문에 나를 어딘가 팔아치울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삐걱거리는 몸 때문에 도망치는 것도 더욱 힘들어졌고요.

근사한 카페에 들어갔어요. 누군가 잔을 닦고 있어요. 나를 보더니 쓸데없이 귀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나를 보고는 장난스럽게 웃어요. 나는 살짝 노려보았지만 여기에 장식품처럼 있는 수밖에 없어서 그냥 여기 있겠다고 대뜸 말하자 인형을 둘 자리는 없다고 얘기하네요?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니까 나를 위해서 자리를 하나 포기할테니 곰인형과 같이 앉아 있어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자리를 차지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곰인형에게 말을 걸어봐요. 안녕하세요. 굉장히 크고 폭신해요. 나는 인형이 되면 그나마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어요. 하지만 그냥 인형은 인형일 뿐이었어요. 상냥해서 죽을 것만 같은 카페주인은 나에게 커피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보고 커피를 두 잔 갖고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네요. 어쩌다가 인형이 되었냐고, 슬프겠다고 하지만 내가 원하던 바라고 하니까 어디론가 뛰어나가요. 토하러 갔나봐요! 속이 안 좋은 모양새로 다시 앉아서 조금 짜증나지만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내 이름도 물어보고 어디에서 왔냐고, 원래 사람이기는 했냐고 물어보네요? 글쎄요. 나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여기에 장식품으로 계속 있어도 되나요?

카페주인의 대답은 아니오. 구체관절 때문에 종업원으로 쓸 수도 없고 나처럼 커다란 인형을 감당할 수 없대요. 그러면 나는 어째야 할까요. 그냥 쫓겨나서 아무 감흥이나 목적지도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녔어요. 여러군데가 삐걱이지만 아프지는 않으니까 다행이에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귀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나에게 말을 한 번씩 걸고 지나갔어요. 인형으로 된 이상에는 저에게 알맞은 일을 하면 좋겠지만 아무도 내가 무엇이고 어쩌다가 귀여운 옷차림을 하게 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냥 구체관절도 꾸민거고 귀여운 옷차림은 일상적으로 코스프레를 하는 애구나 하면서 흘낏 볼거리를 줄 뿐이었죠.

왠지 원래 몸을 되찾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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