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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 치고는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여기, 이 미여울 강가를 계속 따라오다보니 나는 지금 상록숲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정말로 어찌된 영문인지 지치지도 않고 제 발로 여기까지 걸어오다니 왠지 상록숲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인 숲 속의 요정 때문인가 싶어서 이 동네를 통과해가는 택시나 트램을 찾았다. 그런데 택시는 잡히지를 않고 트램은 한 시간 간격으로 북동쪽으로 향하는 것 뿐이니 이제 내가 남서쪽으로 돌아가기는 틀렸다는 생각만 팍 드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이제 필사적으로 이 숲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여기도 하유섬이다. 헤매다보면 길이 나오겠지 하면서 방향을 찾다보면 북동이건 북서건 나오겠지. 그러면 거기에서 전철을 탈 수도 있을거다. 그러면 내가 사는 남서로 빨리 돌아갈 수 있으니 천천히 앞으로 나가… 빠앙.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기에 옆으로 휘익 피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저 자동차를 잡았다면 나는 이 숲에서 나가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후회하며 계속 앞으로 걷는다. 그리고 요정으로 보이는 소녀 하나가 나무 위에서 길을 잃은 거 같네라며 비웃듯이 웃는데 갑자기 히익하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길 잃은 게 맞구나 하면서 북서는 저 쪽이라면서 동쪽을 가리킨다. 자기가 링반데룽이나 시키는 고약한 녀석은 아니니까 살려달라며 나는 그저 얼굴을 찡그린 채로 동쪽으로 걷는다.

그리고나서 얼마나 걸었을까. 길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 나타난, 그리고 아까 나무 위에서 나를 골리던 옅은 청록색 머리의 요정이 장난스럽게 등 뒤에서 달라붙었다. 또 길을 잃었구나 하면서.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하면서 한 대 치려니까 치라고, 길을 알고 싶은 게 아니었냐고 화를 내는데 이건 뭔가. 하는 수 없이 그 아이에게 길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계속 나를 동쪽으로 데리고 갔고 여기서부터 북서라는 표지판 앞에서 이제 잘 찾아왔네 하면서 빛이 되어 사라졌다. 별난 놈일세 하면서 북서에 다다른 나는 바로 택시를 잡고 남서쪽의 내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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