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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삶은 불행히도

두번의 봄 2019. 12. 27. 14:47

트램이 가질 않는다. 바로 앞의 신호가 빨간색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고 트램이 도로교통이고 철로 위를 달리는 버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남서해안의 주택단지를 지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트램이 가질 않으면 자동차들이 트램 뒤에 붙는다는 것이지만 여기를 지나지 않으면 고속도로로 나가기 힘들다. 물론 시험정원 정도를 구경하면서 조금 늦게 가면 되겠지만 한눈 파는 셈인데다 자동차를 몰면 트램이 신호를 기다리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있어야 하겠고.

남북고속도로는 소통원활이다. 소통원활한 가운데서 상록숲 방향으로 나가는 마지막 출구로 나가 여울오름으로 가려고 한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용천과 숲 속의 수줍은 사람들이 참 곱지만 일단 자동차의 연료 눈금이 E를 가리킬 때까지 좀 버텨줬으면 좋겠다. 일단 배기가스를 차실 안으로 들여보내 줄 호스와 여기까지 올 정도에 정신을 잃을 수 있을 정도의 기름을 채웠다. 여울오름의 중턱에 자동차도 들어갈 수 있는 숲이 있는데 그 곳에 차를 세우고 채비를 하면 되겠지. 그리고 디젤 엔진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진짜로 사람을 많이 죽일 때 쓰던 녀석이기도 하고 말이다.

두서없이 들어온 상록특별구와 이내 들어오는 통행제한표지를 무시한다. 원래대로라면 디젤 자동차는 여기 못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나간다면 아마도 실려나갈 것이 분명하므로 일단은 무시.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평지 숲과 낮은 건물들과 트램을 지나쳐 여울오름 표지판을 따라서 저단 기어를 넣고 천천히 여울오름을 오른다. 몇몇 사람들은 내 차가 디젤인 것을 알고 휴대폰을 꺼내 환경단속반에 신고를 하는 모양이지만 어차피 주검에게 벌금을 청구할 수는 없을거야. 그리고 중턱에 도착하고 살짝 후진한 후에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가는 아주 좁은 길로 들어간다. 4륜구동을 굳이 켜야 하나.

덜컹 덜커덩. 그렇게 차가 요동치고 전복되어서 납작하게 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할 때 쯤에 조용히 죽기 좋은 아주 깊숙한 곳에 닿았다. 기어를 중립에 두고 배기통과 호스를 연결하고 꽉 조인다. 다른 호스의 끝은 살짝 열어놓은 조수석 창문에 끼우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쉼호흡 후에 다시 운전석에 올라 켜놓았던 난방과 4륜구동을 끄고 액셀을 밟는다. 계속 밟고 있는다. 시큼하고 매캐한 연기가 차 안으로 들어온다. 역시 차량을 이용한 자살이 요즘 인기라는 게 실감난다.

정신을 잃고 좀 지났을까.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콜록거리며 운전석 문을 열고 그대로 땅에 엎드려 더 콜록거렸다. 숲 속은 추웠다. 그리고 이 쪽으로 들어온 환경감시단일까 하는 사람들이 일렁였고 쓰러지면 바로 호흡기 끼우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아, 실패다.

며칠이 지났다. 차는 디젤인데 상록숲을 달렸다는 이유로 압수당했고 병원에서는 담배나 탄 것을 멀리하라며 가끔씩 고압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소리나 했다. 집에 도착해서 우편함을 보니 벌금편지가 엄청 와있고 죽지 말라는 이유 따위가 적혀있는 편지도 개중에는 있었다. 텔레비전에는 상록숲에서 디젤차를 몰고 가서 자살을 시도한 어떤 얼간이 얘기로 시사대담이 열리고 있고 집은 난방이 끊겨서 춥다. 얼른 이불을 꺼내와서 덮어야 겠다. 그리고 아직도 나에게서 경유 매연냄새가 난다. 일단 오늘은 몸에 불을 붙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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