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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한심한 일상

두번의 봄 2019. 12. 10. 11:24

정신을 놓았나 보다. 갑자기 클러치 페달을 떼서 자동차 시동을 꺼뜨렸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고 빨리 가야 한다고 상향등을 번쩍이는 놈들도 있다. 어쩌겠어, 다시 시동을 켜고 비상등을 잠시 켜주는 수 밖에는 없지. 그런 상황이 요새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운전이 피곤하고 내가 가려는 곳에는 전철이나 버스도 닿지 않으니 구태여 차를 몰고 가야 한다고. 그렇게 쌓인 피로와 약한 분노는 클러치에 입질이 오는 그 느낌마저 잊게 하기에 시동을 꺼먹는 짓을 하는 거겠지. 막히는 도로에서는 여기가 하유섬이라는 것을 종종 잊게 된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로 위에 정차하는 전철로 한 정류장이나 가서 내리면 집이다. 도대체 이런 의미없는 짓에 의미를 담으려고 몇 번이고 노력하는 삶이 무료하다. 일을 해도 지루하고 모두가 경멸스러워서 장소를 옮겼는데 전부 우울하고 소심해서 고개를 돌리거나 도망가고 낯선 곳이라 어쩔 줄을 모르고서 그저 일을 하지도 않고 기본소득 받고서 놀고 먹는 삶이라니! 그리고 기본소득도 어째 블루크루드인가 뭔가 해서 합성석유를 쓰기 때문에 자동차에 밥 주면 거의 다 써버린다. 이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카페에 들르고 집 앞의 안전지대에 서는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는 무료함이 있었다. 충분히 늙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 해도 너무 평화로워서 우울하고 소심한 나라와 그 안에서 겉도는 내가 있는 모양새였다.

전철은 숲 속 안전지대 정류장에 선다. 종착이라 다 내리는 모양이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내린다. 평범한 숲 속인데 왜 여기를 밀고 뭔가를 짓지 않는가 싶고 그저 날씨가 사늘하다. 때르릉 소리와 함께 전철이 후진하고 숲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찾아본다. 그리고 가게를 찾아서 천천히 걸어 노끈 하나를 산다. 그리고 천천히 에반스 매듭을 묶고, 왠지 놀란 표정의 어린 애에게 죽으려면 남 모르게 죽으라고 매듭을 뺏기고 그저 숲 속 깊숙히 들어가보려 하지만 깊숙히 들어가면 내 표정을 노려보고는 죽으러 왔으면 나가라고 하는 또 다른 애새끼를 만나지. 추워서 더 이상 버티지도 못하겠고 결국에는 정류장으로 돌아와서 전철 타고 또 집에 돌아간다. 뭘 잘했다고 기침이 나오는지.

한숨 쉬면서 집에 들어가니 바깥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야옹거리면서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것 같아 바깥으로 내쫓았더니 밤새 문 앞에서 울어재껴서 잘 수가 있어야지. 얼어죽던지 말던지 신경을 쓰기에는 내가 더 괴롭다. 하루하루 괴로우니 죽던가 해야겠지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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