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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음습함

두번의 봄 2019. 12. 31. 21:39

거칠게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는 이내 클러치만 붙여져서는 설설 기어가고 있었다. 기어가는 속도로도 여기서는 충분히 다닐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을 달리며 경쾌함과 서늘함에 감탄하다가도 갑자기 큰 길이 나오면 액셀을 밟고 기어를 올릴 준비나 해야 한다는 것이 큰 문제에 지금 졸고있다는 아주 큰 문제가 있지만.

그렇게 굴러가다가 이내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너무 졸려서 더 이상 운전이 재미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숲을 나가려면 자동차로 곧장 5분이면 가지만 너무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동을 켜놔도 검댕이 나오지 않는 기름만이 하유섬에서 팔리기에 괜찮지만 일단은 한스 피셔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것은 접어두자. 히터를 틀고 차 안에서 자고 싶지만 그럴 여지도 없다. 빨리 숲을 벗어나야지 하지만 졸리다. 불을 피우려고 해도 일단은 참는다. 숲이 다 타버릴 수가 있다. 추운 몸을 그루터기에 기댄다. 너무 잠이 와서 참을 수가 없다.

…기분 좋다. 따뜻해…라니 잠깐만. 문득 눈을 떠보니 어느 집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놀라서 두리번거리니 이제 일어나냐고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소녀가 뜨개질에 집중하는 동시에 내게 흘긴다. 그리고 생각난 것은… 내 차! 하지만 소녀는 자동차도 데리고 왔으니까 걱정말라며, 숲 속에서 반클러치로만 다니는 녀석은 내가 처음이라며 머저리 같은 새끼라고 욕을 했다.

아직도 숲 속에 있고 내 자동차도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소녀가 죽은 눈빛으로 와서 따뜻한 식사나 하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 하루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해는 졌고 하루 신세지기로 하기에는 시간이 다소 애매하다. 나는 소녀에게 돌아갈 거라고 말하고 나가려고 했지만 못 나가 단말마와 함께 몸에 온갖 경련이…. 내일 나가라며 경고하는 소녀였다. 바닥에 좀 뒹굴다가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시고 소녀가 준비한 따뜻한 국물과 빵을 먹는다.

다음 날이 밝는다. 소녀가 죽은 눈빛을 띄고 나를 깨운다. 무표정한 다우너여서 더더욱 무서운 소녀는 갈거냐고 묻고 그저 끄덕인다. 그렇구나 하면서 초크를 새로 맞춰야 시동이 걸릴 거라고 잘 가라며 마중을 해주는 광경을 의도적으로 등졌다. 그리고 초크를 다시 넣고 시동을 건다. 크라라라랑, 잘 안 걸린다. 액셀을 주며 다시 시동을 거니 겨우 걸렸다. 바로 숲을 빠져나온다. 1단에서 바로 2단, 2단에서 액셀을 더 주고 3단. 도망치는 느낌으로 빠져나온다. 바로 상록구를 벗어난다는 표지판과 함께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램프가 나온다.

고속도로 휴게소. 상록숲의 죽은 눈을 한 소녀 얘기를 누군가에게 할 수 있어서 했더니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보는 상대와 혹시 버려진 인형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괴담 아시냐고 하는데 고개를 젓는다.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려고 그러려면 말을 말라고 하고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고 바로 나왔다. 묘한 인상의 소녀에 휴게소에서 만난 사람이 괴담 얘기를 해서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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