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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다치아 로간 이 자식이 계속 시동이 안 걸린다. 그래서 다른 차를 빌려서 가려고 했는데 왠지 타면 안 될 것 같이 먼지가 쌓여있는 르노 5가 걸렸어. 일단 초크 안 주고 시동이 바로 걸리는 게 더 무서워.

여울오름을 올라가는 길에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귀여운 소형차는 아마도 디자이너가 번뜩인 아이디어의 산물. 안타깝게도 이 차를 디자인한 선구자는 차가 나오기 1년 전에 암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세상에 얼마나 많은 르노 5가 있고 그 중에 저주받은 것도 있겠지만 당장 하유섬에, 나한테 있을까.

뒤로 밀리는 것을 이용해서 후진 기어에 두고 클러치는 꾹 밟은 채로 시동을 걸어보려고 하지만 후진으로 시동이 걸릴 리가 있나. 일단 억지로 3단을 갈아서라도 넣고 전진으로 미끄러져 클러치 꾹 밟고 클러치 떼며 시동 모터를 혹사시킨다.

시동은 걸렸다! 허나 중립 기어로 빼는게 늦었다!

이내 시동이 꺼져버리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때가 왔지만 나는 이 때 하필이면 클러치를 밟았다. 가파른 산길을 미끄러져 내려갈 뿐이다. 그리고 다시 클러치를 떼었다. 시동이 걸렸고 재빨리 중립에 놓고 1단을 넣어야 할 것이다. 1단은 넣었을까? 그런데 기어봉이 말을 듣지 않는다.

…꿈을 꿨을까? 아니다. 나는 오늘 빌린 재수없는 르노 5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아니, 등받이를 젖혔으니 누워있다가 맞는걸까. 등줄기가 서늘해져서 차에서 내린다.

켠 적도 없는 상향등이 문득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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