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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시동. 언제 고칠 수나 있냐 말이야. 벌이가 모자라 자동차를 타고 싶어도 탈 수 없어서 타고 있는 스쿠터가 말썽을 부린다. 킥을 계속 밟아보아도 압이 샌다. 이러면 출발할수가 없지 하면서 엔진 실린더를 까니 갑자기 걸리는 시동. 그리고 그렇게 흥분에 찬 환희를 내뱉는 내 옆에 눈을 반쯤 감고 미소짓는 하얀 마녀…가 있었다.

그렇게 시동이 걸린 거 기분이 좋으면 나 좀 태워다줄래 하면서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르는 반모 헬멧을 손에 들고 태워달라던 중앙터미널까지 데려다 줬다. 그런데 다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하니까 기분 나쁘게 큭큭거리는 거 뭐지? 설마 내가 오토바이 경정비 하나 못 고쳐서 압이 새는 것이 웃긴가? 아니면 자기 자신이 나를 쩔쩔매게 만든 것이 가소로워서? 일단 알았다알았다 내린다고 하면서 마치 부모님이 장난감 사준대서 신난 어린애 걸음으로 역을 향해 폴짝이며 사라지는 그 녀석을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집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고속도로 들어가서 얼마 안 있어 나오는 휴게소에 들른다. 기분이 나빠져서 이대로 계속 가면 마녀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내 조작실수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속 110의 흐름에서 곤죽이 되는 것보다 독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정신 차리고 중앙에서 남서로 가는 것이 나에게 이로울 테니까. 주변의 사람들 모습도 흘깃 본다. 설마 고속도로를 속도 열받게 안 나는 스쿠터로 오는 미친놈도 있나 하면서 시비를 걸어올까봐 그런 것도 있고 설마 마녀가 쫓아올까봐 그런 것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두 시간이나 휴게소에서 멍하게 있다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킥을 준다… 킥을 준다… 킥을 준다… 젠장! 아 시동이 드디어 걸렸다.

남서나들목이 바로 목전인 구간에서 잠깐 물웅덩이와 마주할 뻔한 것을 제외하면 나는 무사히 살아서 집에 도착했다. 공영주차장에 애마를 세워두고 헬멧은 벗어서 손에 들고 집에 문 따고 들어간 순간, 나는 주저앉았다. 왜 그 하얀 마녀가 여기 있지?

하얀 마녀는 가소롭다는 미소로 여기가 네 집이지 하면서 공교롭게도 바닷가 근처구나 하면서 뭔가 알려준다는 듯이 헛기침을 했다. 그게 '해일이 닥칠테니 당장 지하에서 스쿠터 꺼내오고 발코니를 포함한 모든 문을 잠그라'는 얘기라 그거 말해주려고 내가 고속도로에서 죽을 뻔해야 하냐고 하니까 안 죽었잖아라고 소리치면서 화를 내고 볼을 부풀리고…. 귀찮으니 일단 집 앞으로 스쿠터 꺼내온다. 거리가 좀 있어서 하얀 마녀도 뒤에 탔는데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있으나마나한 크기의 공영주택 창고에 내 스쿠터부터 처박고 그 다음으로는 창문을 비롯해 모든 창을 걸어잠갔다. 하얀 마녀는 해일이 끝날 때까지 차나 마시자며 불에 주전자를 올렸고….

해일이 닥쳤다.

남서해안 주택가에 종아리 정도까지 차는 해일이 닥쳐와서 낮은다리는 통제되고 다들 집에 물이 들어차서 이 무슨 축축함이냐며 불평을 하는가 하면 자료가 날아가거나 책이 물에 젖었다거나 왜 낚싯배 선두가 거실에 있는거냐고 하는 아우성 속에서 나만 무사했다. 그나저나 나는 잃을 게 없는데 나를 왜 도와준거냐고 물으러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 마녀가 없었다. 단지 티백이 담긴 찻잔만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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