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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계륵

생활_2016.11.20 기준 탈고

두번의 봄 2016. 11. 20. 17:08

생활.txt


오늘도 신경긁는 전화에 졌다.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는 내 신경을 긁어놓고도 퇴근의 시간, 세계 표준시로부터 열 시간 빠른 하유섬 표준시로 오후 5시의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날 뿐이다. 그나저나 퇴근시간인데도 큰 길가 전철역에서 여기 골목으로 들어오는 버스는 아직 나를 집에 데려다줄 생각을 안 한다. 뭐 어떻게 내가 버스 타려고 서있고 시간표가 바뀌건 뭐건 나는 다른 사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공포스러워 숨고 싶었다. 버스타고 이윽고 도착한 전철역에서 나를 태우고 출발한 전철이 바닷가가 보이는 남서쪽으로 향하며 뭔가 불안한 느낌에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차창을 바라보는 사이에 전철은 남서주택단지에 섰다. 여기에서 집은 걸어서 3분이니까 걷고 걸어 집에 닿지만 걷는 걸음은 썩 지쳤다. 내일 또 하얀 전화가 울려서 예약이 변경되었다고 알리면 빽 소리를 지르며 원래대로 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렇게 그 다음 날이 밝고 일을 갈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보기 좋게 아침 출근준비는 한 채로 일을 즈려밟고서 전철을 일부러 잘못타고 한 번 섬식 승강장의 역에서 다시 반대방향 열차를 타고 미여울공원으로 간다. 굉장히 날이 밝고 봄이 깊어가니 일하기는 아까워서 그랬겠지. 전철이 오전 11시를 뚫고 미여울강가에 닿는 동안에 회사에서 오는 문자가 짜증나서 SIM을 휴대전화에서 뽑아 전철 바닥에 던져버릴까하다가 참고 그냥 멍때리다를 반복하며 미여울공원 도착하는 전철에서 뛰어나와 미여울공원 안으로 들어가 중얼거리며, 꽃을 보며 물 위의 오리를 보며, 나를 흘기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모르게 미친 짓을 하고있는 모양으로 진짜 내가 미친 줄로 아는 그 사람들이 막 욕을 하러 모여드는 그 무안함에 나는 그들을 쫓아내려는 의도로 때리려했으나 그 사이에 어떤 아이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도망쳤다. 어이없는 상황으로 내 광기는 가라앉아서 '사실은 연극이었습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이 욕을 밷으며 겨우 물러나자 나는 버스역 근처로 튀어 버스에 내가 타는지 나에 버스가 타는지도 모르는 채로 도망치려 버스가 아니라 근처를 지나가던 빈 택시에 그냥 탔다. 택시 운전사는 뭐야, 몰라, 이거 무서워같은 표정으로 남서해안지구로 가자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표현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리고 이런 쪽팔리는 상황에서 땀을 닦다가 그런 미친 상황에서 어깨에 뭔가 올려논 정신이상자가 있나하고 어깨를 털었더니 꺄악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요정…이 떨어졌다. 어깨에서 떨어진 푸르고 하얀 요정은 그렇게도 아프다고 칭얼칭얼대는 와중에 나는 귀찮아서 있던 데로 가라고 차창을 열어 날려보내려는데 요정이 호에에거리면서 도울 수 있다면 도와주겠다며 죽이지는 말라기에 어쩔 수 없이 요정을 셔츠 주머니에 살짝 넣은 그 순간, 택시 운전사가 조금 이상하게 나를 바라보았나. 택시삯이 기본요금인 580문이 조금 넘었지만 그래도 택시보다는 확실히 사람들로 넘쳐나는 버스 안에서 푸른 요정을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도 기분이 답답한 이유가 이 집마저도 나라가 '빌려준' 집이라 언젠가는 사야하는 집이고 오늘 도망친 일도 나와 안 맞아서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요정은 뭐지 생각하다가 생각이 뭉친다. 집 근처의 바닷가로 나가자.

바닷가의 모래는 하얬다. 그런만큼 바닷가는 기분을 하얗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고 하얀 생각을 만들었는데 이 때, 뜬금없이 멀리서 누군가 놀라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백사장에서 고개를 들어본 순간, 나는 쥐구멍에 숨고싶었다. 바로 미여울공원에서 미친척하던 나에게 뭔가를 쥐어주고 도망간 그 아이여서 말이다. 그 아이는 숨을 몰아쉬더니 제발 숨지 마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기에 숨으려던 생각을 멈추고 우선 아이에게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혀놓고 그 아이를 바라본다. 갓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로 보이는 새하얀 소년은 자기를 '봄'이라고 소개했다. 특이한 이름이네라고 무심결에 말하지 않도록 입을 막아 조심하려는 나를 보고 궁금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하는 그 아이 앞에서 문득 주머니에 넣어놨던, 그 아이가 공원에서 쥐어준 그것을 꺼내본다. 샛노란 탱자다. 집에 가서 먹어야지 하면서 집에 가려던 차에 봄이도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서 나의 집 방향을 묻는 봄이는 자기 집과 나의 집이 반대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퍽 실망한 채로 그렇게 따로 헤어진 그 바닷가로 노을이 다 져버리고나서야 집으로 돌아오니 푸른 요정은 보통 여자아이 크기로 커져서 바닥에 턱을 괴고 누워 무료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 표정 그대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약간 '당신은 쓸모없으니까 그럼 나는 평생 대기해야 하는거냐'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안 그래도 돼. 맘대로 떠나라고 허락하고 싶었다. 그저 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쉴 뿐이고 일상이 싫은거야라고 생각하며 저녁을 먹을 준비나 하며 그 와중에 조용함을 깨고 뭔가가 냄비에서 끓는 소리와 남서해안을 지나가는 전철과 집 앞을 지나가는 버스 소리가 섞여서 희미하게 들린다. 어차피 이 나라는 화석연료 못 태우고 전기발전도 공항이 있는 섬에서 본섬으로 넘어오는 바닷둑에 부딪히는 바닷물의 힘으로 하니까 전기도 부족해서 절약을 외쳐대지만 하유섬의 모든 기계가 다 전기로 움직이니 이상하다는 느낌과 함께 냄비에서 다 삶아진 풋콩을 꺼낸다. 풋콩 하나로 저녁을 때우는 그 만큼이나 슬픈 일도 없었다.

날이 밝으니 다음 날이 왔다. 바닷가 근처의 장기대여주택단지는 아침해에 비추어져서 참 아름다웠고 나는 그것을 볼 새 없이 바닷가 근처의 전철역에서부터 버스역으로 또 거기에서 중앙업무단지 안의 칙칙한 회사로 들어와졌다. 화사하고 동화 속 세상같은 외곽과 달리 하유섬의 중앙부는 엄청 살풍경하고 회사건물도 회색이라 무척 짜증난다고 퍼덕대면서 싫은 회사로 들어가는데 모두 나를 째려본다. 어제의 사보타주를 얘기하는 부장놈도 그렇고 노려보는 계장놈도 짜증난다는 듯이 바라보는, 동료같지 않은 예약계의 직원들이 싫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하얀 전화 앞에 앉아서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서도 또 한 번 빽 거리는 전화가 오면 폭발 한 번 거하게 하고 장렬하게 회사를 그만 두려는 작정으로 참자하며 한심 가득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렇게 그 동안 쌓아왔던 얘기를 하기는 여백이 부족하니 생략하고 첫 고객에게 통지전화 걸어서 예정이 바뀌어서 돈이 더 든다고 하니 원래 계획으로 돌려놔라는 답변. 어렵다고 취소하시겠냐고 하자 네놈은 뭔데 그러냐고 빽 지르고 마는 고객, 그리고…, 여기에 취직해서 3개월 동안 눌려있기만 하고 미처 터지지 못했던 분노의 수맥이 폭발했다. 내가 이렇게 빠르게 욕을 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런 옆자리의 소리에 깜짝 놀란 동료 직원들이 내 담당전화를 강제로 끊고 나를 계장놈 앞으로 연행해가는 동안, 나는 가히 문화대혁명 때 놀고먹는 반동분자라며 제트기 형벌을 당하고 머리를 깎였던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인이 겪었던 기분이 뭔지를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가서 전화 뭣같이 받았냐고 버럭거리던 계장놈이 부장놈과 쑥덕대다가 나에게 푹 쉬고 오라고 휴직을 줬는데 그 때, 솔직히 퇴사하고 싶다고 말할 것을 그랬다. 어차피 내 안주머니에 사표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망설임없이 부장놈에게 내고 회사를 나왔다. 회색 분위기의 버스역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더러운 기분이 영 씻기지 않아서 가는 방향을 틀리건 말건 상관할 바가 아니라 어차피 버스에서 내려 갈아탄 전철 안에서는 진정해버리기도 했고 전철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안 것은 전철이 이미 북동구청을 지나 첨채로라는 종점에 다 왔을 때였다. 그냥 멍하니 있다가 길을 모르는 곳까지 왔으므로 우선은 마을을 찾아 걷다가 어느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지치기 시작했을 때, 멀찍이에서 봄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흔들며 길을 잃었다면 우선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모르면 그냥 믿어보기로 하고 회사에서 사표내고 튀어나온 한심한 작자를 받아주는 새하얀 여자아이라니하면서 조금은 의심되는 마음으로 그 아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자 나에게 따뜻한 커피를 주면서 어쩌다가 길을 잃었냐고 물으며 여기에는 처음이냐고 말한다. 그리고 우선은 자기는 '나리'라고 하고 여기는 그냥 평범한 카페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경계심이 풀어지거나 하는 일이 있었는지 나는 그 아이에게 어쩌면 기분이 나빠서 종점까지 왔을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설탕공장의 하얀 연기가 여기까지 퍼지는 한산한 북동구 외곽에서 나는 상냥한 소녀와 얘기하면서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해가 지고 있었기에 그 아이에게 전철역으로 가는 길을 물었는데 나리는 너무 일찍, 그것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갑자기 떠나가는 것처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중에 올 때도 길을 잃지 않게하는 차원에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기에 순순히 누가 걸 일도 없는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고 그 후에야 그 아이에게서 전철역을 안내받았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경박하게 울리는 휴대폰의 낯선 번호를 받아드니 내가 맞다고 기뻐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내가 사는 마을의 중심에 도착하는 전철에서 내려 갈아탄 집 앞으로 가는 버스의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작은 섬나라라서 버스로 거의 모든 장소를 다녀야 하는 이 나라의 교통을 조금 경멸하며 몇 분 동안 덜컹대던 버스에서 내렸다. 그렇게 스스로 뛰쳐나온 회사일이 걱정될 일도 없이 지겨움 그 자체로 일상이 망가진 지금을 신경쓸 일도 없어지니 느껴지는 봄햇살은 빌려쓰는 집이지만 내 스스로 뭔가를 심고 싶은 잡초 무성한 뜰도 비췄다. 그런 뜰의 상태를 보니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할 일도 없이 조건이 맞지를 않는 일자리를 찾지만 전혀 갈피가 안 잡혀서 모르겠다고 다 던지고서 북동쪽의 소녀에게 가끔 갈 때면 의외로 많은 위로들을 만나지만 그것 뿐, 여기저기 쏘다니는 기분은 그저 좋을 뿐이라서 애써 교통비를 모른체 하며 아무 군데나 가도 교통비는 나가고 여전히 일자리는 모르겠고 북동쪽의 소녀에게 이 모든 것을 털어놓으니 우선, 당분간은 커피값을 받지 않을테니 노력해보라고 하고 그 외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전철을 기다리던 나는 전철에 치여 죽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선로 위로 내려가려다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안전요원에게 제지당하고 푸른 요정에게 새끼손가락을 물렸다. 심각하게 아픈 새끼손가락을 부여잡은 나를 죽이지 않은 채로 전철역에 도착한 전철 안에서 푸른 요정은 나를 병신이라고 하며 오늘 날씨는 죽기에도 나쁘지 않고 살기에도 나쁘지 않은 아주 맑은 날이라고 나를 매도한다. 깊은 한숨을 쉬며 짜증을 삭이는 나와 매우 화를 내고 있으면서도 이윽고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라고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살피는 시간이 지났다.

그저 멍청히 푸른 요정과 내가 지루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서로의 쓰담쓰담을 귀찮아하며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아주 지겨운 아침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막상 아침이 또 밝아오면 아무런 생각도 안 할 상황이면서 회사에서 제 발로 나온 용기있던 그 날을 후회하는 지금이다. 내가 어떻게 되든지 지금도 그 회사를 그대로 다녀서 내 정신이 완전히 미쳐버렸음 나았을까 하는 if절의 대입은 그만 두고 지치는 마음에 그냥 푹 늘어져서 쉬고 있을 즈음에도 졸음은 쏟아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로 가버리는거지. 그렇게 맞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의 그 다음 날도 무슨 그 다음 날의 그 다음 날도 계속 하유섬을 빙 둘러보는 여행만 계속하며 망할 회사를 때려친 일상이 정신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조현병 환자처럼 혹은 죽기 바로 직전의 치매 환자처럼 중얼거리는, 지리멸렬한 일상처럼 느껴지고 꼭 무료히 도망가는 그 순간마다 갑자기 튀어나온 푸른 요정에게 새끼손가락을 물리기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자기 이가 아파서 내 손가락을 무는 방식을 포기한 푸른 요정의 버럭으로 거의 혼나러 가는 식으로 오는 나에게 나리는 항상 누구에게나 상냥한 가게주인이다. 하지만 항상 찾아오는 나는 그다지 달갑지 않게 보기 시작했다. 설마 일을 그만두었냐고 친절하지만 재수없는 말씨로 나에게 말을 걸지만 나는 일없다고 계속 응수하지. 결국 나리가 먼저 내가 정신차릴 수 있게 일자리를 알려줄 수는 있다고 제안했다. 우선은 여기에서 딴 얘기를 하고 싶어 듣는둥 마는둥 하자 나리는 드디어 듣고 있냐고 화를 냈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고 결국에는 갈 데까지 가버려서 도전하지 말라는 나의 개소리에 자꾸 그럴거면 나가라는 나리의 화난 버럭거림을 듣고 나서야 나도 전화가 신경쓰인다고 전혀 연관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머리를 부여잡고 진정하기 위해서 한숨을 깊게 쉬고 진정하기 위해서 모든 생각을 그만 두고 나도 일하고 싶고 한심하게 굴고싶지 않다고 꼴에 조용히 말했다. 카페 안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며 나리도 화를 참으며 정신차리라고 나를 흔들어 세우고 그러더니 갑자기 어느 연락처와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오늘은 커피값 안 받을테니 찾아가보라고 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 나리는 자기 카페를 나가고 있는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 뒤돌아보지 않고 전철역으로 뛰어가는 동안에 나는 나에 대한 분노나 한심함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서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하유국의 교통수단에는 항상 마법이 있어서 전철이 남서해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진정하고 만다. 그렇게 전철이 남서중앙으로 향하는 찰나, 나는 정신을 차려서 문득 생각난 나리가 준 쪽지 내용을 잘 살펴보니 남서중앙로에 있는 어떤 카페. 카페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는가 생각하며 이번 역에서 내린다. 이 카페를 찾아 내가 지금 찾아가는 카페의 주인이라는 지수라는 사람을 만났다. 당황하는 그 사람에게 대뜸 오늘부터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황한 그 사람은 '오늘은 곤란하다. 내일부터 오길 바란다'라는 말을 했고 나는 전철에서 삭인 화가 다시 올라와서 그 사람에게 주먹을 날릴 뻔했지만 다행히도 임금협상이 바로 시작되어서 다행이었지 이 사람을 때렸다면 나는 진작에 하유국에서 추방됐을걸(하유국은 교도소가 없어서 교도소에 가둘 정도 이상의 범죄자는 추방한다). 지금 하유국 최저임금이 700문이고 그 사람이 부른 시급은 900문에 교통비는 따로 준다고 하는 이 정도는 일할 만 하다고 생각한 나는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고 내일 보자는 지수의 말을 듣고 집에 와서 뻗었다. 그렇게 그 다음 날부터 지수네 가게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다만 전화가 울리면 그 동안의 일 때문에 소름이 돋긴 했다. 그래도 에스프레소 머신은 굉장히 뜨거운 법이라 정신차려야 한다. 여기에 데면 약도 없다고 겁을 주는 지수의 농담에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래도 커피를 내리며 세 시간을 일하고 집으로 오면 오후 3시. 그렇게 교대 파트타임을 하고나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모를 몇 달이 지나 이제는 전화소리에 소름이 돋는 것도 꽤 많이 없어졌고 전화에 쫄지말라는 지수의 말도 이제 일에 집중하느라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푸른 요정이 커피향을 좋아하는지도 처음 알았고 이제는 얼마정도 돈이 모이면 좀 더 멀리도 가보고 싶은 생각에 은행계좌를 만들고 여러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오후에 세 시간 정도 일하고 그 나머지는 자유시간을 갖는, 지치지 않았으면 하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뭐, 그렇게 일자리는 일단락됐는데 또 다른 문제는 자꾸 지수가 한숨을 쉬는 것을 보는 것이 굉장히 신경쓰인다고. 그 모습의 이유를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끝날 시간도 아닌데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나를 집으로 보내버리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에 용기를 내고 조금씩 나아가면 되겠지. 그나저나 세상을 재미있게 살고 있더라도 아무한테도 전혀 보이지 않는 기분이라면 어떨까. 그동안 이어온 충격적이고 재미없는 서문은 이제야 끝났다. 하지만 오늘 아침일찍 전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여하튼 일을 하면서 조금씩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무시를 좋아하니까라고 생각하며 그럭저럭 이해하더라도 전철이 급정거해 남의 발을 실수로 밟아버리고 바로 사과했지만 눈 꿈쩍도 안하고 그렇게 카페에 들어가서 일 준비를 하려고 하니 지수가 나를 없는셈 한다. 어쩔 셈이냐라는 기분으로 내 일을 열심히 하지만 다른 이들 눈에는 저절로 에스프레소가 내려지고 앞에 놓여지는 광경인 모양이다. 곤란해서 어떤 남자손님이 커피 주문할 때, 혹시나해서 그 손님의 어깨에 손을 올려 보았는데 손님은 유령이 어깨를 만졌다며 호들갑을 떨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 무작정 집에 돌아와 푸른 요정의 멱살을 잡으며 무슨 장난이냐고 나를 돌려놓으라고 했는데 푸른 요정은 호에에거리면서 '놓아줘요 유령님'이라는 말을 뱉었다. 틀렸어. 그렇게 누구의 장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날 하루, 투명해져서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마을에 사는 봄이도 나를 보지 못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못 믿기 때문에 혹시나해서 나리에게 찾아갔지만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고개만 갸웃거리며 누가 왔나하고 문에 달린 방울소리에 문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나는 이미 그 아이 가게 안에 들어왔고 이 저주가 뭔지 알려고 하는데 지쳐서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나니 다음 날 아침에 화난 표정으로 누가 안 보인다고해서 자기 멱살잡으랬냐고 주걱으로 때릴 준비하는 푸른 요정을 보았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누구 소행이냐고 되물었는데 확실히 푸른 요정은 자기가 한 장난이 아니라고 소리쳤다. 그러고서 더 이상 나를 돕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며 자기 방으로 들어버려서 나는 사과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어제동안 그렇게 투명해진 하루를 보낸 이유는 무얼까 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지수는 어제 가게에 왔었냐면서 출근카드는 찍혔는데 이상하다고, 그리고 어제 카페에 귀신이 나왔다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어제의 귀신은 신분을 밝혔다. 그거 나야.

그래, 그 하루는 그랬다. 투명한 것을 해명하느라 진땀뺐고 진수는 아마도 집에 푸른 요정이 얹혀사냐고 하며 푸른 요정들이 그런 장난을 많이 친다고 말하기에 얹혀살지만 아닐거라고 말했다. 어깨 위에서 웃는 소리가 들리지만 참자. 그렇게 어제 투명화 소동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고 오늘 일도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에 와서는 밥을 짓고 문득 주걱을 바라본다. 푸른 요정이 또 장난쳤나하고. 그냥 텔레비전을 보는 녀석을 보니 아닌 것 같고 상황은 그렇게 끝. 저녁먹고 창 밖의 바다소리를 들으며 오늘하루 잠을 청하면 내일 아침은 괜찮아질거야, 괜찮을거야하며 잠을 자고 다음 날 일어나도 투명해지는 일 따위는 없을거야. 정신차려 파트타임 바리스타 양반하며 양을 세다 잠을 잤다. 전등이 다 꺼지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밤을 다 새버린 그 낮에 아무런 의욕없이 바닥을 기던 나는 장난치려고 준비하던 푸른 요정에게 손을 밟혀서 심하게 아프다고 뒹굴어버리는 바람에 푸른 요정을 겁먹게 만들었다. 호에에하면서 자기 방으로 도망가는데 조그마해져서 자기 침대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 아이를 달래서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가자.

설탕공장 방향으로 내달리는 화물열차가 쉬익 지나가고 작은 섬의 작은 전철이 바다가 보이는 작은 역에 섰다. 전철은 북동쪽으로 내달렸고 그런 동안에 푸른 요정이랑 농담따먹기 하다가 내릴 역을 놓칠 뻔한 것은 뭐야. 그렇게 여울오름에 오르러 그 쪽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나서야 미여울이 흘러나오는 샘이 있는 야트막한 산일 뿐인 여울오름에 뭐 좋다고 가는지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는 나도 잘 모르는, 게다가 갈 곳이 그곳 밖에 생각이 안 난 탓이었다. 버스는 그렇게 남서쪽과는 다른 풍경을 달려 작은 마을을 몇 군데 지나온 버스에서 내려 여울오름을 오른다.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풍경을 보며 오르는 여울오름이지만 푸른 요정은 중턱까지 오르고는 지쳤는지 내 어깨에 폭 앉아버려 칭얼대는 소리를 듣다가 나도 지쳐버리는 그런 느낌. 그러는 사이에 여울오름 맨 꼭대기의 샘에 도착했다. 지쳐 쓰러져도 경치가 좋다우. 그렇게 싸온 도시락과 멋있는 경치, 그리고 지나가는 봄을 느끼며 천천히 여울오름을 내려가 나리네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 도착하니 나리는 나를 알아보고 어서오세요라는 소리와 일은 열심히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푸른 요정을 신기해하기까지. 이 작은 섬나라에서 사는 느낌은 대강 이렇다. 정말로 어디 끝이든 두 시간만 투자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모두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그 안도감이 그것이다. 그렇게 푸른 요정은 나리가 너무 귀여워해주는 통에 집에 가자고 울먹거리며 칭얼거리고 나리는 그것마저 귀엽다고 하는, 나는 이 상황에 끼어버린 시간이 지나 버스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이 되어버렸다. 지쳐서 곯아떨어진 푸른 요정과 나는 서로 어깨에 기대서 내릴 역을 놓칠 뻔했지만 그래도 서로가 어떻게든 이렇게 같지 놀아주는 입장이자 서로 친구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집에 오니 또 졸음이 쏟아지고 말았다.

카페 출근하는 오후 1시. 그렇게 푼돈벌어서 살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직장을 잡자는 생각을 하고 카페 아르바이트로는 충분히 살지 못해서 여러 일을 찾아보고는 있지만 역시 알아본 일 중에 가장 좋은 일이 호텔 예약계라 우선 연락을 하고 본다. 5시간 일해야 하고 예약 변경은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과 이제는 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다음으로 좋은, 내가 스스로 나온 그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해야 하고 전화에 내성이 있어야 한다고 나를 남으로 취급해서 고마운 목소리를 듣는다. 도착한 카페에서 이 얘기를 나에게 전해들은 지수는 한숨을 쉬며 전화가 두렵지 않다고 바로 그러면 곤란하다고 나를 말린다. 좀 더 얹어줄테니 자기 카페에서 더 일하라고 걱정스럽게 말하지만 흠…. 돈이 더 필요하다고 푸른 요정에게 말하자 손가락 물렸고 나리에게 그런 푸념을 하면 욕심이 많다고 격추당한다. 그러니까 일상에 있어 돈관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갑자기 내 인생의 화두가 되어가는 와중에 지수는 나에게 갑자기 원래 약속한 돈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주기 시작했다. 우회적으로 지수한테 욕한 셈이 되니까 미안해져서 돈을 덜어버리니 지수는 화내며 다 가져가라고 한다. 그렇게 내쫓겨 온 곳은 전철역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두 역 거리의 남서해안으로 닿는 지금은 그 어떤 생각을 하기 보다는 지수한테 미안한 것이 더 크다. 그나저나 햇빛이 강렬한 어느 4월의 끝자락은 5월을 항해 달려가는 전철을 보냈다. 여기의 여름은 지나치게 덥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여름이구나 싶은 것들은 있어서 여름나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갑자기 직업을 바꾸려하고 나를 걱정하는 지수랑 나리에게 말로 붙잡혀서 이제는 아무런 생각없이 한숨만 쉰다. 돈낭비라는 소리를 듣는 이 전철과 같이 나는 도대체 뭐에다가 낭비를 하는지 생각하며 오랫동안 열리지 않는 왼쪽 문에 기대어 남서해안까지 전철을 타고 갔다. 여객열차과 달리, 역에 서지 않고 무조건 굴러가는 화물열차가 우리 앞을 앞질러가고 그렇게 내가 탄 전철이 조금씩 남서쪽 바닷가로 향하고 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나에게 말하며 취미로 얼마 전부터 스마트폰으로 쓰고 있는 소설을 쓰며 고치며 자리에 바로 서고 돈낭비에 대한 생각도 하고 지수에게 전화걸어서 돈에 관해서 미안하다고 전화걸려다 포기하고 나리에게 문자로만 '나는 정말 이상해'라고 보내려다가 그만 두고 떨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다시 들고 주위를 살피고 철길을 굴러가는 전철의 맨 앞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전철 앞창문이 신기한 세 살짜리 아이마냥.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푸른 요정이 지루한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를 보면 울려는 얼굴로 호에에하다가 내가 그냥 집에 왔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때서야 오늘 어땠냐고 물을 뿐이다. 그저 그래. 떡값을 받아왔소이다라고 말하려다 삼킨다. 그냥 보너스겠지 생각하기로 하고 저녁으로 감자를 삶으려고 하자 푸른 요정이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나를 불렀다. 뒤돌아보니 멍하게 웃으며 좀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생각없는 것은 아니지만 뭐, 돈이 있으니 나가서 먹고오는 것도 좋겠지. 그렇게 밖에서 고기를 굽고오면 돈은 길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가치있게 낭비된다고 생각해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내 생일이 지나간다. 괜찮아하며 여러 날을 지나온 나를 위로하면서 여러모로 그저 앞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하며 지내자며 그렇게 또 월요일은 돌아오고 또 흘러가서 일요일이 오고 일요일은 또 지나가고 있다. 요새는 영주권자 면허교환 말고도 면허검정을 실시한다는 교통부의 발표와 홍보 포스터만 믿고 운전면허에 도전하고 있지만 도로주행에서 쉽게 떨어져버리고 기분이 나빠져서 씩씩대며 올라탄 전철이 집 근처의 역으로 도착하는 어떤 오후의 햇빛은 역에서 내리는 모든 손님을 반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더위타며 덥다고 칭얼대는 푸른 요정이 있고 나도 덥다고 선풍기 앞에 끼어들면 푸른 요정은 싫은 소리를 내고 슬쩍 비켜주는 귀여움을 본다. 길가를 지나가는 전철과 자동차 일련이 조금씩 비가 오려고 하는 큰 길가에 몰려들고 우선신호를 받은 버스는 역으로 굴러가고 그 다음으로 신호를 받은 자동차는 제 갈 길을 가며 비가 거세지는 신호를 보낸다. 그저그런 일로 카페에서 졸기도 하고 이상하게 푸른 요정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괴롭히는가 하면 이상하게 큰 길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여러 일들이 있는 그런 일상을 사는 것을 가만히 생각하며 푸른 요정과 이야기한다. 푸른 요정은 일이 재미있냐며 일상이 즐거웠으면 한다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일상은 재미있지 않아라고 얘기하면 삐쳐버리는 이 조그만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몰라서 하릴없이 쓰다듬어주는데 고양이처럼 눈을 살포시 감고 좋아한다. 평소와 다르네라고 하자 표정은 그대로인 채 싫은 소리를 내며 좀 더 쓰다듬어달라고 하는 그 귀여움을 넘어간다. 조금은 다른 나라보다 한산한 이 작은 섬의 어느 마을 중심부로 걸어나간다. 어쩌면 이 한산함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 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계속 날씨는 더워지고 어떤 얘기나 개인적인 잡담을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채로 남서중앙로를 가만히 바라보며 커피를 내리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수고했다며 이제 오후 3시니까 교대시간이라고 지수가 말해주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전철이 플랫폼에 서고 버스보다 빠른 듯 느린 듯 해안가로 구른다.

전철이 집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모르는 채로 남동쪽을 둘러볼 생각으로 계속 쭉 타고간다. 남동쪽은 의외로 사람들이 피하는 곳이라 여행하는 것이 조금 두려워지기는 하지만 전화국이 여기 있고 어쩌면 들를 일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라서 전철이 종착하는, 바다가 상당히 가까운 역에 내렸다. 그런 가운데서 조금은 낙후했다고 봐도 좋은 이 남동쪽을 걸어다니는 느낌은 처음 오는 곳 치고는 익숙했다. 북동쪽이 상냥한 우울이라면 여기는 축 늘어진 우울함이 보이니까 오래있고 싶지는 않았지만. 남동쪽은 아직 개발도 안 되어있고 조금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곳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들고양이가 우는 소리에도 적막함이 느껴졌다. 남동쪽에 논밭이라도 많으면 몰라도 공터가 가득한 그 삭막함에 다시 남서쪽,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온다. 공원이라도 생기거나 뭔가 우중충하고 비어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볼 수는 없나하고 남동구청에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지난 하루의 다음 날은 그저 그런 날이었지만 카페에는 사람이 몰렸다. 나도 졸린데 문제가 생길까봐 하품도 제대로 못했다. 가게주인 지수는 계산을 하다가 한숨을 쉬며 아무래도 안 돼라며 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봤는데 위로를 하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해서 위로를 하려던 것을 접어두고 내 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자꾸 변하지 않는 일상에 오늘은 월급봉투나 받고서 한심한 카페 알바생은 북동쪽으로 향했다. 오늘도 북동쪽에 살며 나에게 사람다운 일을 소개해 준 새하얀 소녀는 자기 일을 하다가 나와 마주쳤다. 일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하지마. 어쩌지고 일을 땡땡이쳤냐고 말하는 그 아이에게 일은 이미 끝나서 전철타고 여기 왔노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안도하는 표정으로 요즘 지수한테 듣는데 일을 하다 존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정신차리라고 장난스럽게 한 소리를 듣는데 기분 나빠. 그러는 동시에 이왕 왔으면 주변에 있는 휴식의 숲이나 좀 둘러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나리네 가게에서 나리한테 거의 쫓겨났다. 나리에게서 열심히 일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아놓고서 집으로 가는 전철 안, 내가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멍청하고 진지하게 가만히가만히 생각했다. 건널목 앞 교차하는 방향의 자동차를 풍경처럼 보내고 대사관로를 거쳐 내가 사는 마을로 오는 느린 전철이 오늘은 고마웠다. 일을 밟고있는 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지수의 카페에서 일하면서 굉장히 일하기 싫다고 대충 일하는 내가 생각났기 때문에 지수한테 사과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겠다고 생각이 닿을 만큼이나 전철은 느렸다. 버스만큼 느려터져서,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어서 이제 내일 아침에 좀 더 열심히 일해야지하는 생각으로 푸른 요정과 함께 잠을 잤다. 그리고 푸른 요정을 인형처럼 끌어안는 바람에 싫은 소리가 가득한 꿈을 꾸기는 했지만 푹 잘 수 있었던 그 다음 날에 일어나보니 푸른 요정이 나보고 자기를 인형처럼 껴안고 잤다고 나를 변태라고 매도하는 아침이었다. 미안하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겠지만 어쨌든 미안하다고 푸른 요정에게 도게자를 해서 푸른 요정을 멍하게 만들어버렸고 바쁘게 택시를 잡아타고 일터에 왔다.

그렇게 일을 하는 도중에 주머니가 꼼지락. 그곳에서 푸른 요정이 나와서 일하기 싫은거냐고 묻는다. 아니. 그러면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머릿속에 딴 생각이 많은거냐고 묻는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 눈을 살짝 감고 알았다는 듯 끄덕이는 푸른 요정에게서 눈을 떼니 익숙한 외모의 새하얀 소년이 카페로 들어왔다. 내가 주문을 받으려하자 화들짝 놀라는 그 아이가 왠지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봄아 너무 무서워하지 말아라고 얘기한다. 우물쭈물하다가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키고 너무 무서워하는 봄이가 너무 가여웠지만 내 일에 집중해야지. 나는 푸른 요정에게 봄이를 달래주고 오라고 부탁했지만 푸른 요정은 단칼에 거절한다. 후우…. 그렇게 몇 분이 지나서 봄이는 카페를 나갔고 나는 주문이 없는 틈에 부들거리며 근처 전철역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지수에게 일을 해달라고 지적받는다. 미안합니다. 집으로 전철을 타지 않고 걸어가는 오후 4시에 건널목에 열차 두 편이 지나가고 중앙에서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30분이 흘러있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전철역 근처의 가로수를 보며 근처 바닷가에 나가서 뒹굴어버렸다. 답답함에 답답하다. 파도는 치고 바닷가 근처의 해당화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리고 들고양이가 백사장 위에서 식빵자세를 틀고 골골거리고 있었다. 냐앙. 들고양이를 쓰다듬고 일어나서 근처 전철역에 전철이 서있는 것을 보고 몇 분이나 쳐다보다가 이번에는 뒤돌아보니 히익하고 놀라는 소리를 듣자하니 봄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냐고 달래는 투로 말하며 같이 마을로 돌아와서는 각자의 집으로 갔다. 내 집으로 돌아오자 내 어깨정도의 키를 가진 푸른 요정이 상냥하지만 버릇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집 안을 다 정리해놓았다고 하자마자 나는 왠지 불안해졌다. 서랍에 있는 서류뭉치 뒤졌냐고 우선 추궁하는 내 모습이 추했고 추궁에 호에에하다가 자기 방으로 도망가 울어버리는 푸른 요정에게는 미안하지만 우선 내 방에 서류는 안녕하다. 그 서류가 없으면 나는 다시 꼴보기도 싫은 그 나라로 돌아가야 하니까 하유국 영주권을 위한 서류를 쓰고서 그 서랍에 넣어놨다고.

남서해안역에 왔다. 이 역에 서는 전철을 보려고 일부러 5시간을 내었다. 이 나라에 온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아직도 이 나라에 영원히 눌러살아도 좋다는 권리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소심한 녀석으로 조심할 것만 많은 바보같이 살다가 하・일・한 동반자협정을 계기로 하유에 눌러살게 되었고 그저 비영주이민자 자격으로 이 나라에 살고 있는 형편인 나의 상황을 아는지 지금 이 역에 들어오는 열차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제는 하유국에 눌러앉으려 대한민국 대사관에 국적포기를 신청했고 구청에 가서 영주권 신청을 했지만 둘 다 거절당했다. 한국의 일방적 거절이었다. 조국의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법을 초월한 그런 것들이 싫은데 눈물이 날 정도로 탄원 비슷하게 그 서류를 만들어 어제 겨우 완성했고 내일은 일을 쉬고 그 서류를 낼 것이다. 더 이상은 못 참으니까. 우선 다음 날이 밝자마자 지수에게 엄청난 문제때문에 일을 쉬겠다고 한 문자에 하고 와도 좋다고 답장이 왔다. 그래서 전철을 타고 우선 대사관로까지 가서 주 하유국 대한민국 대사관에 들러 서류봉투 1; 대한민국 국적포기 각서와 그 탄원을 냈다. 그리고 정부청사로 가서 정부청사에 직접 서류봉투 2; 하유국 영주권 신청서와 그 탄원 및 대한민국 정부의 국적포기 거부판단을 부디 무시해달라는 공증문서를 건넸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바로 답장이 오지는 않고 이틀을 기다렸다. 결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국적포기를 허용한다는 편지와 하유국 정부에서 온 영주허가서가 우편으로 왔고 그 길에 구청에서 신청하자 사흘만에 하유국 여권이 나왔다. 그렇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씁쓸했다. 이제 하유국민이 되었다며 푸른 요정에게 얘기했지만 뭐 내 서류 뒤졌냐고 버럭거린 것이 참 상처였나보다. 푸른 요정을 잘 달래며 겨우 푸른 요정이 말한 것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다시는 집안 청소 안 할거라고 해서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건 각자의 몫이잖아.

하유국의 기후는 애매하다. 일단 기후는 애매하다 못해 일단 상춘기후와 냉대습윤기후의 특징이 섞인 하유국만의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봄가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년내내 계속되는 서늘함이 특징이라 서늘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축복받은 나라이기는 커녕 더운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나라가 저세상같다고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 서늘함이 좋아서 이 나라에 말뚝박기로 어제 결심했다. 하유국 영주권이 하유국 국적을 의미하니까 하유국 여권을 만지작거릴 수 있는 이 기분이 굉장히 묘한 것이었다. 푸른 요정과는 이미 화해해서 서로 가위바위보도 하고 같이 턱괴고 텔레비전도 보는 하루가 지났고 그렇게 닷새만에 일자리로 돌아왔다. 지수는 테이블에 회중시계를 손에 쥐고 있다가 시계의 용두를 찰칵하고 눌렀다. 내가 올 때까지의 시간을 잰 모양이다. 맙소사. 나흘 더 쉬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할게요라면서 순서가 흐트러졌어도 천천히 임기응변으로 대처한 오늘의 근무가 무사히 지나가 전철타고 집에 돌아가는 어떤 5시 넘어의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초조했던 5년 간은 맥거핀이 되겠지만 그래도 여튼 지루한 얘기는 끝내자. 오늘은 바닷가에서 지루한 마음을 푸려고 생각한다. 조그만 전철은 오늘도 동네로 굴러와서 나를 바닷가로 데려다준 다음으로 화물열차가 굴러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아 역에서 나와 바다로 뛰어가 백사장에 뒹굴었다.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참 많았다. 그런데 가오가오라고 나를 쫓아낸다. 싫다싫어. 오늘은 자유롭고 싶기 때문에 바다에 왔고 그렇게 떠나기는 싫단 말이다. 해안선 열차는 바닷가 근처에 섰다가 바로 남동쪽으로 달려가 섬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겠지하며 쏟아지는 졸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실컷 답답했던 것들이 다 풀리니까 기운이 빠진다.

다음 날도 굉장히 일은 밀려서 사람들이 주문이 밀린다고 짜증내는 월초의 오전이었다. 전철은 출근러시에 어떤 생각도 잘 할 수 없는 그 가운데에서 원래 살던 나라를 떠나서 가방에 넣어둔 하유국 신분증이나 만지작거리며 내려야하는 역에는 내렸다. 다시 카페에 들어와 일하고 지금 이 시간. 그렇게 오늘 카페에 들르는 손님들의 특징을 살피면서 그냥 멍 때리다가도 바로바로 주문을 받을 수 있는 그 이야기가 나는 부대꼈다. 그런데 또 갑자기 나는 투명해진 모양이다. 그냥 다 만들어진 커피를 손님에게 건네는데 깜짝 놀라는 것이다. 갸웃. 다시 커피를 내미니 이제는 도망간다. 의심에 지수의 어깨에 손을 톡. 지수는 뒤를 돌아보더니 그냥 어깨를 떨어버린다. 슬프다. 또 투명해졌어. 그냥 여기에서 울기보다 카페를 도망치면 옳겠지. 카페를 뛰어나가 전철 개찰구가 저절로 움직이는 꼴을 보여주어서 역무원을 놀라게하고서는 그대로 전철을 타고 집 근처 바닷가로 또 도망을 왔다. 누군가 걸어온다. 북동쪽에 있어야 하는 애가 나에게 일이 힘들어서 스스로 투명해지냐고 힐난조로 묻는다. 나리다. 내가 보이냐고 말하자 원래 너는 모두에게 보인다며 '너 이상해'라는 말투로 말하는 나리다. 오랫만이고 뭐고 당황스럽다. 나리가 두 번이나 나를 투명하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푸른 요정도 아니고 봄이도 아니고 내가 투명해지는 원인이 나리라면 더 싫을 것 같아. 하지만 나리는 이내 자신이 나를 투명화시키는 원인이 아님을 밝혔다. 그냥 내가 싫으면 가끔 투명해져버리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럴 리 없어라고 말하는데 너를 믿지 못하면 됐어라고 나리가 사라진다.

바닷가에서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다음 날은 카페를 쉬었다. 도저히 히키코모리같은 푸른 요정하고 자기가 내키지 않으면 투명해져버리는 나 따위는 그냥 바닷가의 범람으로 쓸려가면 좋지 않을까 못된 생각을 한다. 그런데 등 뒤에 조금 따뜻해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호에에. 푸른 요정이 나를 등 뒤에서 나를 껴안고 있었다. 슬퍼하지 마라면서 자기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곰인형같다고 눈을 감고 울면서 나를 껴안았다. 뭐 우울을 가져가는 것은 좋아. 하지만 적당히 해줘라는 말을 삼키고 그냥 나도 눈을 감았다. 괜찮아. 그렇게 나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내가 회사에서 제 발로 나오기 직전에 미친짓하러 들른 적 있는 미여울공원에 갔다. 향이 짙은 여름꽃이 피는 하유섬은 여전히 조그마했다. 조그마한데 사람과 요정을 가르지 않고 서로는 섞여살고 있다. 심지어 내각 안에도 북동쪽 상록특별구를 뒤집어엎으면 섬이 죽는다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는데 도대체 나는 왜 두 번이나 투명해졌는지 생각하면서 인동덩굴이 늘어진 울타리 근처에 있었다. 그렇게 인동덩굴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면서 눈을 살포시 감는다. 좀 더 사람들과 섞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좁은 개천이라서 미여울인 미여울 강가를 걷다가 철교 하나와 마주치고 지나가는 열차에 손을 흔든다. 푸른 요정은 나른해하고 해도 지니까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며 내 방 침대에사 얼마나 지났을까. 그다지 투명하지는 않은 꿈을 꾸었다. 누군가에게 불려간 그 곳에서 큰 솥과 의자가 있었는데 나를 부른 놈은 의자에 앉아 솥과 의자 중 하나에 진짜 자신이 있다며 찾아보라고 하며 나는 무심결에 솥을 열었다. 그런데 놀랄 수 밖에 없는게 솥 안에는 의자에 앉은 놈과 똑같은 놈이 삶아져 있었다. 비명을 지르면서 경기들린 듯 떨며 일어난 내가 일어났을 때, 옆에는 조그만 크기가 아니라 보통 크기로 푸른 요정이 물수건을 만들고 있었다. 미친, 얼마나 심약하면 악몽에 소리를 치냐라면서 힐난조로 말하기는 했지만 악의는 없는 것을 안다. 나는 안심하고 눈물을 흘린다. 푸른 요정을 껴안는 바람에 싫은 소리를 듣지만. 그리고 카페로 출근하러 전철역. 오늘따라 전철 안에서도 카페에서도 멍 때리고 어떤 생각도 없이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왠지 푸른 요정이 상냥하다. 도움을 줄테니 죽이지 말라던 그 택시에서의 공언은 1년 반이 지나 지켜졌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집 안에 있어주는 귀여운 친구라 고마워라고 달달한 머시멜로를 선물해주었다.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니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오늘도 역시 바닷가에서 별을 세다가 남서해안역에 막차가 들어오는 시간까지 있었다. 왠지, 슬프다.

여울오름을 오르는 것을 굉장히 귀찮아하는 어떤 무리가 있었는지 여울오름에 산을 오르는 경편철도가 놓였다는 말에 북동쪽 휴식의 숲 요정들이 걱정되는 오늘이다. 비전화라면 분명 석탄이나 기름을 땔 테니 하유섬이 조금 탁해지겠구나. 물론 이 얘기를 괜히 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뉴스 앱으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전철 안에서는 항상 중앙업무지구로 나가는 출근 행렬과 북쪽으로 놀러가는 행렬과 나같은 독립군 행렬로 꽉 차있었다. 플랫폼에 객차형 열차가 와서 조금은 특이했던 오늘의 전철을 보내고 카페 일에 다시 집중하고 있는 오전 10시다. 일이 끝나고 개방정원에서 혼자 앉아 새로 육종된 석류나무에 대해 직원에게 물어보다 지쳐서 주변을 뱅뱅 돌았다. 뱅뱅 돌다가 온실 안에서 마주친 망고나 패션프루트에는 눈길을 주기만 하고 그저 열심히 일하고서도 공허하다는 것만 애기하면 될거다. 머엉 그 자체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또 전철 방향이 틀려서 북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오는 나를 별로 안 좋게 쳐다보는 나리 녀석과 조금은 도피의 느낌으로 여기에 온 나는 서로 인상을 쓰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왜 왔냐 대 왜 왔지의 대치구도는 마치 북조선과 남대한의 대치구도처럼 조금은 미묘한 느낌이라는 것은 차치하고 처음으로 나리네 가게에서 내 돈내고 커피를 마시다가 집으로 가버리는 시간을 빼서 북동쪽에 올 때면 항상 그러기에 나리도 귀찮을 것이다. 전철의 행선지를 잘 보고서 오늘부터 운행하는 급행을 타고 남서중앙까지 갈 수 있었기에 남서중앙을 둘러보며 근린공원이나 들르고 어쩌면 너무 행복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르는 나는 그 행복이 끝나기 전에 빨리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푸른 요정이 칭얼대는 가운데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고양이입처럼 웃는 얼굴일텐데 얼마나 좋은 꿈을 꿀 수 있을까하며 오늘을 미룬다. 오늘을 미루고나서 다음 날이 밝으면 내가 또 투명해져 있지는 않을까 하면서. 나라에서 빌려준 해안가 근처의 집에 있는 마당에 심어놓은 박하는 상쾌한 향기를 내며 바람에 흔들렸다. 조그마한 이야기는 이제 모자른 생각으로 이어갈 수가 없어서 북동쪽으로 징징대러 가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무너져내려서 그 아이 밖에는 내 얘기를 안 들어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다. 예감은 맞아떨어져서 손님이 없으니 얘기를 들어주겠다는 나리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또 잡스러운 얘기로 실없이 입을 벌리다가 왔겠지. 누가 멘헤라처럼 칭얼대는 마음 속 얘기를 듣고 싶어할까.

나리네 가게에서 나와 그렇게 열차에 몸을 싣고서 네 시간 동안 지겹도록 전철 안에서 하유섬의 해안가를 구경했다. 북동의 자연스러움과 남동의 침울함을 지켜보는 동쪽 바다를 전철 안에서 빤히 지켜보고 다시 돌아온 북서중앙에서 철도 기본요금 270문을 내고 나와서 환승으로 다시 남서쪽의 집으로 돌아오는 무료한 여행으로 오늘을 끝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생활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무료함이다. 그 무료함이 싫어서 미여울공원을 걸어다니다가 카페에 일하러가는 멍청이는 오늘도 시계 용두를 찰칵하고 누르는 소리에 오늘도 열심히 일하겠다고 지수를 당황시킨다. 뭐, 시간엄수를 말하기도 했으니 내가 놀라는 것을 좀 이해해주기를 바라지만 안 된다. 다시 커피향이 지겨워지는 이 시간에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다가 고개를 내민 푸른 요정이 눈을 감고 방긋 웃으며 커피향이 좋다고 얘기했는데 나는 이 향기때문에 머리 속이 빙글거린다. 그러다가 속이 메스꺼워져서 오늘은 이만해도 좋다는 지수의 말이 떨어지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철역으로 뛰어가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사서 마시고 진정되는 와중에 차풍을 뿜으며 국립천문대로 가는 열차가 플랫폼에 선다. 노선도 째리면서 확인하는 남서중앙에서 남서주택단지, 남서해안을 지나 국립천문대에 종착하는 열차를 끝까지 타고 천문대에 들른다. 내가 미쳤다. 어쩌자고 이런 곳까지 왔는지 천문대가 있는 산 아래에는 전철 차량기지가 있다는 것은 알아차렸지만 전파시계탑에서 오후 한 시를 알리는 멜로디가 울릴 때까지 시간을 잊고 있었다. 항상 오후 세 시 퇴근을 못 지키는 멍청이 알바생이라고 나를 매도하며 대낮에 올라간 천문대는… 텅 비어있었다. 당연하지. 나는 파섹이니 연주시차니 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배우고 잊어먹었기 때문에 그냥 여기를 뜨고 싶었지만 뭐, 직원한테 붙잡혀서 천체투영을 구경하려고 하는 것은 뭔데. 돈이 없으니 놔달라고 해도 동네 주민이면 그냥 들어가라고 해서 한 시간동안 그 안에서 잘 자다 나왔다. 하유섬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 하면서. 잘 자고 일어나 오후 세 시가 되어 또 전파시계탑에서 세 시 알람이 울리고 천문대산 아래의 전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그 시간이 나는 소중했다. 집으로 가면 무료한 푸른 요정이… 아니라 요즘 힘드냐고 묻는 귀여운 푸른 요정이 있다. 무료하게 전철여행하는 지금이 좀 찔린다고 해야하나 어쩌면 푸른 요정이 주머니 속 밀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조금 돋는다. 일은 어쩌자고 도중에 스톱당하고 푸른 요정의 걱정까지 받다니 나는 또 푸른 요정을 걱정시켰다.

하유국 철도노선은 크게 두 개. 하나는 하유섬의 남북을 잇는 남북선이고 다른 하나는 하유섬의 동서를 잇는 동서선이다. 애초에 하유섬에 전철이 필요하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일터로 가기 위해 타고다니는 전철이 든든하게 있다. 다만, 남북선의 일부구간만 장사가 잘 되고 있어서 철로관리국이 환장할 정도라니 조금 유감이지만. 애초에 작은 섬나라에 이민와서 이렇게 카페 알바생으로 벌고 전철여행을 무의미하게 즐길 정도면 꽤 잘 되어있는 철도망에 잘난 인생이라고 생각한 내 생각을 푸른 요정이 간파했는지 손가락 물렸다. 아마도 더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것이 인생인가 푸른 요정과 얘기하다가 내릴 역을 놓칠 뻔해서 눈치게임처럼 벌떡 일어나 내리는 바람에 사람들을 놀라게했다. 개찰구에 카드찍고 승강장을 빠져나와 카페로 뛰어왔는데 오늘도 찰칵. 너무 일찍 왔군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면서요. 하지만 지수는 내가 일할 시간은 정해져있다면서 아직 20분이 남았으니 쉬라고 했다. 쳇. 그렇게 내 일이 개시될 때까지 20분이 좀 안 되어서 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주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렇게 일을 시작해서 조금이나마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안 무서워할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지 하지만 이따끔 나는 투명해져서 모두를 괴롭힌다지. 뭘 어떻게 생각해야 옳은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카페 알바생으로 일하자.

그렇게 지쳐서 아무것도 안 하려는 일 끝나고의 시간이 오면 푸른 요정이 궁금한 듯 콧노래를 부르며 나에게 하루는 어땠는지 묻고 똑같은 하루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싫어한다. 뭘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은 일상에 불필요하지 않나하면서 곤란해하는 나는 그냥 내 방에 처박혀 여러가지 생각에 우울해해버린다. 그래서 그냥저냥 밖에 나가서 좀 더 모르는 곳을 둘러본다. 어차피 하유섬 특성상 택지 - 중심 - 농지지만 어떤 다른 풍경을 좋아하려고 전철을 타고 북서해안가로 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기다려도 타려던 열차가 안 와서 짜증났다는 것만 빼면 다 나쁘지 않지만 이 백사장 없는 해안가에 왜 왔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냥 북서수변공원의 해당화길을 걷으려고 왔는지도. 그렇게 해당화가 어느새 지고 있는 그 흙길을 걸으며 집 근처로 가는 바다의 철썩임을 보는 것을 어떤 의미를 담아 하겠는가 하고서 무료히 바위에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들과 근처 산책나온 사람들, 철도 건널목을 바라보기만 한다. 머엉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또 의미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일하러 나가는 일상이다. 하지만 이 일상을 깨려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무료해지는 것은 내가 바란 바가 아니지. 그래서 푸른 요정에게 같이 나가자고 제안했더니 싫지는 않다는 대답과 지금은 쉬라는 제안을 들었고 그래서 다음 날은 일이 끝나는대로 푸른 요정을 데리고 전철과 버스로 상록 휴식의 숲으로 갔다. 북동쪽을 개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 휴식의 숲 지역에 요정이 산다는 주장이 나와서이고 그래서 숲을 놔두고 드문드문 사람이 쉬어가라고 만든 곳에 온 푸른 요정은 그냥 뭐라는 말로 여기를 요약했다. 그런 가운데에서 그냥 근처 찻집이나 숲을 돌아다니면서 이따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자. 푸른 요정도 지루하고 나도 지루해서 집으로 가고 싶은 이 나른함을 어쩔 수 없었다.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는 그 동안에 푸른 요정이 이렇게 짜증을 내는 적은 처음이었다. 후우, 이제 내가 무료히 돌아다니는 이유를 조금 이해했겠지 하면서 버스가 전철역에 도착해서 내린다. 그런 가운데에서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곳을 쏘다니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집 안 서랍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운전면허를 생각하며 관련 서류를 꺼냈다. 운전면허는 일 끝나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고민하는 밤이 조금씩 지나갔다. 운전면허에 이미 두 번이나 떨어졌기에 조금은 마음이 벌렁거리지만 그래도 그것을 잘 극복해야 옳겠지하며 내일 일이 끝나자마자 신청을 하려고 한다.

밤이 흘러가고 햇빛이 너무 강한 아침. 아침을 깨워서 공허한 오후 12시까지의 일을 기다리는 동안에 푸른 요정과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마당에 박하를 모두었는데 무슨 이야기였는지 두서가 없지만 적어보자면 여기에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냐는 요지에서 계속 전철이나 타면서 지루하게 놀거냐는 말과 푸른 요정이 달달한 박하차를 끓여달라고 조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11시 출근으로 타임카드를 찍고 지수가 오늘은 어떤 좋은 일이 있을지 기대해보자는 말을 했다. 기분 좋게 일이 끝나는 오후 3시. 운전면허 관련서류가 챙겨진 가방과 북서구에 있는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향하고 도로주행시험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당일치기로 볼 수 있기는 했지만 긴장이 되어 또 일을 그르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 다음으로 한산한 하유섬의 도로를 달렸다. 결과를 중요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하면서 적당히 달렸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보다 나빴다. 그럭저럭 붙어서 면허증을 며칠 뒤에 찾으러오라는 말을 듣고도 나는 축 가라앉았다. 세 번만에 따다니 멍청하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푸른 요정이 손가락을 무는 대신 잘했다고 조금은 버릇없는 표정으로 웃는다. 그러면 뭐하리. 그냥 자동차도 아직 없고 아무리해도 자동차를 몰 수 있을만한 벌이도 아니라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서 전철역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있는, 그럴리가 없는데도 오늘 유난히 부실해보이는 역명판이 떨어질 듯이 바람에 흔들린다. 전철이 플랫폼에 도착하고 두 역을 지나 남서중앙역 하차 후 내가 일하는 카페로 들어간다. 오늘은 정각에 맞춰왔다며 좋아하는 지수나 오늘은 대충 일할래요라고 심술부리는 나는 그렇게 일하기 전에 으레 하는 만담을 했다. 재미없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도 무사히, 열심히 일하자는 의미라 받아쳐주어야지. 어쩌면 계속해서 일을 하고 여기저기 둘러보는 일상이 조금은 의미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야. 푸른 요정은 갑자기 나타나서 커피향이 좋다면서도 내가 일하기 정말 싫어하는 모양이라고 골린다. 뭐, 사실이래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지만 참자. 하지만 나가는 돈은 너무 많고 아무리 하유국 아름답대도 교통비가 많이 드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냥 다시 집에 처박히면 되는 것일까. 퇴근 직전에 일하는 카페에서 파는 조각 케이크를 사가지고 집에 전철타고 와서 푸른 요정과 먹었다. 그냥 케이크 맛이다.

집에서 세 시간을 쉬고 집 근처 버스역. 남서구의 다른 주택단지에 들른다. 주로 꽃이름이 붙여져있는 각 구의 주택단지는 해안가의 1기 주택단지가 끝나고 생기는 곳들이라 훨씬 집이 새 것이지만 전철이 안 들어온다는 흠이 있고 우선대여되지 않는 단점이 있지. 남서에는 목서단지하고 동백단지가 생기는데 동백단지는 버스로 지척이라 잠시 들러봤다. 공사판은 원체 싫어하지만 그래도 북서구가 개발하려다 내각에서 '그곳에는 요정이 산다'라고 해서 스톱된 지금의 휴식의 숲보다는 사정이 나으니까. 버스는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오니까 천천히 둘러본다. 강이나 자연제방은 그대로 나두고 평지인 곳만 집을 짓는다. 산을 함부로 깎거나 뚫는 것은 상록특별구의 경우처럼 올스톱당할 수 있는 경우로 내각과 전국민의 의결을 거쳐야 할 수 있게 개발법으로 막았다. 내각이 정말 진지하게 요정을 믿는다는 그런 충격과 공포 하유다. 동백단지는 내가 사는 곳보다는 작고 여전히 공사중인 곳임을 확인하고 마침 도착한 버스로 집에 돌아온다. 아무래도 좋다. 주택공사에서 나에게 집을 빌려준 대가로 빨리 내가 지금 사는 집을 사지 않으면 동백지구로 쫓아내겠다는 독촉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일상을 위해서 소심한 소년을 찾아간다. 그 아이가 언제쯤 나와 또 카페에서 만나 소심한 목소리로 쪽지로 휴대폰 번호와 주소를 건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앉아있었던 자리를 치우면서 발견했기 때문에 바로 휴대폰 번호를 확인하고 언제쯤 놀러오라고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오늘 온다고 하니까 깜짝 놀란다. 뭔가 불쌍해. 그 아이가 으음하며 기어들어가는 속삭임같은 목소리로 왜 왔죠라고 얘기한다. 얘기하려고 왔지. 그러면 고개를 숙이고 조금 곤란한 느낌으로 으음. 그렇게 있다가 나를 와락껴안고 울어버리는 봄이 녀석. 누군가 이야기할 수 있어라고 감격하는 것 같이.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져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온도차를 느꼈다. 봄이는 그래도 여기는 예뻐라고 말할 여유는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제 일상에 지친다는 얘기를 했는데 정작 주변에 자주 날아와서 간식으로 땅콩을 받아먹는 귀여운 멧비둘기 얘기를 하는 봄이가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것이었을까. 봄이가 주변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고 나는 일상의 지겨움을 계속 털어놓기도 지치고 봄이도 난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으음거려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도 내리고 흠뻑 젖은채로 집 앞에 도착하니 놀라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앞에 우산을 들고있는 푸른 요정이 놀란 표정으로 서있었다. 뭐, 같이 집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몸이 부들거린다. 오늘은 그다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몸이 안 좋아 일을 쉰다고 지수에게 문자 보내고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다. 푸른 요정은 걱정하면서도 썩 나가서 일해라는 눈빛을 하고 있는데 제 풀에 지쳤는지 자기 혼자 바닷가로 나가버렸다. 내가 게으른 탓이고 기가 약한 탓이지만 뭐, 오늘은 힘들고 짜증나는 것이 머리에 뭉쳐서 나무에 달린 그대로 홍시가 되어 떨어져 퍽하고 터지는 감과 같이 되었다. 멍청한 나 자신을 일으킬 힘도 모자라서 오늘은 쉬고 싶은데 지수는 썩 오거라라는 대답을 주었고 정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와 삐친 표정으로 무릎을 모으고 읹아서 칫하고 나를 보더니 고개돌리는 그 아이를 달래는데 약 5분. 푸른 요정은 여전히 삐친 채로 전철타고 일터로 가는데 약 4분. 그리고 보통의 크기로 나랑 같이 카페에 들어가는 푸른 요정은 들어가기 싫다며 칭얼대었고 일은 그다지 끝나지 않았다. 지수는 오늘 일이 길다고 땡땡이치려는 짓은 그만 두라고 했다. 푸른 요정 녀석도 나를 감시하고.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일이 끝나고 푸른 요정과 해가 질 때까지 미여울공원에 있자고 제안했다. 허락받고 그렇게 일이 끝나고 미여울공원역으로, 1번 출구 나오자 바로 공원에 왔다.

해가 지기를 바라보면서 근처의 여름을 맞은 나무를 구경하고 어쩌면 그냥 집에 돌아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시간, 해가 졌다. 푸른 요정이 뭐하려고 지금 해 질 때까지 여기 있냐고 했는데 나는 별거 아니라고 붕 떠올랐다. 투명해질 수 있다면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푸른 요정은 꺄악 놀라서 이거 할 줄 아냐고 잘못하면 죽는다고 캬악거린다. 자, 집에 떠올라서 가자. 위에서 보는 구름은 그냥 지식대로 물방울 뭉치, 내려다보는 하유섬이라던지 그리고 집에 도착하며 마당에 구른 것은 푸른 요정이 용서해주기를 바라야겠지. 집에 도착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그 풍경에 또 하나의 셀이 흘러가는 모양이다. 계속 불평하는 것보다 안 된다고 생각하던 것이 도덕적으로 몹쓸 짓만 아니라면 상식을 엎더라도 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면서 미여울공원에서 남서주택단지의 내 집까지 하늘을 걸어 오는 것은 그저 하나의 은유같다고 말해볼까. 집에 도착하고는 또 집 안 사면 이사보낸다는 독촉장을 받고 짜증을 내고 그저 미친 듯이 순수하게 웃어본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적이 얻그제같은데 그래도 푸른 요정의 걱정까지 괜찮아괜찮아로 덮으며 답답한 지금을 승화시켜 즐기려고 하던 어떤 저녁시간이 지났다. 하아…, 숨이 차다. 전철이 보수공사 중이라 애당초 하유섬에 철도가 없었던 때처럼 버스를 타고 죽어라 뛰어서 도착한 카페에는 지수가 없었다. 근처를 돌아보니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고 지수와 뒷목을 잡은 낯선 사람, 경찰관이 서로 싸우듯 얘기하고 있었다. 몰라 이거 무서워 식으로 한 20분 뒤에 지수가 욕을 하며 들어오는데 내 잘못이 있는 양 머리를 싸매고 있던 나를 한 대 후려치고 일해라고 명령. 그리고 나는 울어버린다. 지수는 당황하고 멍청한 놈이라며 오늘은 카페 쉴테니 썩 꺼지라고 하자 나는 도망치듯 전철역으로… 아뿔사. 버스역으로 뛰어간다. 버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가라앉고 버스는 오지 않아서 택시를 잡아 탔지만 택시가 어째서 북동쪽으로 가는걸까. 아마도 지금 나에게는 북동쪽의 소녀가 나에게 매우 화내주기를 바라는 치졸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느 반도국가의 수도보다 2배 크다고 해서 삭막하게 오밀조밀하지도 않고 남부 바닷가로 부터 조금만 중심지로 개발되어 있고 나머지는 무슨 소도시나 시골마냥 듬성듬성 개발된 이 축소지향 섬나라는 의외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평행세계의 싱가포르니 간섭없는 홍콩이니 하는 슬로건으로 알려 있을테지만 싱가포르나 홍콩은 더운 곳이고 하유는 추운 곳이라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버스는 북동구청을 넘어 어떤 조그만 동네에 섰다.

나리네 가게에 들어가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머리를 식힐까 하다가 그 참에 누가 손날로 내 머리를 때렸다. 새하얀 소녀가 나를 무표정으로 째리며 내려보다 다른 손님이 남기고 간 자리를 치우러 간다. 그래, 찌질한 놈은 이제 여기에 칭얼거리러 온다고 마음은 퍽이나 삐쳐서 찌질함을 내보이고 말아서 이내 부끄러움을 알아버렸다. 어차피 어쩌자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살아가면서 남의 도움을 절절 비는 내가 싫어서 조용히 나가려보니 누군가에게 뒷멱살을 잡히고 준비실로 질질 끌려가는 내 모습이 카페 안의 얼마 없는 사람들의 눈에 비췄다. 정신차리라고 나리에게 말을 들어버려 나는 눈물을 흘려버렸고 뚝 그치지 않으면 내쫓을거라는 말에 그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이 시간에 웬일이냐고 묻는 나리는 이유를 말하지 마라면서 오늘 지수가 사고나서 짜증난 나머지 카페를 쉬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어쩌자고 이렇게 끝없이 남에게 도움이나 얻자고 칭얼댈거냐고 버럭버럭거리며 그에 아무런 핑계도 못 대도 찌질거리는 내 모습이 있어 나리도 나 때문에 가게를 쉬게 되었다. 한숨을 쉬고 무슨 일 있어요라고 말을 시작한다. 그렇게 하유국에 오게 된 사연과 여기서도 남을 의식하고 겁내며 사는 것 뿐이라 인생에 환멸을 느낀다는 내 얘기를 듣더니 나리도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나리는 인형, 그것도 누군가가 외로워하며 자기 친구처럼 대해주던 인형이라며 언젠가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사람은 여전히 자기자신을 못 믿으며 겁에 떨다가 남서쪽에 따로 살고 있고 자기는 그저 마음이 깃든 인형으로 사람이 드문 북동쪽에서 카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의 환멸이 이해는 간다고 얘기하며 오늘은 자기도 카페를 쉴 테니 나보고 기분이 가라앉으면 알아서 집에 가달라고 하며 준비실로 들어갔다. 생각을 하고 집에 가려고보니 바깥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 큰 비가 되었다. 우산없이 흠뻑 젖어가며 내일 자정부터 전철이 운행재개라는 전광판의 안내와 집으로 가는 불편한 버스를 타고 두 번 환승에 집 침대로 올 수 있었다. 푸른 요정은 그저 칭얼대면서도 아파하지 말라고 위로할 뿐이지만 나는 그 아픔을 덜어내려 작은 섬나라에 왔지만 어떨까하고 고민하며 여러 것들을 겪는 사이에 부정적인 감정만 잔뜩 배운 느낌이었다. 축축해지는 집 안 공기와 오지않는 잠을 억지로 자려고 하며 내 문제를 직시하려 노력했다.

다음 날은 그냥 카페에 일하러 들어오니 지수는 무슨 화난 듯 뾰루퉁한 표정으로 카페 카운터에 가까운 자리에서 손가락으로 주판튕기기를 하며 나를 꼬나봤다. 어제 일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어서 그저 오늘 일을 시작하고 지수는 그렇게 심란한 표정에 다 틀렸어를 연발하며 오늘은 적당히 일하고 가버려라며 이해가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뉘앙스로는 오늘도 일을 안 할 거라는 소리인데 내가 위로하면 큰 일이라도 날까봐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카페를 나가는 길에 지수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어. 그렇게 집에 와서 푸른 요정의 칭얼거림을 받아주다가 낮잠을 자는 경우였다. 계속 소심한 고용주때문에 일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그렇게 나 좋을대로 일하는데도 나를 자르지 않는 지수가 의심스럽지만 우선은 뭐, 내가 돈을 못 버는 이유가 지수 때문은 아주 아니니까 참자. 문자는 그 동안 자신의 우울함때문에 일을 못해서 괴로울 거라며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일해달라고 했다. 퍽도. 자신이 우울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지는 높게 사주지. 그리고 나는 또 답답해서 푸른 요정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같이 바닷가로 나가서 퉁퉁마디를 갖고 장난치기도 하고 갈매기한테 밥도 주고 그렇게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놀이를 하다가 공항의 커퓨 타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즉, 밤을 샜다. 그렇다고 해도 다음 날에는 아무런 일도 없이 일할 수 있었다. 전철도 연착없이 아무런 사고도 없이 순탄하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들러 커피와 차와 간단한 식사를 사갔고 오후 2시 퇴근. 그렇게 오후조와 교대하고 문득 천문대가 있는 별보기산 아래에 전철 차량기지 근처에 가보자는 생각으로 국립천문대역에 내렸다. 열차가 기지로 들어가는 것과 기지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국립천문대 근처의 공원에 앉아 차량기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일상을 생각해보면 나는 뭔가 이루는 일 없이 일하고 돌아다니고 일하고 집으로 향하고 일하고 집 근처 바닷가로 가고 정말 이상한 일들만 계속해대니 시간관념도 모르는채로 차량기지에서 열차가 나가는 것과 천문대에 있는 시계탑에서 오후 6시를 알리는 멜로디가 울리는 것과 나의 무료함이 집에 가서 뻗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참 나는 싫었다. 그렇게 집으로 와서 푸른 요정의 걱정과 짜증을 받아주면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하며 기껏 쓰고있는 소설 원고를 찢고 펜을 던졌다. 그리고 좀 긴 잠을 잤다.

전철은 국립천문대역에 섰다. 천문대가 있는 산을 올라가 망원경이 있는 천체관측실과 플라네타륨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 산 아래의 차량기지가 보이는 그곳에서 열리는 관측행사에 참여했다. 별자리에 대한 설명과 남서구 전역의 전등이 꺼지는 오후 10시. 그리고 여름 후반의 진짜 별자리를 보는 그 행사에 나는 끼어있었고 정말 별을 보는 그 날은 별의 낭만 따위 없고 더워서 전철 한 역을 타고가서 무심코 사람이 가득한 그런 행렬에 끼어버린 탓이었다. 입추의 별자리든 아니면 하유에도 끼어오는 열대야의 밤이거든 나를 빨리 잠들게해주오라고 별한테 비는 꼴이라니 무신론자 답지 않아서 풋 웃다가 행사가 끝나고 겨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막차가 지나갔기 때문에 바닷가를 걸어서 겨우 집으로 도착하니 인생은 지치는군 하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나에게 운전면허증이 있지만 운전을 전혀 하지 않는 지금 신세가 조금은 짜증나는 일로 카페에서 일하며 계산대에 항상 고민이 많은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는 지수에게 하유에서 운전하기는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당황하는 지수였지만 그럭저럭이라면서 운전면허 있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권리가 카드지갑에 꽂혀있기에 그렇다고 대답할 뿐. 오늘의 카페 일도 술술 풀리는 것이라 재미없게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일 종료. 그렇게 집으로 오기까지 지겨움은 나를 괴롭혀서 집에 오는 순간까지 피곤했고 집에 오자마자 뻗어버렸다. 날씨는 불쾌할 뿐, 도망쳐온 나를 오히려 내가 태어난 지옥으로 돌려보내려는 세계의 의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청남색 하유국 여권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린다. 이 나라 영주권이 이렇게 문제가 된다면 무국적이 옳지않나 하면서 말이다. 우습고도 슬프다. 상냥하고 잘 삐치는 푸른 요정의 도움도 이제는 같잖다. 일하고 나오면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전철을 타고 집에 오고 또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거역하려는 양, 나는 그렇게 무료해했다. 그냥 그렇게 집 가까이의 바닷가와 그 바닷가 근처의 전철역 가까이에서 지나가는 전철만 바라보다가 은행에 들러서 그동안 모은 돈 모두를 나라가 집을 오랫동안 빌려주는 댓가와 어느정도의 세금으로 내고 한숨을 쉬며 집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내가 쓸 돈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가 하면서.

국립천문대가 국립과학관으로 바뀌던 날에 갑자기 하유섬답게 쌀쌀한 여름날씨가 돌아왔다. 그러다가 다시 여름이 사라지고 '팔열'이라 공식적으로 부르는 22℃ 이상으로 올라가는 현상이 오거나 해서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고역이 될 즈음, 지수는 나에게 스톱을 외치며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하라며 제동을 걸었다. 내가 항상 사람을 대하며 무서워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항상 말했지 않느냐고 쉬었다 오라고 다시 나에게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은 쉬는 한이 있겠지만 푹 쉬는 것은 아니라고 일갈하고 카페를 나왔다. 전철을 타고 북동쪽 어딘가에 내려 호기심을 샘솟게 하는 작은 전차로 갈아타고서 휴식의 숲 안으로 쑥 들어가 사람과 자전거 일련과 열차가 숲길을 함께 달리는 신기한 광경을 마주하고 전차 종점인 북동구청역에 내린다. 그 근처에서 카페를 하는 나의 친구, 소녀 인형 나리는 나를 보면 여전히 깜짝 놀라며 오늘도 일을 쉬게 되었냐고 한다. 베트남 핀 커피를 시키고 그저 나리와 이야기를 하러 온 것도 아니니 커피를 다 마시면 다시 전차를 타고 휴식의 숲을 빙 돌고 집으로 갈 참이다. 커피를 다 비우고서 손님으로 온 내가 여기 주인장과 아무리 친구라도 함부로 말걸면 문제가 되리라 생각해서 말없이 나리네 가게를 나왔고 숲으로 가는 전차에 올랐다. 숲으로 가는 전차는 천천히 나란히 흙길 한 가운데 놓인 선로를 달려 그렇게 휴식의 숲 깊숙히 들어간다. 그러다가 어느 마음에 드는 승강장에 내려 무료히 하나의 구(區)로서 하유국의 행정구역 하나를 차지하는 커다란 숲 속을 거닌다. 애초에 내각에서도 여기를 지키려고 별 짓을 다 하고있고 볼 것 없는 외딴 하유섬까지 와서 여기에만 들렀다가 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 상록구에 들어오는 초입에 '화석연료 차량은 통행할 수 없으니 회차로를 이용하여 돌아가주십시오'라고 적힌 표지판과 내가 오늘 여기로 오기 위해 타고 온 상록 휴식의 숲을 휘젓는 전차를 타면 북동구의 한산하지만 도시잉 풍경이 그 자체로 숲이나 다름없는 상록구에 접어드니까 차창 밖의 풍경이 갑자기 숲으로 변하는 광경도 있고 여튼, 곤란함에 도망쳐오기는 딱 어울리는 곳이다. 어차피 여기도 편의점이 있고 카페가 있고 심지어는 이동통신사 대리점도 있고 여기에 사는 사람도 있는 엄연한 하유국의 행정구역이니까. 숲을 걸으며 가게를 둘러보며 이 곳에서 유명한 물가 근처에서 멍하니 쉬기도 하고 그냥저냥 여기에서 나갈 수 있는 열차가 다시 상록중앙역에 정차하는 시간이 될 때까지 숲 속에서 멍하니 있었다.

가끔 너구리나 요정이 말을 걸어와도 멍하니 있을 뿐으로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북동구청으로 가는 전차를 놓칠 뻔했다. 남북선의 지선을 놓자니 커다란 전철을 바로 이 숲 속에 들어오는 그 꼴은 영 아니어서 노면전차로 지어진 상록궤도의 특성상, 이쪽으로 오는 열차가 굉장히 드물어서 차 안의 역무원이 어디에서 탔냐고 물으면 솔직하게 어디라 말해주고 그렇게 북동구청역에서 갈아탄 남북선 열차가 계속 달려서 번화한 중앙구의 지하구간과 다시 지상으로 나오는 남서중앙역 이후 구간으로부터 두번째 역이자 이 열차가 종착하는 남서해안역에 내려 바다를 보면서 갑갑한 기분을 바다에 띄우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맹한 일상에 맹하게도 주변을 기행하며 그저 아무런 일상도 없이 살아가는데 지쳐서 푸른 요정의 볼을 주물거리며 괴롭히고 푸른 요정이 싫은 표정과 싫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그 귀여움을 보면서 나는 또 의미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에 빠져들었다. 좋은 환경과 좋은 일상을 보낼 수 있는데 불구하고 아무런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으니까 답답한 겸, 내가 살고있는 마을의 외곽을 둘러보자. 여기 남서주택지구는 바로 이웃한 마을인 동백주택단지나 국화주택단지, 그리고 내 일터가 있는 남서중앙지구를 벗어나면 원예농업지구가 북서구 경계를 넘어서까지 펼쳐져있다. 그리고 남서구와 중앙구의 경계에서 지하로 들어가 시내를 통과하는 전철을 타면 한 시간 조금 넘겨서 상록 휴식의 숲으로 갈 수도 있는 작은 섬나라. 하지만 1,210.5 제곱킬로미터의 하유섬 전체 면적에서 도시지역이 차지하는 바는 10분의 1에 못 미치는 아주 한산한 나라. 그런 나라에 살면서도 아무런 긴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카페에 출근…했지만 돌려보내졌다. 지수가 오늘은 일 안 한다고 나한테 화까지 내면서 돌려보냈다. 그래서 지금은 아까 앞서 말한 남서구 도시구역를 벗어나면 있는 농지구역에 서있다. 이제 가을이라서 그냥 농사일을 돕고자 한다면 병신같겠지 하면서 전철도 아예 선로가 없는 이유로 전혀 오지 않아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이 동네에 바람과 외로움이 불었다. 그것 뿐.

오랫만에 봄이를 만나러 봄이네 집으로 찾아가보았지만 봄이가 사는 그 대문 앞에 붙은 부재중 표시에 그 아이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그 아이는 놀란 목소리로 남서구 동백단지 근처의 자기 온실에 있다면서 와도 좋다고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런데 개인온실이라니 돈이 많구나라는 말을 안 하기 위해서 조심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고 전철이 안 닿아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그곳으로 향한다. 버스가 농지구역에 들어서 좀 더 들어가니 온실이 하나, 그리고 그 온실 안에 무서운 듯이 벽에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봄이가 있었다. 나는 졸음으로 하품을 하고서 어쩌면 봄이가 여기서 일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는 잊어버렸다. 그 쪽지에는 자기 온실이라고 했으니까. 잠시 생각이 노래를 부르자 사랑의 소네타를 외치고 있었지만 무슨 청춘계급을 부르는 머릿속이 멍청해라고 생각할 정도로 구석에서 무서워하고 있는 봄이가 보였다. 괜찮아. 나와서 이야기하자라고 말하자 오히려 겁먹은 표정으로 준비할거라고 속삭이듯 말한다. 으…음, 그래. 그렇게 조심스럽게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사실 자기 온실은 아니고 누가 부탁해서 잠시 가꾸다가 계속 취미로는 가꾸는 온실이라며 얼굴을 붉힌다. 쓰다듬으며 봄이를 안심시키다가 나는 한숨을 크게 쉬고 말았고 봄이가 크게 놀라게 했다. 이 아이가 변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내 기분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봄이에게 요새 일을 열심히해서 지치는구나 하면서 버스 끊길 시간도 되었으니 집에 가겠다고 또박또박 밝히자 걱정하던 봄이 얼굴이 환하게 변하며 그럼 다음에 만나자고 버스역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남서주택단지에서 갑자기 집을 헤맸고 집에 도착해서는 푸른 요정이 뭔가 준비했는데하고 칭얼거리는 소리는 들었지만 무시하고 방 침대에 쓰러져 그대로 쿠울.

그렇게 일어나보니 출근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빨리 뛰어서 전철을 타고 출근해보니 카페 문이 잠겨있다. 잠긴 문은 잠긴 것이다 하면서 지수에게 전화해보니 '상록 휴식의 숲, 나리네 카페로 와라'라는 문자가 전화가 허무히 끊긴 후, 바로 왔다. 그래서 근처 전철역으로 가서 상록중앙역 경유 열차가 오는지 살펴보니 아침에는 그런 열차 따위는 없어서 북동구청역에서 내려 근처인 나리네 가게로 향하자 서로 시무룩한 표정으로 따뜻하게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하얀 남녀가 보였다. 왠지 친한 척을 하면 맞을 모양새라 그저 내리기 시작하는 휴식의 숲에 우연히 들렀다가 비 때문에 근처 처마로 들어가는 척하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굴었다.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도 했고. 그렇게 마주친 북동쪽 카페의 주인인 새하얀 소녀인형과 남서쪽 카페의 주인인 새하얀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자기 감정에 잘 져버리는 경향이 있는 다혈질 청년과 여기, 남서쪽 카페 주인이 여기로 불러서 어떨결에 온 알바로 먹고사는 소심한 청년이 한 자리에 있었다. 같은 조합소속인 소녀인형과 다혈질 청년은 요새 카페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했고 나라는 소심한 청년은 가만히 있다가 커피를 마시고는 뜨거워서 튀어나온 행동에 그 둘을 당황하게 했다. 나를 진정시키고는 다시 시작되는 카페업계 정세 이야기는 뭐, 내가 끼어들 이야기는 아니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집에 와도 어쩌면 일상이 안쓰러워지는 그런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 지쳐서 울리지 않는 폰을 붙잡고 SNS나 하다가 네소베리 인형처럼 배를 깔고 잠이 들어버리는 그런 일상이 지쳐가는 즈음이라서 오늘은 카페에 안 가려고 했지만 오랫만에 나타난 푸른 요정이 새끼손가락을 무는 식으로 오랫만이라는 인사를 대신한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다. 카페는 오늘도 잠겨있겠지 반신반의하며 간 나의 일터에는 법원이나 검찰 관계자들이 좀 있었고 거의 다 미쳐가는 표정으로 머리를 싸매고 탁자에 머리를 박고있는 지수, 그리고 내 옆에 살며시 와서는 깜짝 놀라는 나리가 있었다. 법원에서 압류건으로 출두했거나 아니면 뭔가 조사건으로 왔겠지 하면서 나리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단순히 '쟤가 가난해'라고 일러두었는데 가난해서 저렇다고? 아무래도 세무조사에서 세금이 밀려 그런 것 같다고 잠깐 나가있자를 나에게 주문한다.

그렇게 얼마 전에 노면전차로 바뀐 남서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조금 외곽으로 나가자며 권하는 나리와 함께 보통의 정류장에 서있었다. 그렇게 조그만 전차는 남서구의 중심에서 벗어나 외곽을 천천히 달려 종점인 미여울공원 남문으로 데려다주었다. 상록궤도의 저상홈보다 더 낮은 듯한 정류장의 높이를 점프해 공원으로 들어가며 편의점에서 사온 간단한 한입거리를 우물거리며 공허해하며 그저 공원 위아래를 따라서 흐르는 미여울 강가의 오리나 보다가 나리에게 여기로 온 진짜 이유가 무어냐 물었다. 그냥 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지수가 걱정된다고 한숨쉰다. 지수가 세금이 밀려 추심에 걸렸댄다. 그리고 나에게 세무처 소속으로 통지서가 오더라도 걱정말라고 도와주겠다고 나를 위로하고 힘내라는 어떤 북동쪽에서 카페를 하는 착한 소녀인형이었지만 나는 못 믿겠고 당황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나리는 걱정되면 진짜 나를 믿어보시지하는 눈빛으로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리며 그만 가자고 한다. 정류장에 도착하고 몇 분이 지나도 그 작디작은 정류장에 남서중앙으로 가는 전차가 잘 오지 않고 계속해서 동백주택단지로 가는 버스만 들어오는 통에 전차가 막 심술부린다고 무심코 생각하는 그 동안 나는, 그리고 나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지수가 왠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을 뿐으로 그렇게 일터를 쌩짜로 잃은 오늘 하루가 흘러버린 그 다음 날인 오늘, 나리네 가게에 무심코 전철타고 와서는 지수랑 같이 앉아 한숨쉬는 신세가 된 이 상황을 보고있는 세계의 의지는 어떤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금은 궁금해지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상록구와 북동구가 맞닿는 가장 윗쪽 마을에 있는 유일한 카페에서 둘에게 '고개 숙이고 있지만 말고 커피드셔'라고 명령하는 주인장 소녀인형과 상습적 세금체납자 한 명과 그 체납자 덕분에 직장잃은 알바생 하나가 여기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맑은 날씨를 좋아하고 흐린 날씨를 싫어하는 그런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렇게 멍청한 표정으로 맹하게 있는 나는 이제 집에 가도 좋아라고 허락하는 나리와 그냥 가버려라고 말하는 지수는 그저 뭐, 나는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푸른 요정이 어깨 위에서 꼬나보는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짜증날 지경이었지만 이것은 내 일이라고 버럭거릴 자신도 없었다. 버럭거려도 그렇고 글러먹은 생각이라서.

이 자그맣고 어쩌면 너무 작고 외딴 섬이라 오랫동안 아무도 갖고있지 않았던 무주지였던 하유섬을 보며 한산한 상록숲 속의 노면전차와 남서쪽 이 마을의 자그마한 마을버스들을 바라보면 사랑스럽다가도 그저 내가 슬퍼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록숲의 노면전차야 너무 노면전차가 짓고 싶었던 사람이 겨우 상록숲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전철과 연계한다는 조건을 붙여 겨우 만든 것이라 그렇다하면 나는 어떤 모양으로 내 이상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나는 나를 다스려야 할까도 생각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조여왔다. 북동쪽으로 가는 버스, 상록특별구에서 북동구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듯 펼쳐진 사탕무 밭과 하유국에서 유일한 공장인 제당공장이 보이면 여기가 북동에서도 가장 북쪽이구나 실감한다. 그 실감의 느낌, 그리고 그 곳에서 나오는 설탕의 달콤함이나 그 어떤 다른 느낌들까지 나는 굉장히 엄청난 느낌에 매료되는 듯했다. 그 매료의 느낌은 그저 달콤한 설탕도 아니었고 공장으로 들어가는, 여객철도와 직결되어 있는 하유제당선의 그런 이상함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을 하다가 생각을 멈추고 여기에서 나리네 카페는 어디에 있을까 하면서 두리번두리번거리면 상록궤도 정류장이 보이고 그러면 여기가 북동구청역이라는 얘기가 되니 나리네 가게를 찾는 데 시간이 그다지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걸리지 않은 시간 만큼이나 나는 바깥에서 그냥 나리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렸을 뿐이다. 아직 나리네 가게는 준비시간이라서 그랬는데 문에 난 창문으로 나를 본 나리는 갑자기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고서 나를 가게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쉿, 조용히하라면서 물 한 잔을 주면서 '왜 왔어'라고 묻는다. 그냥이라 대답한 나에게 '그러면 가만히 있어'라고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데 나리가 등 뒤에 밀대를 숨기고 문 뒤에 숨어 누군가를 경계하는 행동, 그리고 누가 오자마자 밀대로 첫 손님의 대가리를 내리치는 나리와 나는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치자 나리가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치는 그 장면 속에서 밀대로 소녀인형에게 얻어맞은 이 사람은 누구일까. 나리는 '해치웠다' 하면서 나에게 설명을 시작한다.

나리가 때려눕힌 그 놈의 직업은 북동구청 소속 인형회수원. 밀대에 맞아 기절한 이 녀석의 일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는 이 섬은 참 이상하다는 그 자체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상록구가 숲인 이유는 나리가 인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섬이 무주지이던 시절에 우울한 누군가가 이 섬에 살았고 자기 마음을 깃들인 인형들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고 정보도 굉장히 많이 있는 그런 얘기다. 하지만 그 무주지의 섬에 종전의 세상에 환멸을 가득안은 사람들이 몰려와 '하유'라는 나라를 세웠고 그 인형들이 그들과 섞이기는 했지만 어느 마음깃든 인형을 싫어하는데다 상록숲을 싹 밀고서 공장을 지으려 한 내각이 '인형같은 것들은 전부 회수하라'는 조례를 만든 모양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지금도 내각에 인형들은 참 많아서 상록숲을 밀어서는 안 되고 인형의 문제도 그들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회수해서는 안 된다라는 논지가 국회에서 다수였으니 우선 상록숲을 밀어버리는 것은 저지되었다. 하지만 인형을 회수하라는 조례인 '인형회수령'은 그 때를 틈타 날치기 통과되어버린 것이다. 어차피 그 날치기 통과가 있던 이후에 그 내각은 하유국에 군대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내각총사퇴에 국회공방전까지 일으키고는 불신임이 발동되기에 이르러 해산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인형회수령'은 현행조례로 남아, 거의 사문화된 하유국의 다른 구와는 달리 북동구는 아직도 그 내각을 이끌던 총리가 지금 구청장으로 있어, 인형을 잡아들이고 있다 하는 얘기다. 음. 악당의 퇴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회수당해 보통의 인형이 되기 싫다고 울고있는 나리를 위로하는 수 밖에 없는 나는 같이 울 수 없는 처지라 난감해할 뿐. 나는 어차피 구청장 선거가 곧 있다는 것을 알고 선거권은 하유국 국민 혹은 영주권자로 사람이든 요정이든 인형이든 실제로 법령에도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실체가 존재할 것'만 만족하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으니 뭐, 하유국 헌법이 존재초월적이다라는 얘기는 접자. 우선 기절한 사람은 조금 멀리에 있는 사탕무 밭에 떨궈놓고서 나리를 만나러는 그 목적이 그 이후에야 끝났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우리가 제압한 그 사람, 안 죽었겠냐는 내 말에 나리는 그냥 기절만 시킨거라고 그 정도로 죽는 존재를 본 적이 없다고 나를 안심시키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보낸다. 젠장, 왜 택시인데. 택시 기사님께 북동구청역에 내려달라고 하니 됐다고, 돈 안 받겠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내가 회사일 즈려밟고 나올 때, 나를 남서택지지구까지 데려다주었던 기사님이다. 씩 웃으며 일은 하고 있냐며 묻는다. 나는 부정의 표현으로 대답하고 '택시운전사, 하지 않겠는가'라고 일본어로 말하는 기사님에 대답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택시는 보기 좋게도 남서택지를 벗어나 과학관 아래의 차량기지 주변, 버스와 택시 차고지에 섰다. 젠장할, 또 일자리 주선이냐, 나리야. 휴대전화가 그 순간에 또 절륜하게 울렸다. 나리였다. 일자리 괜찮아? 그럴 줄 알았다. 회수원은 잡아줘서 고맙다고 콜택시를 불렀고 운전기사 모집을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했는데 더럽게 고맙군. 나는 페이퍼 드라이버, 장롱면허라고. 물론 나는 그 택시 기사님에게 나는 장롱면허고 한국 운전면허 교환으로 면허를 얻었고 심지어 운전 한 적이 손에 꼽는다라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일본어로 얘기해도 다이죠부만 대답하는 기사님, 너무하세요. 우선 운전에 바로 들어가지는 않을거고 조합 택시니까 개인으로 몰고 가라는 그 의미나 성의는 다 모르겠고 집으로 가겠다고 하자 또 태워주신다. 나는 팔짱끼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꺼져있는 미터기를 째려보며 답답해서 그나저나 왔다갔다 2,320문의 택시 삯을 안 내고 타도 되는건가 물어보자 꺼진 미터기 가리키고 돈 내지 마라고 하신다. 그래도 일 안 한다고 하니 미터기 켜는 시늉으로 나를 놀리고는 얌전히 집에 가라는 말을 끝으로 집 앞에 도착. 도망치듯 집에 들어와서 내 방 침대에서 고양이입을 하고 행복한 듯 자고있는 푸른 요정을 놀래키고는 내가 그 침대에 누워 그냥 뻗어버렸다.

그게 끝. 끝이다. 진짜로. 그렇게 또 아침오고 갈 곳도 없어 미여울공원 남문까지 찌릉찌릉 종을 울리면서 느릿느릿 굴러가는 노면전차를 타고 시벌탱 표정으로 미여울공원에 도착하면 맨 처음 입구로 들어가 그다지 추운 듯 춥지않은 날씨가 애매해서 그냥저냥 재미없는 농담 던지면서 짜증. 그것이 요즘의 문제적인 일상이다.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튀어나온 푸른 요정이 '좀 아파봐랏!'하면서 새끼손가락을 물면 끝. 물론 이런 세상을 곱씹어보자면 아무래도 이 세상은 조물주가 창조할 때, 여러 생각을 반증하지 않고 만들었거나 아니면 실수로라고 해도 굳이 왜 인간을 만들고 그대로 놔두어서 그 인간들이 자신의 세상에 많은 사달을 내게 하는지 의문이 드는 아침이었다. 차라리 나리에게 내가 인형이고 네가 사람이면 어떨까하고 나리네 카페에서 푸념하며 커피를 마셔대자 나리가 갑자기 아련하고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손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가만히 자기 얼굴에 내 손을 갖다대고는 '보드랍고 따뜻해'라고 하며 나를 너무 싫어하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이 인형이라 인형회수원을 두려워해야하고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그런 요소가 없어서 다행이야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지만 나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아니야'라고 실제의 대답을 하자 나리는 지긋이 감았던 눈을 뜨고 볼에 갖다대었던 내 손을 탁자에 다시 놓으며 '그래, 사람이 서툴러서 그렇지'라고 한숨쉬며 말했다. 지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람은 어렵다고 이 새하얀 소녀인형은 말한다. 기운 내라고 할 뿐.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을 타기 위해서 역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전철로 도착한 집에서 가까운 남서해안역의 포인트를 바라보았다. 늦가을의 하유섬은 꽤 추워서 플랫폼에 오랫동안 있지도 못하겠고 빨리 개찰구를 빠져나오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생겨서 잠깐 호흡을 멈추고 다시 포인트를 바라본다. 남서선 열차 하행은 남서해안행과 국립과학관행, 그리고 진짜 남서선의 종점인 국제터미널행이 있다. 여기, 남서해안이나 국립과학관에서 중간종착하는 열차는 포인트에서 차량기지로 향하는데 오늘은 그런 운행이 종료된 열차를 차량기지로 보내주는 포인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최초 승차개찰 후 30분 이내에 내리는 역에서 하차개찰을 끝내면 벌금이 없으니 나는 5분 간격으로 오는 그 열차를 보내주는 포인트 소리를 막차가 가까워지는 지금 이 시간, 몇 번을 들었을까. 30분이 넘어가니 역에서 나와 집으로 뛰어간다. 이렇게 철도를 좋아해서야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는다고 몇 번 생각해서 다시 이야기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에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라고 막 곤란해하며 성내고 있을 때, 전봇대 뒤에서 겁을 먹고 금방 울 듯한 표정을 짓는 봄이를 보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봄이와 얘기하기 위해 마침 전차도 막차가 가까워져서 남서중앙까지만 가는 그 가운데, 그곳에 있는 24시간 여는 카페에 들어갔다. 봄이는 따뜻한 꿀유자차를 보자 호호 불면서 천천히 마시기 시작하며 '시지만 달고 맛있어'라면서 미안하다고 넌지시 말한다. 이 소심하고 겁 많은 새하얀 소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나는 그냥 인형회수원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한다. 남서구에는 없지만 겁먹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봄이네 집까지 여기는 너무 머니까 어떡하면 좋을까 하다가 택시를 잡아서 봄이는 택시를 태워 보내고 나는 봄이네 집 반대편에 사니 그 길의 갈림에서 내리려고도 했으나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하면 좋을까 하다가 그저 택시를 어렵사리 타고 봄이를 우선 내 집에서 재웠다. 대뜸 내가 내 집 쪽으로 택시 목적지를 부탁하니까 정말 그래도 되냐고 걱정하며 겁을 먹은 표정을 짓던 새하얀 소년은 나의 집에 도착하고 피곤한 표정으로 깜빡이더니 이내 눈을 감고 인형처럼 잠들었다. 그리고 나도 곧 곯아떨어져서 날이 밝자마자 봄이를 내 집과 반대방향에 있는 봄이네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봄이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제발 행운이 있어줘'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모르겠지만 여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오늘 하루가 그저 소심한 내 친구의 부탁대로 행운이 있기를 소망하며 내 집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전차를 타고 온 이 미여울공원에서 한숨을 쉬는 나를 보아줘. 어떻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려다 말고 그냥 하하 웃어버리는 여유를 보이는 나는 전차가 지나가면서 짤랑이는 소리와 경고를 위해 울리는 경적과 관심환기를 위해 울리는 멜로디에 대해 생각하며 한숨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