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찾아보자.그래서 글을 쓰자.누군가 보아도 좋을 글을. 매듭을 묶는다거나,하얗고 보드랍다거나,그 섬에 사는 아이들은 인형이라거나하지 않고서 모두가 보아도 좋은 세상은 썩어서 변하지 않는다거나,무모순의 집합 안에는 참이지만 증명 불가능한 게 있다거나,균등과 평등과 공평은 자본가의 압제에서 해방되어야 가능하다던가그런 이야기를 지껄여보자. 하지만 카페에 고양이가 있다면,그 고양이가 내게 다가온다면,이렇게 얘기할래. 상냥한 요정님,저에게 오셨다면저를 데려가세요.살고 싶지 않아요.
오늘도 여전히 공허해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나왔지.노트북은 작은 것이 좋다고 누누이 말했었는데 아빠는 듣지 않았어. 좀 멀리 도망치는 것도 돈이 필요해.어느 정도냐면 많이 필요해. 안산시 소속 낙도인 풍도,아름다운 천리포수목원,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지는 마장저수지,그리고 익숙한 것이 오히려 낯선 수원터미널 주변. 나는 당최 왜 무료해하지?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나. 오늘은 노트북을 들고 나왔지.키보드가 마음에 들어.너무 커. 가려워서 ㅈ…맛있ㅇ….좀비가 되어가는 느낌.그리고 수인로로 들어와 수원으로 향하며 과속하는 시외버스는 노선이 너무 짦아.왜 이 노선이 시외버스냐고 할 만 하지만 그래도 단거리를 가면 시내보다 싼 운임에 안도하고이제 버스가 수원에 접어들고 서울에서 운전해 오는 길가를 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또 하얀 소년인형은 나에게 안겨오지. 정말 성가시고 기분 나빠. 이게 나라고 인정해버리면 나는 이 아이가 되어버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고 그저 아이같은 면모의 바보 응석받이가 되라고? 나는 좀 더 알아야 해. 하지만 차라리 내가 슬프다면 자신이 멀찍이 떨어져 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자기를 부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못한대. 그나저나 저 새하얀 인형은 전혀 나랑 닮지 않았고 오히려 더 차분하고 수줍은데다 상냥하니 내가 아냐. 오히려 귀여운 아이라서 불쌍해. 새하얀 인형은 나에게 죽지 마라고 붙잡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더 죽게 될거라고 말하니 새빨개져서 그럼 자기를 나라고 인정하면 되지 않냐고 소리 쳐. 그런데 너는 내가 아니야. 너는 나였던 적이 없어. 나는 네가 내 모습이..
가만히 바다소리를 듣다가 낚시대를 드리우면 아마도 낚이는 물고기도 없이 가만히 출렁이는 낚시줄이 불쌍해요. 그래서 나는 낚시는 그만 두었어요. 반가운 누군가는 내 응석도 받아주고 참 상냥하지만 나랑 닮았다고 그러면 화내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하면 그냥 마냥 슬퍼져서 그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요.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나요. 온실은 환하고 귀여워요. 그래서 온갖가지 향기롭고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 언제나 인사하는 그 안에서 나는 언제나 진짜같이 생생하고 빛나는 꿈을 꿔요. 그리고 목이 마른 아이들에게 물을 주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문득 슬퍼지면 다시 바닷가로 가서 눈을 감죠. 철길에 기관차가 자기 혼자 굴러가는 때에는 기관차를 따라잡아서 세우고 여우나 고양이가 같이 놀자고 하면 숲 속을 같이 산..
사회가 준비 안 된 누군가를 내친다면 내쳐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냥 잠만 자게 되고 공허함의 나락으로 내쳐져버리면 다른 세상으로 여행이나 가려나. 공허히 돌아다니는 것도 질려서 물려가면 취직하고 싶으나 그렇개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기성을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 할수도 없다. 그저 철밥통 지치려 아랫쪽 고혈이나 쭉쭉 빨고 겨우내 살아가는 기름벌레일 뿐일테니까. 그렇게 나는 언젠가 세종대로를 걸은 적을 떠올린다. 국가가 국민을 우롱하려던 시도를 똥으로 복수한 그 건너편 사선 20도 즈음에는 프레스 빌딩이 있다. 공익광고 기구가 그 건물 6층에 있는데 지날 적에 화염병을 던지고 싶다. 공익광고 기구가 왜 국가 기관이어야 옳은지, 네덜란드의 사례를 제외하고 말해준다면 납득하겠지만. 열차는 절연구간을 지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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