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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도망의 이유

두번의 봄 2022. 8. 31. 11:05

여기는 이상한 나라야. 아무도 아무도 그 누구도 남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지. 다치고 죽어가도 그건 다 내 잘못이래. 그래서 나는 이미 지쳤어. 저 물만이 나를 고요히 잠들게 해줄거야. 그럼 잘 있어. 그럼, 이제 나는 지쳤어. 더 이상 기대하고 뭔가를 해봐도 세상은 표리부동해. 이제 그만 나를 내가 놓아줄 때가 왔나 봐. 그러면 여기 말고 하유섬에서 만나.

하유국의 첫 관문은 관문구에 있는 국제터미널이다. 하유국제공항과 하유항이 그곳에 있다. 이곳을 건설해주는 조건으로 하유섬에서는 쓸일도 없는 무기를 받았지만 여튼 여기는 하유국으로 입국하려면 누구나 거치거나 혹은 여기에만 머물러야 한다. 왠지 하유국 여권이 있어서 입국심사는 잘 받았고 왠지 되살아나는 기억을 더듬어 열차를 탄다. 왠지 550mm의 승강장이 익숙하다. 그렇게 길고 긴 바닷속 터널을 지나서 열차는 병용궤도 위를 지나 어떤 바닷가 근방의 주택단지에 서고, 나는 거기 내린다. 주머니에는 왠지 집 열쇠가 있다.

상냥한 요정의 부름이라도 받는걸까. 그렇게 낯설지만 한 편으로는 익숙한 내 집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문득 소파에 눕는다. 폭신하고 귀여운 느낌도 들고 나른할 뿐이지만 또 휴대전화가 울린다. 장기주차 요금을 내라는 공영주차장 쪽의 연락이었다. 그렇게 푼돈을 받아내야 하겠느냐 따졌으나 결국에는 공영주차장에 가서 그 푼돈을 냈다.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주차장 관리인은 하유를 오래 떠나있더니 바깥에 물들었냐고 말한다. 그리고 열쇠를 하나 주더니 당신 차니까 몰고 어디라도 다녀와라 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열쇠를 그의 곁으로 밀었으나 그는 단호하게 턱을 들어 갔다오라 신호한다.

12 CE 2872 번호판을 달은 2008년식 다치아 로간, 그것이 내 차로군. 몰고 나와서 갈 곳이 없으니 뭐 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 요정이 사는 숲이라는 상록구에나 가보자고. 하유국에 돌아와서도 바깥에서 찌들어왔냐는 소리나 듣고 여기 모든 것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너무 짜증나는 나머지, 나는 아직 완벽하게 개통되지 않은 남서고속도로로 잘못 들어갈 뻔했다. 그렇게 샛길을 여러번 들르고서야 상록에 도착해 요정들에게 돌을 맞을 뻔하면서 도착.

내연기관을 싫어하는 요정들 덕에 차에 덴트가 생길까 두려워해야 하는 숲이라니. 그래도 높은 건물이 없고 특별구는 특별구라 나무들도 울창하다. 그리고 이렇게 도망오는 그 도피의 드라이브가 이 때부터였을지 그 때는 가만히 있기만 해서 몰랐을 것이다. 항상 이렇게 여기로 도망오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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