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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흩어지는 글을 모아서

나대와 낫

두번의 봄 2023. 12. 9. 23:10

나대와 낫은 풀을 베는 도구. 그리고 둔탁하게 눌러 만든 쇠날을 가진 무기이기도 하다. 어느정도 날붙이를 쓰는데 익숙해진 사람은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어디에 쓰이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 휘둘려져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위험한 물건이기도 해서 모두 이를 조심해야 한다. 나대는 생긴 것도 칼같이 생겨서 수풀을 헤치며 나타난 그저 눈이 시뻘건 아저씨가 당신을 노리고 숨어있던 산적이 되어버리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며 누구 까고나서 수풀에 묻고 나온 살인마가 그냥 벌초 나온 동네 사람이 되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다. 보는 시간차와 관점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지는 것들이 나는 두렵다.

나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다. 마체테라는 것과 같은데 마체테는 풀을 베는 "공구"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속담은 알지만 날이 기역 자로 굽은 조선낫이 아니라 날이 자루와 직각으로 붙은 풀낫만 봐온 사람에게 속담의 의미는 생경할 수 있다. 그리고 다 집어치우고 나대든 낫이든 전부 사람을 해칠 수 있으나 공구로 분류되는 것도 생경하리라. 아는 것이 힘이고 프랑스는 베이컨이라 했는지는 모르지만, 도구는 그 자체로 무해하다. 그 도구를 가지고 쓰는 사람이 배신할 뿐이다. 낫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자루를 쥐고 잡초가 사람 모가지 위에 있다고 휘두르는 최종주체가 누군지 생각해봐라. 어쩌면 꿈보다 해몽이라고 할 누군가도 있겠지만, 생각 잘 해봐라.

사람이 인형과 다른 바가 무엇일까? 도구는 왜 인간의 행동을 확장할까? 그러면 인간의 도구화와 도구의 인간화는 가능할까? 주객전도의 일상을 사는 지금으로서는 온갖것들에 나대를 대고 퍽퍽 잘라서 대충 내 쪽에 유리하게 억지를 부리고 그것 자체로 도구 삼아 다 무릎 꿇으라고 휘두르는 인간들이 많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은 깨어있다고 하지만 이미 그들은 나대 그 자체도 아닌, 온갖것을 자르는 나대가 부리는 인간들이다. 그 인간들은 도구에게 도구가 되기를 자청하고 도구의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은 도구의 행동을 확장하는 것인가 생각도 들고 인형과 사람이 뭐가 다른가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나대의 도구가 된 인간 아닌 도구가 집단을 꾸려 손가락 자르고 자신의 목을 베고는 동참하라 척척척 걸어간다. 인간인 이상에는 저 모가지 잘린, 아니 스스로 모가지 자른 도구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 고작 나대 한 자루에 지배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