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갑니다. 나오지는 못해요. 반으로 갈려 죽임당하고 형태는 보전했지만 인형이 되고 인형은 되지 않았지만 의욕을 뺏겨서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마치 자유로를 도보나 우마차로 다니려는 미친 놈처럼 행여나 누가 신뢰의 원칙을 깨려 하지는 않나 노심초사 하기에는 지쳤습니다. 나를 치고 지나가세요. 전방에 오비스가 있긴 하지만요. 그렇게 잘못 짚어서 망해버리면 사람은 인형이 되어버리던가요. 잊어버립시다. 우리는 애초에 사람인 적이 없어요. 저기 가로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마치 목 매단 사람처럼 진자운동을 하눈 인형을 봐요. 자기가 고뇌하는 사람인 줄 알았나봐요.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 휘저어봐요. 이것도 사람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요. 이미 깨져버려서 붙일 수도 없고 너무 건조해서 촉촉할 수 없고 너무 거칠어..
친애하는 하얀 인형, 오늘도 온실에서 외로운 아이가 반가운 사람을 맞듯이 나를 맞아주었어요. 그런 수줍고 마음씨 여린 아이와 온실 속에서 티 타임을 하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울고 말아요. 참, 나도 마음이 여리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온실에 오면 안 돼요. 현실과 너무 떨어져있기에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온실 속 인형은 내 상황은 모르고 여기서 행복하는게 중요하다며 가지 말라고 내 옷자락을 잡지만 나도 이 온실을 떠나고 싶지 않아.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액셀을 준다. 천천히 달리는 42번 국도가 쓸쓸하다.
이야기는 끝나버렸고 다시는 계속되지 않아 위에 쌓이고 먼지가 앉아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 지쳐 죽어간 주변의 이야기의 마법들은 당최 여유를 잡아먹고 세상을 각박하게 만들고 서로 싸우고 시끄럽게 만들었다. 보아라 악마여, 이제 네 이야기를 할 차례다. 하지만 악마마저도 끝난 이야기에 갇혔고 끝난 이야기는 현대사회를 각박하게 한다. 각박함이 무엇인가? 이야기가 끝장나서 이야기가 안 된다. 웃기지 않느냐, 이야기가 하나 끝장나서 세계멸망. 더 이상 뭔 이야기도 안 일어난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해가 안 된다. 세상이 무엇이었나. 단순하지 않았었나. 이제는 이해조차 못하겠다. 자, 보아라. 이게 내가 원하던 바냐? 아니다. 그러면 뭘 원하는거냐? 이러는 가운데에서 내가 뭘 또 외치면 그것을 트집잡으러 득달같이 몰려올테지. 진실은 그래서야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바는 여기 없다. 진실로 바라는 바는 내가 나로 되는 것. 밖에서 바라는 바는 내가 남으로 되는 것. 마치 외계인 손 증후군처럼 내가 안팎이 따로놀고 심지어는 서로 갈등하라는 것인가. 이해를 바라려면 그 이해의 예시를 주렴은.
일상이 호러다. 뭐만 하면 죽음이 기다린다. 옷장을 열자 기괴한 생물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싸늘하고 축축한 날씨다. 몸의 상태는 건강하지 못하다. 안심하고 싶지만 안심하면 죽는다. 일을 하면 실수한다. 실수가 저주로 변한다. 저주로 주변에서 쓰러지는 소리 들린다. 주변의 쓰러진 이는 악령이 붙는다. 쓰러진 이가 일어나 모두를 해친다. 장소를 뜨면 안 된다. 그래서 전부 당하는 꼴을 보고 만다. 나는 더더욱 장소를 뜨면 안 된다. 내가 장소를 뜨면 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장소를 떠난다. 징계를 받는다. 그리고 다시 장소로 떠넘겨진다. 나까지 해쳐진다. 해쳐진 모두가 무사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이 유지될 리가 없다. 나는 정신을 놓고 그저 닥치고 있는다. 일상이 호러라서 사회가 무섭다.
누덕누덕 기우고 베고 잘라서 자, 여기까지 왔어. 하지만 아무래도 부족해. 더 누덕누덕 기우고 베고 잘라서 이제야 좀 정상같네. 그렇게 버텨온 하루하루가 너무 무의미해서 너무 무의미해서 너무 무의미해서 너무 무의미해서 이제는 죽고 싶어져. 무너지는데 아무도 모르고 내가 스스로 뭔가를 할 수도 없는 지금, 진짜 뭘 해야 하지 진짜 뭘 해야 하지 진짜 뭘 해야 하지 진짜 뭘 해야 하지 다 잊어먹어서 경고만 늘어나. 자, 네 손으로 나를 죽여줘. 이렇게 만든 네가 나 정도는 죽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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