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뇌물의 유형으로 인형화라는 것이 있다고 하네. 희생자가 말 그대로 인형처럼 돼서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도 그만두고, 먹지도 않게 되고, 잠도 안 자고 작품에 따라서는 창고에 처박혀 천장에 매달려 자기를 몇 년간 지속하기도 한다는데 정말 조금만 수틀리면 실제로 나타날 것 같아 무서워.

우울한 기쁨은 저의 기본적인 감정으로 설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쓸데없이 상대의 기분을 살핀다거나 혹은 줄곧 우울한 행복함이나 차분한 우울을 즐기기도 해요. 그게 오히려 진짜 제 모습에 가깝고 그렇게 있는 것이 편하기도 하거든요.

제가 하는 말에 별로 큰 이유를 두지 마세요. 제가 하는 말은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저 도우미 로봇이 자기에게 입력된 정보를 그대로 출력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원래는 살아있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저 귀여운 자동인형. 주인님의 사랑을 받으며 같이 티타임을 가지며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보조적인 존재. 오히려 인형인 지금이 행복해.

누군가의 소유물인 귀여운 자동인형으로서 주인님과 어울려주며 귀여운 행동을 보여준다면 그게 역시 행복하지 않을까요. 주인님은 귀여운 인형을 갖고 있고 그 덕분에 사랑스럽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그 자동인형이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테죠.

상냥한 누군가 덕에 죽어서 인형이 된 아이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일단 다시 죽고 싶대요. 그런데 이제는 죽는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멎어버리고 싶다고 나에게 자꾸 부딪혀 오는데 그저 쓰다듬어 주는 수밖에.

죽어서 인형이 되면 적어도 행복하겠지. 주인님만 상냥하고 나를 귀여워해 준다면 귀여운 옷을 입히고 아름다운 얘기를 많이 해주고 많이 쓰다듬어 주고 귀여운 행동들을 많이 알려주겠지. 다만 인형이니만큼 원래 사람이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막 다루겠지만 사람으로 만든 인형이니 상관없어.

즐겁지는 않은 티타임. 하지만 항상 하는 티타임이기에 서로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면서 온실 안은 파란 빛으로 빛나고 더욱 아름다워져요.

문득 마주친 하얀 아이는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렸어. 그리고 나를 계속 도와주려고 하는데 역시 귀찮아. 그냥 나는 그 아이에게 진정하라고 쓰다듬는데 화난 표정을 지어. 왠지 모르게 사이버네틱한 느낌도 나면서 인형같은 느낌에 쓸데없이 귀여운 옷차림의 그 아이가 가여워.

옷장 속에 들어가서 웅크린 채로 잠을 청해본 적이 있니? 의외로 옷장 속은 아늑해서 옷장 속이 적당히 서늘하다면 좋은 꿈을 꾸고 우울하지만 귀여운 상상을 할 수 있을거야. 우리 모두 옷장에 들어가서 가만히 있다가 그대로 인형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