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로 오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좋아. 결국에는 너만 상처입고 도망치게 될 거야. 아무래도 따뜻한 스튜나 먹고 고양이를 안겨줄테니 조금만 쉬다 가겠어? 미안하지만 그래주기를 바라. 헤매다 굶지 않기를. 그리고 적어도 네가 타고 온 자동차에게도 쉬는 시간을 주고 서로가 나른해져서 이런 곳이 있었나 잊을 정도로 푹 쉬라고. 이런 날이 어쩌면 너에게 더 익숙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푹 쉬렴. 생각보다 그 무엇도 풀리지 않는 매일이 지속되었다. 그러다 나는 연파랑색 머리카락의 소년을 만났고 그에게 홀려서 한 동안 숲 속에서 요정처럼 지냈던 것 같다. 황홀했던 기분이 잊혀지질 않는다. 분명 반토막이 나있을 것이 분명했던 자동차의 기름 게이지도 꽉 차있었고 덕분에 헤메지 않고 숲을 벗어났다. 왠지 무..
오래된 성에 사는 외롭고 우울한 생령인형 하면 되나요? 혼 자체는 인간인데 몸이 구체관절인형이라서 다들 귀신 붙은 인형이라고 도망가는데 오늘도 전부 도망가버렸어 하고 혼자 밝고 근사한 티타임 테이블에 앉아서 우는 불쌍한 아이 말이에요. 오늘도 사람들은 내가 낡은 성의 귀신붙은 인형이라고 도망갔어.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면 더 싫어했을 거면서 다들 왜 나한테 심하게 구는지 모르겠어. 이제 티타임이고 뭐고 즐겁지 않을 지경이라고!
친애하는 하얀 인형, 오늘도 온실에서 외로운 아이가 반가운 사람을 맞듯이 나를 맞아주었어요. 그런 수줍고 마음씨 여린 아이와 온실 속에서 티 타임을 하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울고 말아요. 참, 나도 마음이 여리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온실에 오면 안 돼요. 현실과 너무 떨어져있기에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온실 속 인형은 내 상황은 모르고 여기서 행복하는게 중요하다며 가지 말라고 내 옷자락을 잡지만 나도 이 온실을 떠나고 싶지 않아.
자동차는 털털거려요.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가스가 부족해서 그럴 거예요. 하는 수 없이 내려서 목적지인 산 위의 낮은 나무들이 많은 곳으로 걸어가요. 달고 새콤한 열매가 많아서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곳이에요. 불씨를 살리는데 가스는 요긴해요. 낙엽과 나무껍질, 먹으면서 생기는 쓰레기 같은 것들을 꽉 잠기는 통에 넣고 물에 재워놓으면 불이 붙는 가스가 생기는데 이 정도 꾀가 없으면 정원섬에서 혼자 사는 저는 불도 오래 못 피우고 쓸모없다며 가져가라던 자동차를 고쳐서 섬으로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만 그것 때문에 제가 주기적으로 섬 밖으로 나와서 열매를 팔아야 하지만요. 마을로 나가기는 싫지만 어쩌겠어요. 그리고 작은 나무에서 열리는 빨갛고 새콤한 열매는 마을에서 비싸게 사줘요. 산이 사늘하고 구름..
폭신하고 따뜻한 정원섬에는 귀여운 자동차와 조그만 철길, 따뜻한 유리온실과 항상 서늘한 날씨가 기분 좋은 숲과 맑은 물가가 있지요. 나가지 않아도 나는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자동차와 철길을 고치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나가야 해요. 그것들을 고치는데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서 말예요. 자동차와 철길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죄다 비싸서 나는 내 섬에서 기른 풀과 열매를 팔지요. 하지만 내가 내 정원섬을 나와서 마을이 있는 섬으로 나와 내가 정성껏 기른 풀과 열매를 상인에게 팔면 가격을 후려쳐요. 그래서 다른 곳의 가격을 봐달라고 하면 인형 주제에 건방지다고 맞아요. 실망해서 섬으로 돌아오면 그냥 토끼가 보드랍고 여우가 복실복실해요. 그리고 이 정원섬은 수라도나 다름없다고 화를 내지만 그러다 이내 가라앉아..
전철은 병용궤도의 한 가운데에서 멈춘다. 춤추듯 집으로 돌아가 불을 켜고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잠에 드는 그런 일상, 식상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초고를 쓰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일상이다. 어차피 모두들 10시에 출근해서 17시면 전부 퇴근하니까 이게 일상일 뿐이지만. 출근은 역시 그렇듯이 버스 아니면 전철이다. 집 앞의 정류장에 버스가 먼저 오면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전철이 먼저 오면 병용궤도를 천천히 달리다가 중앙의 지하까지 급행으로 내달리는 전철을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식이다. 아침 출근도장을 찍고 교정받은 기삿거리를 정리하고 틀린 사실은 없는지 확인하고 보도자료와 대조하고 우선 내가 쓰는 언어인 영어로 작성해 공용어부에 넘기면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
달콤한 산딸기. 바구니를 채우고도 남아요. 앵두도 바구니를 채우고도 남고 체리도 바구니를 채우고도 남아요. 달콤한 여름 과일들이 사늘한 이곳에서도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사랑스러워요. 언제나 넉넉하게 많은 야채와 과일을 먹을 수 있지요. 오늘도 남동쪽의 아침은 분주하답니다. 저는 동료들을 따라서 바구니를 들고 시중을 들었어요. '메이, 이 나뭇가지를 잡아주렴'이라거나 '메이, 손님이 오면 좀 부탁해'라던지 제가 되도록이면 무리하지 않게 해주셔요. 다만 제가 인형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거예요. 동화 속의 소풍 좋아하는 여자아이 풍의 옷을 입고 바구니를 들고서 과수원과 농원의 여러분들을 돕는게 저, 메이의 일이에요. 의외로 저는 운전을 할 줄 알아요! 그래서 시장통으로 깡통을 몰고서 과일을 팔러 가면 다들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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