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또 뭐가 잘 안 되고 말았네요. 일단 햇빛이 좋으니 잠을 청해보고 고양이가 찾아오면 쓰다듬고 그래도 안 되면 길 건너의 마을로 가서 사람들과 무엇이 좋은거냐고 말을 얹고 오기로 해요. 하지만 여튼 간에 일단은 그 무엇도 하기 싫어서 그저 뒹굴거리다가 심심한 고양이가 제 등에 올라와서 식빵을 굽고 말지요. 내려 와. 그렇게 자동차와 전철이 다니는 길을 건너와서 미안해요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러는데 좀 무언가 도움을 주시겠어요 하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대부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죠. 찾아낸 여러 개의 답변 중에서 산책을 하거나 바닷가에 가거나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저는 많이 지쳤거든요. 이런 식으로 많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도 나는 그냥 남서쪽에 사는 인형이라고요. 지루해져서 무작정 전철을 ..
오래된 성에 사는 외롭고 우울한 생령인형 하면 되나요? 혼 자체는 인간인데 몸이 구체관절인형이라서 다들 귀신 붙은 인형이라고 도망가는데 오늘도 전부 도망가버렸어 하고 혼자 밝고 근사한 티타임 테이블에 앉아서 우는 불쌍한 아이 말이에요. 오늘도 사람들은 내가 낡은 성의 귀신붙은 인형이라고 도망갔어.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면 더 싫어했을 거면서 다들 왜 나한테 심하게 구는지 모르겠어. 이제 티타임이고 뭐고 즐겁지 않을 지경이라고!
하기 싫은 일들을 무더기로 겪고 있어서 힘든 와중을 보내고 있지요. 날씨는 갈수록 더워지고 모두들 이럴 때는 카페에 가서 쉬어야 맞지만 일은 해야 한다고들 하지요. 트램 안에서도 분주하게 뭔가를 하는 사람들과 부딪혀서 죄송하다고 했고요 그렇게 도착한 시험정원에서 향기로운 여름 꽃냄새를 맡았죠. 향기로웠어요. 하여튼 이렇고 있는 일들이 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약간 숙여 정류장에서 도로를 바라봐요. 타고 온 트램이 떠나가고 자동차와 버스가 분주해요. 안녕, 귀여운 인형이네. 모두들 나를 보고는 인사하지요. 그래서 북동쪽에 사냐고 물어보는데 아뇨, 저는 남서쪽 살아요 하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더운 탓에 널부러진 고양이와 함께 벤치에 널부러지기도 하고 즐거워요.
어느 날, 나는 원하는 대로 인형이 되었지요. 구체관절이 좀 삐걱거리기는 해도 옷도 귀엽고 외모도 엄청 귀여워요! 그리고 이제 사람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마땅히 다른 사람들을 도울 용기도 생겨요. 그래서 번화한 거리에 섰지만 나는 그냥 멀뚱히 서있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이야기를 붙이면 왠지 들어주다가도 인형이라는 점 때문에 나를 어딘가 팔아치울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삐걱거리는 몸 때문에 도망치는 것도 더욱 힘들어졌고요. 근사한 카페에 들어갔어요. 누군가 잔을 닦고 있어요. 나를 보더니 쓸데없이 귀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나를 보고는 장난스럽게 웃어요. 나는 살짝 노려보았지만 여기에 장식품처럼 있는 수밖에 없어서 그냥 여기 있겠다고 대뜸 말하자 인..
괜찮아요. 어차피 나는 인형이니까요. 굉장한 아이예요. 포근하고 깨질 듯한 마음씨를 가졌고 상당히 귀엽게 생겼어요.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자기를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주인님으로 부르는데다 좋아하는 옷차림도 쓸데없이 귀여워요. 그리고 나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떨어져 있어야 하면 싫은 소리를 내요.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싫지는 않아요. 언제까지 이 아이가 내 곁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쓰다듬어주면 눈을 살포시 감고 보드랍다는 듯이 녹는 표정을 짓는 귀여운 아이일 뿐이에요. 나는 이 아이를 봄이라고 불러요. 봄이는 항상 내 눈치를 살피면서 오늘도 즐겁고 귀여운 하루가 되기를 빈다고 하죠. 하지만 솔직하게 그런 하루를 보낼 자신이 없다고 하면 눈 앞에서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을 본 듯이 놀란 ..
들어갑니다. 나오지는 못해요. 반으로 갈려 죽임당하고 형태는 보전했지만 인형이 되고 인형은 되지 않았지만 의욕을 뺏겨서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마치 자유로를 도보나 우마차로 다니려는 미친 놈처럼 행여나 누가 신뢰의 원칙을 깨려 하지는 않나 노심초사 하기에는 지쳤습니다. 나를 치고 지나가세요. 전방에 오비스가 있긴 하지만요. 그렇게 잘못 짚어서 망해버리면 사람은 인형이 되어버리던가요. 잊어버립시다. 우리는 애초에 사람인 적이 없어요. 저기 가로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마치 목 매단 사람처럼 진자운동을 하눈 인형을 봐요. 자기가 고뇌하는 사람인 줄 알았나봐요.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 휘저어봐요. 이것도 사람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요. 이미 깨져버려서 붙일 수도 없고 너무 건조해서 촉촉할 수 없고 너무 거칠어..
언제나 인형으로 있을 수만은 없는 것 같기에 일단은 사람처럼 행동하지요. 사람에 대해서 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진짜로 나에게도 공감과 감정은 존재하지만 사람의 그것보다는 훨씬 어눌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일단은 나는 인형이고 주인님의 장난감이니까요. 주인님은 귀여운 옷을 권하고 나는 그 귀여운 옷을 입어보지요. 귀엽다고 듣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요. 정확히 모르는 것을 듣고 정확히 모르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아파요. 그 아픈 느낌은 마치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닌데 왜 모르지 하는 느낌과 같아서 어찌보면 주인님이 나를 부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내가 먼저 나를 부숴달라고 주인님에게 말하면 주인님은 놀란 듯 슬픈 표정으로 저를 어루만지다가 울어버려요.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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