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폰 자체가 끊기지는 않았으니 주택공사 전화번호 찾아서 전화를 건다. 나 좀 살려달라고, 직원이 와서 대문을 쇄정하고 가버렸는데 나가지 못하면 집세를 벌기 위해서 일 찾으러 나가지도 못한다고 연락을 취하기는 했다. 또한 푸른 요정은 바깥에서 쇄정장치를 풀어주려고 하다가 눈에 생기가 나간 채로 그저 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대문 쪽에 난 작은 창문을 두드려 푸른 요정을 불렀다. 그리고 자기를 '루미'라고 불러달라고 힘 없이 얘기한다. 근데 있잖아, 요정이 자기 이름 가르쳐 주면 마력이 반토막 나지 않아? 그런 질문에 대답은 아깝다고 하는 푸른 요정 루미였다. 에스페란토로는 '빛나다'라는 뜻이고 핀란드어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라는 뜻인데 이름 귀엽다고 하니 지금도 현실도피하냐며 굶어죽으..
섬은 아름답다. 다만 그것 뿐이라서 슬플 뿐이다. 오늘도 정원을 가꾸고 온실을 돌보고 숲을 산책하며 열매를 모으고 물가에서 마실 물을 길어왔다. 그리고 아이와 요정, 동물들과 함께 폭신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불을 지펴놓은 채로 내리는 바람에 철길을 따라 혼자서 내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붙잡아서 차고까지 몰고가며 철길 위로 놓인 전깃줄이 아직 팽팽한가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섬은 빛났다. 다만 그것 뿐이었다. 계속 그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차고에 도착했을 즈음에 나는 피곤해져서 잠시 근처 풀밭에 누웠어. 그리고 예전 기억이 한데 뒤섞인 악몽을 꾸었다. 이 섬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사람들이 하유라는 섬나라로 갈 때, 나도 그 안에 있었지만 의외로 사람들과 같이 살기 싫었던 나머지, 나만 통나무 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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