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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흩어지는 글을 모아서

벽화

두번의 봄 2020. 5. 19. 11:52

누구도 이제 내 이야기에 개의치 않아도 되는 때가 왔음으로 그저 아무말이나 하며 잘 작동하지도 않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탓하며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앉아 벽화가 되려고 구태여 집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게 잘 작동하지도 않는 블루투스 키보드 문제도 있고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의문의 문제가 있으니 더더욱 문제만 불어나는 형편이었다. 문제가 당최 어디에서 오기 시작했나 짜증을 내어봤자지만 어쨌든 아무런 문제도 해결이 안 되는 상태로 있으니 마음만 괴롭고 심란하고 아플 뿐이다.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안 될 것이라면 차라리 죽어버리거나 아무래도 누군가 나에게 뭔가 기대를 갖거나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지금을 경멸하고 살아갈 의지도 잃어버린 지금, 내가 사는 인구 65만의 도시 안에서도 두번째로 큰 동네, 바로 내가 사는 동네에 좋아하는 브랜드의 카페가 생겨서 나는 상당히 반갑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고 조용히 벽화가 되어보면 역시 많은 인파와 상관없고 인연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끼어 이렇게 자기비하에 빠지고 그런 류의 생각을 글로 옮기며 큰 소리로 틀어놓은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는 것이 얼마나 가뿐하고 기분 좋은 일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내가 헛살아온 세월을 소리없이 욕하고 카페에서 싫어하는 손님의 하나로 있으면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며 차분해지는 마법을 경험한다. 결코 좋은 경우가 아님을 알면서도 이럴 수밖에 없는 배덕감과 증오심이 반대로 나를 차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카페에 와서 저마다의 일을 한다. 독서실이 고시생이라는 눈이 시뻘건 괴물의 차지가 되고 도서관도 책을 읽기에 부적합한 곳이 되어버렸기에 많은 이들이 카페로 몰린다. 당연한 수순이 아니다. 카페가 지식과 소문의 전당으로 중세가 지나가고서부터 기능하였다고 해도 책을 읽는다는 이름의 장소가, 도서의 집이라는 이름의 장소가 용도를 빼앗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고 온갖 경제동물이라 불리는 오물들이 가득 찬 그곳을 떠나 사람들은 카페로 모여들었다. 집은 싫고 기능을 잃고 던전이 되어버린 독서실과 도서관을 떠나 달콤함과 이야기, 그나마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인 인간군상들이 있는 카페로 모여들은 것이다.

나는 지금 벽화가 되긴 했는데 벽 자리에 앉지는 못했다. 죄다 벽 쪽에는 4인석이 가득하여 내가 혼자 앉기에 부담이 없는 2인석이 없는 탓이다. 그리고 한참을 찾아 구한 알바자리가 지금 내가 있는 카페였는데 이력서를 보내자 연락이 끊겼던 적도 있어서 그 적개심에 여기 와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3년제 전문대학에서 관광일어 전공했고 심지어는 총 학점 4점 만점에 3.8점을 맞으며 단 한 번의 F를 맞은 나름 우등생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백수일 뿐이다. 이런 고생의 끝에 낙원을 찾을 수 있다고 미디어는 떠들어대나 그것은 나름대로 지금 세상이 뺏고 차지하며 서로 죽이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작자들의 환상이라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무엇이 희망이고 무엇이 행복이고 묻기 전에 우리는 우리 앞에 커다란 벽으로 작용하는 자본가라는 존재를 지우지 못한다. 그들이 우리를 전부 불량인력으로 보고 쉽게 해고하기 위해 전초전을 엄청 세운 것을 보면 나는 구역질이 난다. 그들이 우리를 더 낮은 직종으로 보내 사실상 제거하고 나면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원망하게 하고 서로의 약점과 부족함을 공격하도록 하면 그들은 배가 부르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본가를 잡아 족쳐야 하겠으나 돈은 언제나 부족하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를 돈으로 사고 팔아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자를 제거하기도 하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돈에 쪼들린 작자들은 자신보다 가진 자에게 대들었다가는 자기도 공구리 쳐져서 심해구경 가는 수가 있으니 자기보다 만만한 상대를 잡고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그러고서 자본가 새끼들은 씨익하고 웃겠지.

이런 문제들이 쌓여 골치가 아프나 어차피 세상이 그렇지 하고 체념한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동네에 좋아하는 브랜드의 새로 생긴 카페에서 벽화가 되어 있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함부로 말도 못하겠거니와 좋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지고 있고 결국 밀크 크라운 온 소네치카에 속고있으며 그런 재능은 어떤 가게에서도 팔지 않는다며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을 분노와 회한에 갇혀 사는 지금 내가 얼마나 한심할까 생각을 하지만 모든 노력은 나를 배신했으며 그렇다고 계속 방어하고 참아온 세월은 내가 생각정리 하나 못하여 중얼거리는 버릇을 만들어냈다. 나는 언제 내 방의 진자나 될까 생각을 하고 있으나 이따금씩 보이는 세상은 아름다우며 자동차 운전은 즐겁고 새로 생기는 철도노선은 신선하며 버스의 발전과 트램의 향후 이야기가 궁금하다.

나는 아직 죽을 수 없으므로 오늘, 벽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