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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사고 이후

두번의 봄 2020. 6. 4. 23:27

솔직히 그랬다. 그리고 자동차를 팔아도 팔아치운 돈은 바로 들어오지 않을거라면서 나를 좌절시키는 딜라 새끼가 양아치 같다고 그 곳을 나오며 질러대고 집으로 가는 트램에 오른다. 사고처리가 스트레스를 불러와서 그런가, 내 집과 가까운 트램 정류장이 무슨 저심도 지하에 있는 줄 착각했던 나는 이제 정신을 조금씩 차렸고… 다니던 회사에서 짤렸다.

이유야 자본가 새끼들이 늘 그렇듯 네놈이 지각하면 너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손해라며 어깨를 두드리며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하면서 너는 짤렸다는 우회적인 표현을 하며 퇴직금을 선물이라고 주며 내쫓는 것을 당한 것이다. 그 돈은 고스란히 교통카드 충전하고 전부 통장으로 들어갔지마는 갚아야 하는 청구서가 아직 오지 않았다. 어차피 올 청구서에는 관심을 끄고 지냈으며 집 앞의 전철역이 지하가 아니라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흐름 끊는다며 종종 욕할 만큼 지상의 도로와 착 붙어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청구서가 왔다. 다행히 회사에서 짤린 기념으로 받은 돈을 다 털어서 냈다.

트램은 남서중앙역 정류장에 닿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반적인 열차로 갈아타면 다리를 건너 회사 앞으로도 갈 수 있다. 그러지 않는다. 다른 방향의 열차를 타고 천문대로 간다. 망원경 어디있냐고 물으면 아직 개방시간이 아니라고 안내하는 인형은 난감하게 웃으며 말하지. 기다리겠다고 하면 인형 특유의 안색 살피기가 시작된다. 제자리로 가서 자기 일을 하는게 옳지 않겠냐. 물러선다. 제대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망원경으로 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워지고 천체관측실이 열었을 때, 그 안에는 논문을 쓰려는 천문학자와 나만이 그 안에 있었다. 정말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 지 갈피가 안 잡혀서 별들에게 물어보러 왔수다 하니 천문학자 나으리는 참 별나군요 하면서 우아한 동작으로 나에게 망원경을 쓰라고 권한다.

루나틱의 어원을 아는가? 옛날, 중세 유럽에 달을 좋아하는 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방을 가득 채우고 달에 대해 연구하고 달 모양이나 달 문양 접시를 쓰고 달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심지어는 달에 가서 살고 싶어하고 죽을 때는 자신을 달에 묻어달라고 했다지. 하지만 지금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달은 그저 지구의 위성이자 새하얀 천체일 뿐이다. 그 누군가 열광하고 좋아하는 것도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던가 하는 느낌에 문득 중얼거리니 천문학자가 대답한다. 사실 별들은 그 자리를 돌 뿐이고 더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운석으로 떨어지거나 폭발로 사라지거니 하죠. 그런데 그것을 연구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 좀 해보시죠.

나는 천문학자의 연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나와보니 전철은 물론이고 트램과 버스도 끊겨있었다. 이런 내가 심야까지 거기 있었으니 천문학자는 연구 조졌겠는데 하면서 근처에 운 좋게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짧은 거리나마 타고 갔다. 택시기사는 과묵하게 LPG로 움직이는 택시를 몰고 나에게 집 앞에 도착했으니 요금 내고 내리시라고 한다. 집에 들어가 소파에 누워 오늘 이렇게 산 것에 대해서 회의감이 몰려오는 동시에 어딘가가 아파온다.

어쨌든 차를 판 돈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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