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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민폐의 목탄차

두번의 봄 2020. 4. 15. 23:47

가다가 차가 서버렸다. 뒤에 달린 화통이 배가 고픈 모양이다.

할 수 없이 화통 맨 윗쪽의 뚜껑을 열고 장작쏘시개로 타다말은 나무들을 좀 쑤셔주고 나무토막을 채워넣는다. 화력이 약한가 싶어서 공기구멍에 다시 불을 질러주고 풀무질도 다시 하고 엔진 쪽의 블로어도 켜두고 10분을 기다리자. 할 수 없다. 그 동안에 뒷자리에 놔둔 소풍바구니에서 먹을 것이나 꺼내 늦은 점심을 먹자고. 그리고도 하얀 연기가 시원찮으면 맨 아랫쪽 빗장을 열고 재를 털자고. 진짜 징하다. 이 정도로 재가 차서 타오르던 불도 꺼져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재를 털어내고 다시 빗장을 지른다. 엔진 쪽 블로어로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나면 불을 댕겨보고 불이 붙는다면 블로어를 끄고 다시 시동을 걸자. 부다다다다닥. 한참을 시동모터와 액셀과 씨름한 끝에 시동이 걸렸다. 그렇게 걸린 시동을 소중히 여기며 화통 맨 윗쪽의 뚜껑을 닫고서 다시 출발한다.

화통 달린 자동차를 몰고 다닌대서 방송국에서도 오고 심지어는 상록숲 요정에게 따귀까지 맞아본 적이 있는 나는 오늘도 장작이나 구하러 상록숲에 들렀고 지금은 상록숲 안의 내 집으로 가는 중이다. 그리고 또 집 앞에 요정이 당장 그 차 폐차하라고 나에게 별 소리를 다한다. 그 말을 무시하고 들어가면 그 새끼들이 화통 뚜껑을 열어놓은 채로 도망가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화통 안에다 물까지 부어놓고 가기도 한다. 하긴, 요정들은 간벌에는 동의하지만 간벌한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것은 격렬히 싫어하고 그네들이 인정하는 구동계는 오직 전기 뿐이니까. 하지만 요정 녀석들이 타고다니는 자동차가 전기로 가는 경우는 본 적이 없군그래. 대부분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 이용하고 차가 있는 녀석들도 드무니까. 이 녀석들이 하유제당이 하는 블루크루드인가 뭔가에도 반대를 해서 난리라지. 생각을 더 해서 무엇하리.

그래서 집 앞에 세워놓은 내 목탄차가 또 요정들에게 테러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에 들어왔다. 그리고 개중에는 목탄자동차가 순전히 신기한 녀석들도 있어서 그런 녀석들에게는 직접 화통에 가스 피우는 것을 보여주고 원하는 곳까지 태워주기도 해. 그런데 반대하는 녀석들은 당최 어디에서 먹을 것과 돈을 줘서 그런 짓을 하는걸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생각하면 힘들겠지. 그런 요정들의 반대로 상록구 안에는 주유소도 없어서 계속 장작을 때야하는 핑계가 생기니 엄청나구나. 다행히도 화통 안에 물을 부어놓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다만 내 목탄차를 궁금한 듯이 바라보는 인형 소녀가 있었을 뿐이다. 궁금하니?

그렇게 화통에 불을 지피고 소녀가 사는 북동구 어딘가로 가는 동안 화난 요정들이 돌을 던지러 오려는 장면과 그걸 말리는 요정들이 보이는 촌극을 숄더체크하며 가는 것이 완전 촌극 생방송이다 이거다. 인형 소녀는 길을 잃은 것은 아닌데 하면서 조수석에서 뾰루퉁해져 있었다. 다만 북동구에서 넘어와 내 집까지 왔다는 것은 숲 속에서 길을 잃다가 집과 자동차를 보고는 가만히 있었다는 소리 외에는 더 없어서 소녀가 말해준 길가로 천천히 들어간다. 그리고 소녀는 무사히 도착하고 고마웠다고, 길을 잃으면 다시 부탁한다고 하며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트램이 지나는 길가를 따라서 다시 숲으로 돌아온 나는 일부러 트램 뒤를 따라갔다. 내 스스로 알아낸 돌 안 맞는 방법인데 워낙 치졸한 방법이라 쓰고 싶지는 않아. 점점 가스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빨리 집에 닿고 싶었다. 하지만 화통은 나를 엿먹이는구나. 시동이 꺼져버린다.

트램이 다니는 차로에서 내 차를 빼낸다. 그리고 어차피 자동차도 잘 다니지 않는 시간대라 천천히 자동차를 밀어서 구석으로 옮긴다. 그리고 화통 맨 윗쪽의 뚜껑을 열고 장작쏘시개로 잘 쑤셔주고 나무토막을 채워넣고 다시 닫는다. 불 지피기가 문득 싫어졌다. 그냥 바닥에 털썩 앉아버린다. 그리고 누군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튀어나와서 공기구멍에 마른 지푸라기를 쑤셔넣고 부시로 불을 켠다. 그냥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아이, 요정이구나. 말 좀 걸어보자꾸나. 나 도와주는거야? 끄덕. 이거 목탄차인 것은 알고 있지? 찡그리며 끄덕. 그거 알고 도와주는거야? 단호하게 끄덕. 그럼 됐어. 나는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악수를 나누고 다시 출발 준비를 했다. 참 묘하구나. 그렇게 블로어를 켜고 불이 공기구멍 저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하얀 연기가 블로어를 통해 나오며 불이 그 연기에 댕겨지면 블로어를 끄고 출발하는 것이다. 내가 출발해서 멀어져 갈 때까지 그 요정은 내가 가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불길하다.

하지만 그게 무어라. 그 날은 피곤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집을 나서 내가 본 광경은 드럼통에 가득 담긴 나무펠릿과 어제 부싯돌로 화통을 다시 지펴준 그 요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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