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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로 출근하는 이른 아침이다. 회사에 차를 두고 퇴근했기에 오늘 아침은 전형적으로 길가에서 열차를 기다려 상록숲을 지나 설탕공장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따라 표준궤의 철궤도를 따라간다. 550mm 승강장에 맞춰진 저상전차가 이제 막 상록숲을 벗어나 북동구청역에서 승객들이 대부분 내리고 사원증을 보여주고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웬일인지 공장 안이 조금 부산하다. 메모지가 없어졌다니 혹은 회의 도중에 함부로 자리를 뜨지 말 것이라는 팍팍한 규율이 떨어졌다. 못 보던 누군가가 우리 공장 사원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도대체 누구일까 빨리 잡아서 경찰에 넘겨야 정신이 나가지 않을텐데 하면서 내 일에도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기분 전환 겸 폐기의 발생정도를 보려 사탕무밭으로 나가 현황을 물어보는 와중, DAC 장비 뒤에서 누가 빤히 들여다보는 기척이 느껴서 돌아보니 누군가 도망친다. 아차, 보고는 나에게 안 해도 돼요. 그리곤 도망자를 쫓는다.

도망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무전에서 피셔-트롭슈 반응기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하니 그 쪽으로 가는 지름길로 먼저 가서 숨어있는다. 그리고 동지들이 나도 그 놈을 잡고 싶다며 머리 위로 복잡한 배관이 있는 어느 벽과 벽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녀석을 발견했다. 우리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려고 하는 녀석을 덮쳐서 쓰러뜨리려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녀석은 의외로 싸움 좀 하는 놈이었다. 즉, 하유국 출신이 아닌 놈이다. 아무래도 배후를 좀 알 것 같은데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놈을 놓치면 산업이 끝장날 지 몰라라는 불안감과 저놈을 어쨌든 잡아야 해 하는 느낌이 교차하고 복잡한 관이 교차하는 이 공정구역에서 또 쌈박질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 침투한 놈이라고 해도 여기서 일하는 놈만큼 벽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 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무전 1 응답하라: 로프 가지고 B-3의 벽 쪽으로. 내가 그 놈 뒤에서 목을 조르겠다.

눈치게임으로 현장 여기저기를 조이고 지적확인을 하는 시늉을 하며 녀석의 뒤를 밟는다. 그리고 여기가 C-8, B-37 지나가며 녀석이 B-3로 가기를 바랐다. 잡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B-3 구역은 증류탑 가기 이전의 합성원유들이 드럼통에 담기는 곳인데 녀석은 그 곳을 조사하라고 파견된 어느 가리비 회사의 쁘락치겠지. 그리고 예상대로 B-3로 향하는 녀석을 보고는 앗! 소리와 함께 뒷목을 확 내리쳤다.

늦어! 늦다고. 빨리 묶어서 사장실로 가자고. 이 인근에 내가 어제 세워두고 퇴근한 내 차가 있으니 어서 갑세. 그리고 분명 이 놈은 하유국 정부를 엿먹이려고 가리비 회사에서 보낸 쁘락치가 분명해 깨어나거든 기절시켜. 그리고 사장실로 가는 지름길이 B-3 구역에서 바로 직진이라 밟는다. 그렇게 사장실에서 마주한 진실의 순간. 이건 명백한 산업스파이 짓입니다. 하유국 정부는 화석연료 애초에 쓰지도 않았고 쓰지도 못하는데다 쓸 생각도 없어서 조개기름 안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결국에는 사장이 다 알아서 하겠지만 쁘락치도 몇 번 와야지 이러면 곤란하다, 내각과 대사관에 다 고발할거다 하니까 좀 속이 풀리는구먼.

쁘락치 잡이에 일과시간이 다 가버려서 결국 그대로 퇴근하는 모양새가 깨나 웃겨서 사장실에서 나와 내 자동차에 올라 초크를 조금 당기고 시동을 걸어 집으로 출발한다. 그래서 산업스파이 새끼는 내각에서 조리돌림 제대로 당하겠고 가리비회사의 음모를 불기 전까지는 상냥하고 애매하지만 엄청 화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비현실적인 하유섬 살이를 하겠지. 그리고 가리비회사는 합성연료 설비 팔고 합성 엔진오일 정도 하유에서 팔고 있으면 됐지 뭐가 더 욕심난다고 자기네들이 시추한 조개기름을 하유에서 사주지를 않아 쁘락치까지 난리인지 모르겠네. 그렇게 라디오를 켜고 신나게 차로 집까지 달려가던 중에 차가 돌 맞는 소리가 들린다. 맙소사, 내연기관을 싫어하고 받아들이지를 않는 요정이 사는 상록숲으로 잘못 들어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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