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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귀가하는 길

두번의 봄 2020. 11. 25. 12:20

애매하고 심약한 사람들만 한가득 사는 조그만 섬나라에 살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쉬는 날에는 자동차를 몰고 온통 숲인 동네로 놀러가고 돌아가는 길에는 섬의 북쪽에서 자란 사탕무로 만든 설탕을 사고 자동차에 합성연료를 가득 채워 돌아간다. 설탕과 합성연료가 이 섬나라 경제의 근간이다. 그 근간에 하나를 더해서 원예상품을 넣기도 하는데 그 누구도 차관으로 꽃과 나무를 가져가고 싶어하지는 않으니 그건 아니다 치고.

일단은 오늘도 일이 없어서 방정리를 마치고 다시 프론트에 앉는 형편이다. 그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하는데 더 이상 토를 달면 안 되겠지만 관문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비행기 환승승객들과 무비자 입국자는 내가 돌봐야 하는 이 호텔의 주 고객들이다. 국제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진 편이라 어떻게 손님도 없고 한가하다 못해서 그냥 놀고있어도 되는 여기에서 그냥 손 놓고 있으면 안 되기는 하는데 일이 없는 것을 어떡해.

그렇게 오늘은 교대 출근의 날이다. 근처 전철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무비자로 온 손님들과 환승 비행기 시간에 못 댈 것 같아 안절부절하는 손님, 원래가 관문구 주민인 하유국의 평범한 인민인 손님이 한 역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가 전철이 그 둘을 가른다. 그리고 전철은 관문섬과 하유섬을 잇는 해저터널로 들어가지. 눈을 붙이고 있다가 전철이 서행하는 지점에서 눈을 뜨면 전철이 병용구간에 들어서며 들리는 요란한 차임소리, 자동차가 가속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남서해안은 평화롭구나. 문을 따고 들어가면 그저 방 두 개에 거실이 있으나 마나한 영구임대주택의 전형인 내 집이 보이는구나. 오늘은 구태여 드라이브 가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프론트에서 보낸 피곤한 시간을 더 길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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