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늘한 여름과 하얀 겨울 날씨가 전형적이라 히터는 필요하지만 에어컨은 필요 없는, 철도와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자동차 없이도 살 만하지만 자동차는 있어야 하는 1,210.5 제곱킬로미터의 작고 이상한 섬나라. 내가 사람들을 통솔하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나라다. 사람들은 하유국에서 추방될 수도 있는 룰을 들은체 만체하고 여울오름 물에 동전을 던지다 걸려서 추방당하거나 상록숲의 나무를 함부로 꺾어서 벌금을 물거나 상냥한 가이드가 사실은 자동인형이라는 사실에 놀라서 기절하거나 혹은 함부로 대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등 아주 난장판이다. 그래서 오늘부로 사표를 냈다. 외국인 문제 때문이냐고 하면 고개 끄덕일 수밖에. 사표는 수리됐다며 수고했다고 나가보란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도시의 풍경을 본다. 여느 곳이..
무료함은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지루해서 출퇴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언덕으로 가거나 전철에 기대어 너른 사탕무밭이나 숲 속으로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만큼이나 평온하고 집에서 메이드 놀이를 계속하는 루미와 계속 마당에 찾아오는 하얀 냥이와 장난치며 자동차는 잘 있냐면서 놀리는 앨리, 어째서 요새는 차를 잘 안 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공영주차장 경비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전부다. 이제 그 모든 설정이나 요소의 틀에서 벗어나 꽤 자유롭게 움직이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된 상상도 해보고 유령에게 푸딩을 요구당하거나 일종의 인형이 되어 주인님에게 사랑받다 버려지는 상상에 빠지고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손을 델 뻔했다. 그리고 나리는 조심하라면서도 혀를..
미묘함이 감도는 어느 오후였다. 아침에 피칸토를 타고 출근한 카페는 손님이 좀 오는 편이었고 오후에는 아예 없어지는 양상이었다. 손님 없는 카페를 정리하며 나리가 들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동안에 누군가 카페에 찾아왔다. 금발벽안의… 마녀! 딱 그거다. 고양이귀 로브를 걸치고 나리랑 동족인 느낌인데 마녀라고. 인형 마녀라니 특이해서 그냥 정면 응시를 못 했다. 그것이 다다. 그리고 나리는 그 마녀를 보더니 갑자기 또 다른 자기를 본 것처럼 뭔가 불길해 했다. 그리고 마녀가 카페를 나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가지고. 마녀의 등장은 나리를 좀 당황하게 만든 듯한데, 나는 그런 나리의 행동이 좀 뜬금 없어서 당황했지만 뭐, 어때. 동족끼리 안 좋은 감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마도 그런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
마음은 무너져요. 그냥 그렇게 무너져서는 아무 것도 그 무엇도 아닌게 되어버려요. 겨우 무언가가 된다고 해도 그게 끝. 저는 그렇게 아무 것에도 기대를 가지지 않게 되었답니다. 쓰레기 청소. 그게 해야 할 일이면 해야죠. 하지만 주변에 뵈는 것은 쓰레기들. 청소를 하다보면 쓰레기들이 저보다 위에 있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저를 만만하게 보고 같이 쓰레기 하자고 조르죠. 같이 쓰레기 하자는 쓰레기에게 저는 곤란한 표정으로 빗자루를 휘둘러요. 그래도 쓰레기가 죽진 않아요. 신기하죠? 아무래도 저는 오랫동안 잠들어 버리는 편이 모두에게 도와주는 것이지만 그것도 이루기가 힘드네요. 쓰레기 본연의 세상에서 쓰레기들과 섞여서 같이 버려져야 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차라리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이 저..
하유국 외무부는 최근, 외신들이 '하유는 평행세계의 싱가포르'라고 표현한 데에 강력한 유감을 표시한다.하유국 정부는 개국 초기에 일본, 한국, 북조선, 대만, 중국 등과 수교하며 '첫 수교의 빌딩'에 그들의 대사관 및 대표부를 마련하고 한국, 일본과는 '하일한 상호 동반자 협정'을 체결, 상호 3개국 간의 여행사증 면제와 무역과 교류 편의를 도모함으로서 그 이듬해에는 국제연합에도 가입하는 등, 적극적이고 포용적인 외교행보를 보여왔다.허나, 하유국 국체를 3권분립도 애매하며 아직도 검열이 만연하고 파업과 시위도 단 하나의 장소에서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만 가능하고 노조는 불법인 싱가포르에 빗대는 일부 외신의 행태에 대해 하유국은 그저 와신상담하며 굴복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보이게 되었다.하유는 상냥함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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