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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함이 감도는 어느 오후였다. 아침에 피칸토를 타고 출근한 카페는 손님이 좀 오는 편이었고 오후에는 아예 없어지는 양상이었다. 손님 없는 카페를 정리하며 나리가 들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동안에 누군가 카페에 찾아왔다. 금발벽안의… 마녀! 딱 그거다. 고양이귀 로브를 걸치고 나리랑 동족인 느낌인데 마녀라고. 인형 마녀라니 특이해서 그냥 정면 응시를 못 했다. 그것이 다다. 그리고 나리는 그 마녀를 보더니 갑자기 또 다른 자기를 본 것처럼 뭔가 불길해 했다. 그리고 마녀가 카페를 나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가지고. 마녀의 등장은 나리를 좀 당황하게 만든 듯한데, 나는 그런 나리의 행동이 좀 뜬금 없어서 당황했지만 뭐, 어때. 동족끼리 안 좋은 감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마도 그런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내가 함부로 관여하거나 그럴만한 일도 아니야. 청소를 계속하도록 하자. 그러기 전에 먼저 POS기 기록 좀 확인하고 카운터 스탠드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리에게 상황 종료를 알린다. 진짜로 그 인형 마녀가 자기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장난을 칠 거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던지 아니면 악연이 있다던지 하는 것처럼 구는 나리가 진짜 갔냐고 몇 번을 물어온다.
나리는 인형 마녀가 진짜로 갔느냐고 계속 물어보며 카운터 스탠드에 웅크려서 숨느라고 굽혔던 허리를 폈다. 가만히 그 마녀의 인상착의를 다시 떠올린다. 구체관절이 있었고 파란 눈에 금발이었고 고양이귀 로브를 걸쳤다. 그게 끝. 하지만 나리가 왜 무서워하는지는 영영 모르겠지. 안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물어보면 도플갱어라고 생각해서 나리는 평범한 인형으로 돌아가버려 하는 얘기를 할 것 같아. 하지만 인형은 편하네. 사람은 도플갱어를 만나면 둘 중 하나가 죽는데. 뭐, 입 밖으로 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 생각해. 그리고 조금 이른 퇴근. 반클러치가 오늘따라 달칵거린다. 꿀렁꿀렁 말을 타며 출발한 퇴근길의 간선도로는 막혔다! 아주 심하게 막혀서 하유섬 최초의 전구간 정체니 뭐니 라디오에서 떠드는 꼴도 듣기 싫었을 정도라고. 라디오를 끄고 PVC 파이프로 둥둥거리는 음악을 블루투스로 켠다. 조금씩 풀리는 정체와 클러치 밟고 3단. 심각한 정체치고는 금방 초록빛으로 변하는 그 상황이 조금 우스운 가운데에서 간선도로 표지판이 남서서단을 가리킬 때, 시내도로로 나온다. 노을이 아름다운 봄날이지만 그게 뭐. 그냥 나는 간선도로 벗어나서 빨리 주차하고 집에 들어가 메이드 놀이를 하는 우울요정이랑 놀아주고 병든 닭처럼 뻗어 자는 것이 시급하다고!
도난방지 장치가 뾱. 그렇게 경비 녀석이 왜 차를 경차로 바꿨냐고 나에게 물으며 좀 더 큰 차를 살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웃기지 않느냐, 왜 경차냐고? 잘 나가고 싸서 그렇단다. 수동변속기를 곁들이면 재미있고 더더욱 싸지지. 그렇게 집까지 걸어가는 길목의 바닷가와 트램이 지나가는 선로 그 근방에서 손을 하늘로 번쩍 들고 거리극을 하듯이 와악 소리지르며 집까지 뛰어갔다. 하늘도 적당히 우중충한 것이 너무 좋아! 집이 가까워져서 마당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야옹. 언제 봤던 하얀 고양이잖아. 발치에서 부비적거리는 하얀 냥이를 어떻게 쫓아낼까 생각하던 나는 집에 못 들어오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문을 쾅 닫았지만 고양이 녀석은 먀아앙거리며 두고보자는 울음소리를 낸다. 메이드 놀이를 그만 두지 않는 푸른 요정 루미는 어느샌가 메이드복까지 갖춰 입기 시작했는데 나는 분명 그런 놀이는 그만 두라고 했어. 그러면 루미는 삐쳐서 싫은 소리와 함께 방에 처박히고…. 신경 끄자. 그러면서 다시 나가면 고양이가… 아이고. 나는 여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으니까 일단은 구석으로 가주렴. 기다리던 버스가 안 와서 그냥 트램에 오르고 마을사무소로 향한다. 거리는 트램 차창으로 보면 정원이지만 실상은 그냥 사람과 요정과 인형이 사는 평범하고 지독한 외곽의 주택단지라고 내심 비웃으면서.
마을사무소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 하나를 읽는다. "만약 미제 디젤픽업을 하유에서 타고 다니시려면 그냥 우리 섬나라에서 나가주세요: 하유국 모든 지역에서 메탄을 제외한 모든 화석연료 사용 금지로 화석연료 사용 시, 화석연료 사용 차량과 함께 해당 차량 사용자의 하유국에 상륙할 권리 및 하유국 시민권이 박탈됩니다 - 하유국 환경자원부." 이게 전부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 이 섬이 정신 나가있음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포스터다. 친환경 원예국가를 만들겠다고 휘발유와 경유를 포함한 모든 화석연료를 메탄 빼고 막아버렸다. 프로판은 어떠냐 하는데 프로판도 먹을거 축낸다는 이유하고 한 번은 프로판 가스통이 모여있던 창고가 폭발로 깡그리 날아가서 하유섬 전역이 미세먼지로 고통받은 그 이후에는 금지되었다. 하유제당도 도저히 바이오프로판은 만들기도 끔찍하고 돈도 많이 든대서 포기했고. 그런 나라에서 어떤 수입차가 들어오냐 하면 바보 아니냐고, 그냥 하유가 미쳐서 미래로 간거라고 하고 싶은데 나는 오히려 마을사무소에 올 때마다 후퇴하는 기분이다. 일자리 담당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 뭔가 일자리가 있냐 묻기도 빡셨고 그래서 기간이 끝나가는 여권 재발급이나 맡기고 만다. 운전면허 갱신과 폰 요금 충전, 그리고 피칸토에 가스를 가득 충전하고 영수증 챙기기, 교통카드 충전하기 같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푸른 요정이 바닥에서 구워지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중간에 끼어있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봐도 카오스다. 그렇게 열차로 일터로 향하는 길, 아무래도 나리에게 이 건으로 얘기를 할까 하는 것은 쪽팔려서 그만 둔다. 혼자서 생각하지도 못하고 모두가 물렁해서 다른 나라보다 낯선 누군가에게도 말을 걸기 쉬운 하유인데 알아서 도전하라고 하겠지만… 무서워! 그래서 열차 안에서 방방 뛸 뻔하고 그래서 검표원이 나를 미리 진정하는 꼴이었지. 내릴 정류장이… 두 정류장 지났을까, 다시 내려서 걸어가던지 다음 차를 기다리던지 해야 하는데 이상하다, 급행이었나보다. 일단, 출근은 글렀고 일하기 싫으니 나리에게 오늘 일은 쉬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고 천천히 걸어서 상록숲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요정이 산다고 내각에서 전부 밀어버릴 작정이었던 숲을 지키고 고도제한까지 걸어놓은 이 곳은 행정구역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모두에게 안식을 주고 있다. 사실 이 곳 하나로도 하유섬은 특이하다. 애매하고 신기하다고. 그 애매하고 신기한 것도 사실 여기에 놀러오면 그렇겠지만 살려고 오면 왠지 여권 하나 만드라는데 여기는 시민권이 국적이라 여권 만들 때 시험봐요 하면서 시험보고 하유국 시민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면서 악수 한 방 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군대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가져서 하유국에는 군대가 없고 특수경찰 만이 있는데 특수경찰도 군대랑 다를바 없는 폭력집단이라고 극렬 평화주의자 무리한테 단체로 따귀맞는 이상한 나라라는 것을 알면 파리 증후군 비슷하게 도져서 살려달라고 빌긴 하더라고. 한심해라. 그냥 동화 속이라고 생각하면 끝인 것을 말이야. 나는 이미 그 애매하고 심약한 여기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심약하기는 개뿔, 폭발하면 국회에 화염병도 던지는 족속들이라고.
숲은 위안을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특히 하유국과 같은 작디작은 섬나라에서는 그런 숲이 있어도 깡그리 밀어버리고 공장을 짓는 것이 대부분인데 하유국의 공장은 설탕공장 하나가 이미 북쪽에 있고 내각에서는 요정이 사는 숲이라며 보존해버린 탓에 쬐만한 나라에 하나의 행정구역이자 거대한 숲으로 남은 곳이 있다고 하면 진짜로 미쳤구나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또 여기를 매력적으로 하고 한심한 탈주 알바생도 받아주니 얼마나 즐거운데. 조그만 버스는 여울오름행이고 산 위의 용천에서 물 마시거나 마음을 가라앉히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 조그만 용천이 미여울이라고 하유섬의 가장 큰 강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알고 있을 터이다. 그 탓에 상록구가 개발을 면하고 숲으로 남기도 했으니까…는 내가 이런 설명만 하는 이유가 설마 나 혼자 여기 왔고 다른 누군가하고 말을 걸지 못하는 탓인가 하면서 다시 조그만 버스에 올… 아니 시간이 안 돼서 등산열차로 내려온 뒤에 다시 숲을 걸어서 빠져나와 오늘 땡땡이 친 일을 만회하기 보다 그냥 목이 말라서 북동쪽 카페거리로 행한다. 도저히 숲에서 할 것이 없다. 아직 죽순이나 나물을 캘 시절도 아니니까.
화난 표정으로 나를 맞는 나리는 어차피 손님이 안 올 양이면 토끼려던 알바생이라도 손님으로 받아야겠지 하면서 이마를 짚는다. 그리고 인형 마녀에 대해서 물어보려다 그만 둔다. 나리하고 친구인 녀석 같은데 나리가 일부러 피하는 것 같으니까. 레몬 타르트와 차가운 카페오레를 먹으면서 북동궤도 시간표나 확인하는 지금, 어찌되었든 나는 여기에서 타르트나 먹고 있고 날씨는 흐리고 트램과 버스는 엇박자 배차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리에게 또 인형 마녀에 대해서 물어보려다 그만 둔다. 계산이 끝나고 트램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마주친 어느 금발의 여자 인형이 어딘가 익숙하다 해서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역시 수상한 사람 취급받는 일이라 가만히 있었다. 이런 미친 일이 다 있나. 그런데 그 아이가 낌새를 느낀건지 나에게 먼저 카페에서 살짝 마주친 녀석이라면서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트램이 도착했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 어디로 가는게 중요해? 그리고 나리랑은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니 마녀와 견습생 정도. 그리고 진짜 마녀냐고 물어보니 살짝 로브의 후드를 쓴다. 야옹,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웃는 아이는 정말로 마녀인 모양이다. 어디 사냐고 물어보니 음… 내가 짐작하는 그곳이 맞다며 웃음기가 얼굴에서 사라지고 나리가 왜 당신을 피하냐고 물어보니 동족혐오래. 그리고 이름을 물어보니 자기 이름은 앨리스니까 이상한 나라에서 왔냐고 묻지 마라며 하유국 여권을 꺼내서 보내준다. 그래요, 인형 마녀 앨리스 씨, 아니 앨리라고 부를게요. 왠지 골목길이 생각날 정도로 신기하니까. 앨리는 끄덕이고 트램은 철도선 철길을 따라서 중앙구의 지하로 들어간다.
이상한 만남이 또 끝나고 어쨌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아무런 생각이나 그런거 없이 무념무상의 의미없음이 자꾸만 흘러 의미를 억지로 찾아야 하는 때가 흘러가고 있었다. 마당의 고양이는 가르릉거리고 시간은 흐르는데 그렇다 할 일도 없는 지금이 너무 한심하다. 고양이나 쓰다듬도록 하자 밤비 효과는 모르겠다. 그저 루미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나도 따뜻하고 귀여운 녀석들이 사랑스러우니 먹이도 주고 그래보자. 일단은 그게 더더욱 지금 기분에 나은 짓이다. 뭘 더 바라는 건가. 이상한 지금의 일들은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이고 더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마음이 좀 더 넓어졌으면 하고 그저 고양이들과 놀아주는 지금은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고 그런 시간마저 쪼개어 써야 하는 신세가 그저 싫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흐려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만히 졸음이 오는 가운데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고 푸른 요정이 좋은 꿈을 꾸길 바란다는 속삭임을 주는 이상한 나날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일상이 돌아가고 또 살아가고 있으니 묘한 기분만 계속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여기는 그런 묘한 기분이 언젠가 행복으로 변하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은 언제나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근처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세잎 클로버와 같은 것일 뿐이다. 항상 마당에 놀러오는 고양이와 강아지풀로 놀아주고 고양이가 가면 여전히 메이드 놀이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 푸른 요정 루미가 오늘은 여전히 기분이 언짢으신건가요 하면서 나를 살핀다. 그리고 수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 쪽으로 들이밀고서 이내 빼고는 한숨 쉬고 점심 준비는 해드릴테니 쉬라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집 앞 길가에는 트램이 한 대 지나간다. 흘러가는 시간이 무의미해서 작은 고무망치를 들고 주차장으로 간다. 피칸토의 뒷바퀴를 고무망치로 두세 번 두드린다. 비어있는 느낌이 없으니 된 것이겠지. 이어서 미니와 2CV의 뒷바퀴도 두드려본다. 좋아, 좋아. 그렇게 마지막으로 점검한 2CV의 트렁크를 닫고 그 꽁무니 앞에 주저 앉는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냥 눈물이 나온다. 내가 왜 이런 기분에 휩싸여 살아야 하나 하면서 울먹이는 차에 차들이 방해를 받는 것 같아 조용히 주차장 바깥으로 나간다. 중심지에는 트램이 지나고 빵집과 편의점, 관광객을 상대하는 안내소가 있고 조용한 시험정원으로 가는 길이 살며시 갈라진다. 간선도로로 들어가는 램프와 남서중앙역, 아무 말 없이 정원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 하늘은 여름이 다가온다는 듯이 흐렸다. 다시 찾아온 마당에는 고양이가 여러 마리 찾아왔고 나는 그 의문의 깡패들에게 강아지풀을 미친 듯이 지휘자처럼 휙휙 둘러준다. 그런 곳에 고양이들이 냥냥거리며 낚여오고, 너무나도 귀여운 광경이지만 그렇게 넋 놓고 고양이랑 실컷 놀고서 대문을 쾅 닫으면 그저 메이드 놀이하는 푸른 요정 루미와 그저 우울해서 죽겠는 내가 한심할 뿐이다. 그래서 루미가 좋은 꿈을 꾸게 해주겠다고 속삭이는 것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아. 마치 내가 루미에게 나쁜 짓을 하는 느낌이 들거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점점 미쳐갈 것 같은 기분으로 피칸토를 타고 간선도로를 달려 일터로 향한다. 들어가면 미리 머신을 예열해두고 기다리는 나리와 그것은 내 일이라 달갑게 여기지를 못하는 한심한 내가 있었다. 손님이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원하면 상록숲에 산책 갔다오라고 하며 나를 놓아주는 나리는 봐서 나갈거라는 내 대답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한숨을 쉬며 그러냐고 하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퇴근. 퇴근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그저 하루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을 맞으며 오후 다섯 시면 퇴근하는 일상이 간선도로에서 변속실수로 이어지다니. 바로 3단에 넣어진 기어를 4단으로 다시 넣고 비상등을 켜서 미안하다고 알린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봤자 내가 남는 것은 매달 받는 돈과 자동차를 모는 즐거움 그 이외에 또 없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푸른 메이드복을 입고 메이드 놀이를 하는 우울 요정 루미와 지내고 루미가 나를 달래며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에 얕은 잠을 청하는 것. 그것이 무료한 일상의 대략적인 일정의 정리다. 어쩌다가 나는 아무도 오지 않는 카페의 직원으로 시간제 일을 하며 집에 오면 슬퍼하는지 의문이 들고 이게 의미가 있는 삶인지하는 또 다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취미로 마당에 만든 메탄가스 포집통도 아직 본격적으로 메탄이 나오려면 멀었다. 재밌긴 하더라, 마당의 잡초나 먹으면서 나오는 생쓰레기 같은 것을 삭히면 메탄이 나오고 활성탄 필터 끼우면 구린내도 없어지는 그게. 하지만 가스값 아끼려고 굳이 이것을 해야 하나 싶어서 괜히 쓴웃음 짓는다.
나에게 미니를 돌려준 딜러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미니나 2CV 가져가고 전기차 하나를 내놓으라고 하자 고개를 젓는다. 전기차보다 CNG가 나아요. 조용하고 연료값 싸고 그런거면 전기차가 능사가 아니여요. 그런 식으로 굴면 내가 피칸토를 내놓겠지. 그러자 가스통이 터진게 아닌 이상에는 대차 안 받겠다네. 그렇게 계획 하나가 터졌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간선도로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북동쪽의 카페. 일단은 인형소녀의 카페다. 하루 손님이 포스기 뒤져보면 하루 백 명이 채 안 되는 숲 가까이의 카페고 알바생은 나 한 명이지만 나리 녀석은 카페 문을 닫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하유섬 특유의 서늘한 여름이 찾아왔다. 지구가 그러는 동안에 나는 뭘 했냐 하면 그냥 잘 참아주는 하얀 자동인형들과 친구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푸른 요정과 함께 뒹굴거리며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카페에서 일하고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그게 다다. 형식적으로 일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일부러 집에서 가까운 나들목에서 한 곳 먼저 있는 나들목으로 나와서 어느 방향으로 빠지느냐에 따라서 구가 달라지는 큰 회전교차로나 빙빙 돌다가 나갈 뿐이다. 그리고 몇 번이고 수정한 끝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뭐가 그리 시끄럽게 주차를 하냐고 경비가 달려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말에 나는 푸념을 하기보다 요즘 메탄 가격이 올라서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닌 말로 둘러댄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나오자 나를 놀래키고는 내가 끼약하고 놀라니까 갑자기 미안하다고 급히 사과하는 앨리가 있었다. 뭔 용건인데.
인형 마녀는 다시 차를 끌고 나오려는 나에게 어디를 가려는 작정인지 이미 알아차린 거냐고 장난을 쳤다. 너는 망할 운전면허도 없냐고 하려다가 그만 두고 가만히 생각하는 동작 이후에 조수석에 타는 앨리 녀석과 갑자기 남동쪽으로 차를 몰고 간다. 그리고 앨리 녀석은 갑자기 바닷가 앞으로 달려가라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일부러 스톨을 냈다. 더얼컹, 시동이 꺼지면서 차가 앞으로 살짝 쏠린다. 약간 화났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앨리는 내 대답을 들을 여유가 있다는 듯이 표정을 풀고 나는 차 망가지는 것이 문제라고 솔직하게 분다. 차가 망가지면 고쳐준다고 하는 앨리 말만 믿고 다시 시동을 걸고서 바닷가 앞으로 돌진, 앨리가 시키는대로 바닷물로 들어간다. 차에 물 들이치고 이거 현기차라고 말해도 걔는 계속 직진을 외친다. 그리고 나는 짚이는 것이 있어서 앨리에게 묻는다. 설마 정원섬 가냐? 고개를 젓는다. 이대로라면 가라앉을 듯해서 클러치 밟고 단을 올린다. 세상에, 피칸토가 바다에 떠있다고. 앨리는 웃기다고 저기 암초에 세우라고 손가락으로 피칸토를 겨우 세울만 한 암초를 가리킨다. 그나저나, 앨리스는 이런 짓을 왜 시키는건데 물으니 애칭으로 안 부르는 것 보니까 진지해졌나보네 하면서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카강! 내 피칸토가 암초에 정지했다. 앨리스는 갑자기 나에게 입 맞추더니 거부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여기에서 잠시만 많은 얘기를 하자고 한다. 뭐 할 생각이야, 다시 돌아가면 강제추행으로 신고할테야.
앨리스는 입을 열어 내가 이 이상한 섬나라에 온 이유를 물었다. 기존 세상은 편가르기와 이득을 얻기 위한 경쟁에 미쳐있었지. 그리고 왠지 그런 세상에 넌더리가 난 놈들이 어떤 섬을 발견했고 거기 가서 살면 조금 특별할 거라고 해서 배 타고 왔어. 나는 이 섬이 좋기도 하지만 의아해. 왠지 부조리 개그의 무대에 선 기분이야. 그러자 앨리스는 로브의 후드를 걷어젖히고 금발을 드러냈다. 그래서 여기에 왔구나? 여기 암초에 닿은 기분이지?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는 기분. 나는 그런 마녀야. 다른 누군가의 심리를 공격하는 인형 마녀 앨리스다. 그렇게 자기 능력을 불었다. 그런데 앨리, 마녀는 자기 능력을 불면 마력 줄어드는거 아녔어? 그러자 다시 애칭으로 불러주는구나 하면서 자기도 이런 능력 때문에 숨어살다가 구 하나가 숲인 곳이 있다길래 왔다고 다시 하유국 여권을 보여준다.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 바에는 자기도 이런 암초에서 살아가는게 재미있을거라 생각했다네. 원래 살던 곳에서는 자기 주인님을 제외하고는 온몸의 구체관절과 사람 심리를 실체화하는 능력 때문에 저주받은 인형 취급 받는게 싫었대. 하지만 또 상록구의 인형 마녀라는 얘기를 듣고 사니 정말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아서 자기와 비슷한 녀석들을 자기 힘으로 만들어 북동구의 또 다른 자동인형들과 살게 해주고 자신의 집 앞을 넘어가면 그 누구라도 인형이 되어버린다는 괴담을 지어서 퍼뜨렸대.
그렇게 한낱 찌질하지만 귀여운 외모를 지닌 인형 마녀가 지어낸 헛소문에 속아 남서구에 짱박혔다가 겨우 잡은 일자리가 북동구에 있고 거기서 만난 카페 주인 인형소녀가 상냥해서 겨우 무서움을 떨어낸 내가 이상하게 여겨질 즈음에 눈을 가만히 감고 있던 앨리가 사이드 풀고 바닷가까지 가자고 말한다. 바라던 바다. 그렇게 또 피칸토는 바다를 건넌다. 그리고 다시 바닷가 백사장에 멈춰서지. 염분에 당했으면 큰일난다고 하니까 앨리는 웃으면서 부식은 걱정마시라고 한다. 뭐 어째, 외롭게 있기 싫어 다른 곳에 왔지만 여전히 자신을 꺼리는 세상이 싫어 헛소리까지 지어낸 저 이상한 인형 마녀의 얘기를 믿어야지. 남부해안도로는 소통원활이고 앨리는 데려다 주겠다는 내 제안을 거절하고 전철로 돌아갔다. 그 다음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무망치로 여기저기 가볍게 두드려보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메이드 놀이를 하는 루미가 기다리고 왠지 루미가 손님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 거실을 봤더니 조심스럽게 따뜻한 우유가 든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수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봄이가 있었다. 내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걸까. 그리고 우유는 고마웠다고 루미에게 인사하고 다음에 만날 수 있다면 만나자고 내 손등에 입 맞추고 봄이는 내 집에서 나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는 편이 좋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앨리와 암초에서 고해성사 하는 동안에 봄이도 루미에게 고해성사를 했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촉촉하고 보드라운데 차가운 루미의 두 손이 내 두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마법을 거는 듯한 신비한 표정을 짓고는 손을 놓고 소파에 눕는 루미.
나리는 인형 마녀가 진짜로 갔느냐고 계속 물어보며 카운터 스탠드에 웅크려서 숨느라고 굽혔던 허리를 폈다. 가만히 그 마녀의 인상착의를 다시 떠올린다. 구체관절이 있었고 파란 눈에 금발이었고 고양이귀 로브를 걸쳤다. 그게 끝. 하지만 나리가 왜 무서워하는지는 영영 모르겠지. 안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물어보면 도플갱어라고 생각해서 나리는 평범한 인형으로 돌아가버려 하는 얘기를 할 것 같아. 하지만 인형은 편하네. 사람은 도플갱어를 만나면 둘 중 하나가 죽는데. 뭐, 입 밖으로 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 생각해. 그리고 조금 이른 퇴근. 반클러치가 오늘따라 달칵거린다. 꿀렁꿀렁 말을 타며 출발한 퇴근길의 간선도로는 막혔다! 아주 심하게 막혀서 하유섬 최초의 전구간 정체니 뭐니 라디오에서 떠드는 꼴도 듣기 싫었을 정도라고. 라디오를 끄고 PVC 파이프로 둥둥거리는 음악을 블루투스로 켠다. 조금씩 풀리는 정체와 클러치 밟고 3단. 심각한 정체치고는 금방 초록빛으로 변하는 그 상황이 조금 우스운 가운데에서 간선도로 표지판이 남서서단을 가리킬 때, 시내도로로 나온다. 노을이 아름다운 봄날이지만 그게 뭐. 그냥 나는 간선도로 벗어나서 빨리 주차하고 집에 들어가 메이드 놀이를 하는 우울요정이랑 놀아주고 병든 닭처럼 뻗어 자는 것이 시급하다고!
도난방지 장치가 뾱. 그렇게 경비 녀석이 왜 차를 경차로 바꿨냐고 나에게 물으며 좀 더 큰 차를 살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웃기지 않느냐, 왜 경차냐고? 잘 나가고 싸서 그렇단다. 수동변속기를 곁들이면 재미있고 더더욱 싸지지. 그렇게 집까지 걸어가는 길목의 바닷가와 트램이 지나가는 선로 그 근방에서 손을 하늘로 번쩍 들고 거리극을 하듯이 와악 소리지르며 집까지 뛰어갔다. 하늘도 적당히 우중충한 것이 너무 좋아! 집이 가까워져서 마당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야옹. 언제 봤던 하얀 고양이잖아. 발치에서 부비적거리는 하얀 냥이를 어떻게 쫓아낼까 생각하던 나는 집에 못 들어오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문을 쾅 닫았지만 고양이 녀석은 먀아앙거리며 두고보자는 울음소리를 낸다. 메이드 놀이를 그만 두지 않는 푸른 요정 루미는 어느샌가 메이드복까지 갖춰 입기 시작했는데 나는 분명 그런 놀이는 그만 두라고 했어. 그러면 루미는 삐쳐서 싫은 소리와 함께 방에 처박히고…. 신경 끄자. 그러면서 다시 나가면 고양이가… 아이고. 나는 여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으니까 일단은 구석으로 가주렴. 기다리던 버스가 안 와서 그냥 트램에 오르고 마을사무소로 향한다. 거리는 트램 차창으로 보면 정원이지만 실상은 그냥 사람과 요정과 인형이 사는 평범하고 지독한 외곽의 주택단지라고 내심 비웃으면서.
마을사무소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 하나를 읽는다. "만약 미제 디젤픽업을 하유에서 타고 다니시려면 그냥 우리 섬나라에서 나가주세요: 하유국 모든 지역에서 메탄을 제외한 모든 화석연료 사용 금지로 화석연료 사용 시, 화석연료 사용 차량과 함께 해당 차량 사용자의 하유국에 상륙할 권리 및 하유국 시민권이 박탈됩니다 - 하유국 환경자원부." 이게 전부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 이 섬이 정신 나가있음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포스터다. 친환경 원예국가를 만들겠다고 휘발유와 경유를 포함한 모든 화석연료를 메탄 빼고 막아버렸다. 프로판은 어떠냐 하는데 프로판도 먹을거 축낸다는 이유하고 한 번은 프로판 가스통이 모여있던 창고가 폭발로 깡그리 날아가서 하유섬 전역이 미세먼지로 고통받은 그 이후에는 금지되었다. 하유제당도 도저히 바이오프로판은 만들기도 끔찍하고 돈도 많이 든대서 포기했고. 그런 나라에서 어떤 수입차가 들어오냐 하면 바보 아니냐고, 그냥 하유가 미쳐서 미래로 간거라고 하고 싶은데 나는 오히려 마을사무소에 올 때마다 후퇴하는 기분이다. 일자리 담당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 뭔가 일자리가 있냐 묻기도 빡셨고 그래서 기간이 끝나가는 여권 재발급이나 맡기고 만다. 운전면허 갱신과 폰 요금 충전, 그리고 피칸토에 가스를 가득 충전하고 영수증 챙기기, 교통카드 충전하기 같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푸른 요정이 바닥에서 구워지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중간에 끼어있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봐도 카오스다. 그렇게 열차로 일터로 향하는 길, 아무래도 나리에게 이 건으로 얘기를 할까 하는 것은 쪽팔려서 그만 둔다. 혼자서 생각하지도 못하고 모두가 물렁해서 다른 나라보다 낯선 누군가에게도 말을 걸기 쉬운 하유인데 알아서 도전하라고 하겠지만… 무서워! 그래서 열차 안에서 방방 뛸 뻔하고 그래서 검표원이 나를 미리 진정하는 꼴이었지. 내릴 정류장이… 두 정류장 지났을까, 다시 내려서 걸어가던지 다음 차를 기다리던지 해야 하는데 이상하다, 급행이었나보다. 일단, 출근은 글렀고 일하기 싫으니 나리에게 오늘 일은 쉬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고 천천히 걸어서 상록숲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요정이 산다고 내각에서 전부 밀어버릴 작정이었던 숲을 지키고 고도제한까지 걸어놓은 이 곳은 행정구역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모두에게 안식을 주고 있다. 사실 이 곳 하나로도 하유섬은 특이하다. 애매하고 신기하다고. 그 애매하고 신기한 것도 사실 여기에 놀러오면 그렇겠지만 살려고 오면 왠지 여권 하나 만드라는데 여기는 시민권이 국적이라 여권 만들 때 시험봐요 하면서 시험보고 하유국 시민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면서 악수 한 방 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군대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가져서 하유국에는 군대가 없고 특수경찰 만이 있는데 특수경찰도 군대랑 다를바 없는 폭력집단이라고 극렬 평화주의자 무리한테 단체로 따귀맞는 이상한 나라라는 것을 알면 파리 증후군 비슷하게 도져서 살려달라고 빌긴 하더라고. 한심해라. 그냥 동화 속이라고 생각하면 끝인 것을 말이야. 나는 이미 그 애매하고 심약한 여기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심약하기는 개뿔, 폭발하면 국회에 화염병도 던지는 족속들이라고.
숲은 위안을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특히 하유국과 같은 작디작은 섬나라에서는 그런 숲이 있어도 깡그리 밀어버리고 공장을 짓는 것이 대부분인데 하유국의 공장은 설탕공장 하나가 이미 북쪽에 있고 내각에서는 요정이 사는 숲이라며 보존해버린 탓에 쬐만한 나라에 하나의 행정구역이자 거대한 숲으로 남은 곳이 있다고 하면 진짜로 미쳤구나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또 여기를 매력적으로 하고 한심한 탈주 알바생도 받아주니 얼마나 즐거운데. 조그만 버스는 여울오름행이고 산 위의 용천에서 물 마시거나 마음을 가라앉히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 조그만 용천이 미여울이라고 하유섬의 가장 큰 강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알고 있을 터이다. 그 탓에 상록구가 개발을 면하고 숲으로 남기도 했으니까…는 내가 이런 설명만 하는 이유가 설마 나 혼자 여기 왔고 다른 누군가하고 말을 걸지 못하는 탓인가 하면서 다시 조그만 버스에 올… 아니 시간이 안 돼서 등산열차로 내려온 뒤에 다시 숲을 걸어서 빠져나와 오늘 땡땡이 친 일을 만회하기 보다 그냥 목이 말라서 북동쪽 카페거리로 행한다. 도저히 숲에서 할 것이 없다. 아직 죽순이나 나물을 캘 시절도 아니니까.
화난 표정으로 나를 맞는 나리는 어차피 손님이 안 올 양이면 토끼려던 알바생이라도 손님으로 받아야겠지 하면서 이마를 짚는다. 그리고 인형 마녀에 대해서 물어보려다 그만 둔다. 나리하고 친구인 녀석 같은데 나리가 일부러 피하는 것 같으니까. 레몬 타르트와 차가운 카페오레를 먹으면서 북동궤도 시간표나 확인하는 지금, 어찌되었든 나는 여기에서 타르트나 먹고 있고 날씨는 흐리고 트램과 버스는 엇박자 배차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리에게 또 인형 마녀에 대해서 물어보려다 그만 둔다. 계산이 끝나고 트램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마주친 어느 금발의 여자 인형이 어딘가 익숙하다 해서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역시 수상한 사람 취급받는 일이라 가만히 있었다. 이런 미친 일이 다 있나. 그런데 그 아이가 낌새를 느낀건지 나에게 먼저 카페에서 살짝 마주친 녀석이라면서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트램이 도착했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 어디로 가는게 중요해? 그리고 나리랑은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니 마녀와 견습생 정도. 그리고 진짜 마녀냐고 물어보니 살짝 로브의 후드를 쓴다. 야옹,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웃는 아이는 정말로 마녀인 모양이다. 어디 사냐고 물어보니 음… 내가 짐작하는 그곳이 맞다며 웃음기가 얼굴에서 사라지고 나리가 왜 당신을 피하냐고 물어보니 동족혐오래. 그리고 이름을 물어보니 자기 이름은 앨리스니까 이상한 나라에서 왔냐고 묻지 마라며 하유국 여권을 꺼내서 보내준다. 그래요, 인형 마녀 앨리스 씨, 아니 앨리라고 부를게요. 왠지 골목길이 생각날 정도로 신기하니까. 앨리는 끄덕이고 트램은 철도선 철길을 따라서 중앙구의 지하로 들어간다.
이상한 만남이 또 끝나고 어쨌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아무런 생각이나 그런거 없이 무념무상의 의미없음이 자꾸만 흘러 의미를 억지로 찾아야 하는 때가 흘러가고 있었다. 마당의 고양이는 가르릉거리고 시간은 흐르는데 그렇다 할 일도 없는 지금이 너무 한심하다. 고양이나 쓰다듬도록 하자 밤비 효과는 모르겠다. 그저 루미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나도 따뜻하고 귀여운 녀석들이 사랑스러우니 먹이도 주고 그래보자. 일단은 그게 더더욱 지금 기분에 나은 짓이다. 뭘 더 바라는 건가. 이상한 지금의 일들은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이고 더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마음이 좀 더 넓어졌으면 하고 그저 고양이들과 놀아주는 지금은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고 그런 시간마저 쪼개어 써야 하는 신세가 그저 싫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흐려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만히 졸음이 오는 가운데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고 푸른 요정이 좋은 꿈을 꾸길 바란다는 속삭임을 주는 이상한 나날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일상이 돌아가고 또 살아가고 있으니 묘한 기분만 계속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여기는 그런 묘한 기분이 언젠가 행복으로 변하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은 언제나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근처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세잎 클로버와 같은 것일 뿐이다. 항상 마당에 놀러오는 고양이와 강아지풀로 놀아주고 고양이가 가면 여전히 메이드 놀이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 푸른 요정 루미가 오늘은 여전히 기분이 언짢으신건가요 하면서 나를 살핀다. 그리고 수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 쪽으로 들이밀고서 이내 빼고는 한숨 쉬고 점심 준비는 해드릴테니 쉬라며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집 앞 길가에는 트램이 한 대 지나간다. 흘러가는 시간이 무의미해서 작은 고무망치를 들고 주차장으로 간다. 피칸토의 뒷바퀴를 고무망치로 두세 번 두드린다. 비어있는 느낌이 없으니 된 것이겠지. 이어서 미니와 2CV의 뒷바퀴도 두드려본다. 좋아, 좋아. 그렇게 마지막으로 점검한 2CV의 트렁크를 닫고 그 꽁무니 앞에 주저 앉는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냥 눈물이 나온다. 내가 왜 이런 기분에 휩싸여 살아야 하나 하면서 울먹이는 차에 차들이 방해를 받는 것 같아 조용히 주차장 바깥으로 나간다. 중심지에는 트램이 지나고 빵집과 편의점, 관광객을 상대하는 안내소가 있고 조용한 시험정원으로 가는 길이 살며시 갈라진다. 간선도로로 들어가는 램프와 남서중앙역, 아무 말 없이 정원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 하늘은 여름이 다가온다는 듯이 흐렸다. 다시 찾아온 마당에는 고양이가 여러 마리 찾아왔고 나는 그 의문의 깡패들에게 강아지풀을 미친 듯이 지휘자처럼 휙휙 둘러준다. 그런 곳에 고양이들이 냥냥거리며 낚여오고, 너무나도 귀여운 광경이지만 그렇게 넋 놓고 고양이랑 실컷 놀고서 대문을 쾅 닫으면 그저 메이드 놀이하는 푸른 요정 루미와 그저 우울해서 죽겠는 내가 한심할 뿐이다. 그래서 루미가 좋은 꿈을 꾸게 해주겠다고 속삭이는 것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아. 마치 내가 루미에게 나쁜 짓을 하는 느낌이 들거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점점 미쳐갈 것 같은 기분으로 피칸토를 타고 간선도로를 달려 일터로 향한다. 들어가면 미리 머신을 예열해두고 기다리는 나리와 그것은 내 일이라 달갑게 여기지를 못하는 한심한 내가 있었다. 손님이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원하면 상록숲에 산책 갔다오라고 하며 나를 놓아주는 나리는 봐서 나갈거라는 내 대답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한숨을 쉬며 그러냐고 하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퇴근. 퇴근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그저 하루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을 맞으며 오후 다섯 시면 퇴근하는 일상이 간선도로에서 변속실수로 이어지다니. 바로 3단에 넣어진 기어를 4단으로 다시 넣고 비상등을 켜서 미안하다고 알린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봤자 내가 남는 것은 매달 받는 돈과 자동차를 모는 즐거움 그 이외에 또 없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푸른 메이드복을 입고 메이드 놀이를 하는 우울 요정 루미와 지내고 루미가 나를 달래며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에 얕은 잠을 청하는 것. 그것이 무료한 일상의 대략적인 일정의 정리다. 어쩌다가 나는 아무도 오지 않는 카페의 직원으로 시간제 일을 하며 집에 오면 슬퍼하는지 의문이 들고 이게 의미가 있는 삶인지하는 또 다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취미로 마당에 만든 메탄가스 포집통도 아직 본격적으로 메탄이 나오려면 멀었다. 재밌긴 하더라, 마당의 잡초나 먹으면서 나오는 생쓰레기 같은 것을 삭히면 메탄이 나오고 활성탄 필터 끼우면 구린내도 없어지는 그게. 하지만 가스값 아끼려고 굳이 이것을 해야 하나 싶어서 괜히 쓴웃음 짓는다.
나에게 미니를 돌려준 딜러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미니나 2CV 가져가고 전기차 하나를 내놓으라고 하자 고개를 젓는다. 전기차보다 CNG가 나아요. 조용하고 연료값 싸고 그런거면 전기차가 능사가 아니여요. 그런 식으로 굴면 내가 피칸토를 내놓겠지. 그러자 가스통이 터진게 아닌 이상에는 대차 안 받겠다네. 그렇게 계획 하나가 터졌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간선도로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북동쪽의 카페. 일단은 인형소녀의 카페다. 하루 손님이 포스기 뒤져보면 하루 백 명이 채 안 되는 숲 가까이의 카페고 알바생은 나 한 명이지만 나리 녀석은 카페 문을 닫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하유섬 특유의 서늘한 여름이 찾아왔다. 지구가 그러는 동안에 나는 뭘 했냐 하면 그냥 잘 참아주는 하얀 자동인형들과 친구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푸른 요정과 함께 뒹굴거리며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카페에서 일하고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그게 다다. 형식적으로 일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일부러 집에서 가까운 나들목에서 한 곳 먼저 있는 나들목으로 나와서 어느 방향으로 빠지느냐에 따라서 구가 달라지는 큰 회전교차로나 빙빙 돌다가 나갈 뿐이다. 그리고 몇 번이고 수정한 끝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뭐가 그리 시끄럽게 주차를 하냐고 경비가 달려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말에 나는 푸념을 하기보다 요즘 메탄 가격이 올라서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닌 말로 둘러댄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나오자 나를 놀래키고는 내가 끼약하고 놀라니까 갑자기 미안하다고 급히 사과하는 앨리가 있었다. 뭔 용건인데.
인형 마녀는 다시 차를 끌고 나오려는 나에게 어디를 가려는 작정인지 이미 알아차린 거냐고 장난을 쳤다. 너는 망할 운전면허도 없냐고 하려다가 그만 두고 가만히 생각하는 동작 이후에 조수석에 타는 앨리 녀석과 갑자기 남동쪽으로 차를 몰고 간다. 그리고 앨리 녀석은 갑자기 바닷가 앞으로 달려가라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일부러 스톨을 냈다. 더얼컹, 시동이 꺼지면서 차가 앞으로 살짝 쏠린다. 약간 화났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앨리는 내 대답을 들을 여유가 있다는 듯이 표정을 풀고 나는 차 망가지는 것이 문제라고 솔직하게 분다. 차가 망가지면 고쳐준다고 하는 앨리 말만 믿고 다시 시동을 걸고서 바닷가 앞으로 돌진, 앨리가 시키는대로 바닷물로 들어간다. 차에 물 들이치고 이거 현기차라고 말해도 걔는 계속 직진을 외친다. 그리고 나는 짚이는 것이 있어서 앨리에게 묻는다. 설마 정원섬 가냐? 고개를 젓는다. 이대로라면 가라앉을 듯해서 클러치 밟고 단을 올린다. 세상에, 피칸토가 바다에 떠있다고. 앨리는 웃기다고 저기 암초에 세우라고 손가락으로 피칸토를 겨우 세울만 한 암초를 가리킨다. 그나저나, 앨리스는 이런 짓을 왜 시키는건데 물으니 애칭으로 안 부르는 것 보니까 진지해졌나보네 하면서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카강! 내 피칸토가 암초에 정지했다. 앨리스는 갑자기 나에게 입 맞추더니 거부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여기에서 잠시만 많은 얘기를 하자고 한다. 뭐 할 생각이야, 다시 돌아가면 강제추행으로 신고할테야.
앨리스는 입을 열어 내가 이 이상한 섬나라에 온 이유를 물었다. 기존 세상은 편가르기와 이득을 얻기 위한 경쟁에 미쳐있었지. 그리고 왠지 그런 세상에 넌더리가 난 놈들이 어떤 섬을 발견했고 거기 가서 살면 조금 특별할 거라고 해서 배 타고 왔어. 나는 이 섬이 좋기도 하지만 의아해. 왠지 부조리 개그의 무대에 선 기분이야. 그러자 앨리스는 로브의 후드를 걷어젖히고 금발을 드러냈다. 그래서 여기에 왔구나? 여기 암초에 닿은 기분이지?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는 기분. 나는 그런 마녀야. 다른 누군가의 심리를 공격하는 인형 마녀 앨리스다. 그렇게 자기 능력을 불었다. 그런데 앨리, 마녀는 자기 능력을 불면 마력 줄어드는거 아녔어? 그러자 다시 애칭으로 불러주는구나 하면서 자기도 이런 능력 때문에 숨어살다가 구 하나가 숲인 곳이 있다길래 왔다고 다시 하유국 여권을 보여준다.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 바에는 자기도 이런 암초에서 살아가는게 재미있을거라 생각했다네. 원래 살던 곳에서는 자기 주인님을 제외하고는 온몸의 구체관절과 사람 심리를 실체화하는 능력 때문에 저주받은 인형 취급 받는게 싫었대. 하지만 또 상록구의 인형 마녀라는 얘기를 듣고 사니 정말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아서 자기와 비슷한 녀석들을 자기 힘으로 만들어 북동구의 또 다른 자동인형들과 살게 해주고 자신의 집 앞을 넘어가면 그 누구라도 인형이 되어버린다는 괴담을 지어서 퍼뜨렸대.
그렇게 한낱 찌질하지만 귀여운 외모를 지닌 인형 마녀가 지어낸 헛소문에 속아 남서구에 짱박혔다가 겨우 잡은 일자리가 북동구에 있고 거기서 만난 카페 주인 인형소녀가 상냥해서 겨우 무서움을 떨어낸 내가 이상하게 여겨질 즈음에 눈을 가만히 감고 있던 앨리가 사이드 풀고 바닷가까지 가자고 말한다. 바라던 바다. 그렇게 또 피칸토는 바다를 건넌다. 그리고 다시 바닷가 백사장에 멈춰서지. 염분에 당했으면 큰일난다고 하니까 앨리는 웃으면서 부식은 걱정마시라고 한다. 뭐 어째, 외롭게 있기 싫어 다른 곳에 왔지만 여전히 자신을 꺼리는 세상이 싫어 헛소리까지 지어낸 저 이상한 인형 마녀의 얘기를 믿어야지. 남부해안도로는 소통원활이고 앨리는 데려다 주겠다는 내 제안을 거절하고 전철로 돌아갔다. 그 다음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무망치로 여기저기 가볍게 두드려보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메이드 놀이를 하는 루미가 기다리고 왠지 루미가 손님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 거실을 봤더니 조심스럽게 따뜻한 우유가 든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수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봄이가 있었다. 내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걸까. 그리고 우유는 고마웠다고 루미에게 인사하고 다음에 만날 수 있다면 만나자고 내 손등에 입 맞추고 봄이는 내 집에서 나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는 편이 좋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앨리와 암초에서 고해성사 하는 동안에 봄이도 루미에게 고해성사를 했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촉촉하고 보드라운데 차가운 루미의 두 손이 내 두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마법을 거는 듯한 신비한 표정을 짓고는 손을 놓고 소파에 눕는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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