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것도 처음 와보는 숲에서. 숲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소리치면서 누굴 찾아도 아무도 없다. 산 속 동물들만이 무서워 도망친다. 그나마 말이 통할 요정들도 내가 무서운지 도망친다. 다 틀렸다 생각하고 눈 앞의 독버섯을 먹고 죽을 궁리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떤 요정이 조용히 갖고 사라진다. 나는 길을 잃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길을 찾지 못했다. 나를 구해준다면 누구라도 좋다고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 뿐이다. 메아리일까요? 아니오, 누구라도 그래요.
내가 뭘 할 수 있나. 한낱 소시민이라 더위에 지고 돈에 지면서 돈 생겼다고 듕귁제 휴대전화를 지르는 돈지랄을 해대고 비싼 것을 샀다며 불 속에서 석고대죄 하는 한낱 소인배인 것을. 신문에 투고하면서 밥 벌어먹는 멍청한 인생을 살지 말자. 공사판에서 힘도 안 되는 온실 속 화초가 철근 나르다 죽어서 집에 오는 미련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 외국어 뻥긋거리는 것 하나로 내 나라 모르는 외국인에게 내 나라는 지상낙원이라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는 되지 말자. 자, 이제 뭐가 남나. 나에게 그것들을 빼고 남는 것은 없다. 허나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요령껏 없앨 수 있는 내 면허증의 조건 A를 경멸하고 있다. 하지만 클러치를 조질 줄 알고 속도에 맞춰 스스로 변속할 수 있어도 내가 소시민에 쫄보라는 사실은 ..
차 안에 불이 붙었다. 반월동사무소 인근 진입도로였다. 그렇게 하루를 돌아왔을까. 하지만 이미 나는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평소처럼 출근하고 내 일만 묵묵히 하다가 잘렸다. 이유는 내가 자본의 축적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 그렇겠지. 맹한 인상의 남자는 어느 업무에서도 환영받는 입장이 아니며 내가 꽤 몽상을 꿈꾸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사뿐히 떨어져버린 탓에 쉽사리 동여의도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증권거래소 앞의 황소상 앞에서 짜증을 내보고 국회의사당을 바로보는 그 도로에서 확 소리도 질러보고 서울교를 건너 영등포로터리로 넘어오면 짜증이 더 밀려온다. 그렇게 나는 다 지쳐서 겨우 내 차를 세워둔 지하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다 지친 표정으로 짐정리하러 들어..
기계와 나를 연결하는 선에는 과전류가 흘렀다. 그냥 서로 사는 것이 지겨워 조금이나마 이질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고장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항상 정신을 잃고 수리당하기를 몇 번째 하면 이제는 이런 상황은 뭐, 어쨌든 익숙해버려져야 한다. 그러는 상황에 익숙해지는 사이에 나는 완전히 로봇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려 '나'라는 것은 결국 '나의 뇌'를 지칭하는 것이지 '나의 몸'을 지칭하지는 않는 것으로 되어버리고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취급되지만 사람이었을 때보다 소중히 다뤄지는 반어가 있었다. 그 반어 속에서 물리적으로 유리되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아플리 없는 머리가 지끈거린다할 정도라면 이해할까.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들은 적어도 서로 편가르기 좋아하고 본질이 사람인 나도 그곳에서 평생 자유롭지..
섬은 아름답다. 다만 그것 뿐이라서 슬플 뿐이다. 오늘도 정원을 가꾸고 온실을 돌보고 숲을 산책하며 열매를 모으고 물가에서 마실 물을 길어왔다. 그리고 아이와 요정, 동물들과 함께 폭신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불을 지펴놓은 채로 내리는 바람에 철길을 따라 혼자서 내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붙잡아서 차고까지 몰고가며 철길 위로 놓인 전깃줄이 아직 팽팽한가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섬은 빛났다. 다만 그것 뿐이었다. 계속 그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차고에 도착했을 즈음에 나는 피곤해져서 잠시 근처 풀밭에 누웠어. 그리고 예전 기억이 한데 뒤섞인 악몽을 꾸었다. 이 섬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사람들이 하유라는 섬나라로 갈 때, 나도 그 안에 있었지만 의외로 사람들과 같이 살기 싫었던 나머지, 나만 통나무 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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