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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끝나면 나는 계란 프라이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고 1단 반클러치와 엑셀을 동시에 주면서 출발한다. 간선도로 요금소에서 요금내는 것도 솔직히 너무 수월했다. 나리 녀석이 그냥 준 깡통이나 경비가 넘겨준 이 계란 프라이나 오십보 백보다. 다만 계란 프라이는 히터에 에어컨에 라디오가 되지 않던가. 그것을 위안삼으며 파란색 달걀 프라이를 집 근처 공영주차장까지 몰고 가는데 경비가 용케 그걸 타냐고 놀라더라. 그러면 깡통 타보시겠냐고, 난방과 냉방이 안 되고 승차감도 깡통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나에게 묻지 않더라. 그러나저러나 자기가 준 계란 프라이는 어떠냐고 하니까 나는 일단 저렴함의 끝에 남을 자동차를 두 대나 갖고 있으니까 한 대는 놀겠다 싶다고 얘기해 두고.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튼 군대도 없고 교도소도 없는 이 섬의 구석구석을 차를 몰고다니며 월급이 가스 충전비로 나가는데, 대략 죽을 맛이다.
그렇게 나는 두 대의 차를 공영주차장에 고이 모셔놓고 차는 있되 타지는 않는 일상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계란 프라이를 나두고 깡통을 타기로 한다. 의외로 깡통 녀석, 인터넷 뒤져보니 대단하더군. 1분 만에 뜯어서 5분 만에 조립하고 키트카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이기도 하는 노익장을 몰고서 간선도로 들어가면 차들이 경적 울리면서 대단하다고 손가락을 치켜들겨나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요금소 직원이 경차냐고, 잘 굴러가냐고 묻기도 한다고. 하긴, 나는 그렇게까지 차가 필요한 것이었나 싶어져서 그냥 나리가 나한테 준 깡통을 선택했을 때, 나에게 계란 프라이를 준 공영주차장 경비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래뵈도 안전하다고. 다만 시트로엥 2CV를 깡통이라 하고 눈치보여 못 타고 다니겠다고 한 적이 있으니 좀 당황했겠지.
2CV를 타고 도착한 일터는 용케 깡통같은 차체와 엄청 가벼운 클러치, 기어 넣는 방법이 기묘한 4단 수동변속기에도 불구하고 굴러간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게 역할을 해내었다. 만약 이 깡통을 타볼 기회가 생긴다면 모과마냥 세 번 놀랄 것이다. 수동변속기가 4단에 왼쪽으로 꺾고 당겨서 1단이라 놀라고 에어컨과 라디오가 없어서 놀라고 앞창문도 여닫이라 놀랄거라고. 그렇게 경차 통행요금으로 북동쪽까지 타고 온 뒤에 나리 녀석이 갑자기 문을 확 열어재끼면서 오늘은 일 없으니까 안 와도 됐다고 놀라서 나온다. 그냥 놀러왔다고 바로 차에 시동 켜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앞으로 갔다가 후진. 나리가 내가 모는 깡통에 오른다. 어디로 갈 거냐는 말에 그냥 남서쪽으로 차를 몰아 어느 망한 카페 앞에 세웠다. 주차장이 마땅하지 않아서였다. 묘하게 서로가 째려보고 가게가 왜 망했을까 하며 잠시 탈세동결자산 앞에서 쉬었다. 나라에 감옥이 없는 대신 '기간이 정해진 강제추방형'을 실시하는 나라 치고는 추방기간이 길어서 문제겠지 하면서 서로는 일어나서 깡통같은 차에 올라 갈 곳을 못 정하고 그저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걸어서 내 집에 가자는 제안에 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갈 곳이 없어서 그러는 것을 안다며 자신은 집으로 갈테니 차는 놔두라고 하면서.
집에 들어와 쉰다. 그리고 갈 곳이 없으니 집으로 왔다는 한심한 결론을 본다. 그게 끝. 이제 뭘 하나 싶은데 루미가 내 볼을 쿡 찌른다. 무료하냐면서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데 내가 뭘 잘못한걸까. 그러다 불현듯 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듯이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루미도 어느샌가 쫓아와 조수석에 앉았고 무작정 북동쪽으로 향했다. 하늘은 흐렸다. 구름이라는 것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하유섬의 물줄기가 솟아나오는 여울오름으로 가려는 느낌으로 간선도로를 끼고 여기서부터 상록구라는 이정표와 가스기관을 제외한 내연기관 차량은 상록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에스페란토로 적힌 경고판도 넘어 여울오름 표지판을 따라서 대충 콘크리트로 포장되었거나 그마저도 없는 도로를 대충 2단 넣고 올라갔다. 덜컹거리는 이 깡통이 짜증나는게 덜컹임이다. 그리고 이내 하얀 안개가 앞에 자욱해지는 정상에 도착했다. 하유국 최고봉이라는데 차로 좀만 돌면 도착하는 정상이라니, 작은 섬 큰 한심함인가. 따뜻한 커피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면서 나는 그 물안개 자욱한 곳에서 잠시 있었다. 쌍라이트를 켜면서 당신이 몰고 온 깡통차 치우라고 누가 경적을 울리기까지는.
여기 왜 왔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푸른 요정 루미가 묻는다. 그냥 산길을 올라 구름 좀 잡고 싶었어. 그러면 왜 비가 올 지도 모르는 지금인거냐 묻는다. 그래야 구름이 낮게 깔려서 예뻐. 수긍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구석으로 빼주고서 사과의 뜻으로 상향등을 비춰준다. 답례로는 짧은 경적소리가 들렸다. 매너 좋은 운전자들과 구름 가까이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남서쪽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냥 그런 길일 뿐이었지만,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버려서 기쁘다. 그렇게 숲길을 달려서 숲 투성이인 상록구를 나오니 여기서부터 중앙구라는 이정표와 가스 및 에탄올기관을 제외한 모든 내연기관 차량 진입금지 해제표지판이 나온다. 간선도로의 시작점을 잡고 윈드실드 쪽을 열어서 시원하지만 춥기도 한 바람을 받아들이고 그저 여울오름에서 구름을 잡고 온 기분으로 4단 넣고 밟는다.
이 몽상가는 구름을 잡고 돌아와서는 그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빈둥거리며 내일 해야 할 일들을 걱정하고 있다. 이제 좀 나아졌나 싶은 주변 상황은 알게 모르게 악화되는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또 다음 날이 밝아오고 출근을 하고 또 요금소 직원이 경차냐고 내 깡통을 두고 물어보고 주차를 마치고나면 어서오라고, 어서 머신을 예열하고 옷 갈아입으라고 말하는 가게 주인 소녀인형,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카페에 들어오는 수많은 누군가들과 어쩌면 의미없이 탬퍼링 10초를 맞춰서 내리는 에스프레소, 근처 숲에서 불어오는 사늘한 바람과 부쩍 길어진 해를 바라본다. 그러면 바로 퇴근하자고 하며 나리가 가게 닫을 준비를 하면 나도 퇴근. 깡통에 시동을 걸고 남북간선도로 따라서 용케 설탕 만들고 남은 사탕무 찌꺼기로 만든 바이오메탄과 에탄올 혹은 전기로 굴러가는 자동차들 사이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하위차로 밟고 달려서 집으로 돌아온다. 운전은 피곤하고 깡통의 클러치는 너무 가볍고 스티어링 휠은 너무 무겁다. 조만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2CV 개조관련으로 찾아내어서 파워 스티어링이라도 달아야지 싶다만 차도 나리한테서 공짜로 받은 주제에 그럴 돈이 있나 싶군.
오늘의 뉴스. 또 어떤 해외언론에서 하유를 두고 '평행세계의 싱가포르'라고 칭한 건에 대하여 하유국 언론중재단과 외무부는 해당 표현을 즉각 사과하라며, 우리는 싱가포르처럼 결함있는 민주주의 체제도 아니며 벌금체계도 싱가포르급은 아니고 언제 어디서든 신고만 하면 시위행진이 가능한 나라임을 밝혔다는 소식이었다. 그나저나 저 표현에 발끈하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다. 싱가포르는 독립'당'했고 하유는 건국'당'했다. 그리고 둘 다 조그마한 섬나라에다 주변 나라들이 부러워하며 다언어 국가라는 공통점 때문이겠지. 서로 평행세계인 것은 일 년 내내 더운 싱가포르와 일 년내내 서늘한 하유를 빗댄 것이고. 외무부 성명이 저 표현에 화내는 것은 엄청 오래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그런 표현은 안 하겠다고 답장을 받은 적은 없다니 참 그렇네. 텔레비전 끄고 마당으로 나가니 집토끼 한 마리가 마당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갔다. 루미가 토끼 저 자식이 마당 아작낸다며 싫어하는 그 표정을 누군가 봤어야 하는데.
에어컨이 없어서 완전 얼음장인 이 깡통을 몰고 다니는 것이 너무 짜증나고 그래서 경비원의 계란 프라이를 팔기로 결심하고서 경비원에게 그렇게 말하자 어차피 자기는 새 차를 뽑거나 하기는 틀렸고 저 차가 위험해서 안 타는 것이니까 마음대로 하라기에 생각하기를, 남의 차를 함부로 교환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깡통을 팔면 좋겠지만 깡통은 받아주는 곳도 없을 테고 하유섬에서는 공방에서 만들어 막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찍혀서 갖고 있는 편이 더 비싼데다 이건 나리의 선물이다. 경비는 그나마 좋은 차를 가져오라며 대출을 쓰느냐고 묻는데 프라이드를 공짜로 넘기고 거의 새 차를 거저 데려왔다고 치자. 위험한 그걸 누가 가져갔냐고 놀랄게 뻔하잖나. 그렇게나 선물을 팔아넘길 생각을 하는 파렴치한놈에게 자기 차를 가져가라던 경비원에게 경의를 담아 경례를 올리자. 계란 프라이의 범퍼 상태를 살피고 깡통 녀석의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난방 스위치… 비슷한 것을 보았다. 엔진 열로 난방이라니, 이 정도로 돈을 아끼는 것도 재주긴 하다.
역시 운전은 왼발이 편한 대신, 반응이 굼뜬 자동변속기가 편한 것은 부정 못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깡통에 올라 북동쪽으로 가고 있다. 참나, 자율주행 시대에 에어백이니 ABS니 파워 스티어링이니 아무것도 안 달린 깡통을 타고 다니는 꼴이 뭔가 반어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엔진에서 나오는 난기로 차내 난방을 해결하는 레버를 찾아냈기에 이제 더 이상 간선도로를 쌩쌩 달려도 춥지 않고 사실은 하유섬에 아주 흔한 차니까 요금소에서도 구태여 차에 대해서 묻지 않게 됐으니 경쾌하다. 이제 자동차 문제는 끝났구나 생각하고 오늘의 일터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도중, 카페 주인장이 차를 바꿀거냐고 물어보는데 아마도 자기가 준 깡통은 네놈이 차마 못 팔을 거라고 매우 정확하게 맞추고는 차가 한 대 더 있으면 오히려 골치아플 거라며 나를 놀리고 들어간다. 그리고 주차 도중에 클러치 페달을 찾다가 밟고 있던 클러치를 급하게 놔서 뒷 범퍼를 우그러뜨릴 뻔했다. 끼익하는 소리에 뛰쳐나온 소녀인형은 이내 잘 세우고 들어오라며 다시 카페로 들어가고 다시 차를 세우고 나오니 가게 옆문과 울타리 틈새에서 고양이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야옹. 주차를 잘 못하는 것은 고양이가 위로해 준 셈이니 고마워, 과연 고양이야. 그렇게 하루하루가 깨달음의 연속이면 그걸로 된 거다. 그래봤자 인생 짧지만.
난방을 틀어도 찬 바람이 일단 들어오게 되어있는 엔진열 난방 스위치를 앞으로 당긴다. 진짜로 간선도로를 달리는 중인데도 참 시원해서 엔진이 이렇게 힘들어하니 난방 안 하는게 낫겠지 하며 스위치를 닫는다. 어차피 입춘도 지나 날씨도 따뜻하고 외투가 거추장스럽다. 그 뭐냐, 이제는 뭔가 싶다는 느낌이나 그 어떤 다른 느낌으로 살아보려는 그런 초월적인 느낌과 섞이는 귀찮음: 그래, 귀찮음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과 기타 등등이 나를 괴롭히는 그런거 따위는 없었다. 그냥 가스 충전비용, 유지비를 감당하기 힘든 그런 것들이 문제는 아니었다. 집으로 도착하고 또 하녀놀이 하는 푸른 요정과 마주친다. 무시하면 자꾸 따라와서는 자기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 불편한 것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런 말에는 거절로 대답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으니 나는 정말 바보라고 말해두고 푸른 요정이 내 슬픔을 파란 구슬로 꺼내가고서 푹 쉬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내 방으로 가서 좀 쉬어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한다. 정말있지 아무것도 염두가 안 날 때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좋겠다 싶은데 이제 내일이면 또 일을 나가야 하고 내가 지금 빌려살고 있는 집은 뒤로 나가면 바로 바닷가이다. 그게 좋기는 한데, 씁쓸하다. 그냥 뒷 쪽 바닷가로 나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 예전과는 다른 점이다 싶어서 그냥 젖고 또 젖는 백사장을 멀리 바라보며 걷는다. 걸어서 바닷가가 보이면 여기는 바닷가라는 뜻이고 바닷가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는 넓고 더욱더 공허해져서 이제는 전부 힘들어서 다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더욱 나를 괴롭히는데 그게 더더욱 엿같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 나를 지리멸렬하게도 더더욱 나를 괴롭혔다. 자유가 이렇게도 매우 어려운 말이었나 싶으면서도 항상 바라온 것이 자유다 싶으니 더더욱 지리멸렬이 강해진다. 자, 집으로 돌아가자. 이런 때에는 아무 것도 될 형편이 되지 않을 뿐더러 진저리가 쳐진다.
쓰고 있는 글마저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싶으면 어찌 되는건가 싶어서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프라이드와 2CV를 닦으러 간다. 지하에 있는 공영주차장 특성 때문인지 그렇게 먼지가 앉지는 않았지만 경비가 자동차를 정성스럽게 천으로 닦아주는 내 모습이 웃기다는 듯이 어느새 내 옆에서 볼을 쿡 찌르는 장난을 했고 이내 자기를 벌레 보는 눈빛으로 보지 말라고 하는 이 광경을 루미가 봤어야 했는데. 어느정도 닦은 뒤에 프라이드에 올라 시동을 건다. 자동변속기가 편한 것은 진짜 부정할 수 없고 현대적인 에어컨이 달린 이 차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이제부터 이 파란 프라이드를 타고 다니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여울오름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는 그런 삶의 여유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다. 결국 자동차라는 것이 없으면 좋다라고 계속해서 트램 선로 교체사업에 당하고 철도 연착에 당하고 겨우 갈 수 있는 명소라고는 미여울공원이나 식물연구소 개방시험정원, 남서 바닷가 그 정도로 좋다. 자동차는 돈도 많이 들고 멀리 가면 세워둘 곳을 또 찾아야만 하고 하니까 별로 매력적인 장난감도 아니다. 슬프군.
그렇게 다음 날은 밝아오고 나는 출근한다. 오토클러치가 달린 프라이드는 참 경쾌하게 간선도로를 달려서 북동쪽 카페거리에 닿는다. 제동하는데 클러치를 미리 밟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변속이 거칠게 되는 느낌을 상쇄한다. 그렇게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에 도난방지를 걸어놓고 들어가려는데 화난 표정의 인형소녀가 내 등 뒤에 있었다. 좀 작작 일찍 오라고 화를 내는데, 어째서 일찍 오는 것도 화를 내냐. 그런데 어차피 생각이라는 것은 참 간사한 법이다. 아름다운 정원국가에 살고 있어도 여느 나라의 최대도시처럼 살풍경한 중앙에는 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상하게도 카페에서 편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과 겨우 카페에서나 일하며 친구이자 카페주인인 인형소녀 나리에게 휘둘리는 것 같다는 느낌은 종이 한 장일 뿐이다. 자동차가 두 대라고 한 들, 둘 다 조그마한 경차이고 하나는 깡통에 자동변속기는 꿈도 못 꾸고 난방도 엔진에서 데워진 공기를 그대로 실내에 들이는 원시인 불 피우는 급의 물건이니까. 다른 하나는 콤프레셔 난방도 되고 자동변속기도 있으니까 설명을 생략하자. 그렇게 만족할 줄 모르는 나날이 지나가고 만족을 잃어가는 그런 나도 깨나 한심하려나 싶은 그런 것이 잠깐 숲에 목 좀 매고 올게 하는 생각을 만들었고, 아뿔사 실제로 입 밖에 내었냐. 소녀인형이 내 손목을 말 없이 붙잡아서 잡아당긴다. 일하면 잡생각이 없어진다며 테이블 치워달래. 그렇게 짧은 망상을 끝내고 왠지 돈에 묶인 노예처럼 일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면서도 상냥한 인형소녀가 운영하는 북동쪽의 카페가 많아 아름다운 거리의 어느 카페 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저 그거 하나를 행복으로 느끼자고 정하니 삶이 꽤 즐거워진다. 생각 하나로 즐거워졌다고 하는 것은 사실 금방 사라지는 거짓이지만.
시험정원이다. 그냥 걸어나오면 미여울공원이랑 이어지는 식물연구소의 시험정원을 겸한 개방공원. 그냥 싸돌아다니면서 습기에 강한 라벤더니 추위에 강한 로즈메리니 냉대기후에서도 설중매를 볼 수 있는 매화나무라던지가 눈길을 끌겠지만 그런 것들이 전부 생명공학보다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알면 아마도 파리 증후군에 버금가는 하유 증후군이 생겨버릴 것이다. 하긴, 이 섬에 평범한 인간도 살지만 진짜 마법을 거는 요정도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있고 그런 그 둘이 외로움을 잘 타기에 서로 어울려 살아갈 목적으로 만든 자동인형도 보통의 사람처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섞여 살아간다고 하면 여긴 판타지인가, 사이버펑크인가 할 것이고 '내가 아는 누군가 중에는 심약하고 하얀 남자아이 인형도 있고 인형들이 모여사는 북동쪽에서 카페를 하는 여자아이 인형도 있는데 하나같이 상냥해. 그런 탓에 인형들과 마주치면 인형이 되어버린다는 괴담도 있어'라고 하면 눈깔이 돌아가기 시작할거고 '어느 날, 나에게 푸른 요정이 찾아왔는데 그 아이는 우울 요정이야. 메이드 놀이를 하면서 나를 자주 살피는데 우울함을 푸른 구슬로 만들거나 혹은 대신 가져가서 자기가 우울해하고 나는 행복하라고 빌어주지'라는 말까지 하면 아마 자해하기 시작할거다. 이건 꿈이고 나는 꿈 속에서 꿈을 자각했으니 아프면 깨어날거야 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따뜻하게 포옥 안아주면서 꿈이 아니라 진짜고, 당신은 하유에 와 있다는 상냥한 말을 해주자고 표어제작소에서 공익광고도 때린 모양인데 그래도 첫 수교의 빌딩에는 비자를 단축해달라거나 본국의 의사를 보내달라는 사람들이 넘쳐나겠지. 그런 만큼이나 하유는 동화 속 세상이지만 아무도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런 동화 속에서도 나처럼 비참하게 사는 사람은 많다고. 당장에 나를 봐.
이런 이상한 나라에 제 발로 와서는 이상한 나라라고 까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일랑 그만 하고서 이제는 슬슬 집으로 가서 요리할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도 하녀 놀이를 하는 푸른 요정이 식사를 다 해놓고 있었고 와서 드세요라며 노래하듯 말하는 그것이 나는 어쩌면 마음이 놓이거나 아니면 곤란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일단은 배고프니까 식사를 하고 또 나가버리려고 하니 뭔가 아직 메이드복 차림의 루미는 대문을 두 팔로 막아섰다. 안 된다고 하는데 자꾸 마당의 토끼 얘기를 하길래 그런 빻은 소리 하려면 비키라고 명령했지만 돌아온 것은 싫은 소리다. 자꾸 토끼토끼거려서 무슨 말이냐 들어보기라도 하자 했더니 토끼를 사로잡아놨고 대단히 폭신하니까 토끼랑 같이 놀자고 지르는데, 당최 토끼가 어디 있다는거냐. 문을 막아선 푸른 요정에게 나가지 않을테니 토끼를 보여달라고 하자 시벌겋게 울먹이던 얼굴을 토끼랑 정말 놀거지 하는 어린 아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 방에서 흰 토끼 한 마리가 뿅하고 튀어나왔다. 두고 보자, 루미. 루미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니 용서를 해줘야 할지, 혼내야 할지 망설여진다. 이런 입장은 별로 그렇게까지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지만 그래도 적당해야 나도 좋지.
밤에는 밤고양이가 나타나서 부자들의 고액권 지페를 다 찢어놓거나 장난스럽게도 치킨같은 맛있는 것들을 훔쳐먹다 들켜서 그대로 뽀옹하고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다. 루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재미있게는 들으면서도 일단은 너한테는 안 온다고 얘기한다. 뭔 의미인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밤고양이는 애먼 상대에게 찾아오지도 않고 진짜 골탕먹어야 싼 녀석들에게 벌로 나타나는 녀석이라니까 안심하고 루미에게 다시 그 얘기를 꺼내니까 난감해 하며 분수에 안 맞는 물건을 갖고 있어도 나타난다고 내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문득 불길해서 블랙박스를 두 차에 의무적으로 미리 달았고 하유 사람들은 자동차가 요정한테 홀린 것에도 블랙박스를 제출할 정도로 순진하고 서로 도우면 자기에게도 그게 이득이라며 기꺼이 자기 의견을 내고 수사에 진심으로 협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밤고양이가 찍힌 블랙박스 영상 얻기는 쉬운 편이니 안심한다. 왠지 루미 녀석이 시무룩한 무표정 속에 웃으려는 표정을 숨기는 중인 게 딱 보이지만 속아주자고 잠이 든 그 다음 날, 계란 후라이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기어를 N단에 놓아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뚜두둑거리는 카뷰레이터 소리만 나는 프라이드에서 내려 그나마 구조가 단순하니 시동 걸리겠지 한 깡통도 나를 배신했다. 뚜두둑, 두둑, 뚜두둑. 나는 순간, 어젯밤에 웃음을 참던 루미를 떠올리고 대시보드를 팡팡 내리쳤다. 그리고 특이하게 생긴 기어봉이 제대로 중립에 넣어져 있는지 확인하려 좌우로 한 번 털고 보닛을 열었다. 아아 엿같게도 카뷰레이터 도선이 제대로 갉혀있다. 곤란해서 나리에게 출근이 곤란해졌다고 전화한 뒤, 집으로 다시 걸어가서 밤고양이가 아니라 밤쥐가 있냐고 루미에게 물어본다. 응, 그런 거 없어. 이게 루미의 대답이다.
블랙박스를 떼서 뒤진다. 어제자 영상에 분명 찍혀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진짜로 꼬리가 두 갈래인 고양이가 오늘 새벽 영상에 찍혀있네. 먀아옹거리면서 고로롱거리는 소리까지. 하지만 갑자기 스윽하고 밤고양이가 사라진 뒤에… 계란 프라이의 도난방지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 냐냐냐냥거리면서 깡통 밑으로 들어가더니 툭툭툭 소리가 나고는 밤고양이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리고 나보다 일찍 일어난 경비가 욕을 섞어 밤고양이가 귀찮다고 프라이드 여분 키로 다시 도난방지를 풀었다 잠근 뒤, 나는 그 두 시간 후에야 주차장에 들어와 참사의 현장과 마주한 것이다. 으아악! 나는 소리를 질렀고 루미는 소리 지르면 또 밤고양이가 나타난다고 나에게 겁을 주었다. 으아악거리기를 겨우 겁먹어서 멈추고 루미는 자기가 아는 녀석이 자동차를 고치는데 알려줄까 하면서 고양이 입으로 웃는다. 고양이 입으로 웃지 마, 이 체셔 고양아. 여튼 차를 고치는데는 루미의 아는 요정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왜 공구로 고치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고블린이 아니니까 그렇댄다. 걔는 기계를 고장내지 않냐 하니까 그걸 역으로 쓰는 머리가 요정한테 없을 것 같냐고 되묻는다. 쳐다보니 으쓱하는 루미, 그리고 내 등 뒤에 숨어서 수리과정을 지켜보는 포근하고 말랑한 봄이가 그곳에서 자동차 카뷰레이터를 다 고칠 때까지 지켜보았다. 지인찬스라 공짜라니 좋네.
그렇게 나는 두 대의 차를 공영주차장에 고이 모셔놓고 차는 있되 타지는 않는 일상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계란 프라이를 나두고 깡통을 타기로 한다. 의외로 깡통 녀석, 인터넷 뒤져보니 대단하더군. 1분 만에 뜯어서 5분 만에 조립하고 키트카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이기도 하는 노익장을 몰고서 간선도로 들어가면 차들이 경적 울리면서 대단하다고 손가락을 치켜들겨나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요금소 직원이 경차냐고, 잘 굴러가냐고 묻기도 한다고. 하긴, 나는 그렇게까지 차가 필요한 것이었나 싶어져서 그냥 나리가 나한테 준 깡통을 선택했을 때, 나에게 계란 프라이를 준 공영주차장 경비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래뵈도 안전하다고. 다만 시트로엥 2CV를 깡통이라 하고 눈치보여 못 타고 다니겠다고 한 적이 있으니 좀 당황했겠지.
2CV를 타고 도착한 일터는 용케 깡통같은 차체와 엄청 가벼운 클러치, 기어 넣는 방법이 기묘한 4단 수동변속기에도 불구하고 굴러간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게 역할을 해내었다. 만약 이 깡통을 타볼 기회가 생긴다면 모과마냥 세 번 놀랄 것이다. 수동변속기가 4단에 왼쪽으로 꺾고 당겨서 1단이라 놀라고 에어컨과 라디오가 없어서 놀라고 앞창문도 여닫이라 놀랄거라고. 그렇게 경차 통행요금으로 북동쪽까지 타고 온 뒤에 나리 녀석이 갑자기 문을 확 열어재끼면서 오늘은 일 없으니까 안 와도 됐다고 놀라서 나온다. 그냥 놀러왔다고 바로 차에 시동 켜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앞으로 갔다가 후진. 나리가 내가 모는 깡통에 오른다. 어디로 갈 거냐는 말에 그냥 남서쪽으로 차를 몰아 어느 망한 카페 앞에 세웠다. 주차장이 마땅하지 않아서였다. 묘하게 서로가 째려보고 가게가 왜 망했을까 하며 잠시 탈세동결자산 앞에서 쉬었다. 나라에 감옥이 없는 대신 '기간이 정해진 강제추방형'을 실시하는 나라 치고는 추방기간이 길어서 문제겠지 하면서 서로는 일어나서 깡통같은 차에 올라 갈 곳을 못 정하고 그저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걸어서 내 집에 가자는 제안에 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갈 곳이 없어서 그러는 것을 안다며 자신은 집으로 갈테니 차는 놔두라고 하면서.
집에 들어와 쉰다. 그리고 갈 곳이 없으니 집으로 왔다는 한심한 결론을 본다. 그게 끝. 이제 뭘 하나 싶은데 루미가 내 볼을 쿡 찌른다. 무료하냐면서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데 내가 뭘 잘못한걸까. 그러다 불현듯 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듯이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루미도 어느샌가 쫓아와 조수석에 앉았고 무작정 북동쪽으로 향했다. 하늘은 흐렸다. 구름이라는 것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하유섬의 물줄기가 솟아나오는 여울오름으로 가려는 느낌으로 간선도로를 끼고 여기서부터 상록구라는 이정표와 가스기관을 제외한 내연기관 차량은 상록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에스페란토로 적힌 경고판도 넘어 여울오름 표지판을 따라서 대충 콘크리트로 포장되었거나 그마저도 없는 도로를 대충 2단 넣고 올라갔다. 덜컹거리는 이 깡통이 짜증나는게 덜컹임이다. 그리고 이내 하얀 안개가 앞에 자욱해지는 정상에 도착했다. 하유국 최고봉이라는데 차로 좀만 돌면 도착하는 정상이라니, 작은 섬 큰 한심함인가. 따뜻한 커피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면서 나는 그 물안개 자욱한 곳에서 잠시 있었다. 쌍라이트를 켜면서 당신이 몰고 온 깡통차 치우라고 누가 경적을 울리기까지는.
여기 왜 왔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푸른 요정 루미가 묻는다. 그냥 산길을 올라 구름 좀 잡고 싶었어. 그러면 왜 비가 올 지도 모르는 지금인거냐 묻는다. 그래야 구름이 낮게 깔려서 예뻐. 수긍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구석으로 빼주고서 사과의 뜻으로 상향등을 비춰준다. 답례로는 짧은 경적소리가 들렸다. 매너 좋은 운전자들과 구름 가까이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남서쪽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냥 그런 길일 뿐이었지만,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버려서 기쁘다. 그렇게 숲길을 달려서 숲 투성이인 상록구를 나오니 여기서부터 중앙구라는 이정표와 가스 및 에탄올기관을 제외한 모든 내연기관 차량 진입금지 해제표지판이 나온다. 간선도로의 시작점을 잡고 윈드실드 쪽을 열어서 시원하지만 춥기도 한 바람을 받아들이고 그저 여울오름에서 구름을 잡고 온 기분으로 4단 넣고 밟는다.
이 몽상가는 구름을 잡고 돌아와서는 그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빈둥거리며 내일 해야 할 일들을 걱정하고 있다. 이제 좀 나아졌나 싶은 주변 상황은 알게 모르게 악화되는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또 다음 날이 밝아오고 출근을 하고 또 요금소 직원이 경차냐고 내 깡통을 두고 물어보고 주차를 마치고나면 어서오라고, 어서 머신을 예열하고 옷 갈아입으라고 말하는 가게 주인 소녀인형,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카페에 들어오는 수많은 누군가들과 어쩌면 의미없이 탬퍼링 10초를 맞춰서 내리는 에스프레소, 근처 숲에서 불어오는 사늘한 바람과 부쩍 길어진 해를 바라본다. 그러면 바로 퇴근하자고 하며 나리가 가게 닫을 준비를 하면 나도 퇴근. 깡통에 시동을 걸고 남북간선도로 따라서 용케 설탕 만들고 남은 사탕무 찌꺼기로 만든 바이오메탄과 에탄올 혹은 전기로 굴러가는 자동차들 사이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하위차로 밟고 달려서 집으로 돌아온다. 운전은 피곤하고 깡통의 클러치는 너무 가볍고 스티어링 휠은 너무 무겁다. 조만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2CV 개조관련으로 찾아내어서 파워 스티어링이라도 달아야지 싶다만 차도 나리한테서 공짜로 받은 주제에 그럴 돈이 있나 싶군.
오늘의 뉴스. 또 어떤 해외언론에서 하유를 두고 '평행세계의 싱가포르'라고 칭한 건에 대하여 하유국 언론중재단과 외무부는 해당 표현을 즉각 사과하라며, 우리는 싱가포르처럼 결함있는 민주주의 체제도 아니며 벌금체계도 싱가포르급은 아니고 언제 어디서든 신고만 하면 시위행진이 가능한 나라임을 밝혔다는 소식이었다. 그나저나 저 표현에 발끈하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다. 싱가포르는 독립'당'했고 하유는 건국'당'했다. 그리고 둘 다 조그마한 섬나라에다 주변 나라들이 부러워하며 다언어 국가라는 공통점 때문이겠지. 서로 평행세계인 것은 일 년 내내 더운 싱가포르와 일 년내내 서늘한 하유를 빗댄 것이고. 외무부 성명이 저 표현에 화내는 것은 엄청 오래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그런 표현은 안 하겠다고 답장을 받은 적은 없다니 참 그렇네. 텔레비전 끄고 마당으로 나가니 집토끼 한 마리가 마당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갔다. 루미가 토끼 저 자식이 마당 아작낸다며 싫어하는 그 표정을 누군가 봤어야 하는데.
에어컨이 없어서 완전 얼음장인 이 깡통을 몰고 다니는 것이 너무 짜증나고 그래서 경비원의 계란 프라이를 팔기로 결심하고서 경비원에게 그렇게 말하자 어차피 자기는 새 차를 뽑거나 하기는 틀렸고 저 차가 위험해서 안 타는 것이니까 마음대로 하라기에 생각하기를, 남의 차를 함부로 교환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깡통을 팔면 좋겠지만 깡통은 받아주는 곳도 없을 테고 하유섬에서는 공방에서 만들어 막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찍혀서 갖고 있는 편이 더 비싼데다 이건 나리의 선물이다. 경비는 그나마 좋은 차를 가져오라며 대출을 쓰느냐고 묻는데 프라이드를 공짜로 넘기고 거의 새 차를 거저 데려왔다고 치자. 위험한 그걸 누가 가져갔냐고 놀랄게 뻔하잖나. 그렇게나 선물을 팔아넘길 생각을 하는 파렴치한놈에게 자기 차를 가져가라던 경비원에게 경의를 담아 경례를 올리자. 계란 프라이의 범퍼 상태를 살피고 깡통 녀석의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난방 스위치… 비슷한 것을 보았다. 엔진 열로 난방이라니, 이 정도로 돈을 아끼는 것도 재주긴 하다.
역시 운전은 왼발이 편한 대신, 반응이 굼뜬 자동변속기가 편한 것은 부정 못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깡통에 올라 북동쪽으로 가고 있다. 참나, 자율주행 시대에 에어백이니 ABS니 파워 스티어링이니 아무것도 안 달린 깡통을 타고 다니는 꼴이 뭔가 반어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엔진에서 나오는 난기로 차내 난방을 해결하는 레버를 찾아냈기에 이제 더 이상 간선도로를 쌩쌩 달려도 춥지 않고 사실은 하유섬에 아주 흔한 차니까 요금소에서도 구태여 차에 대해서 묻지 않게 됐으니 경쾌하다. 이제 자동차 문제는 끝났구나 생각하고 오늘의 일터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도중, 카페 주인장이 차를 바꿀거냐고 물어보는데 아마도 자기가 준 깡통은 네놈이 차마 못 팔을 거라고 매우 정확하게 맞추고는 차가 한 대 더 있으면 오히려 골치아플 거라며 나를 놀리고 들어간다. 그리고 주차 도중에 클러치 페달을 찾다가 밟고 있던 클러치를 급하게 놔서 뒷 범퍼를 우그러뜨릴 뻔했다. 끼익하는 소리에 뛰쳐나온 소녀인형은 이내 잘 세우고 들어오라며 다시 카페로 들어가고 다시 차를 세우고 나오니 가게 옆문과 울타리 틈새에서 고양이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야옹. 주차를 잘 못하는 것은 고양이가 위로해 준 셈이니 고마워, 과연 고양이야. 그렇게 하루하루가 깨달음의 연속이면 그걸로 된 거다. 그래봤자 인생 짧지만.
난방을 틀어도 찬 바람이 일단 들어오게 되어있는 엔진열 난방 스위치를 앞으로 당긴다. 진짜로 간선도로를 달리는 중인데도 참 시원해서 엔진이 이렇게 힘들어하니 난방 안 하는게 낫겠지 하며 스위치를 닫는다. 어차피 입춘도 지나 날씨도 따뜻하고 외투가 거추장스럽다. 그 뭐냐, 이제는 뭔가 싶다는 느낌이나 그 어떤 다른 느낌으로 살아보려는 그런 초월적인 느낌과 섞이는 귀찮음: 그래, 귀찮음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과 기타 등등이 나를 괴롭히는 그런거 따위는 없었다. 그냥 가스 충전비용, 유지비를 감당하기 힘든 그런 것들이 문제는 아니었다. 집으로 도착하고 또 하녀놀이 하는 푸른 요정과 마주친다. 무시하면 자꾸 따라와서는 자기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 불편한 것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런 말에는 거절로 대답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으니 나는 정말 바보라고 말해두고 푸른 요정이 내 슬픔을 파란 구슬로 꺼내가고서 푹 쉬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내 방으로 가서 좀 쉬어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한다. 정말있지 아무것도 염두가 안 날 때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좋겠다 싶은데 이제 내일이면 또 일을 나가야 하고 내가 지금 빌려살고 있는 집은 뒤로 나가면 바로 바닷가이다. 그게 좋기는 한데, 씁쓸하다. 그냥 뒷 쪽 바닷가로 나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 예전과는 다른 점이다 싶어서 그냥 젖고 또 젖는 백사장을 멀리 바라보며 걷는다. 걸어서 바닷가가 보이면 여기는 바닷가라는 뜻이고 바닷가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는 넓고 더욱더 공허해져서 이제는 전부 힘들어서 다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더욱 나를 괴롭히는데 그게 더더욱 엿같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 나를 지리멸렬하게도 더더욱 나를 괴롭혔다. 자유가 이렇게도 매우 어려운 말이었나 싶으면서도 항상 바라온 것이 자유다 싶으니 더더욱 지리멸렬이 강해진다. 자, 집으로 돌아가자. 이런 때에는 아무 것도 될 형편이 되지 않을 뿐더러 진저리가 쳐진다.
쓰고 있는 글마저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싶으면 어찌 되는건가 싶어서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프라이드와 2CV를 닦으러 간다. 지하에 있는 공영주차장 특성 때문인지 그렇게 먼지가 앉지는 않았지만 경비가 자동차를 정성스럽게 천으로 닦아주는 내 모습이 웃기다는 듯이 어느새 내 옆에서 볼을 쿡 찌르는 장난을 했고 이내 자기를 벌레 보는 눈빛으로 보지 말라고 하는 이 광경을 루미가 봤어야 했는데. 어느정도 닦은 뒤에 프라이드에 올라 시동을 건다. 자동변속기가 편한 것은 진짜 부정할 수 없고 현대적인 에어컨이 달린 이 차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이제부터 이 파란 프라이드를 타고 다니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여울오름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는 그런 삶의 여유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다. 결국 자동차라는 것이 없으면 좋다라고 계속해서 트램 선로 교체사업에 당하고 철도 연착에 당하고 겨우 갈 수 있는 명소라고는 미여울공원이나 식물연구소 개방시험정원, 남서 바닷가 그 정도로 좋다. 자동차는 돈도 많이 들고 멀리 가면 세워둘 곳을 또 찾아야만 하고 하니까 별로 매력적인 장난감도 아니다. 슬프군.
그렇게 다음 날은 밝아오고 나는 출근한다. 오토클러치가 달린 프라이드는 참 경쾌하게 간선도로를 달려서 북동쪽 카페거리에 닿는다. 제동하는데 클러치를 미리 밟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변속이 거칠게 되는 느낌을 상쇄한다. 그렇게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에 도난방지를 걸어놓고 들어가려는데 화난 표정의 인형소녀가 내 등 뒤에 있었다. 좀 작작 일찍 오라고 화를 내는데, 어째서 일찍 오는 것도 화를 내냐. 그런데 어차피 생각이라는 것은 참 간사한 법이다. 아름다운 정원국가에 살고 있어도 여느 나라의 최대도시처럼 살풍경한 중앙에는 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상하게도 카페에서 편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과 겨우 카페에서나 일하며 친구이자 카페주인인 인형소녀 나리에게 휘둘리는 것 같다는 느낌은 종이 한 장일 뿐이다. 자동차가 두 대라고 한 들, 둘 다 조그마한 경차이고 하나는 깡통에 자동변속기는 꿈도 못 꾸고 난방도 엔진에서 데워진 공기를 그대로 실내에 들이는 원시인 불 피우는 급의 물건이니까. 다른 하나는 콤프레셔 난방도 되고 자동변속기도 있으니까 설명을 생략하자. 그렇게 만족할 줄 모르는 나날이 지나가고 만족을 잃어가는 그런 나도 깨나 한심하려나 싶은 그런 것이 잠깐 숲에 목 좀 매고 올게 하는 생각을 만들었고, 아뿔사 실제로 입 밖에 내었냐. 소녀인형이 내 손목을 말 없이 붙잡아서 잡아당긴다. 일하면 잡생각이 없어진다며 테이블 치워달래. 그렇게 짧은 망상을 끝내고 왠지 돈에 묶인 노예처럼 일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면서도 상냥한 인형소녀가 운영하는 북동쪽의 카페가 많아 아름다운 거리의 어느 카페 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저 그거 하나를 행복으로 느끼자고 정하니 삶이 꽤 즐거워진다. 생각 하나로 즐거워졌다고 하는 것은 사실 금방 사라지는 거짓이지만.
시험정원이다. 그냥 걸어나오면 미여울공원이랑 이어지는 식물연구소의 시험정원을 겸한 개방공원. 그냥 싸돌아다니면서 습기에 강한 라벤더니 추위에 강한 로즈메리니 냉대기후에서도 설중매를 볼 수 있는 매화나무라던지가 눈길을 끌겠지만 그런 것들이 전부 생명공학보다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알면 아마도 파리 증후군에 버금가는 하유 증후군이 생겨버릴 것이다. 하긴, 이 섬에 평범한 인간도 살지만 진짜 마법을 거는 요정도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있고 그런 그 둘이 외로움을 잘 타기에 서로 어울려 살아갈 목적으로 만든 자동인형도 보통의 사람처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섞여 살아간다고 하면 여긴 판타지인가, 사이버펑크인가 할 것이고 '내가 아는 누군가 중에는 심약하고 하얀 남자아이 인형도 있고 인형들이 모여사는 북동쪽에서 카페를 하는 여자아이 인형도 있는데 하나같이 상냥해. 그런 탓에 인형들과 마주치면 인형이 되어버린다는 괴담도 있어'라고 하면 눈깔이 돌아가기 시작할거고 '어느 날, 나에게 푸른 요정이 찾아왔는데 그 아이는 우울 요정이야. 메이드 놀이를 하면서 나를 자주 살피는데 우울함을 푸른 구슬로 만들거나 혹은 대신 가져가서 자기가 우울해하고 나는 행복하라고 빌어주지'라는 말까지 하면 아마 자해하기 시작할거다. 이건 꿈이고 나는 꿈 속에서 꿈을 자각했으니 아프면 깨어날거야 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따뜻하게 포옥 안아주면서 꿈이 아니라 진짜고, 당신은 하유에 와 있다는 상냥한 말을 해주자고 표어제작소에서 공익광고도 때린 모양인데 그래도 첫 수교의 빌딩에는 비자를 단축해달라거나 본국의 의사를 보내달라는 사람들이 넘쳐나겠지. 그런 만큼이나 하유는 동화 속 세상이지만 아무도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런 동화 속에서도 나처럼 비참하게 사는 사람은 많다고. 당장에 나를 봐.
이런 이상한 나라에 제 발로 와서는 이상한 나라라고 까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일랑 그만 하고서 이제는 슬슬 집으로 가서 요리할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도 하녀 놀이를 하는 푸른 요정이 식사를 다 해놓고 있었고 와서 드세요라며 노래하듯 말하는 그것이 나는 어쩌면 마음이 놓이거나 아니면 곤란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일단은 배고프니까 식사를 하고 또 나가버리려고 하니 뭔가 아직 메이드복 차림의 루미는 대문을 두 팔로 막아섰다. 안 된다고 하는데 자꾸 마당의 토끼 얘기를 하길래 그런 빻은 소리 하려면 비키라고 명령했지만 돌아온 것은 싫은 소리다. 자꾸 토끼토끼거려서 무슨 말이냐 들어보기라도 하자 했더니 토끼를 사로잡아놨고 대단히 폭신하니까 토끼랑 같이 놀자고 지르는데, 당최 토끼가 어디 있다는거냐. 문을 막아선 푸른 요정에게 나가지 않을테니 토끼를 보여달라고 하자 시벌겋게 울먹이던 얼굴을 토끼랑 정말 놀거지 하는 어린 아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 방에서 흰 토끼 한 마리가 뿅하고 튀어나왔다. 두고 보자, 루미. 루미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니 용서를 해줘야 할지, 혼내야 할지 망설여진다. 이런 입장은 별로 그렇게까지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지만 그래도 적당해야 나도 좋지.
밤에는 밤고양이가 나타나서 부자들의 고액권 지페를 다 찢어놓거나 장난스럽게도 치킨같은 맛있는 것들을 훔쳐먹다 들켜서 그대로 뽀옹하고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다. 루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재미있게는 들으면서도 일단은 너한테는 안 온다고 얘기한다. 뭔 의미인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밤고양이는 애먼 상대에게 찾아오지도 않고 진짜 골탕먹어야 싼 녀석들에게 벌로 나타나는 녀석이라니까 안심하고 루미에게 다시 그 얘기를 꺼내니까 난감해 하며 분수에 안 맞는 물건을 갖고 있어도 나타난다고 내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문득 불길해서 블랙박스를 두 차에 의무적으로 미리 달았고 하유 사람들은 자동차가 요정한테 홀린 것에도 블랙박스를 제출할 정도로 순진하고 서로 도우면 자기에게도 그게 이득이라며 기꺼이 자기 의견을 내고 수사에 진심으로 협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밤고양이가 찍힌 블랙박스 영상 얻기는 쉬운 편이니 안심한다. 왠지 루미 녀석이 시무룩한 무표정 속에 웃으려는 표정을 숨기는 중인 게 딱 보이지만 속아주자고 잠이 든 그 다음 날, 계란 후라이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기어를 N단에 놓아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뚜두둑거리는 카뷰레이터 소리만 나는 프라이드에서 내려 그나마 구조가 단순하니 시동 걸리겠지 한 깡통도 나를 배신했다. 뚜두둑, 두둑, 뚜두둑. 나는 순간, 어젯밤에 웃음을 참던 루미를 떠올리고 대시보드를 팡팡 내리쳤다. 그리고 특이하게 생긴 기어봉이 제대로 중립에 넣어져 있는지 확인하려 좌우로 한 번 털고 보닛을 열었다. 아아 엿같게도 카뷰레이터 도선이 제대로 갉혀있다. 곤란해서 나리에게 출근이 곤란해졌다고 전화한 뒤, 집으로 다시 걸어가서 밤고양이가 아니라 밤쥐가 있냐고 루미에게 물어본다. 응, 그런 거 없어. 이게 루미의 대답이다.
블랙박스를 떼서 뒤진다. 어제자 영상에 분명 찍혀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진짜로 꼬리가 두 갈래인 고양이가 오늘 새벽 영상에 찍혀있네. 먀아옹거리면서 고로롱거리는 소리까지. 하지만 갑자기 스윽하고 밤고양이가 사라진 뒤에… 계란 프라이의 도난방지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 냐냐냐냥거리면서 깡통 밑으로 들어가더니 툭툭툭 소리가 나고는 밤고양이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리고 나보다 일찍 일어난 경비가 욕을 섞어 밤고양이가 귀찮다고 프라이드 여분 키로 다시 도난방지를 풀었다 잠근 뒤, 나는 그 두 시간 후에야 주차장에 들어와 참사의 현장과 마주한 것이다. 으아악! 나는 소리를 질렀고 루미는 소리 지르면 또 밤고양이가 나타난다고 나에게 겁을 주었다. 으아악거리기를 겨우 겁먹어서 멈추고 루미는 자기가 아는 녀석이 자동차를 고치는데 알려줄까 하면서 고양이 입으로 웃는다. 고양이 입으로 웃지 마, 이 체셔 고양아. 여튼 차를 고치는데는 루미의 아는 요정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왜 공구로 고치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고블린이 아니니까 그렇댄다. 걔는 기계를 고장내지 않냐 하니까 그걸 역으로 쓰는 머리가 요정한테 없을 것 같냐고 되묻는다. 쳐다보니 으쓱하는 루미, 그리고 내 등 뒤에 숨어서 수리과정을 지켜보는 포근하고 말랑한 봄이가 그곳에서 자동차 카뷰레이터를 다 고칠 때까지 지켜보았다. 지인찬스라 공짜라니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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