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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도 끝났고 집에 돌아간다. 그게 다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뭐가 그렇게 싫은지 오늘은 트램 바퀴까지 헛돌고 어느새 차가워지는 바람에 몸을 떨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오면 차라리 내 자가용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그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럴수록 푸른 요정 루미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정면으로 부딪히거라 하고 나는 난감해지지. 그나저나 어쩌라고 이렇게 모든 일이 난감하게만 느껴지는지 여러모로 힘들 뿐, 아무 느낌도 없이 이어지는 휴일을 맞고 만다. 맞았으니 아프다. 이제 편히 쉴 수 있다는 느낌으로 루미와 함께 마룻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리다 잠들어 버려서 잠꼬대로 루미를 인형인 양 껴안게 되어버리면 흠씬 맞고 잠에서 깬 뒤에 잠꼬대였냐 하면서 싫은 소리를 내는 무료함이 언제까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루미가 불편해하니까 방으로 들어가서 자자.
열차는 승강장에 선다. 서서 그 어떤 다른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렇게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걸까. 일단은 저 끝까지 가자고 타긴 했지만 어쨌든 북동카페거리 가듯이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것을. 그렇게 북동쪽벼랑역에서 가만히 있으면 엄청 작은 동차가 무개화차를 하나 달고서 도착한다. 사실은 목서마을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어차피 밭에서 딴 사탕무를 공장이나 큰 길가까지 실어나르는 것이 주 목적인 철길이라 이 정도로 되었나. 덜컹이며 낡은 트럭 소리를 내는 레일버스가 나를 하유섬의 유일한 공장 안으로 데려가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넓고 서늘한 사탕무밭을 거닐면서 그저 근대 잎사귀같은 사탕무 잎을 들춰보거나 가끔씩 오는 폭이 좁은 철길 위의 기관차를 구경한다. 하기사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설탕을 사가는 일과 앞서 말한 일들 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 아니면 협궤철도 따위나 공장 따위를 하유섬에서 볼 일이 없다. 그렇게 섬의 북동쪽 끝에 있는 유일한 공장과 그 부가시설인 너른 사탕무밭에서 시간 허비하고 다시 사탕무밭역과 북동쪽벼랑역을 왕복하는 조그마한 레일버스에 몸을 싣고 남북선 전철을 타고 돌아온다. 아마 내 얼굴에 표정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일상이 싫다고 해도 이런 정도 밖에 안 되니까 미쳐버릴 것 같고 단 것이 심하게 당긴다고 설탕 한 포대를 조지고는 바로 슈거하이 와서 죽어버리는 그런 느낌이다. 쉬고 싶다고 해도 이런 식은 아니야…하고 북동쪽의 어느 타르트 카페에서 나는 졸고 있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기계에 손을 델 뻔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오면 왕복 두 시간 남짓. 일단은 남서중앙에서 내려서 버스보다 자주 오는 트램으로 갈아타고 그래보아도 짜증이 나서 화가 날 정도가 될 즈음에 어디선가 익숙한 모습의 하얀 소년이 나를 보고 살짝 놀란다. 왜, 어째서 지금이냐고 하니까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 아이는 분명 나와 한 바닷가를 두고 반대편에 사는데 왜 나랑 같은 방향으로 가는거지 하면서 내릴 정류장 놓치기 전에 하차벨을 눌러두자. 그렇게 트램에서 같이 내려서 같이 걸어가며 시험정원에서 같이 앉아서 가만히 있는거다. 하얀 비둘기같은 소심한 소년인형과 일 끝나고 집 돌아가던 한량이 말이다.
그렇게 시험정원에서 할 일 없이 소심한 소년인형을 쓰다듬어 주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무래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지루함을 불러오고 그런 만큼이나 외로움과 우울함을 불러온다. 루미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뭔가 불편하신가요 하면서 하녀 놀이를 시작했고 나는 그만 두라고 일러둔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보다가 쓰다듬어 버리는데 왠지 다 귀찮았다. 이럴 바에는 잠드는 편이 낫겠지. 잠이 들면 하유섬을 날아서 구경하다가 바다로 추락하는 꿈도 꾸고 부자가 되었지만 그 돈을 다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꿈도 꾸고 루미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꿈도… 꾸는구나. 제발 진정하라는데 진정할 일이 있어야 진정을 하겠지? 그러자 지금 진정할 일이 너한테 있으니까 진정하라고 면박을 준다. 그래, 쉬어야 하겠지. 쉬고 나서야 뭐든 한다. 마치 동력을 적절한 때에 끊어주어서 매끄러운 변속을 돕는 클러치처럼.
그렇게 두 번의 휴일이 왔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놀았다. 전차가 종을 울리며 중앙으로 도착하는 것과 전철이 지상을 왔다갔다 하며 달려가는 것하며 버스가 구석구석 다니는 것을 그저 그 속에 올라 타서 느꼈다. 만차가 되기도 하고 풍경이 변하거나 선로가 이어지고 흩어지고 차로가 늘어나고 줄어들고 하는 그 안에서 그냥 무료하게 턱 괴고 있을 뿐. 이상하게 이렇게 싸돌아다니며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섬나라를 다 둘러보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출근해서 커피 뽑고 주변 정리하고 일단은 그렇게 하고 나서 정리가 끝나는 일상을 보내며 간간히 수동변속기 쓰는 법을 연습하고 언제 한 번 떨어진 설욕을 일단 오늘 만회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동변속기 차량이 싸도 지금 내가 살 수 있는 저렴한 차는 없어. 그게 짜증날 뿐이다. 수동 몰 수 있어도 그냥 그렇게 자격으로만 남은 것이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본다. 자동차들이 가득 채워져서 나가는 가스 충전소와 주차장 한 켠의 전기차 충전소가 보이고 도로의 중앙으로는 트램이 달리고 있다. 다시 찾은 하유제당의 사탕무밭은 엄청 컸다. 그게 전부였다. 해가 지면 가로등이 없는 너른 밭의 특성상 별이 보이겠지. 여기, 공장에서 자동차 몇 대랑 레일버스가 대열을 지어 밤하늘 아래의 공장 인입로를 나가는 하유제당 광고를 떠올리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여기에 오래있어봤자 경비 쪽에서 의심이 가는 사람 취급을 받고서 얼어 죽지말고 집으로 가라는 권유를 받겠지. 해가 지고 별까지 나온 밤에 레일버스 담당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별자리 볼 줄도 모르는 채로 별이나 실컷 보다가 바이오가스 포집시설 쪽으로 걸어간다. 안내도에는 발전소가 있다고 적혀 있으니 아마도 상근조에게 부탁하면 북동구청까지는 갈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가스포집시설 근방에 상근조 따위는 없었다.
걸어서 북동구까지 걸어오니 낯익은 건물 앞에 쓰러진다. 막차도 다 끊겨서 여기서 아침까지 픽 쓰러져 있으면 왠지 자기 가게 직원이 가게 앞에서 죽어 있다면서 안 그래도 하얀 카페 주인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리겠지.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침에 네스토 데 피고의 문을 여는 나리는 나를 벌레 보듯이 보고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라 명령한다. 그리고 난방을 켜고 오늘은 휴게실에서 자고 깨우면 일어나라며 한숨을 쉬고 어딘가 구석에 앉는다. 어지간히 곤란한건가. 그렇게 바깥에는 상록숲으로 가는 노면전차가 다시 움직이고 카페에는 첫 손님이 왔고 나리는 탁자에 엎드려 졸던 나를 깨웠다. 등짝을 후려쳐서. 그게 일 시작하라는 신호. 일은 내가 자꾸 병든 닭처럼 졸고 손님도 그렇게 많지 않은 관계로 조퇴당했지만. 오늘은 좀 쉬라면서 등 떠밀려서 트램 정류장에서 덜덜 떠는 모양이란 좀 한심했다. 그리고 요새는 대출이라도 받아서 자가용을 사야겠다는 사악한 생각도 할 정도라니 이제 내가 어디까지 가련지 걱정하는 루미의 눈 앞에서 천장장식 되는 꼴을 보여주면 되겠지. 상록선 트램이 종점인 목서로역 앞 정류장에 선다. 그렇게 목서로역 앞의 편의점에서 목캔디를 하나 사고 강박적으로 막 털어넣으며 개찰구를 지났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역무원들이 귀찮았다. 그리고 남서중앙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출근하고 커피 뽑고 대타가 오면 교대하는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기분이 묘해지는 법이다. 그렇게 북동카페거리 정류장에서 목서로역까지 가는 버스나 트램을 타고 목서로역에 도착하면 남서중앙까지 전철, 그리고 남서중앙역에 도착하면 남서중앙역 정류장에서 버스나 트램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차창을 바라보면 또 뭐가 있나, 항상 바라보는 차창이 있지. 그런 나날을 지내는 것도 지쳐서 또 집에 들어가 루미를 괴롭히고 방 안에 처박힌다. 그리고 어느 신박한 미친 짓이 떠올랐는지 중고차 시장으로 간다. 그리고 가장 폐급이라 거저 줄 수 있는 차를 찾을 것이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면 어딘가에 주차타워처럼 있는 중고차 시장. 상담실 안에는 자동차 몇 대랑 레일버스가 대열을 지어 밤하늘 아래의 공장 인입로를 나가는 하유제당 광고가 모니터에서 나오고 있다. 뭣도 없이 거저 가져갈 수 있는 폐급 자동차를 찾는 나를 무슨 벌레보는 눈으로 보는 딜러는 돈이 없다면 그냥 걸어다녀도 하유는 괜찮잖아요, 작고 교통 편하고 경치 예쁘고를 지껄여서 자동차가 필요한 이유를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뭣때문에 필요한지, 집에 차고가 있거나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있는지 묻는 말에 덤덤히 있다가 자동차라는 사치품을 감히 사려 그래서 미안하다고 고개 숙이고서 그 곳을 나왔다. 딜러들은 아마 미친 놈 다 봤다고 했겠지.
다음 날, 그 이야기를 나리에게 해주자 나리는 내가 그 정도 미친 놈인지는 몰랐다고 뭘 사더라도 자동차를 사는 것은 대출 없이 무리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확연히 그렇다. 그리고 하유에는 자동차가 전부 가스나 전기로 굴러가는 바람에 너무나도 제약이 많고 또한 힘들다. 그러니 오늘도 그저 일하면서 생각을 지운다. 일하다가 커피머신에 손 데일 뻔하고 이상하게 정신이 깨져나갔지만 상관 없어. 그렇게 또 기다려서 트램 타고 전철로 갈아타서 다시 트램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지. 좀 한 번에 가는 전철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전철 구간에 낮은 승강장을 만들거나 하지 않고 남서선만 지하로 묻어버릴 것이 뻔해서 바라는 것이 오히려 잃는 것이지. 오늘도 어디와 달리 쾌청하고 별도 좀 보이는 하늘을 가만히 트램 정류장에 서서 바라보다가 집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들여다본다. 원래 살던 나라에서 따서는 하유에서 교환받은 면허증이다. 하지만 면허 있으면 뭐하나, 일단 집에 차고도 없고 차를 살 돈도 없고 빌릴 돈도 없다. 그 다음으로는 하유국의 시민권 그 자체인 여권을 들여다본다. 여기 왜 왔지 하는 느낌으로 처음 여권 만들던 날에 출입국관리소가 있는 건물에 대사관이 다닥다닥 있고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뭐, 이중계약으로 야바위쳐서 중화 양안과 동시수교하고 일본과 수교한 이후에 한국과 수교했지만 북조선이 꼭 수교하자고 압박하고 결국 내각에까지 이 건이 상정되어 겨우겨우 남북 모두와 수교하는 대신에 일본하고 한국, 하유 서로 간의 90일 간 무사증 입국을 허용하고 자유로운 교류와 무역을 보증하는 상호협정이 있었건 나는 지금 돈도 없고 여권 만료기간도 다 되어가서 심히 심란해졌다. 바깥에 나가서 잠시 바람을 쐬거나 혹은 시험정원으로 가거나 해서 기분 가라앉히려고 여러 노력은 하지만 그 뿐이다.
숲 속을 달리는 트램에서 내려 좀 걸으면 어차피 일터도 가까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상록구는 아니고 북동구에 속하는 작은 숲이라 언제 또 밀릴 지 모른다. 하지만 나아간다. 일하기 직전에 스트레스는 해롭기 때문이다. 잠시 걸으며 시간을 확인하고 또 불안해 하고, 날씨는 차가워지는 가운데서 아직 출근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을 강제로 가라앉힌다. 출근을 하고도 그리고 일하면서도 불인함이 가시지를 않아서 퇴근하는 길에 차에 치일 뻔도 하고 트램을 잡으려고 뛰어가다가 발목 접지를 뻔하기를 겪다니, 단단히 운수가 이상하다. 그리고 트램 타려다가 발목을 접지를 뻔했으니 집에 가는 길은 버스와 함께했다. 간선도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트램과 전철을 타고 가는 그 돈보다는 더 들지만 갈아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인가. 하차태그를 하고 집 앞의 바닷가 근처에 내렸을 때, 누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봄이였다.
일단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카푸치노 두 잔을 시킨다. 졸음이 밀려와서 하품을 하고 봄이를 귀여워하는 저녁시간이었다. 봄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그 은빛 눈으로 빤히 쳐다보다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런 애가 내 친구라니, 조금은 이해가 안 가지만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 그저 서로 마주보는 것이 봄이의 수줍은 행복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있다가 봄이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은 그만 칭얼댈래 하면서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 그렇게 서로 반대방향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도착하면 잔소리 하는 귀여운 요정과 포근한 잠자리가 있다. 그렇게 하루를 닫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어 출근을 준비하고 나가보니 트램 운행이 전차선 보수공사로 중지라고 되어있는 그 광경과 조그만 미니버스가 사람들을 역까지 실어나르는 그런 일을 겪었다. 전철을 타고 목서로역에 내려도 트램은 전차선 보수공사로 운행을 당분간 중지합니다에 빡칠 즈음에 멀리서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나리 녀석이 데리러 온 것이다.
일단은 오만상 지으며 조수석에 오른다. 그리고 재주 좋구나, 자가용이 있다니 하면서 흘겼다. 하얀 인형소녀는 또 그 소리를 듣고 없는게 이 작은 섬나라에서는 정상이라고 말해두는데 또 그러면서 가스 개조하기 귀찮아서 창고에 짱박아둔 녀석을 가져가려냐고 말한다. 일단 통장잔고 보고 얘기할게라고 말을 끊은 뒤에 창문을 열려고 해보니 이미 네스토 데 피고에 도착해 있었다. 자신은 잠시 볼 일이 많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가게 열쇠를 건네고 자기 자동차를 차고에 세우는 것까지는 봤는데, 과연 카페에 들어오지를 않네. 그나저나 자가용 있으면 좋겠지 하면서 에스프레소 기계를 예열하고 첫 손님의 커피를 팔고 몇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가게주인과 손님을 기다리며 내가 마시려고 머신을 다루고 하는 동안에 가게주인이 돌아왔다. 젠장이라 된소리 하면서 왠지 올드카 수준의 자동차에나 쓰일 열쇠를 살짝 보이도록 쥐고 있는데 가게 잘 보고 있었니 야옹아 수준으로 나를 보며 웃은 뒤에 손에서 쇼윈도로 뭔가를 떨군다. 가져가라는 소리겠지. 그리고 내가 알려주기도 전에 가게 열쇠를 찾아서 열쇠함에 걸어놓는다. 이거 때문에 그런건가 하면서 갸웃거리는 찰나에 오늘 일은 여기서 끝. 나리가 가게를 닫고 자기가 준 열쇠는 갖고 나오라고 한다. 참 나.
하유국 내각에서 천연가스를 제외한 화석연료를 못 태우게 해버린 뒤에 개조도 귀찮고 위험하겠다 창고에 박아두었던 엄청 낡은 자동차를 나리에게서 선물받은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가스값과 자동차 정비비용은 이제부터 내 부담에 내가 사는 집에는 차고가 없어 통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서 미치겠네. 문제는 이 차가 수동변속기 사양이라서 말이지. 발 밑에 페달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보고 굳은 나에게 그건 클러치라고 가르쳐 주는데 나는 면허증에 자동변속 한정이라 적혀있다고 말하자 하유에는 그런거 없어, 교환받았니 물어보면서 브레이크와 클러치 밟고 시동이나 걸어보라 명령한다. 부르릉, 덜-컹. 이마에 손을 짚는 인형소녀와 병신같은 인간청년이 뭐하자고 이 동글동글한 자동차 안에서 클러치를 잘 다루는 법에 대해 목청 높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 가르쳐 줄테니 잘 하라고, 클러치 슬며시 때면서 엑셀을 꾹 밟아 지지라고 한다. 부-웅, 차가 나간다. 기어 바꿀 때도 엑셀 떼고 클러치 밟고 기어 올리거나 내리고 엑셀 밟으라고 하며 거의 사고 안 난 것이 용할 정도의 실력으로 남서쪽까지 왔네.
이마를 짚고 내리는 나리는 익숙해지면 쉽다고 나를 기만하지만 여튼 북동쪽으로 가는 버스나 가르쳐달라고 하며 해안통 공영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차가 내 것으로 돌아와도 등록이나 소유권 이전이 필요하다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라네. 그렇게 나리는 나에게 쓰던 골칫덩이 고물차를 고쳐서 선물하고는 버스 타고 북동쪽으로 돌아가버렸다. 참 나, 돈을 벌게 해줘서 고마운 녀석이 어쩌자고 저런 친절을 베푸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차를 잘 살펴본다. 의외로 시골 아낙네가 달걀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탈 수 있고 또 시골 사내가 모자를 쓰고 탈 수 있는 차를 지향해서 만든 동글동글한 자동차다. 이런 차가 하유에 있었다는 자체가 충격이지만 이런 것을 그저 가스 개조만 하고 나에게 넘긴 그 소녀인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며 에어컨도 없고 클래식한 차를 몰고 다니며 시선을 느끼라는 일종의 놀림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
다음 날은 전차선 공사가 끝나고 트램이 다시 움직였기에 몰기도 힘든 2종 세금을 내는 차라는 것은 지하주차장에 짱박아두고 출근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듣는 소리는 차는 두라고 있는게 아니라는 카페주인의 장난. 그렇게 손님 드문 카페에서 아무말이나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안통 공영 지하주차장에 들러 선물받은 자동차 시동을 켜보면서 이게 진짜로 여기 왜 있지 의아해하고 그저 멀뚱했다. 이것이란 정말 쓸모없는 기계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몰아보자 싶은 기분으로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나와서 한산한 남서해안로를 달리는 기분은 좋았지만 겨우 4단 밖에 안 되는 기어는 꽤 애매했다. 그리고나서 두번째 유턴 차로에서 유턴한 뒤에 다시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나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차를 팔고 다른 차를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차장에서 나오니 트램 한 대가 짤랑이며 지나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충전소의 메탄 가격을 보았고 대략 울고 싶어졌다. 그냥 바로 집에 가서 쉬는 수밖에. 집에 돌아오니 또 루미가 우울해하고 있다. 그렇게 우울함을 대신 가져가줘서 뭐하게 하니까 한숨 쉬고 사실은 이런 짓을 하고싶지 않다는 말로 대답한다. 진짜 자차가 생긴다고 좋은 일 하나 없구나.
다음 날은 일신 상의 사유로 나흘 쉰다고 나리에게 알렸다. 그리고 루미에게 떠넘겨 받은 차를 보여주었다. 루미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른 차들과 달리 왼쪽으로 꺾어서 당겨야 1단이 들어가는 이 차를 타고 일단은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북서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들어가고 말았다. 원래 휘발유 엔진인 것을 하유국 규제에 맞춰서 가스 엔진으로 바꾸다보니 약간 털털거리는 것은 참을 만했다. 다만,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보니 루미에게 안 보이게 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가 운전에나 집중하라는 핀잔도 듣고, 요금소에서는 같은 곳을 가는 전철보다 더 비싼 요금을 내야 했던데다 거의 도착해서는 가스가 다 돼서 충전소를 찾아야 했다. 가스 충전까지 하니까 차를 부수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그만 두었다. 푸른 요정이 보고 있어. 차가 참 귀엽다고 에스페란토로 얘기해주는 행인이 아니었으면 문 열 때마다 참치캔 따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이 차의 어딘가 움푹 패였겠지.
그렇게 그냥 무료하게 시간은 흘렀다. 운전을 해서 도착한 북서쪽 첫 상륙지로 가면서 얼마나 스톨로 차가 덜걱덜걱 거렸는지 루미는 내리자마자 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대단히 삐친 표정으로 싫은 소리로 징징대고 나는 그렇게 운전하는 것이 실력부족 때문이라고 확실히 알기에 더 난감하다. 바닷가다. 어차피 내비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고속도로 이정표에 있는 여기 외에는 없다. 그나저나 첫 정부수반들이 나라 세울 생각도 없이 도망치고자 여기에 처음 왔다고 했던가, 위성전화가 걸려서 다행이라는 여기서의 첫 통화 이후에 몇 년이 더 흘러서 나는 남서쪽에 왔지. 그리고 이제 뭐할거냐는 루미 말에는 집에 간다고 일러두었다. 에엣하는 표정을 짓지만 이제 스톨을 일으키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것을 보고 이제 운전하고 다니라며 조수석에서 잠든 루미 녀석을 안전하게 집 앞 공영 지하주차장까지 데리고 왔다.
다음 날…이 아니라 사흘 휴가를 다 쓰고 출근하는 길, 역시 날씨가 추워졌는데 무난방 자동차를 모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면서 네스토 데 피고까지 헤매며 도착했다. 그리고 나리는 용케 차를 몰고 왔다고 비아냥인지 장난인지 모를 소리를 한다. 그렇게 오늘 일이 시작된다. 커피 머신은 김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어서 루미는 어떤 생각으로 눈 내리는 거리를 보고 있을까 생각도 하며 아차, 내 차에 ABS 안 달려있는데 블랙 아이스 만나면 어쩌지 하면서 고민만 쌓이는 근무시간이 시작되었다. 역시 북동쪽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상록숲을 둘러보다가 카페가 있기에 간단한 식사나 파이랑 함께 커피나 차를 마시고 계산하고 나갈 뿐인데도 하루에 백 명은 온다니까. 그게 용하다고 생각하며 퇴근시계가 울리자마자 퇴근한다고 인사하고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간선도로가 그다지 막히지 않아서 편하게 운전하기는 개뿔이, 오히려 정체가 아니면 고속을 두려워하기에 밟지를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냥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든 말든 그대로 있었는데 안 되겠으면 밟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쫄보 운전자가 여기 있구나. 다행히도 가스가 다 돼서 휴게소로 빠질 수 있었기에 한숨 돌리고 집 앞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기간이 지난 통행료 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주차장을 나와 집으로 걸어간다. 트램이 지나간다. 그리고 겨울이 깊어진다. 바닷가 바람도 차가워지고 라벤더 덤불에도 약간 갈색이 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빤히 보더니 공원 쪽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면 루미가 또 메이드 놀이를 하고 있다. 그만 두라고 화내면 걱정되니까 한다고 되려 화내는 푸른 요정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거실 창문에 드리워놓은 커튼이나 걷고 텔레비전 켜고 무료하게 소파에 눕는다. 그대로 잠들어버릴 작정으로.
차에 시동을 건다. 여기서부터 중앙구라고 알려주는 표지판 너머 하유섬 정중앙의 거대한 회전교차로를 돌아서 아홉 시 방향으로 나간다. 그리고 ABS가 없어서 커브를 거칠게 돌면 좌우로 요동치는 멍청한 자동차를 몰고 집과는 반대쪽, 해안도로를 끼고 해저터널 지나서 국제터미널이 있는 관문구로 들어왔다고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면 공항과 항구가 있고 수입된 모든 자동차를 검사하고 연료로 천연가스를 쓰도록 개조하는 시설과 하유국에 상륙한 휘발유나 디젤을 쓰는 차들이 장기간 주차되어 있는 체류주차장이 나오고 관문 암초공원 쪽으로 나가면 본섬으로 나가는 배가 떠나는 선착장과 조그만 아파트 단지 몇몇이 보인다. 그리고 이따금씩 자동차 경주가 열리고는 하는 가개통 도로 쪽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며 클러치와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아서 미끄러지며 급정거. 왠지 깡통같은 차라 전복되는 줄로 알았다.
관문구 가개통 도로에서 드리프트를 하며 뭘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튼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런 고물차로 여기까지 와서 드리프트로 턴을 도는 저 미친 새끼는 뭐냐하는 눈빛을 상향등처럼 쏘며 지나가면 나는 상향등 두 번으로 응수한다. 그럼 그냥 지나가거든. 그렇게 차가 망가질 것 같아서 우선은 차의 엔진도 좀 식힐 겸해서 기어를 중립에 두고 시동을 끄고서 깡통같은 이 차에서 내렸다. 답답하군. 불안한 여유로움은 그냥 불안함과 동류일 뿐이지 절대 여유로움의 일종으로 봐줄래야 봐줄 수가 없다고. 그런 답답함은 수동변속기도 가벼운 클러치도 심지어는 깡통으로 만들어진 듯이 매우 엉성하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자동차를 탄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라디오도 없고 에어컨도 없고 그저 시골 사람들이 부담없이 탈 수 있는 차이기에 왠지 문을 열 때마다 참치 캔 따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내 차에 다시 올라서 후진 후 가개통 도로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간선도로 달리는 동안에 무엇을 보았는가 하면 내가 쫄보라 하위차로를 지키며 가는 시야와 웬 깡통이 도로 위에 있다고 이상하게 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빨리 남서나들목으로 나가버렸으면 하고 정체를 탓하지만 그게 그거다. 짜증을 내나, 안 내나 오십보 백보라고.
그나마 자동차를 거저 받았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나는 거저받은 자동차에 단 하나 불만이 있었다. 바로 에어컨이 없어서 냉난방 불가라는 점이었다. 나리에게 그 얘기를 해주니까 깔깔거리면서 타다보면 따뜻해진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수틀리면 팔아치우거나 새로 한 대 사라고 하는데, 그게 내 수준으로 가능해보이나? 간선도로를 달리는데 추워서 혼난 그게 사실은 내가 난방을 잘 쓰지 않아 난방이 되건말건 새들어오는 웃풍이 문제라고. 그렇게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추워하던 와중에 경비가 나를 불렀다. 그 깡통, 춥지 않나? 말이라고 한답니까? 춥지요. 한국어를 쓰는 경비와 가뿐히 말이 통한 와중에 자기는 픽업이 있으니 '그나마 제대로 된 차'를 가지고 가지 않겠느냐 하고 자동차 열쇠를 내게 하나 넘긴다. 돈은 안 줘도 된다며 자신의 파란 계란 프라이를 부탁한다며 번호판 번호를 가르쳐주는데 …젠장.
다음 날 출근은 고속도로 위에서부터 비교적 수월했다. 이 차가 미국, 일본, 한국에서 동시에 먹히는 자동차를 만든 결과라 그런가? 그래도 이게 그 유명한 이란에서 만들어 수입해오는, 하유에서 가장 싼 자동차라지만 우려먹는 것은 또 뭐냐고. 또 공짜 자동차를 얻다니 운 좋다고 쳐도 결국에는 내 힘으로 이룬 것도 아니니 그저 오만상 가득한 얼굴로 차고에 차를 세운다. 커피머신의 따뜻함이 에어컨 한 방에 차 안에 깃든 느낌이라 똑같은 깡통인데 어째서 시대가 다르면 이렇게 다르냐 싶어 고개 떨구고서 출근. 말 없이 커피머신 예열하고 어느 결에 따라들어온 고양이를 달래준다. 오늘도 손님이 적을까.
열차는 승강장에 선다. 서서 그 어떤 다른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렇게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걸까. 일단은 저 끝까지 가자고 타긴 했지만 어쨌든 북동카페거리 가듯이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것을. 그렇게 북동쪽벼랑역에서 가만히 있으면 엄청 작은 동차가 무개화차를 하나 달고서 도착한다. 사실은 목서마을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어차피 밭에서 딴 사탕무를 공장이나 큰 길가까지 실어나르는 것이 주 목적인 철길이라 이 정도로 되었나. 덜컹이며 낡은 트럭 소리를 내는 레일버스가 나를 하유섬의 유일한 공장 안으로 데려가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넓고 서늘한 사탕무밭을 거닐면서 그저 근대 잎사귀같은 사탕무 잎을 들춰보거나 가끔씩 오는 폭이 좁은 철길 위의 기관차를 구경한다. 하기사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설탕을 사가는 일과 앞서 말한 일들 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 아니면 협궤철도 따위나 공장 따위를 하유섬에서 볼 일이 없다. 그렇게 섬의 북동쪽 끝에 있는 유일한 공장과 그 부가시설인 너른 사탕무밭에서 시간 허비하고 다시 사탕무밭역과 북동쪽벼랑역을 왕복하는 조그마한 레일버스에 몸을 싣고 남북선 전철을 타고 돌아온다. 아마 내 얼굴에 표정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일상이 싫다고 해도 이런 정도 밖에 안 되니까 미쳐버릴 것 같고 단 것이 심하게 당긴다고 설탕 한 포대를 조지고는 바로 슈거하이 와서 죽어버리는 그런 느낌이다. 쉬고 싶다고 해도 이런 식은 아니야…하고 북동쪽의 어느 타르트 카페에서 나는 졸고 있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기계에 손을 델 뻔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오면 왕복 두 시간 남짓. 일단은 남서중앙에서 내려서 버스보다 자주 오는 트램으로 갈아타고 그래보아도 짜증이 나서 화가 날 정도가 될 즈음에 어디선가 익숙한 모습의 하얀 소년이 나를 보고 살짝 놀란다. 왜, 어째서 지금이냐고 하니까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 아이는 분명 나와 한 바닷가를 두고 반대편에 사는데 왜 나랑 같은 방향으로 가는거지 하면서 내릴 정류장 놓치기 전에 하차벨을 눌러두자. 그렇게 트램에서 같이 내려서 같이 걸어가며 시험정원에서 같이 앉아서 가만히 있는거다. 하얀 비둘기같은 소심한 소년인형과 일 끝나고 집 돌아가던 한량이 말이다.
그렇게 시험정원에서 할 일 없이 소심한 소년인형을 쓰다듬어 주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무래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지루함을 불러오고 그런 만큼이나 외로움과 우울함을 불러온다. 루미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뭔가 불편하신가요 하면서 하녀 놀이를 시작했고 나는 그만 두라고 일러둔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보다가 쓰다듬어 버리는데 왠지 다 귀찮았다. 이럴 바에는 잠드는 편이 낫겠지. 잠이 들면 하유섬을 날아서 구경하다가 바다로 추락하는 꿈도 꾸고 부자가 되었지만 그 돈을 다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꿈도 꾸고 루미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꿈도… 꾸는구나. 제발 진정하라는데 진정할 일이 있어야 진정을 하겠지? 그러자 지금 진정할 일이 너한테 있으니까 진정하라고 면박을 준다. 그래, 쉬어야 하겠지. 쉬고 나서야 뭐든 한다. 마치 동력을 적절한 때에 끊어주어서 매끄러운 변속을 돕는 클러치처럼.
그렇게 두 번의 휴일이 왔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놀았다. 전차가 종을 울리며 중앙으로 도착하는 것과 전철이 지상을 왔다갔다 하며 달려가는 것하며 버스가 구석구석 다니는 것을 그저 그 속에 올라 타서 느꼈다. 만차가 되기도 하고 풍경이 변하거나 선로가 이어지고 흩어지고 차로가 늘어나고 줄어들고 하는 그 안에서 그냥 무료하게 턱 괴고 있을 뿐. 이상하게 이렇게 싸돌아다니며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섬나라를 다 둘러보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출근해서 커피 뽑고 주변 정리하고 일단은 그렇게 하고 나서 정리가 끝나는 일상을 보내며 간간히 수동변속기 쓰는 법을 연습하고 언제 한 번 떨어진 설욕을 일단 오늘 만회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동변속기 차량이 싸도 지금 내가 살 수 있는 저렴한 차는 없어. 그게 짜증날 뿐이다. 수동 몰 수 있어도 그냥 그렇게 자격으로만 남은 것이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본다. 자동차들이 가득 채워져서 나가는 가스 충전소와 주차장 한 켠의 전기차 충전소가 보이고 도로의 중앙으로는 트램이 달리고 있다. 다시 찾은 하유제당의 사탕무밭은 엄청 컸다. 그게 전부였다. 해가 지면 가로등이 없는 너른 밭의 특성상 별이 보이겠지. 여기, 공장에서 자동차 몇 대랑 레일버스가 대열을 지어 밤하늘 아래의 공장 인입로를 나가는 하유제당 광고를 떠올리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여기에 오래있어봤자 경비 쪽에서 의심이 가는 사람 취급을 받고서 얼어 죽지말고 집으로 가라는 권유를 받겠지. 해가 지고 별까지 나온 밤에 레일버스 담당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별자리 볼 줄도 모르는 채로 별이나 실컷 보다가 바이오가스 포집시설 쪽으로 걸어간다. 안내도에는 발전소가 있다고 적혀 있으니 아마도 상근조에게 부탁하면 북동구청까지는 갈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가스포집시설 근방에 상근조 따위는 없었다.
걸어서 북동구까지 걸어오니 낯익은 건물 앞에 쓰러진다. 막차도 다 끊겨서 여기서 아침까지 픽 쓰러져 있으면 왠지 자기 가게 직원이 가게 앞에서 죽어 있다면서 안 그래도 하얀 카페 주인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리겠지.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침에 네스토 데 피고의 문을 여는 나리는 나를 벌레 보듯이 보고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라 명령한다. 그리고 난방을 켜고 오늘은 휴게실에서 자고 깨우면 일어나라며 한숨을 쉬고 어딘가 구석에 앉는다. 어지간히 곤란한건가. 그렇게 바깥에는 상록숲으로 가는 노면전차가 다시 움직이고 카페에는 첫 손님이 왔고 나리는 탁자에 엎드려 졸던 나를 깨웠다. 등짝을 후려쳐서. 그게 일 시작하라는 신호. 일은 내가 자꾸 병든 닭처럼 졸고 손님도 그렇게 많지 않은 관계로 조퇴당했지만. 오늘은 좀 쉬라면서 등 떠밀려서 트램 정류장에서 덜덜 떠는 모양이란 좀 한심했다. 그리고 요새는 대출이라도 받아서 자가용을 사야겠다는 사악한 생각도 할 정도라니 이제 내가 어디까지 가련지 걱정하는 루미의 눈 앞에서 천장장식 되는 꼴을 보여주면 되겠지. 상록선 트램이 종점인 목서로역 앞 정류장에 선다. 그렇게 목서로역 앞의 편의점에서 목캔디를 하나 사고 강박적으로 막 털어넣으며 개찰구를 지났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역무원들이 귀찮았다. 그리고 남서중앙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출근하고 커피 뽑고 대타가 오면 교대하는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기분이 묘해지는 법이다. 그렇게 북동카페거리 정류장에서 목서로역까지 가는 버스나 트램을 타고 목서로역에 도착하면 남서중앙까지 전철, 그리고 남서중앙역에 도착하면 남서중앙역 정류장에서 버스나 트램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차창을 바라보면 또 뭐가 있나, 항상 바라보는 차창이 있지. 그런 나날을 지내는 것도 지쳐서 또 집에 들어가 루미를 괴롭히고 방 안에 처박힌다. 그리고 어느 신박한 미친 짓이 떠올랐는지 중고차 시장으로 간다. 그리고 가장 폐급이라 거저 줄 수 있는 차를 찾을 것이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면 어딘가에 주차타워처럼 있는 중고차 시장. 상담실 안에는 자동차 몇 대랑 레일버스가 대열을 지어 밤하늘 아래의 공장 인입로를 나가는 하유제당 광고가 모니터에서 나오고 있다. 뭣도 없이 거저 가져갈 수 있는 폐급 자동차를 찾는 나를 무슨 벌레보는 눈으로 보는 딜러는 돈이 없다면 그냥 걸어다녀도 하유는 괜찮잖아요, 작고 교통 편하고 경치 예쁘고를 지껄여서 자동차가 필요한 이유를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뭣때문에 필요한지, 집에 차고가 있거나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있는지 묻는 말에 덤덤히 있다가 자동차라는 사치품을 감히 사려 그래서 미안하다고 고개 숙이고서 그 곳을 나왔다. 딜러들은 아마 미친 놈 다 봤다고 했겠지.
다음 날, 그 이야기를 나리에게 해주자 나리는 내가 그 정도 미친 놈인지는 몰랐다고 뭘 사더라도 자동차를 사는 것은 대출 없이 무리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확연히 그렇다. 그리고 하유에는 자동차가 전부 가스나 전기로 굴러가는 바람에 너무나도 제약이 많고 또한 힘들다. 그러니 오늘도 그저 일하면서 생각을 지운다. 일하다가 커피머신에 손 데일 뻔하고 이상하게 정신이 깨져나갔지만 상관 없어. 그렇게 또 기다려서 트램 타고 전철로 갈아타서 다시 트램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지. 좀 한 번에 가는 전철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전철 구간에 낮은 승강장을 만들거나 하지 않고 남서선만 지하로 묻어버릴 것이 뻔해서 바라는 것이 오히려 잃는 것이지. 오늘도 어디와 달리 쾌청하고 별도 좀 보이는 하늘을 가만히 트램 정류장에 서서 바라보다가 집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들여다본다. 원래 살던 나라에서 따서는 하유에서 교환받은 면허증이다. 하지만 면허 있으면 뭐하나, 일단 집에 차고도 없고 차를 살 돈도 없고 빌릴 돈도 없다. 그 다음으로는 하유국의 시민권 그 자체인 여권을 들여다본다. 여기 왜 왔지 하는 느낌으로 처음 여권 만들던 날에 출입국관리소가 있는 건물에 대사관이 다닥다닥 있고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뭐, 이중계약으로 야바위쳐서 중화 양안과 동시수교하고 일본과 수교한 이후에 한국과 수교했지만 북조선이 꼭 수교하자고 압박하고 결국 내각에까지 이 건이 상정되어 겨우겨우 남북 모두와 수교하는 대신에 일본하고 한국, 하유 서로 간의 90일 간 무사증 입국을 허용하고 자유로운 교류와 무역을 보증하는 상호협정이 있었건 나는 지금 돈도 없고 여권 만료기간도 다 되어가서 심히 심란해졌다. 바깥에 나가서 잠시 바람을 쐬거나 혹은 시험정원으로 가거나 해서 기분 가라앉히려고 여러 노력은 하지만 그 뿐이다.
숲 속을 달리는 트램에서 내려 좀 걸으면 어차피 일터도 가까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상록구는 아니고 북동구에 속하는 작은 숲이라 언제 또 밀릴 지 모른다. 하지만 나아간다. 일하기 직전에 스트레스는 해롭기 때문이다. 잠시 걸으며 시간을 확인하고 또 불안해 하고, 날씨는 차가워지는 가운데서 아직 출근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을 강제로 가라앉힌다. 출근을 하고도 그리고 일하면서도 불인함이 가시지를 않아서 퇴근하는 길에 차에 치일 뻔도 하고 트램을 잡으려고 뛰어가다가 발목 접지를 뻔하기를 겪다니, 단단히 운수가 이상하다. 그리고 트램 타려다가 발목을 접지를 뻔했으니 집에 가는 길은 버스와 함께했다. 간선도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트램과 전철을 타고 가는 그 돈보다는 더 들지만 갈아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인가. 하차태그를 하고 집 앞의 바닷가 근처에 내렸을 때, 누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봄이였다.
일단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카푸치노 두 잔을 시킨다. 졸음이 밀려와서 하품을 하고 봄이를 귀여워하는 저녁시간이었다. 봄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그 은빛 눈으로 빤히 쳐다보다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런 애가 내 친구라니, 조금은 이해가 안 가지만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 그저 서로 마주보는 것이 봄이의 수줍은 행복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있다가 봄이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은 그만 칭얼댈래 하면서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 그렇게 서로 반대방향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도착하면 잔소리 하는 귀여운 요정과 포근한 잠자리가 있다. 그렇게 하루를 닫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어 출근을 준비하고 나가보니 트램 운행이 전차선 보수공사로 중지라고 되어있는 그 광경과 조그만 미니버스가 사람들을 역까지 실어나르는 그런 일을 겪었다. 전철을 타고 목서로역에 내려도 트램은 전차선 보수공사로 운행을 당분간 중지합니다에 빡칠 즈음에 멀리서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나리 녀석이 데리러 온 것이다.
일단은 오만상 지으며 조수석에 오른다. 그리고 재주 좋구나, 자가용이 있다니 하면서 흘겼다. 하얀 인형소녀는 또 그 소리를 듣고 없는게 이 작은 섬나라에서는 정상이라고 말해두는데 또 그러면서 가스 개조하기 귀찮아서 창고에 짱박아둔 녀석을 가져가려냐고 말한다. 일단 통장잔고 보고 얘기할게라고 말을 끊은 뒤에 창문을 열려고 해보니 이미 네스토 데 피고에 도착해 있었다. 자신은 잠시 볼 일이 많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가게 열쇠를 건네고 자기 자동차를 차고에 세우는 것까지는 봤는데, 과연 카페에 들어오지를 않네. 그나저나 자가용 있으면 좋겠지 하면서 에스프레소 기계를 예열하고 첫 손님의 커피를 팔고 몇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가게주인과 손님을 기다리며 내가 마시려고 머신을 다루고 하는 동안에 가게주인이 돌아왔다. 젠장이라 된소리 하면서 왠지 올드카 수준의 자동차에나 쓰일 열쇠를 살짝 보이도록 쥐고 있는데 가게 잘 보고 있었니 야옹아 수준으로 나를 보며 웃은 뒤에 손에서 쇼윈도로 뭔가를 떨군다. 가져가라는 소리겠지. 그리고 내가 알려주기도 전에 가게 열쇠를 찾아서 열쇠함에 걸어놓는다. 이거 때문에 그런건가 하면서 갸웃거리는 찰나에 오늘 일은 여기서 끝. 나리가 가게를 닫고 자기가 준 열쇠는 갖고 나오라고 한다. 참 나.
하유국 내각에서 천연가스를 제외한 화석연료를 못 태우게 해버린 뒤에 개조도 귀찮고 위험하겠다 창고에 박아두었던 엄청 낡은 자동차를 나리에게서 선물받은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가스값과 자동차 정비비용은 이제부터 내 부담에 내가 사는 집에는 차고가 없어 통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서 미치겠네. 문제는 이 차가 수동변속기 사양이라서 말이지. 발 밑에 페달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보고 굳은 나에게 그건 클러치라고 가르쳐 주는데 나는 면허증에 자동변속 한정이라 적혀있다고 말하자 하유에는 그런거 없어, 교환받았니 물어보면서 브레이크와 클러치 밟고 시동이나 걸어보라 명령한다. 부르릉, 덜-컹. 이마에 손을 짚는 인형소녀와 병신같은 인간청년이 뭐하자고 이 동글동글한 자동차 안에서 클러치를 잘 다루는 법에 대해 목청 높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 가르쳐 줄테니 잘 하라고, 클러치 슬며시 때면서 엑셀을 꾹 밟아 지지라고 한다. 부-웅, 차가 나간다. 기어 바꿀 때도 엑셀 떼고 클러치 밟고 기어 올리거나 내리고 엑셀 밟으라고 하며 거의 사고 안 난 것이 용할 정도의 실력으로 남서쪽까지 왔네.
이마를 짚고 내리는 나리는 익숙해지면 쉽다고 나를 기만하지만 여튼 북동쪽으로 가는 버스나 가르쳐달라고 하며 해안통 공영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차가 내 것으로 돌아와도 등록이나 소유권 이전이 필요하다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라네. 그렇게 나리는 나에게 쓰던 골칫덩이 고물차를 고쳐서 선물하고는 버스 타고 북동쪽으로 돌아가버렸다. 참 나, 돈을 벌게 해줘서 고마운 녀석이 어쩌자고 저런 친절을 베푸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차를 잘 살펴본다. 의외로 시골 아낙네가 달걀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탈 수 있고 또 시골 사내가 모자를 쓰고 탈 수 있는 차를 지향해서 만든 동글동글한 자동차다. 이런 차가 하유에 있었다는 자체가 충격이지만 이런 것을 그저 가스 개조만 하고 나에게 넘긴 그 소녀인형이 이해가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며 에어컨도 없고 클래식한 차를 몰고 다니며 시선을 느끼라는 일종의 놀림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
다음 날은 전차선 공사가 끝나고 트램이 다시 움직였기에 몰기도 힘든 2종 세금을 내는 차라는 것은 지하주차장에 짱박아두고 출근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듣는 소리는 차는 두라고 있는게 아니라는 카페주인의 장난. 그렇게 손님 드문 카페에서 아무말이나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안통 공영 지하주차장에 들러 선물받은 자동차 시동을 켜보면서 이게 진짜로 여기 왜 있지 의아해하고 그저 멀뚱했다. 이것이란 정말 쓸모없는 기계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몰아보자 싶은 기분으로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나와서 한산한 남서해안로를 달리는 기분은 좋았지만 겨우 4단 밖에 안 되는 기어는 꽤 애매했다. 그리고나서 두번째 유턴 차로에서 유턴한 뒤에 다시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나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차를 팔고 다른 차를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차장에서 나오니 트램 한 대가 짤랑이며 지나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충전소의 메탄 가격을 보았고 대략 울고 싶어졌다. 그냥 바로 집에 가서 쉬는 수밖에. 집에 돌아오니 또 루미가 우울해하고 있다. 그렇게 우울함을 대신 가져가줘서 뭐하게 하니까 한숨 쉬고 사실은 이런 짓을 하고싶지 않다는 말로 대답한다. 진짜 자차가 생긴다고 좋은 일 하나 없구나.
다음 날은 일신 상의 사유로 나흘 쉰다고 나리에게 알렸다. 그리고 루미에게 떠넘겨 받은 차를 보여주었다. 루미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른 차들과 달리 왼쪽으로 꺾어서 당겨야 1단이 들어가는 이 차를 타고 일단은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북서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들어가고 말았다. 원래 휘발유 엔진인 것을 하유국 규제에 맞춰서 가스 엔진으로 바꾸다보니 약간 털털거리는 것은 참을 만했다. 다만,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보니 루미에게 안 보이게 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가 운전에나 집중하라는 핀잔도 듣고, 요금소에서는 같은 곳을 가는 전철보다 더 비싼 요금을 내야 했던데다 거의 도착해서는 가스가 다 돼서 충전소를 찾아야 했다. 가스 충전까지 하니까 차를 부수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그만 두었다. 푸른 요정이 보고 있어. 차가 참 귀엽다고 에스페란토로 얘기해주는 행인이 아니었으면 문 열 때마다 참치캔 따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이 차의 어딘가 움푹 패였겠지.
그렇게 그냥 무료하게 시간은 흘렀다. 운전을 해서 도착한 북서쪽 첫 상륙지로 가면서 얼마나 스톨로 차가 덜걱덜걱 거렸는지 루미는 내리자마자 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대단히 삐친 표정으로 싫은 소리로 징징대고 나는 그렇게 운전하는 것이 실력부족 때문이라고 확실히 알기에 더 난감하다. 바닷가다. 어차피 내비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고속도로 이정표에 있는 여기 외에는 없다. 그나저나 첫 정부수반들이 나라 세울 생각도 없이 도망치고자 여기에 처음 왔다고 했던가, 위성전화가 걸려서 다행이라는 여기서의 첫 통화 이후에 몇 년이 더 흘러서 나는 남서쪽에 왔지. 그리고 이제 뭐할거냐는 루미 말에는 집에 간다고 일러두었다. 에엣하는 표정을 짓지만 이제 스톨을 일으키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것을 보고 이제 운전하고 다니라며 조수석에서 잠든 루미 녀석을 안전하게 집 앞 공영 지하주차장까지 데리고 왔다.
다음 날…이 아니라 사흘 휴가를 다 쓰고 출근하는 길, 역시 날씨가 추워졌는데 무난방 자동차를 모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면서 네스토 데 피고까지 헤매며 도착했다. 그리고 나리는 용케 차를 몰고 왔다고 비아냥인지 장난인지 모를 소리를 한다. 그렇게 오늘 일이 시작된다. 커피 머신은 김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어서 루미는 어떤 생각으로 눈 내리는 거리를 보고 있을까 생각도 하며 아차, 내 차에 ABS 안 달려있는데 블랙 아이스 만나면 어쩌지 하면서 고민만 쌓이는 근무시간이 시작되었다. 역시 북동쪽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상록숲을 둘러보다가 카페가 있기에 간단한 식사나 파이랑 함께 커피나 차를 마시고 계산하고 나갈 뿐인데도 하루에 백 명은 온다니까. 그게 용하다고 생각하며 퇴근시계가 울리자마자 퇴근한다고 인사하고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간선도로가 그다지 막히지 않아서 편하게 운전하기는 개뿔이, 오히려 정체가 아니면 고속을 두려워하기에 밟지를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냥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든 말든 그대로 있었는데 안 되겠으면 밟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쫄보 운전자가 여기 있구나. 다행히도 가스가 다 돼서 휴게소로 빠질 수 있었기에 한숨 돌리고 집 앞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기간이 지난 통행료 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주차장을 나와 집으로 걸어간다. 트램이 지나간다. 그리고 겨울이 깊어진다. 바닷가 바람도 차가워지고 라벤더 덤불에도 약간 갈색이 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빤히 보더니 공원 쪽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면 루미가 또 메이드 놀이를 하고 있다. 그만 두라고 화내면 걱정되니까 한다고 되려 화내는 푸른 요정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거실 창문에 드리워놓은 커튼이나 걷고 텔레비전 켜고 무료하게 소파에 눕는다. 그대로 잠들어버릴 작정으로.
차에 시동을 건다. 여기서부터 중앙구라고 알려주는 표지판 너머 하유섬 정중앙의 거대한 회전교차로를 돌아서 아홉 시 방향으로 나간다. 그리고 ABS가 없어서 커브를 거칠게 돌면 좌우로 요동치는 멍청한 자동차를 몰고 집과는 반대쪽, 해안도로를 끼고 해저터널 지나서 국제터미널이 있는 관문구로 들어왔다고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면 공항과 항구가 있고 수입된 모든 자동차를 검사하고 연료로 천연가스를 쓰도록 개조하는 시설과 하유국에 상륙한 휘발유나 디젤을 쓰는 차들이 장기간 주차되어 있는 체류주차장이 나오고 관문 암초공원 쪽으로 나가면 본섬으로 나가는 배가 떠나는 선착장과 조그만 아파트 단지 몇몇이 보인다. 그리고 이따금씩 자동차 경주가 열리고는 하는 가개통 도로 쪽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며 클러치와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아서 미끄러지며 급정거. 왠지 깡통같은 차라 전복되는 줄로 알았다.
관문구 가개통 도로에서 드리프트를 하며 뭘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튼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런 고물차로 여기까지 와서 드리프트로 턴을 도는 저 미친 새끼는 뭐냐하는 눈빛을 상향등처럼 쏘며 지나가면 나는 상향등 두 번으로 응수한다. 그럼 그냥 지나가거든. 그렇게 차가 망가질 것 같아서 우선은 차의 엔진도 좀 식힐 겸해서 기어를 중립에 두고 시동을 끄고서 깡통같은 이 차에서 내렸다. 답답하군. 불안한 여유로움은 그냥 불안함과 동류일 뿐이지 절대 여유로움의 일종으로 봐줄래야 봐줄 수가 없다고. 그런 답답함은 수동변속기도 가벼운 클러치도 심지어는 깡통으로 만들어진 듯이 매우 엉성하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자동차를 탄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라디오도 없고 에어컨도 없고 그저 시골 사람들이 부담없이 탈 수 있는 차이기에 왠지 문을 열 때마다 참치 캔 따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내 차에 다시 올라서 후진 후 가개통 도로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간선도로 달리는 동안에 무엇을 보았는가 하면 내가 쫄보라 하위차로를 지키며 가는 시야와 웬 깡통이 도로 위에 있다고 이상하게 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빨리 남서나들목으로 나가버렸으면 하고 정체를 탓하지만 그게 그거다. 짜증을 내나, 안 내나 오십보 백보라고.
그나마 자동차를 거저 받았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나는 거저받은 자동차에 단 하나 불만이 있었다. 바로 에어컨이 없어서 냉난방 불가라는 점이었다. 나리에게 그 얘기를 해주니까 깔깔거리면서 타다보면 따뜻해진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수틀리면 팔아치우거나 새로 한 대 사라고 하는데, 그게 내 수준으로 가능해보이나? 간선도로를 달리는데 추워서 혼난 그게 사실은 내가 난방을 잘 쓰지 않아 난방이 되건말건 새들어오는 웃풍이 문제라고. 그렇게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추워하던 와중에 경비가 나를 불렀다. 그 깡통, 춥지 않나? 말이라고 한답니까? 춥지요. 한국어를 쓰는 경비와 가뿐히 말이 통한 와중에 자기는 픽업이 있으니 '그나마 제대로 된 차'를 가지고 가지 않겠느냐 하고 자동차 열쇠를 내게 하나 넘긴다. 돈은 안 줘도 된다며 자신의 파란 계란 프라이를 부탁한다며 번호판 번호를 가르쳐주는데 …젠장.
다음 날 출근은 고속도로 위에서부터 비교적 수월했다. 이 차가 미국, 일본, 한국에서 동시에 먹히는 자동차를 만든 결과라 그런가? 그래도 이게 그 유명한 이란에서 만들어 수입해오는, 하유에서 가장 싼 자동차라지만 우려먹는 것은 또 뭐냐고. 또 공짜 자동차를 얻다니 운 좋다고 쳐도 결국에는 내 힘으로 이룬 것도 아니니 그저 오만상 가득한 얼굴로 차고에 차를 세운다. 커피머신의 따뜻함이 에어컨 한 방에 차 안에 깃든 느낌이라 똑같은 깡통인데 어째서 시대가 다르면 이렇게 다르냐 싶어 고개 떨구고서 출근. 말 없이 커피머신 예열하고 어느 결에 따라들어온 고양이를 달래준다. 오늘도 손님이 적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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