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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캄캄한 방 안에 꽤 귀염성 있는 구체관절인형 하나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모두들 귀엽다고 칭찬할 만큼이나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왜 이 방에 홀로 있을까 해서 괜히 불쌍한 마음에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천천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누군가를 알아챘는지 움직이던 아이는 이내 몸의 텐션이 끊어져 산산히 분해되고 말았다.
인형가게에서 겨우 그 아이를 다시 이루어냈을 때, 인형가게에서 텐션을 맡고 있는 누군가가 참 귀엽고 실제 사람 크기라 무섭기도 하다면서 잘 다루라고 말해주는 가운데, 아이가 깨어났다. 흔한 일이라고, 오래된 인형이나 우울한 주인을 둔 인형은 스스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면서 인형옷을 선물로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봄이는 내일 자살할 것 같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가졌다. 그리고 은빛 가위를 좋아해서 항상 손에 쥐고 다니는데 왠지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우울한 그 아이는 항상 햇빛을 쬐며 햇빛이 보드랍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은빛 가위를 꺼내 자기 명치를 찌르는 시늉을 하곤 했다. 나도 우울함에 시달리는 사람인 통에 봄이가 자꾸 죽는 시늉을 할 때면 나도 위태로워졌다.
어느 날, 봄이는 나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리고는 우아한 동작으로 붉은 실을 꺼내 검지에 매듭을 묶었다. 내 손가락에도 매듭을 묶자고 보채서 묶어달라고 했고, 봄이는 내 검지에 매듭을 묶어주고는 이내 풀어버렸다. 그리고는 내게 안겨서 쓰다듬어 달라고, 죽을 것 같다고 응석부리다 울어버렸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어쩌면 내일 죽을 것 같이 느껴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귀여웠다. 나도 덩달아 죽을 것 같다.
봄이가 입을 맞춰달라고 보채면 입을 맞춰준다. 귀여운 인형과 왠지 사랑에 빠진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포근해진다. 우울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믿고, 또 같아져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 목욕을 하다가 왼팔을 살펴보니 내게도 구체관절이 생겨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보아하니 봄이는 요정일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을 해치는 요정도 있으니까.
어느덧 완전히 인형으로 변해버린 나는 봄이에게 시안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같이 방 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우유와 쿠키가 달콤한 나날이었다. 그렇게 나와 봄이는 내가 봄이와 처음 마주친 방에서 또 다른 우울한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었다. 우울한 나머지 실제 사람크기의 우울한 구체관절인형과 어울리다 자신도 우울한 구체관절인형이 되어버릴 운명의 누군가를 말이다. 그것 참 황홀하고 귀엽지만 비극적이고 우울한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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