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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숨어살듯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숨어살듯이 살지 말자고 하면 겁부터 난다. 여기 사람들은 우선 위로를 건네고 꽃이나 편지를 선물하는 것이 거의 국민성 수준으로 붙어있지만 그것도 서로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고 믿는 나는 무작정 공영주차장에서 내 차를 끌고 나가본다.

겨우 주유소에서 기름만 채우고 다시 세워놓을 자동차라지만 가끔씩 이렇게 기름 채우러 몰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이미 채워놓은 기름이 오래돼서 시동이 잘 안 걸리건 말건 나는 자동차가 필요없다. 누굴 만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자주 외출하지도 않기 때문에 말이다. 어차피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면 대부분의 장소를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하유는 작다. 가까운 주유소에 도착해서 휘발유 스탠드 앞에 세우고 시동을 끈다. 자동차에 그 비싼 기름을 채워넣고 다시 공영주차장에 처박는다. 후면주차는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집 앞으로 걸어가는 길을 줄곧 따라오는 도로 위의 전철이나 삐걱대는 집 대문이나 그리고 갑자기 마주친 어떤 아이나.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으니 문이 열려있었단다. 제기랄, 이런 정신도 없나 싶어서 주머니를 뒤적이니 열쇠뭉치는 나온다. 또 내가 한심해진다. 뭐 때문에 왔냐고 그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하니 스튜가 남아서 먹으라고 한다. 냄비를 또 돌려주러 가야 하는군. 그리고 자동차를 갖고있는 것 같은데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스튜랑 자동차를 맞바꾸자고? 고개를 젓는다. 면허는 있니? 면허증이 나온다. 조그만 아이가 아니라 뭔가 인형이나 요정 느낌이 나서 불길해졌다. 아녜요, 안 해쳐요. 차만 빌려줘요. 눈 감고 차 키를 넘긴다. 공영주차장 4번 기둥 두 번째의 파란 차다. 박던지 폐차하던지 네 맘대로 해. 그러자 웃는 그 아이는 냄비는 안 돌려줘도 된다며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냥 그 아이에게 서류상으로 차를 넘겨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나가버렸다.

저녁은 그 아이가 떨구고 간 스튜로 한다. 집 앞의 길은 전철과 자동차와 버스로 환하게 시끄럽다. 스튜는 그냥 스튜였고 하루 먹을 양이 아니라 여간 많았다. 돈 없는데 잘 됐다고 생각할 즈음에 누가 초인종을 누른다. 무시한다. 거칠게 또 울린다. 열어보니 그 때 차 빌려간 소녀가 잘 썼다고 차 키를 돌려준다. 그러면 나랑 잠깐 마을사무소 가자. 그러니까 갑자기 운다. 자기를 도둑으로 보는 거냐고 하니까 아예 차를 가져가라고 하는 거라고 하니까 더 운다. 왜 떠넘기냐고 정곡을 찔렸다. 잠깐 너, 집으로 들어와라.

집에는 홍차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홍차로 밥 때우다가 얘가 스튜 가져다 줘서 맛있게 먹는 중이다. 그리고 묻는다. 내 차 가져다 뭐했어? 아이는 짐이 많아서 옮기는데 썼다고 말한다. 무슨 일 하니? 짐을 옮겨주는 일을 한다고 한다. 짐을 옮기면서 뭘 느끼니? 고개를 젓는다. 이런 꼴이다. 여기는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대화를 하기 힘들다. 짐을 옮겨주는 일을 하는데 내 차를 빌려가서 썼다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다. 차 상태가 매우 안 좋다. 가끔씩 주유만 하는 차다 하니까 그래보인다고 하고 스튜는 직접 만든 거냐고 물으니까 맞다고 한다. 짐을 옮긴다면 배달이니? 끄덕인다. 어느 상점이니? 입을 열어 엄청 외곽에 아무도 안 찾지만 아는 사람은 오는 식료품점이라고 말한다. 이 스튜가 거기에서 파는 재료로 만든거야? 끄덕인다.

오늘 식사 끝. 그리고 소녀를 가게로 바래다준다고 하니까 가까운 전철역도 없고 그리로 가는 버스도 없고 택시도 가면서 욕하는 길인데 어떻게 가실거냐고 묻는다. 차 몰고 가면 되잖니! 그렇게 차 몰고 고속도로로 들어가고 나가고 시내도로인데 포장이 안 돼서 덜컹이는 도로를 좀 더 달리고 달려서 허리가 아플 쯤 되어서 무슨 가게가 나왔다. 픽업 몇 대가 당근을 싣고 출발하는 곳이다. 주소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여기 맞단다.

가게 주인장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쇼, 참 외진 곳이외다. 그러자 얼굴을 찌푸린다. 당신네에게는 여기가 외지든 말든 상관없잖소. 여기서 직접 기르고 수준 높은 것들을 받아오는 것이 내 행복이라오. 하지만 이렇게 외져서야… 아니 생각을 고쳐먹는다. 대부분 대형마트나 큰 시장 가서 무언가를 사지 이렇게 불편하게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나는 아직 직접 보지를 못해서 몰랐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지. 그리고 나는 진짜 멍청하게도 이런 곳에는 와보지 못한 채로 자동차를 주차장에 처박고 거의 숨어살았지 않나?

소녀와 외진 가게와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참 바보같이 살았구나 생각이 퍼뜩 든다. 결국에는 아무하고도 안 부대끼고 살 수도 없고 내가 모르면서 내가 가보지도 못한 곳이 너무 많아. 그런 생각을 하고 고속도로에 올라 기름게이지를 본다. 또 주유소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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