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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계륵

생활_2017.02.25 기준 탈고

두번의 봄 2017. 2. 25. 22:25
힘들게 견디기만 하다가 결국 사표를 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전철에 흔들리며 남서중앙역까지 와서는 시내버스나 노면전차로 갈아타고서 남서해안으로 와서는 또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그저 지칠 뿐. 오늘의 일이 그다지 대견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그저 소리를 한 번 빽 지르고 힘들다 하면서 항상 질리던 회사의 일을 그만 두었다. 항상 전화소리에 지쳐 노이로제 생기는 것도, '감히 일개 회사따위의 직원이 내 여행계획에 공구질이야' 하는 것도 이제는 끝이다. 다행이기는 하나, 한 가지 걸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럼 오늘 있었던 일을 천천히 말해보도록 한다. 우선 나는 여행사 직원이었고 그 중에서도 아주 아랫쪽 일인 예약을 받고 예약사항에서 항상 부득이하게 생기는 변경사항을 알려주는 것이 내 업무였다. 당연히 전화벨 소리를 많이 듣는 업무고 어깨도 뻐근해지며 고객들도 네가 뭐라마라야 하는 소리와 욕을 지껄이는데 미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을 걸이라고 생각하는 그 찰나, 폭발해버린 것이다. 여느 때처럼 업무에 눌려서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서 부려지는 가축의 느낌, 그 매서움으로 예약 변경에 볼멘소리 하는 놈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사장에게 불려갔고 나는 미친 듯 이히히거리며 사표를 내고 덩실덩실 춤추며 중앙업무지구역 개찰구로 나가 미여울공원역에서 내려 흔히 트램이라 부르는 노면전차로 미여울공원 남문 정류장까지 향하고나서도 어깨춤 추며 미친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혼자만의 만담을 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옷자락을 잡는 느낌에 뒤돌아보니 누군가 히익 놀라면서도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고 튀는 것이다. 문득 보아하니 갓 중학교 들어가는 나이대의 새하얀 남자애인데 누가 더 미쳤을까 생각이 미치니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멋쩍게 웃다 공원을 빠져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깨에 뭔가 올려져 있는 느낌에 기분이 더러워져 털어내보니 어깨에서 요정…이 떨어졌다.

푸른 요정이었다. 그나저나 북쪽의 상록구에 요정이 산다고 했나 하면서 택시 창문을 열어 그 쪽으로 가라고 날려보낼 작정을 했다. 그랬더니 요정이 호에에거리며 '도와줄 수 있을만큼 최대한 도와줄테니 죽이지 말아 줘'라고 애원하기에 택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 미터기가 580원을 넘기고 있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라고 소리쳐 주머니에 있는 딱 580원을 내고 중앙구와 남서구가 갈리는 다리 위에서 답답해 소리치며 근처 전철역으로 들어갈 뿐. 그렇게 집에 와버린 탓으로 답답하게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까 나라에서 빌려주고 있는 집의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동백단지로 쫓아내겠다는 주택관리국의 협박성 편지나 찢어내고 기분이 심히 심란해져서는 마을 가까이의 바다 백사장에 앉아 바다 예쁘네하고 있을 즈음, 히익하며 놀라는 소리. 미친 짓하던 어제, 내 손에 뭔가 쥐어준 그 아이라 생각해서 뒤돌아보니 얼굴이 새빨개진 새하얀 소년, ‘봄’이 있었다. 봄이는 그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서 내게 ‘어제 제가 준 유자, 맛있게 먹었나요’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주머니에서 잊고 있었던 그 물건을 꺼냈다. 그리고 유자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있었고 ‘친하게 지냈으면 해요’라고 하며 덧없는 하얀 소년은 도망치듯 사라졌다. 바닷가에서의 조우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만남과 바닷가에서 우울해하는 사람이 나 이외에 있다니, 그리고 그 아이도 남서해안에 산다니 조금은 묘해지는 기분이다. 어떤 식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면 좋을까. 계속 생각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다음 날은 밝지 말라고 해도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