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폰 자체가 끊기지는 않았으니 주택공사 전화번호 찾아서 전화를 건다. 나 좀 살려달라고, 직원이 와서 대문을 쇄정하고 가버렸는데 나가지 못하면 집세를 벌기 위해서 일 찾으러 나가지도 못한다고 연락을 취하기는 했다. 또한 푸른 요정은 바깥에서 쇄정장치를 풀어주려고 하다가 눈에 생기가 나간 채로 그저 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대문 쪽에 난 작은 창문을 두드려 푸른 요정을 불렀다. 그리고 자기를 '루미'라고 불러달라고 힘 없이 얘기한다. 근데 있잖아, 요정이 자기 이름 가르쳐 주면 마력이 반토막 나지 않아? 그런 질문에 대답은 아깝다고 하는 푸른 요정 루미였다. 에스페란토로는 '빛나다'라는 뜻이고 핀란드어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라는 뜻인데 이름 귀엽다고 하니 지금도 현실도피하냐며 굶어죽으..
망했다. 인생이 저당잡혔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가니 시계를 부쉈다.위로하는 말도 거짓말이니 상냥한 말만 하는 인형을 죽였다.인생이 저당잡혀서 멀리 갈 일도 없으니 자동차를 폐차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천장의 파리가1 1 2 3 5 8 13 21의 순서로 아른거린다.보다가 토치로 지져버린다.내 눈 앞에서 피보나치 수열은 나치가 되었다.웃기지 않는가, 나치란다.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내가 있는 장소는나치의 야욕으로 불타는 단치히 회랑이 된다.누가 선제공격을 하느냐,누가 더 먼저 미쳐버리느냐, 상관없어졌지 않나.그것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간에 나는 여기서 구워지면 그만이다.자본주의 이해도가 떨어져서 자신의 경제력을 과대평가한 죄로인생을 저당잡힌 인간은 그렇게 구워져 요리된다. 자, 드시라!언제든..
안녕? 오늘도 나를 찾아와 주었지요. 그렇게 깨질 것 같이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씨로 우울한 행복을 담아서 하루를 살면 세상은 조금이나마 반짝여요. 하지만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는 섬세함과 여린 마음씨가 그대로 드러나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모두 나를 병들었다고 하면서 귀찮아하고 나를 내칠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여기 박하차와 바삭바삭한 과자를 준비했어요. 박하차가 싫다면 커피를 드릴게요. 그러나 혼자만의 티타임. 너무 외로워서 숲으로 들어가면 달콤한 향기를 지닌 종 모양을 한 하얗고 귀여운 꽃무리가 나를 영원한 꿈 속으로 데려다 주겠죠. 안녕.
…오랜만이에요. 이제 밀물이 들어와요. 누에섬에 들어와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가라는 사이렌. 서둘러 나가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어요. 탄도항 쪽으로 가면 나는 싫어요. 왜냐하면 여기 그대로 몇 시간이고 있고 싶어요. 사람은 두렵고 도로는 좁아요. 화성 쪽으로 나가면 오히려 더 무서워요. 이제 그만 나를 붙잡고 쥐어흔들래요? 참 귀찮군요. 이제 다시 썰물이 되어서 나는 탄도항 쪽으로. 모두 떠나버린 이 조그마한 어항에는 아무도 없이 그저 작전 해안이라는 것으로 군인들에게 총 안 맞게만 숨어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지요. 자동차 시동을 켜고 집으로 돌아간답니다. 바닷둑을 건너가겠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한숨 나오는 동시에 어디론가 가고 싶어져서 전차 정류장에 섰다. 그런데 전차 정류장 뒷편에 버스가 더 먼저 올 것이 뭐람. 그런데 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한숨 깊게 쉬고 건드린 방향으로 바라보니 봄이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재수 없는 쫄보 소년인형 주제에 이제 나한테는 쫄지 않게 된건가. 뭘 어째.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있으니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그러자 쫄보 스위치가 켜져서는 얼굴을 붉히고 딱히 없다고 술술 부는거 뭔데. 가벼운 한숨을 쉰다. 나는 원래 가려던 데로 간다. 북동쪽의 숲이기는 한데 구 전체가 숲이고 내각결의에 의해서 통제되는 두 개의 구 중의 하나인 상록구가 그 곳이다. 카페거리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타면 여기를 지나가는데 항상 궁금하고 특이한 곳이라서 생각해서 말이다...
모두가 검게 변해갈 때, 나는 더 새까매지거나 혹은 회색이 돼요. 왜일까요. 그런데 왠지 아름다워요.
꿈 속에 갇히면 어떤 느낌일까. 그냥 나와 완전히 같지만 왠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년 하나가 온실 속에서 오랫만에 온 손님을 맞듯이 반갑게 뛰어와서는 자기랑 같이 티타임하자고 조르겠지. 티타임을 하면 이 아이는 누구인가 곰곰히 생각하게 돼.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나와 같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 점점 꿈이라는 것을 잊게 돼. 그리고 참 귀여운 아이와 숲을 걷거나 정원과 온실을 돌보거나 하면서 그저 현실을 잊는거지. 그럴수록 나는 하얀 아이가 있는 여기가 진짜인 줄로 알게 돼. 그 아이를 어루만져 주면 살포시 눈을 감는게 귀여워.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인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지. 하얀 인형이라 그러면 왠지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가볍게 째려보지만 그게 전부야. 하지만 그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아이는 없었기..
차 안에 불이 붙었다. 반월동사무소 인근 진입도로였다. 그렇게 하루를 돌아왔을까. 하지만 이미 나는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평소처럼 출근하고 내 일만 묵묵히 하다가 잘렸다. 이유는 내가 자본의 축적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 그렇겠지. 맹한 인상의 남자는 어느 업무에서도 환영받는 입장이 아니며 내가 꽤 몽상을 꿈꾸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사뿐히 떨어져버린 탓에 쉽사리 동여의도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증권거래소 앞의 황소상 앞에서 짜증을 내보고 국회의사당을 바로보는 그 도로에서 확 소리도 질러보고 서울교를 건너 영등포로터리로 넘어오면 짜증이 더 밀려온다. 그렇게 나는 다 지쳐서 겨우 내 차를 세워둔 지하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다 지친 표정으로 짐정리하러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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