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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나오는 동시에 어디론가 가고 싶어져서 전차 정류장에 섰다. 그런데 전차 정류장 뒷편에 버스가 더 먼저 올 것이 뭐람. 그런데 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한숨 깊게 쉬고 건드린 방향으로 바라보니 봄이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재수 없는 쫄보 소년인형 주제에 이제 나한테는 쫄지 않게 된건가. 뭘 어째.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있으니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그러자 쫄보 스위치가 켜져서는 얼굴을 붉히고 딱히 없다고 술술 부는거 뭔데. 가벼운 한숨을 쉰다.
나는 원래 가려던 데로 간다. 북동쪽의 숲이기는 한데 구 전체가 숲이고 내각결의에 의해서 통제되는 두 개의 구 중의 하나인 상록구가 그 곳이다. 카페거리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타면 여기를 지나가는데 항상 궁금하고 특이한 곳이라서 생각해서 말이다. 상록구 산림보전사무소라는 긴 이름의 정류장에서 내려서는 온대림인지 냉대림인지 모를 이 숲 속의 도시 같잖은 도시를 걷는다. 걷다보면 도로표지판에 '화석연료차량 통행금지'라고 적혀있기는 한데 과연 이게 가능한가 째리면서 그냥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숲인 이 곳에서 한 숨 돌린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여기가 에스페란토 우세지역인데 좀 배울까 하면서.
그래봤자야 산책하러 오는 이곳을 위해 언어를 또 배워야 하냐는 생각에 짜증이 나서는 여기를 떠나고 만다. 그리고 남서중앙역 정류장을 지나 집 쪽으로 와서 다시 바닷가 쭉 걸어오면 바다 건너서 보이는 섬이 있는데 하필 날씨가 맑아서 더 잘 보이는 그 섬을 본다. 하유국 정부에서 하유국 치하로 들어오라고 해도 때가 되면 하겠다고 거부해서 일단은 정원구로 만들어 놓고 하유국의 정식 행정구역이 되기를 내각이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겨우 인형 하나가 살고있다는 아름다운 섬이라는데 나는 왜 여기서 많은 사람이랑 엉겨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쨌든 정원섬 사는 유일한 주민이 외부인 상륙 따위는 싫다고 했다니 가끔씩 인도주의 차원에서 물자를 지원해주고 그 섬 전역을 정원구로 전환해 하유국 치하에 속할 것을 권유하는 서류에 서명 받으러 그 섬에 가는 행정선의 공무원이 아닌 이상에는 상륙도 못 할 곳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반 다지기니 뭐니 해서 언제 한 번 배관 공사로 들어올렸던 그 철로를 또 들어올렸다. '안전하게 금방 끝내겠습니다'라고 해도 노면전차 없애면 가만 안 둘테다. 그런데 그 정도로 지반이 다져지냐면 글쎄. 그렇게 치자면 저 윗쪽의 상록숲의 전차는 어찌되는거냐, 온통 숲을 지나는 상록구 구간은 내각결의 탓에 땅도 못 파니 상록구를 벗어나 북동구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전차 승강장 옆에 뭐라도 놓을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집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쇄정 걱정을 하고 푸른 요정의 무료함을 걱정하고 탈세 혐의로 잠시 감옥에 갇힐 지수가 걱정된다. 그게 다다. 어차피 하유섬에는 교도소도 없고 여론 때문에 만들 수도 없어서 지수 녀석이 섬에서 사라져 있는 동안에 나는 일도 잃었고 너무 주변이 불확실해서 내 걱정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될까. 아냐, 절대로 말이 되지 않아. 으악하면서 지나가는 길을 살피니 히익, 왜 내가 전차를 세우고 잡쉈지. 승객 여러분, 미친 놈은 전차 궤도 위에서 꺼져드리겠습니다. 다시 전차가 출발하고 뜯겨있는 하행선 궤도구획을 가볍게 째려보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은 역시 아무 일도 안 했다. 그게 다다. 어쩌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의외로 저리 가라는 대답만 들었고 일상이 너무 궁했다. 힘을 쓰는 일은 전혀 못할 나라서 우선은 무엇을 할까도 정해야 하고 교통카드도 충전해야 하고 마을사무소에서도 한숨 쉬면서 이 대로 있으면 실업자 지원도 끊기신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째. 내가 엄청나게 쓰레기 인력이대? 겉으로는 우울하지 않은 척하면서 그냥 숲 속으로 직진하는 전철을 타고 숲의 한 가운데에서 내린다. 숲 깊숙히 들어가서 한 귀퉁이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쉰다. 한숨 끝에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서 뭔가 열심히 써내려간다. 엄청나게 안 써지는 글줄. 그리고 민감한 여러 이야기들. 그저 숲에서 들리는 소리만 가득해서 안심이 되는 여기에서도 이러다니!
열차는 덜컹인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반나절 만에 노반 다지기가 끝나고 다시 선로가 놓인 전차 선로 위로 들어간다. 왠지 전철역에 서있어야 할 녀석이 전차선로 위에 있다니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그런데 이미 이 정도에 열차가 다시 들어온다는 공고는 충분히 하지 않았나 싶고 나는 자동차 운전자가 아니니 그냥 집으로 들어가면 장땡이다. 집에 들어가면 먹을 것은 삶은 콩 뿐이고 무료한 푸른 요정은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괴고 무료하고 우울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뭔 상관이람. 일을 해서 사고 싶은 것은 자동차일까나. 하지만 여기는 대중교통도 잘 되어있고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나에게 자동차는 사치이고 택시도 역시 가격이 좀 부담되려나. 아무런 생각없이 비가 이어지는 하루를 그냥 보내고 짜증만 가득한 채로 그냥 잠에 들었다.
그렇게 마지못해 아침이 밝자마자 나는 나리에게 가서 빌었다. 일 좀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거절이고 무슨 일이든 시원찮아서 금방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의 노면전차 안에서 같은 노선으로 다니는 버스를 차창 너머로 보며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가지를 생각해냈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무료한 느낌으로 그렇게 쏘다니며 집으로 돌아오면 왜 이렇게 지루할까. 그래서 나는 다시 어디론가 향하겠지. 조만간 해탈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해탈하기 직전의 짜증을 이기고 버스를 잡아 수줍은 소년인형을 만나러 가자. 어차피 그 아이는 얼빠진 소리만 지껄이겠지만 여튼간에. 놀러오라고 해서 놀러가는 것 뿐이고 친해지자고 해서 친해지는 것이야. 미여울공원 남문으로 가는 트램은 남서중앙역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남서해안 종점으로 가는 버스는 남서해안역 근처로 직진. 그리고 어느 연립의 앞에 내려서 바로 철도 건널목 넘어 차고지로 향하는 버스가 건널목을 넘는 것을 바라보고서 그 아이에게 전화하려는 찰나, 볼이 쿡. 봄이가 장난을 치고도 실패했나 싶은 표정을 살짝 짓더니 우울해 한다. 왠지 불쌍해 쓰다듬으니 살포시 눈을 감고 웃는 아이.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무슨 얘기를 할 지 몰라 가만히 있을 뿐인 두 남자는 가만히 차를 마신다. 한 쪽은 자신이 꽤 귀여운지는 아는지 계속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으며 장난을 치는데 귀찮다.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그런 불편함의 가운데에서 여러모로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푸근해지는 무언가가 있으면서도 무안한 느낌이 확연히 드는 그런 불편한 자리같았지만 그래도 마주 앉아서 이렇게 침묵을 같이 지켜주는 것도 행복한 일인가 싶어졌다. 그리고 이제 그만 갈 시간이 아니냐고 먼저 입을 열은 봄이 덕에 나는 마지막 버스가 끊기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나는 당최 뭐하러 봄이네 집에 갔나하고 곱씹어보았다. 아무래도 집에 있기 지루해서 그랬겠지 하면서 집에서 내내 무료해하던 푸른 요정 볼도 쿡 찔러보니 싫어한다. 이게 당연한 반응이지만.
더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오늘, 그래도 비는 오지 않기에 조금씩 바닷가로 나가기는 할까 하면서 그저 피곤해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냥저냥 하면서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려니 피곤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바깥을 구경하고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다. 트램이 지나가고 그리고 그 옆으로 버스와 자동차가 지나가고 시험정원 쪽에서는 사람이 넘어온다. 반대편 창가에는 바다가 보이고 그 멀리로 죽어도 하유국 편입을 하기에는 때가 아니라고 미소짓는다는 인형이 사는 섬이 있고 거실 소파에는 무료한 우울 요정님. 나는 그냥 집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나를 가만히 고양이처럼 바라보는 푸른 요정이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할 얘기가 있었던걸까.
밖으로 나가면 우선 길을 하나 건너 남동구 동백마을에서 끝나는 전차가 지나가는 하행 선로와 지금 우회전 신호를 받으면 버스와 함께 남서중앙역 방향으로 향할 상행 선로를 건넌다. 승차대를 두 개나 건너서 시험정원으로 향하는 걸음은 내가 돈만 있다면 트램 타고 갈 수 있었다는 화난 걸음이다. 그런데 정원도 그렇게 나를 위로하지는 못했고 그냥 돈을 져다 버린다 치고 저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슬픈 표정으로 노면전차에서 내렸다. 전철을 타고 멀리 갔다오고서 노면전차에서 내리는 것으로 끝나는 일정은 끝났지만 어쨌든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집에 돌아오니 푸른 요정도 없다. 그래, 내가 질렸겠지. 돈을 벌어야 하나 돈이 그냥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 가운데에서 몽상하며 의미없는 이동에 돈을 낭비하다니. 그리고 다시 대문이 달칵 열리더니 히익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요정이 돌아왔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인가. 하지만 저 돈은 어디에서 났을까 궁금했지만 구태여 묻지 않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이유 모를 싫은 소리와 호에에가 들리지만 내 일 아냐.
다음 날이 밝았고 나는 그냥 방에 박혀서 아무 것도 안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나리한테서 온 문자에 돈이 없다고 답장하고 그냥 빈둥거렸다. 여기서 굶어죽을래. 그리고 대문 너머로 덜컹이는 소리, 그리고 푸른 요정과 누군가가 언성 높이는 소리 그리고 찰칵하는 소리. 아아, 드디어 주택공사에서 대문을 쇄정해 버렸구나. 푸른 요정이 흐느끼는 소리와 이제 죽는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와버렸다. 그리고 나리에게 전화걸어 대문이 쇄정당했고 이게 내 마지막 전화가 될 거라고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리는 버럭대며 집세 밀린거냐고, 당최 뭐냐고 짜증내다가 전화가 끊긴 이후에도 폰이야 새로 사면 된다는 마인드로 바닥에 폰을 집어 던졌겠지. 나는 이제 굶어죽는다네, 주택공사에서 집 대문을 아예 걸어잠갔다네 하면서 집 앞의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나가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집세가 밀려서 이렇게 갇힐 줄을 알았더라면.
나는 원래 가려던 데로 간다. 북동쪽의 숲이기는 한데 구 전체가 숲이고 내각결의에 의해서 통제되는 두 개의 구 중의 하나인 상록구가 그 곳이다. 카페거리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타면 여기를 지나가는데 항상 궁금하고 특이한 곳이라서 생각해서 말이다. 상록구 산림보전사무소라는 긴 이름의 정류장에서 내려서는 온대림인지 냉대림인지 모를 이 숲 속의 도시 같잖은 도시를 걷는다. 걷다보면 도로표지판에 '화석연료차량 통행금지'라고 적혀있기는 한데 과연 이게 가능한가 째리면서 그냥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숲인 이 곳에서 한 숨 돌린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여기가 에스페란토 우세지역인데 좀 배울까 하면서.
그래봤자야 산책하러 오는 이곳을 위해 언어를 또 배워야 하냐는 생각에 짜증이 나서는 여기를 떠나고 만다. 그리고 남서중앙역 정류장을 지나 집 쪽으로 와서 다시 바닷가 쭉 걸어오면 바다 건너서 보이는 섬이 있는데 하필 날씨가 맑아서 더 잘 보이는 그 섬을 본다. 하유국 정부에서 하유국 치하로 들어오라고 해도 때가 되면 하겠다고 거부해서 일단은 정원구로 만들어 놓고 하유국의 정식 행정구역이 되기를 내각이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겨우 인형 하나가 살고있다는 아름다운 섬이라는데 나는 왜 여기서 많은 사람이랑 엉겨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쨌든 정원섬 사는 유일한 주민이 외부인 상륙 따위는 싫다고 했다니 가끔씩 인도주의 차원에서 물자를 지원해주고 그 섬 전역을 정원구로 전환해 하유국 치하에 속할 것을 권유하는 서류에 서명 받으러 그 섬에 가는 행정선의 공무원이 아닌 이상에는 상륙도 못 할 곳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반 다지기니 뭐니 해서 언제 한 번 배관 공사로 들어올렸던 그 철로를 또 들어올렸다. '안전하게 금방 끝내겠습니다'라고 해도 노면전차 없애면 가만 안 둘테다. 그런데 그 정도로 지반이 다져지냐면 글쎄. 그렇게 치자면 저 윗쪽의 상록숲의 전차는 어찌되는거냐, 온통 숲을 지나는 상록구 구간은 내각결의 탓에 땅도 못 파니 상록구를 벗어나 북동구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전차 승강장 옆에 뭐라도 놓을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집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쇄정 걱정을 하고 푸른 요정의 무료함을 걱정하고 탈세 혐의로 잠시 감옥에 갇힐 지수가 걱정된다. 그게 다다. 어차피 하유섬에는 교도소도 없고 여론 때문에 만들 수도 없어서 지수 녀석이 섬에서 사라져 있는 동안에 나는 일도 잃었고 너무 주변이 불확실해서 내 걱정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될까. 아냐, 절대로 말이 되지 않아. 으악하면서 지나가는 길을 살피니 히익, 왜 내가 전차를 세우고 잡쉈지. 승객 여러분, 미친 놈은 전차 궤도 위에서 꺼져드리겠습니다. 다시 전차가 출발하고 뜯겨있는 하행선 궤도구획을 가볍게 째려보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은 역시 아무 일도 안 했다. 그게 다다. 어쩌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의외로 저리 가라는 대답만 들었고 일상이 너무 궁했다. 힘을 쓰는 일은 전혀 못할 나라서 우선은 무엇을 할까도 정해야 하고 교통카드도 충전해야 하고 마을사무소에서도 한숨 쉬면서 이 대로 있으면 실업자 지원도 끊기신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째. 내가 엄청나게 쓰레기 인력이대? 겉으로는 우울하지 않은 척하면서 그냥 숲 속으로 직진하는 전철을 타고 숲의 한 가운데에서 내린다. 숲 깊숙히 들어가서 한 귀퉁이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쉰다. 한숨 끝에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서 뭔가 열심히 써내려간다. 엄청나게 안 써지는 글줄. 그리고 민감한 여러 이야기들. 그저 숲에서 들리는 소리만 가득해서 안심이 되는 여기에서도 이러다니!
열차는 덜컹인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반나절 만에 노반 다지기가 끝나고 다시 선로가 놓인 전차 선로 위로 들어간다. 왠지 전철역에 서있어야 할 녀석이 전차선로 위에 있다니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그런데 이미 이 정도에 열차가 다시 들어온다는 공고는 충분히 하지 않았나 싶고 나는 자동차 운전자가 아니니 그냥 집으로 들어가면 장땡이다. 집에 들어가면 먹을 것은 삶은 콩 뿐이고 무료한 푸른 요정은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괴고 무료하고 우울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뭔 상관이람. 일을 해서 사고 싶은 것은 자동차일까나. 하지만 여기는 대중교통도 잘 되어있고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나에게 자동차는 사치이고 택시도 역시 가격이 좀 부담되려나. 아무런 생각없이 비가 이어지는 하루를 그냥 보내고 짜증만 가득한 채로 그냥 잠에 들었다.
그렇게 마지못해 아침이 밝자마자 나는 나리에게 가서 빌었다. 일 좀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거절이고 무슨 일이든 시원찮아서 금방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의 노면전차 안에서 같은 노선으로 다니는 버스를 차창 너머로 보며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가지를 생각해냈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무료한 느낌으로 그렇게 쏘다니며 집으로 돌아오면 왜 이렇게 지루할까. 그래서 나는 다시 어디론가 향하겠지. 조만간 해탈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해탈하기 직전의 짜증을 이기고 버스를 잡아 수줍은 소년인형을 만나러 가자. 어차피 그 아이는 얼빠진 소리만 지껄이겠지만 여튼간에. 놀러오라고 해서 놀러가는 것 뿐이고 친해지자고 해서 친해지는 것이야. 미여울공원 남문으로 가는 트램은 남서중앙역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남서해안 종점으로 가는 버스는 남서해안역 근처로 직진. 그리고 어느 연립의 앞에 내려서 바로 철도 건널목 넘어 차고지로 향하는 버스가 건널목을 넘는 것을 바라보고서 그 아이에게 전화하려는 찰나, 볼이 쿡. 봄이가 장난을 치고도 실패했나 싶은 표정을 살짝 짓더니 우울해 한다. 왠지 불쌍해 쓰다듬으니 살포시 눈을 감고 웃는 아이.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무슨 얘기를 할 지 몰라 가만히 있을 뿐인 두 남자는 가만히 차를 마신다. 한 쪽은 자신이 꽤 귀여운지는 아는지 계속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으며 장난을 치는데 귀찮다.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그런 불편함의 가운데에서 여러모로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푸근해지는 무언가가 있으면서도 무안한 느낌이 확연히 드는 그런 불편한 자리같았지만 그래도 마주 앉아서 이렇게 침묵을 같이 지켜주는 것도 행복한 일인가 싶어졌다. 그리고 이제 그만 갈 시간이 아니냐고 먼저 입을 열은 봄이 덕에 나는 마지막 버스가 끊기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나는 당최 뭐하러 봄이네 집에 갔나하고 곱씹어보았다. 아무래도 집에 있기 지루해서 그랬겠지 하면서 집에서 내내 무료해하던 푸른 요정 볼도 쿡 찔러보니 싫어한다. 이게 당연한 반응이지만.
더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오늘, 그래도 비는 오지 않기에 조금씩 바닷가로 나가기는 할까 하면서 그저 피곤해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냥저냥 하면서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려니 피곤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바깥을 구경하고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다. 트램이 지나가고 그리고 그 옆으로 버스와 자동차가 지나가고 시험정원 쪽에서는 사람이 넘어온다. 반대편 창가에는 바다가 보이고 그 멀리로 죽어도 하유국 편입을 하기에는 때가 아니라고 미소짓는다는 인형이 사는 섬이 있고 거실 소파에는 무료한 우울 요정님. 나는 그냥 집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나를 가만히 고양이처럼 바라보는 푸른 요정이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할 얘기가 있었던걸까.
밖으로 나가면 우선 길을 하나 건너 남동구 동백마을에서 끝나는 전차가 지나가는 하행 선로와 지금 우회전 신호를 받으면 버스와 함께 남서중앙역 방향으로 향할 상행 선로를 건넌다. 승차대를 두 개나 건너서 시험정원으로 향하는 걸음은 내가 돈만 있다면 트램 타고 갈 수 있었다는 화난 걸음이다. 그런데 정원도 그렇게 나를 위로하지는 못했고 그냥 돈을 져다 버린다 치고 저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슬픈 표정으로 노면전차에서 내렸다. 전철을 타고 멀리 갔다오고서 노면전차에서 내리는 것으로 끝나는 일정은 끝났지만 어쨌든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집에 돌아오니 푸른 요정도 없다. 그래, 내가 질렸겠지. 돈을 벌어야 하나 돈이 그냥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 가운데에서 몽상하며 의미없는 이동에 돈을 낭비하다니. 그리고 다시 대문이 달칵 열리더니 히익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요정이 돌아왔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인가. 하지만 저 돈은 어디에서 났을까 궁금했지만 구태여 묻지 않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이유 모를 싫은 소리와 호에에가 들리지만 내 일 아냐.
다음 날이 밝았고 나는 그냥 방에 박혀서 아무 것도 안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나리한테서 온 문자에 돈이 없다고 답장하고 그냥 빈둥거렸다. 여기서 굶어죽을래. 그리고 대문 너머로 덜컹이는 소리, 그리고 푸른 요정과 누군가가 언성 높이는 소리 그리고 찰칵하는 소리. 아아, 드디어 주택공사에서 대문을 쇄정해 버렸구나. 푸른 요정이 흐느끼는 소리와 이제 죽는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와버렸다. 그리고 나리에게 전화걸어 대문이 쇄정당했고 이게 내 마지막 전화가 될 거라고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리는 버럭대며 집세 밀린거냐고, 당최 뭐냐고 짜증내다가 전화가 끊긴 이후에도 폰이야 새로 사면 된다는 마인드로 바닥에 폰을 집어 던졌겠지. 나는 이제 굶어죽는다네, 주택공사에서 집 대문을 아예 걸어잠갔다네 하면서 집 앞의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나가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집세가 밀려서 이렇게 갇힐 줄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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