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 이게 웬 연기냐고 하는 소리에 일단 바이패스 관 쪽으로 열린 밸브를 엔진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귀찮으니 블로어를 공기구멍에 꽂고 초크를 살살 넣으면서 시동을 걸어본다. 부다다다다닥. 다시 밸브를 바이패스 쪽으로, 그리고 불을 댕겨보니 바로 꺼진다. 그러니까 화통이 내 노력을 배신하고 있는 셈이다. 일이 생겨서 잠시 남동쪽으로 내려갔다가 상록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낭패를 봤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쳐서 잠시 쉬러 온 사람들에게 연기를 뿜는 자동차라는 진귀한 것만 보여주고 일단 다시 바이패스 관에 불을 댕겨본다. 오렌지빛 불꽃이 피어오른다. 이제 밸브를 엔진 쪽으로 넣고 초크를 조금 당겨서 시동을 건다. 고속도로 본선으로 들어가 다음 출구에서 나가야 한다. 상록숲으로 들어오는 목..
다시끔 공기구멍에 불을 댕긴다. 그리고 맨 윗쪽의 뚜껑을 열어 나무토막을 집어넣고 공기구멍에 죽어라고 풀무질을 한다. 적어도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는 해야 자동차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목탄가스가 나오는 관에 불이 붙는 것을 확인하고 그 관을 엔진 쪽에 끼워 겨우 목탄차에 시동을 걸었다. 안 걸려서 오늘 하루도 버리나 했다. 상록숲에 살면서 목탄차를 몬다는 것은 거의 요정들에게 돌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영역의 일이지만 나는 구태여 이 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상록숲 안에는 요정들의 부탁으로 주유소가 없고 솔방울과 나뭇가지는 구하기 쉽다. 그리고 여차하면 뭔가를 구워먹을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의 스쿠터에도 화통을 달아줬는데 별 불만이 없다는 얘기도 들었고, 화..
전철이 이제 숲 속으로 들어가요. 하늘하늘한 인형옷이 마음에 들지만 얼룩이 지면 이 예쁜 옷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어쨌든 숲은 언제나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무서워요. 거리에는 낮은 건물들과 즐거운 사람들과 슬픈 표정의 사람들이 서로 엇갈려가고 저 중에서 누군가는 오늘 숲에서 목을 맬 수도 있지요. 참 슬픈 일이야.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와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턱을 괴고 무료해하면 여기가 참 조용하고 쉴 만하구나 느끼지만 그 뿐이에요. 제 집은 여기가 아니고 하유섬 사람들은 서로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데다 소심하고 수줍어서 서로 친구가 되는 것도 꺼리니까요. 커피가 쓰네요. 달콤한 디저트도 시켜놨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요. 숲 속을 걷습니다. 언제는 숲 속에서 목..
거칠게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는 이내 클러치만 붙여져서는 설설 기어가고 있었다. 기어가는 속도로도 여기서는 충분히 다닐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을 달리며 경쾌함과 서늘함에 감탄하다가도 갑자기 큰 길이 나오면 액셀을 밟고 기어를 올릴 준비나 해야 한다는 것이 큰 문제에 지금 졸고있다는 아주 큰 문제가 있지만. 그렇게 굴러가다가 이내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너무 졸려서 더 이상 운전이 재미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숲을 나가려면 자동차로 곧장 5분이면 가지만 너무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동을 켜놔도 검댕이 나오지 않는 기름만이 하유섬에서 팔리기에 괜찮지만 일단은 한스 피셔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것은 접어두자. 히터를 틀고 차 안에서 자고 싶지만 그럴 여지도 없다. 빨리 숲을 벗어나야지 하지만 졸..
트램이 가질 않는다. 바로 앞의 신호가 빨간색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고 트램이 도로교통이고 철로 위를 달리는 버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남서해안의 주택단지를 지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트램이 가질 않으면 자동차들이 트램 뒤에 붙는다는 것이지만 여기를 지나지 않으면 고속도로로 나가기 힘들다. 물론 시험정원 정도를 구경하면서 조금 늦게 가면 되겠지만 한눈 파는 셈인데다 자동차를 몰면 트램이 신호를 기다리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있어야 하겠고. 남북고속도로는 소통원활이다. 소통원활한 가운데서 상록숲 방향으로 나가는 마지막 출구로 나가 여울오름으로 가려고 한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용천과 숲 속의 수줍은 사람들이 참 곱지만 일단 자동차의 연료 눈금이 E를 가리킬 때까지 좀 버텨줬으면 좋겠다. 일..
빵빵. 경적을 울린다. 여름에도 웬만해서는 23도까지만 기온이 올라가는 외따르고 작은 섬나라 하유에도 여름 한낮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폭염이 왔다. 나는 경적을 울린 이유만큼 왼쪽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고 중앙선 넘어 유턴한다. 꽤나 쉬운 작업이지만 폭염이 잡아먹는 마음 속 여유가 나를 점점 건조한 사막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럴 이유가 단 하나, 폭염으로 인해 돌아버릴 것 같은 지금 상황과 공방제 자동차에는 에어컨이 안 달려 나온다는 것이 그러하다. 유턴을 끝내니 전부 경적을 울리며 내 뒷쪽의 흐름도 유턴하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렇게 나는 중앙에서 남서로 가려던 중에 상록으로 유턴했다. 적어도 숲 속은 시원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차량운행제한 표지와 여기서부터 상록구라고..
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 치고는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여기, 이 미여울 강가를 계속 따라오다보니 나는 지금 상록숲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정말로 어찌된 영문인지 지치지도 않고 제 발로 여기까지 걸어오다니 왠지 상록숲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인 숲 속의 요정 때문인가 싶어서 이 동네를 통과해가는 택시나 트램을 찾았다. 그런데 택시는 잡히지를 않고 트램은 한 시간 간격으로 북동쪽으로 향하는 것 뿐이니 이제 내가 남서쪽으로 돌아가기는 틀렸다는 생각만 팍 드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이제 필사적으로 이 숲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여기도 하유섬이다. 헤매다보면 길이 나오겠지 ..
몽환적이에요. 자동차를 몰다가 잘못 들어온 숲 속은 고요하고 몽환적이었습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숲 속을 거닐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가 시동을 켜고 1단까지만 넣고서 천천히 숲을 돌아보지요. 모두들 천천히 가는 자동차를 신기하게 여기지만 나는 어쨌든 길을 잃은 셈이에요. 숲은 아름답지만, 우선 가야 할 목적지가 있으니까요. 그런게 여기 대단해요. 구청도 따로 있고 사람들이 나에게 어디로 가야 북서인지도 가르쳐주네요? 즉, 저는 졸음운전으로 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죠. 공장에서 바로 나온 당밀 한 통을 사려고 자동차를 타고 왔는데 숲길로 잘못 들어와서는 길을 물어물어 북서로 가는 그거 말이에요.
사늘한 여름과 하얀 겨울 날씨가 전형적이라 히터는 필요하지만 에어컨은 필요 없는, 철도와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자동차 없이도 살 만하지만 자동차는 있어야 하는 1,210.5 제곱킬로미터의 작고 이상한 섬나라. 내가 사람들을 통솔하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나라다. 사람들은 하유국에서 추방될 수도 있는 룰을 들은체 만체하고 여울오름 물에 동전을 던지다 걸려서 추방당하거나 상록숲의 나무를 함부로 꺾어서 벌금을 물거나 상냥한 가이드가 사실은 자동인형이라는 사실에 놀라서 기절하거나 혹은 함부로 대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등 아주 난장판이다. 그래서 오늘부로 사표를 냈다. 외국인 문제 때문이냐고 하면 고개 끄덕일 수밖에. 사표는 수리됐다며 수고했다고 나가보란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도시의 풍경을 본다. 여느 곳이..
조그만 철길을 따라서 가는 화차의 안에는 사탕무가 한 가아득! 그렇게 오늘 일도 마무리예요! 제 집은 여기에서 전철로 좀 더 가야 있는 상록숲 안의 오두막! 그래서 막 도착한 여기에서 친구 삼고 있는 토끼와 고양이를 쓰다듬어주고 받아온 일당과 설탕 한 포대를 다락에 밀어 넣지요. 주워놓은 나뭇가지로 난로도 켜고 이제 저녁을 요리할 시간. 아아, 피곤하다. 사탕무 밭에서 잘 여문 것을 골라서 뽑느라고 여기저기가 더 마모되는 기분이 든다. 인형이라고 해서 덜 피곤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요정과 사람의 가까운 이웃 수준으로 지내다보니 서로의 체력차이를 제외하면 별 차이 없지만 오늘은 유독 더 피곤해서 물을 긷으러 가는 것을 미뤘다. 그런 불편함도 상록에서 사는 즐거움이니까. 다음 날도 전철에 올라 공장 안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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