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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이게 웬 연기냐고 하는 소리에 일단 바이패스 관 쪽으로 열린 밸브를 엔진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귀찮으니 블로어를 공기구멍에 꽂고 초크를 살살 넣으면서 시동을 걸어본다. 부다다다다닥. 다시 밸브를 바이패스 쪽으로, 그리고 불을 댕겨보니 바로 꺼진다. 그러니까 화통이 내 노력을 배신하고 있는 셈이다. 일이 생겨서 잠시 남동쪽으로 내려갔다가 상록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낭패를 봤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쳐서 잠시 쉬러 온 사람들에게 연기를 뿜는 자동차라는 진귀한 것만 보여주고 일단 다시 바이패스 관에 불을 댕겨본다. 오렌지빛 불꽃이 피어오른다. 이제 밸브를 엔진 쪽으로 넣고 초크를 조금 당겨서 시동을 건다. 고속도로 본선으로 들어가 다음 출구에서 나가야 한다.

상록숲으로 들어오는 목탄차는 완전히 페르소나 논 그라타이다.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라는 뜻인데 요정들은 짱돌을 던지려고 화난 얼굴로 벼르고 있거나 미안해요 장작 필요하면 주워다줄게라고 외치는 녀석들이 화난 녀석들을 말리고 숲 속으로 도로 들어가는 그런 것이다. 상록구보다 북동구에 가까운 나의 헛간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오늘도 저주스러운 마법진이나 엎어진 장작과 바구니, 돌 맞은 흔적으로 찌익 긁혀있는 유리창이 참 짜증나는구나. 시동을 끄고 바이패스 관으로 밸브를 넣고 발전기나 돌려보자. 얼마 전까지 그냥 촛불 켜고 살았는데 어디서 나에게 가솔린 발전기를 선물해줘서 너무 감사하군. 덕분에 이 헛간이 불에 홀라당 타버리고 소식에 어둡고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을 위해서 편의점으로 가고 자동차 점프가 어려워서 울창한 숲 속에서 소리치는 짓은 안 해도 된다. 얼마 전에 새로 개통한 전화로 목탄가스 화통의 주문을 받고 그 주문에 응해 남동쪽에 갔다왔는데 하필이면 그 때 절륜하게 가스를 피워야 했냐고. 그리고 부다다닥거리는 소리에 요정 한 놈이 가까이 온다. 그리고는 얼굴을 찡그린다. 그 새끼구나 하는 그 표정이다.

목탄가스 화통 만들지? 끄덕. 왜 만들어? 직업이다. 숲에서 나갈 생각 없어? 있다. 왜 안 나가? 돈 없다. 매캐해. 그렇냐? 이런 식의 대화가 좀 오가다가 조금 경계심을 풀고 화통의 원리가 궁금한 듯이 화통 주변에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들이대는 녀석. 그래서 그 발전기가 이 화통에서 나오는 연기로 굴러가는 거냐고 말을 걸고 일단 내가 이 정도는 봐줄게 하니 저녁을 가스로 요리해도 되겠구나. 고기 구울건데 먹고 갈래? 그러자 조금 먹겠다고 해서 발전기를 멈추고 가스그릴에 연결해서 고기를 굽기 시작하려 준비를 하자 녀석은 사라져 있었고 어차피 저녁은 먹을거니까 그릴을 식힐 이유는 없다. 다만 다른 요정들이 어떻게 나올까 그게 더 두렵구나.

다음 날 아침에 어제 저녁에 봤던 녀석이 나와 마주쳤다. 그리고 바구니를 싫은 얼굴로 내밀었어.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보랏빛 꽃과 꼬투리콩이 들어있는 바구니였다. 내가 장작 따위 줄 것 같아 하면서 일단 먹어야 살지하고 장난스럽게 피식거린다. 그러면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며 그 아이를 내 목탄차 뒷자리에 태우고 바래다주는 길, 그 아이도 보았을거다. 말리는 요정, 돌을 던지려는 요정, 시큰둥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요정으로 목탄차를 생각하기가 제각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연기가 날 것 같다는 말은 취소할거라고 하는데 나는 상관 없어. 집에나 잘 들어가. 그렇게 그 아이와 헤어지고 다시 집에 들어가는 길에도 말리는 요정, 돌을 던지려는 요정, 시큰둥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요정으로 목탄차를 생각하기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고 상당히 기운이 빠져버렸다.

숲 속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는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녀석들과 친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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