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함이 감도는 어느 오후였다. 아침에 피칸토를 타고 출근한 카페는 손님이 좀 오는 편이었고 오후에는 아예 없어지는 양상이었다. 손님 없는 카페를 정리하며 나리가 들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동안에 누군가 카페에 찾아왔다. 금발벽안의… 마녀! 딱 그거다. 고양이귀 로브를 걸치고 나리랑 동족인 느낌인데 마녀라고. 인형 마녀라니 특이해서 그냥 정면 응시를 못 했다. 그것이 다다. 그리고 나리는 그 마녀를 보더니 갑자기 또 다른 자기를 본 것처럼 뭔가 불길해 했다. 그리고 마녀가 카페를 나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가지고. 마녀의 등장은 나리를 좀 당황하게 만든 듯한데, 나는 그런 나리의 행동이 좀 뜬금 없어서 당황했지만 뭐, 어때. 동족끼리 안 좋은 감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마도 그런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
마음은 무너져요. 그냥 그렇게 무너져서는 아무 것도 그 무엇도 아닌게 되어버려요. 겨우 무언가가 된다고 해도 그게 끝. 저는 그렇게 아무 것에도 기대를 가지지 않게 되었답니다. 쓰레기 청소. 그게 해야 할 일이면 해야죠. 하지만 주변에 뵈는 것은 쓰레기들. 청소를 하다보면 쓰레기들이 저보다 위에 있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저를 만만하게 보고 같이 쓰레기 하자고 조르죠. 같이 쓰레기 하자는 쓰레기에게 저는 곤란한 표정으로 빗자루를 휘둘러요. 그래도 쓰레기가 죽진 않아요. 신기하죠? 아무래도 저는 오랫동안 잠들어 버리는 편이 모두에게 도와주는 것이지만 그것도 이루기가 힘드네요. 쓰레기 본연의 세상에서 쓰레기들과 섞여서 같이 버려져야 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차라리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이 저..
밤고양이 소동도 지나가고 나는 어찌저찌 또… 출근했다. 그냥 그랬다. 미니라는 자동차가 이제 마음에 들게되어 프라이가 위험하다. 그 정도로 끝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프라이드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어디에서 계속 나오고 있지도 않고 그냥 가지면 만족으로 끝나는 미니는 부품수급이 좋다, 그 뿐이다. 그리고 영국에는 이제 자동차 회사가 하나 빼고 다 없어졌지 않는가. 그런 것으로 고민하느니 차라리 나는 지금 있는 내 차라도 지키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니까 차가 모자르든 아니든 일단은 있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길가에서 차를 몰고 있노라면 서툰 실력에 힘입어 저런 고물차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이 나에게 경찰을 만나게 해준다. 휘발유를 밀수했느냐는 말에 이미 ..
아무래도 아무것도 되지 않아. 다들 다른 곳을 보고 있고 얼마나 더 움직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최대한 아주 멀리 나갔어요. 그리고 내 태엽이 다 풀렸어요. 태엽이 조금 감기고 이내 태엽이 다 되어 풀리는 동안, 멎어가는 나를 소중히 다루는 사람들. 그 때, 나는 깨달았어요. 두 번 다시 내 태엽은 감길 일도 없고 다시 내 태엽을 감아줄 사람도 없고 태엽을 감지 않은 채로, 그냥 그렇게 되어서 내 태엽은 망가지고 그저 움직이지 않아 얌전하고 꿈꾸는 듯한 아주 정교하고 귀여운 인형이 되어 버린 것을.
하유국 외무부는 최근, 외신들이 '하유는 평행세계의 싱가포르'라고 표현한 데에 강력한 유감을 표시한다. 하유국 정부는 개국 초기에 일본, 한국, 북조선, 대만, 중국 등과 수교하며 '첫 수교의 빌딩'에 그들의 대사관 및 대표부를 마련하고 한국, 일본과는 '하일한 상호 동반자 협정'을 체결, 상호 3개국 간의 여행사증 면제와 무역과 교류 편의를 도모함으로서 그 이듬해에는 국제연합에도 가입하는 등, 적극적이고 포용적인 외교행보를 보여왔다. 허나, 하유국 국체를 3권분립도 애매하며 아직도 검열이 만연하고 파업과 시위도 단 하나의 장소에서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만 가능하고 노조는 불법인 싱가포르에 빗대는 일부 외신의 행태에 대해 하유국은 그저 와신상담하며 굴복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보이게 되었다. 하유는 상냥함..
하유국은 작은 섬나라일까 아닐까 한다면 일단 맞다. 초반에는 1,210.5㎢ 면적의 섬 하나에서 시작해서 점점 불어나가는 그런 셈일테다. 일단 중심되고 이야기의 중앙에 있는 땅덩어리, 하유섬은 작은 섬이고 이 섬의 기후는 애매하다 못해 일단 상춘기후와 냉대습윤기후의 특징이 섞인 하유국만의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봄 가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 년내내 계속되는 서늘함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 특징을 정말 전형적이면서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섬의 날씨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정도 살아보곤 학을 떼고 도망가버린, 아무도 살지 않는 사실상의 무주지였다가 결국에는 그 섬의 북서쪽에 누군가 다시 상륙하고 몇 시간 뒤, '하유'라는 나라가 세워졌다. 그렇게 세계 표준시보다 10시간이 빠른 시간이 흐르는 작은..
일이 끝나면 나는 계란 프라이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고 1단 반클러치와 엑셀을 동시에 주면서 출발한다. 간선도로 요금소에서 요금내는 것도 솔직히 너무 수월했다. 나리 녀석이 그냥 준 깡통이나 경비가 넘겨준 이 계란 프라이나 오십보 백보다. 다만 계란 프라이는 히터에 에어컨에 라디오가 되지 않던가. 그것을 위안삼으며 파란색 달걀 프라이를 집 근처 공영주차장까지 몰고 가는데 경비가 용케 그걸 타냐고 놀라더라. 그러면 깡통 타보시겠냐고, 난방과 냉방이 안 되고 승차감도 깡통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나에게 묻지 않더라. 그러나저러나 자기가 준 계란 프라이는 어떠냐고 하니까 나는 일단 저렴함의 끝에 남을 자동차를 두 대나 갖고 있으니까 한 대는 놀겠다 싶다고 얘기해 두고.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할 필..
오늘 일도 끝났고 집에 돌아간다. 그게 다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뭐가 그렇게 싫은지 오늘은 트램 바퀴까지 헛돌고 어느새 차가워지는 바람에 몸을 떨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오면 차라리 내 자가용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그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럴수록 푸른 요정 루미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정면으로 부딪히거라 하고 나는 난감해지지. 그나저나 어쩌라고 이렇게 모든 일이 난감하게만 느껴지는지 여러모로 힘들 뿐, 아무 느낌도 없이 이어지는 휴일을 맞고 만다. 맞았으니 아프다. 이제 편히 쉴 수 있다는 느낌으로 루미와 함께 마룻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리다 잠들어 버려서 잠꼬대로 루미를 인형인 양 껴안게 되어버리면 흠씬 맞고 잠에서 깬 뒤에 잠꼬대였냐 하면서 싫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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