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치유받는 느낌이라는 것은 가슴 언저리가 간지럽고 덧없고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이 맞는 건가요. 왠지 그런 느낌이 차분하게 있을 때마다 들고 슬픈 아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일부러 감정을 흥분시키고 성급하게 저를 몰아가는데 왠지 알고 싶어졌어요. 마치 제가 요새 자동인형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람과 똑같이 생겼고 구별도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마음이나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 안드로이드 말이죠. 탈진하는 탓일까요. 혹시 이것도 설마 배터리 부족으로 진빠지는 것은 아닌가 불안한데요. 폭신하고 서늘하고 뽀송한 어딘가에서 가슴 언저리가 간지러운 느낌을 안고서 영원히 자고 싶어요.
숲을 지나간다. 경유로 움직이는 자그마한 밴이 북서구에서 북동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사탕무 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더 들어가면 왠지 거대하고 웅장해서 경외감까지 드는 설탕 공장과 합성석유 공장이 나온다. 한동안 장난꾸러기 요정이 줄에 매단 낫으로 밭을 절단내고 다녀서 다들 당밀 한 봉지씩 가지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고 합성석유 공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한동안 조이고 기름칠만 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괜찮아졌다. 그런데 합성석유 밖에는 못 구한다는 것을 모르는 렌터카 여행객들이 자동차가 헌팅을 해대서 타기가 싫다고 하면 바이오매스부 대변인인 내가 나서서 그거 여기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라고 해도 어쨌든 내가 불편하다 식으로 굴어대니 나는 그저 속이 터질 수밖에. 공장 안의 모두와 인사하고 오늘 상황..
트램이 가질 않는다. 바로 앞의 신호가 빨간색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고 트램이 도로교통이고 철로 위를 달리는 버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남서해안의 주택단지를 지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트램이 가질 않으면 자동차들이 트램 뒤에 붙는다는 것이지만 여기를 지나지 않으면 고속도로로 나가기 힘들다. 물론 시험정원 정도를 구경하면서 조금 늦게 가면 되겠지만 한눈 파는 셈인데다 자동차를 몰면 트램이 신호를 기다리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있어야 하겠고. 남북고속도로는 소통원활이다. 소통원활한 가운데서 상록숲 방향으로 나가는 마지막 출구로 나가 여울오름으로 가려고 한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용천과 숲 속의 수줍은 사람들이 참 곱지만 일단 자동차의 연료 눈금이 E를 가리킬 때까지 좀 버텨줬으면 좋겠다. 일..
오늘도 역시 실패다. 이런 실력으로는 언덕길 근처에 가기도 힘들다. 하필이면 수동변속기가 달린 자동차를 모는 바람에 이렇게 된다. 또한 여기 사는 모두가 자동차를 별로 안 좋게 본다는 것도 한몫한다. 오르막길 연습을 하고 있노라면 차라리 걸어다니라는 듯이 힐끗 쳐다보고 가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고. 사이드브레이크는 걸지 않은 채로 움직이려니 자꾸만 시동 꺼지고 뒤로 밀려서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떻게 하면 이놈의 자동차를 가만히 둘까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포기는 쉽다. 그리고 재빠르게 반클러치 잡고 브레이크 밟던 발을 액셀로 옮겨본다. 조금 밀렸다가 앞으로 간다.
빵빵. 경적을 울린다. 여름에도 웬만해서는 23도까지만 기온이 올라가는 외따르고 작은 섬나라 하유에도 여름 한낮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폭염이 왔다. 나는 경적을 울린 이유만큼 왼쪽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고 중앙선 넘어 유턴한다. 꽤나 쉬운 작업이지만 폭염이 잡아먹는 마음 속 여유가 나를 점점 건조한 사막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럴 이유가 단 하나, 폭염으로 인해 돌아버릴 것 같은 지금 상황과 공방제 자동차에는 에어컨이 안 달려 나온다는 것이 그러하다. 유턴을 끝내니 전부 경적을 울리며 내 뒷쪽의 흐름도 유턴하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렇게 나는 중앙에서 남서로 가려던 중에 상록으로 유턴했다. 적어도 숲 속은 시원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차량운행제한 표지와 여기서부터 상록구라고..
마치 꿈 속처럼 귀여운, 마치 파스텔 톤으로 빛나는 장소에 은발회안을 가진 마치 왕자님같이 귀여운 심약한 인형이 하나. 자신이 자동인형이라는 것은 잘 모르는 채로 자기 혼자만 아름다운 곳에 있는 것 같다고 오늘도 숲 속 물가에서 자기를 실컷 싫어해. 그러다가 그 아이는 다른 꿈을 꾸게 되었어. 누군가의 소중한 자동인형으로 사랑받는 귀엽고 애틋한 꿈. 감정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상냥한 주인님의 시중을 들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생각하지. 그리고 또 다른 꿈. 현실 속, 모두가 그저 지나가는 번화가에서 그저 멀뚱히 서있다 여기저기 부딪히며 상처입는 꿈. 너무 많이 부딪히고 넘어져서 기계장치가 드러나 보일 정도가 되어도 혼자 일어나야 하는 일개 기계인형이 되어버린 꿈. 그리고 다른 꿈을 꾸게 되었어. ..
일단은 너무 촉촉하고 포근한 느낌에 가만히 잠들어버리면 나는 자동인형. 그러니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고 일단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요. 귀엽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귀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실망이 크면 이토록 전부 미워지던가요. 깊은 숲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물방울 소리가 아름다워서 그만 멎어버릴 것 같았고 그저 토끼가 폭신폭신. 귀여운 토끼가 하나 둘 늘어나서 그만 나를 덮어버리면 따뜻해. 토끼들이 다 떠나고 덩굴이 나를 감고 올라가요. 조이지 않고 부드럽게 타고 올라서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자동인형을 감싸죠. 참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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