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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지나간다. 경유로 움직이는 자그마한 밴이 북서구에서 북동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사탕무 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더 들어가면 왠지 거대하고 웅장해서 경외감까지 드는 설탕 공장과 합성석유 공장이 나온다. 한동안 장난꾸러기 요정이 줄에 매단 낫으로 밭을 절단내고 다녀서 다들 당밀 한 봉지씩 가지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고 합성석유 공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한동안 조이고 기름칠만 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괜찮아졌다. 그런데 합성석유 밖에는 못 구한다는 것을 모르는 렌터카 여행객들이 자동차가 헌팅을 해대서 타기가 싫다고 하면 바이오매스부 대변인인 내가 나서서 그거 여기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라고 해도 어쨌든 내가 불편하다 식으로 굴어대니 나는 그저 속이 터질 수밖에. 공장 안의 모두와 인사하고 오늘 상황은 어떠냐고 물으면 여기에서 에탄올이고 메탄이고 다 생산하고 사탕무 찌꺼기와 나무토막 같은 것도 엄청 잘 타오르지만 그걸 또 증류하면 얼마나 나올 것 같고 또 개질하면 얼마나 줄어들겠냐고 생각을 해보라네.

일단 숯만 만들어도 불완전연소 덕분에 합성가스는 나오는데 그 합성가스를 철이나 코발트랑 반응시키면 합성석유가 되는거고 증류탑에서 증류시키면 대표적으로 나프타랑 경유가 나오는데 나프타는 알코올과 같이 제올라이트랑 반응시키면 옥탄가 높은 휘발유가 된다 이거지. 하지만 타오르면서 없어지는 것과 산화와 환원의 마법으로 줄어드는 것과 자동차와 철도차량에서 필요한 정도를 만들면 철야를 해도 양이 모자란다는 것과 설탕은 그저 달콤하고 잎사귀는 토끼 먹이로 제격이라는 것, 설탕이 가득한 즙을 짜내고 남은 사탕무 펠릿을 부분산화연소로 태워서 휘발유와 경유를 만들어 자급하는 미친 나라가 있다고 외신에 대서특필 되면 내가 나서서 내가 사는 나라는 그냥 애매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고 이거 가지고 미친 나라라고 하면 굉장히 유감이다라고 하는 성명을 내는 것이 내 일이라고. 또 그런 보도가 나왔느냐 상부에 들러 물어보니 한숨을 쉬고 그냥 들어가보라고 손짓을 하고 결국 바로잡을 오해나 특이사항을 알릴 이유도 없다고 하니 나는 그냥 밴에 시동을 걸고 상록구에는 조례 때문에 주유소가 없으니 사탕무 밭을 나가기 전에 있는 주유소에서 경유를 차에 가득 채우고 떠나자. 그새 기름값이 올랐군 하면 나를 살짝 흘기는 직원과 대변인 아니냐고, 왜 이런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 아니요 하는 그 눈빛이 싫어 얼른 계산하고 여기를 뜨자. 아무래도 생산량이 줄어들은 것 같다라고 솔직히 얘기하면 상부에다 가격 낮춰달라 해보라고 무리한 부탁을 할 거면서.

그렇게 상록숲으로 들어간다. 상록숲의 요정들이 이 나라에서 화석연료를 못 쓰도록 만든 일등공신인데 그렇게 되어도 걔네들은 내연기관에 반대한다는 얘기를 계속한다. 그래서 숲이 시든다며 상부에 합성연료 생산중단을 얘기해 볼 생각 없냐고 그러면 나는 밭이나 절단내지 말라고 버럭거리고 싶어진다. 모르는 입장에서는 화석연료 기반이거나 사탕무 펠릿 같은 쓰레기를 태워서 만드는 것이거나 다 비슷하겠지. 아니라고 말해봤자 납득시키기도 힘들고 나는 그냥 대변인이다. 그냥 자료를 주면 읽어주는 사람이라고. 기껏 쉬려고 오는 곳인데 텔레비전에서 합성석유 만드는 작자들 편드는 놈이라고 내가 오면 뭔가를 자꾸 물어보고 나는 죄송하다 사람 잘못 보셨다 하고 결국에는 내가 뭘 하겠나 싶어서 다시 밴을 몰고 북동쪽, 내 집이 있는 곳에 들어와 카페거리의 작은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어쩌겠어. 보도자료만 읽는 것도 이런 식으로 공격받는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하면 기운 내라고 다가오는 카페주인이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아이. 다들 오해에 빠지면 그럴거라고 어차피 자기 가게에 손님은 잘 오지도 않는데 항상 고맙다고 얘기한다. 그렇지. 항상 커피콩을 사면 남는다고 합성석유 공장에 가져오는 녀석에 어쩌다가 북동구 카페거리에서 다 내린 커피 찌꺼기가 트램 선로를 타고 배달오면 항상 그 잘 마른 커피 찌꺼기에 매번 고맙다고 편지를 끼워주는 녀석. 그런 녀석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아이스 커피랑 고기가 들어간 파이를 늦은 점심으로 먹고 일이 없으니까 집에 가서 왜 바이오매스부가 하유에서만 욕을 먹는지 찾아보겠지.

집으로 돌아와 차고에 내 밴을 세우고 오늘도 수고했다며 보닛을 가볍게 친다. 차고를 닫고 집으로 들어가 소파에 폭 잠긴다. 이 나라가 이토록 특이하다고 몇 번 들어도 내가 이 나라에 와서 살고 이 나라 여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에는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도 특이한건가 싶어져서 내가 뭐라고 이러나 싶다. 자괴감이 든다. 아무래도 상록숲에서 욕 먹고 비전문가라고 욕 먹고 상부에서는 특이사항이 없다고 나를 쫓아내도 어차피 또 어떤 섬나라에서는 화석연료를 안 사고 있는데 이것은 서방에 대한 모독이라는 소리를 듣고 이건 내가 나서서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만이 퇴근이나 일 없어서 집에 있는 동안에 계속 되니까 그냥 대변인 그만 두고 방송국에나 들어가거나 농부나 할까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욕을 들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고 구름을 걷는다. 어차피 모든 일이 그렇 것이다. 좀 쉬고 들고양이 밥이나 줘야겠다. 진짜 세상은 복잡하기 짝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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