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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오늘도 일자리는 못 찾았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내 일은 어디에도 없음을 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사는 마을로 돌아간다. 차창 밖으로 보는 하유의 풍경은 사랑스럽구나. 하지만 나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니. 그렇게 겨우 일자리를 찾으러 달려온, 갈아타는 여기에서 나는 그냥 걸음을 멈췄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아직 오지 않았고 그저 벚꽃과 매화와 살구꽃이 함께 피는 서늘한 봄날이지만 엘리뇨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빵빵 소리를 내며 도착한 버스에 올라 집에 도착해도 그저 나라에게 빌린 이 집도 언젠가는 뺏기겠지 싶어서 심란해지는 하루하루에 정신이 나가도 좋지 않을까 하며 그저 시름시름 앓는 모습으로 바깥에 나간 느낌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도로 맨 가장자리의 정류장에 버스가 선다. 미여울공원으로 가는 버스. 미여울공원은 뭐가 유명했나. 좁은 여울이라 미어터진다의 미다에서 유래한 이름의 강은 저기 여울오름에서 솟아 흐르겠지. 버스가 미여울공원 남문에 서고 나는 좀비처럼 미여울공원으로 걸어갔다. 그러는 내 몰골에 눈치를 주는 사람들과 재미있다며 바라보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또 무엇을 잃을까 생각하기만 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았다.

비틀거리는 것은 그만 두고 싶어서 벤치에서 고개 떨구고 있던 나의 귀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죽여버린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어떤 새하얀 남자애가 히익하고 도망간다. 아이고, 장난은 작작쳐라 하는 얘기도 못한 채로 그 애가 도망쳐서 당최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내 앞에서 항주머니를 떨구고 갔다. 비범하게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가 붙여져 있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쐬다가 정신을 차리고 정류장으로 간다. 마침 집으로까지는 아니지만 남서중앙까지 가는 버스가 왔다.

집으로 와서는 우선 그 향주머니에 붙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가 걸리자마자 끊겨버리고 바로 오는 문자: 같은 남서 해안가에 사는 봄이라고 한다며, 잘 지내고 부디 기운 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가 본 바로는 그 아이, 귀염성 있고 새하얀 남자아이였는데 이름이 봄이…. 따뜻한 계절을 은유하는 이름이지만 특이하게 느껴져서 언젠가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소파에 앉아 왠지 어깨에 뭔가 올려져 있는 것 같아 어깨를 떨어보니 요정…이 떨어졌다. 제발 죽이지는 말아달라며 도움을 주겠다며 애원하는 지금, 이 조그만 푸른 요정과도 만나게 되었다.

그나저나 하얗고 귀염성 있는 아이들을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요정이 진짜로 살고 있다는 이유로 개발이 못 되어 숲인 그대로 남은 상록구와 북동구 사이에 인형들이 살고 있는데 그 아이들의 특징이 유리빛 옅은 은색 눈동자니까 인형되기 싫으면 조심하라는 얘기였나. 정말로 상록구에 요정이 사는지도, 숲과 한산한 동네 사이에 인형들이 살고 있으며 사람을 인형으로 만드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른다. 그저 좀 취직이나 되었으면 하는 느낌으로 하루를 닫았다.

하루가 지났다. 눈을 떠보니 햇살이 눈부시고 무엇보다 버스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에 잠을 깼다. 거실로 나와보니 어제의 푸른 요정이 보통의 사람 크기로 변해서 창가로 보이는 바닷가를 보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데 할 일 하라며 짜증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우울 요정인가. 우울하고 가라앉은 사람들의 우울을 푸른 구슬로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취미를 도와준 사람에게 행복을 빌어준다는 아이들이었나. 오늘 같은 하루도 매일매일이 아픔이 아니었다면 저 아이도 지금 나에게 안 왔겠지 싶다.

모든 일에는 그 만한 이유가 항상 있지요 하면서 집 앞 정류장에 서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험정원에서 봄을 즐겼다. 신기하게도 겨울이 춥고 여름이 거의 없는 하유섬에서 잘 자라는 로즈메리와 석류나무가 신기한 사람들이 그 앞에서 계속 사진을 찍고 하유섬만큼 춥다면 얼어죽을 염려는 없는 차나무와 귤나무 묘목을 파는 천막에도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모여있는 것을 보았는데 과연 저런 것들이 그렇게 신기할까. 그리고 나는 벤치에 누우려고 한 순간, 히익하는 소리와 함께, 봄이와 진짜로 만났다. 음, 눈동자가 유리빛 옅은 은색이라 무서워할 이유가 있을까. 놀라고 무섭고 당황한 표정이 갑자기 조심스러운 미소로 변하며 '괜찮아요. 내가 인형이라고 당신을 인형으로 만들지는 않아'하면서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심약한 소년인형과 만난 이후로 내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 내심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