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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요정은 오늘도 우울해한다. 창가에 비치는 바다가 너무 예뻐. 바다는 푸르고 아름다워 하다가 나를 바라보고는 서로를 인형이라고 생각하고서 몸짓을 지어주고 서로 귀여운 옷도 입혀주며 놀면 좋을까 하길래 인형을 다루듯이 그 아이를 움직여 나름대로 귀여운 포즈를 잡아주고 볼을 주물거렸더니 싫은 소리를 내며 저리 가라고 하는 푸른 요정의 칭얼거림을 들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거지 생각을 하면서 그저 무료하게, 푸른 요정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갸웃거리며 나를 보길래 쓰다듬어 주었고 눈을 살포시 감으며 미소짓는 귀여운 모습을 봤는데 왠지 덧없었다.

그런 놀이에 어울려주는 것보다는 일단 바깥에 나가보는 것이 낫겠지. 옷자락을 잡으며 싫은 표정 짓는 푸른 요정을 뿌리치고 바깥으로 나왔나. 여름이 오고 있는 이 거리가 나는 좋았다. 마을 가까이의 바다가 좋았고 전차와 자동차가 같은 신호를 받고서 우회전하는 마을 맨 끝자락의 삼거리도, 이따금씩 전철선로로 들어가는 전차하고 근처 간선도로 나들목의 자동차들도 좋았다. 길을 걸어가며 지나가는 버스노선을 보는대로 노선을 외우면서 그 망해버린 가게 앞으로. 북동쪽의 소녀와 남서쪽의 청년은 친한 친구가 눈 앞에서 번개를 정통으로 맞아 증발해버린 듯한 표정으로 남서구 세무서 관할의 탈세자 동결자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런 꼴일 줄은 몰랐다는 나리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당최 협회는 뭐하는 놈들이냐고 따졌는데 나리는 부동자세로 탈세자 동결자산을 쳐다볼 뿐이었다. 계속 있어봤자 비도 오고 하니까 쓸모없는 짓일 거라고 생각하고 집까지 걸어가던 길, 비는 갑자기 멎고 집 앞에 도착하니 비 맞은 새끼고양이처럼 푸른 요정이 비는 맑고 아름답다며 하얗게 질려서 떨고 있지를 않나. 집 앞에서 비를 잔뜩 맞고 하얗게 질린 푸른 요정을 소파에 눕히고 이불 덮어주고 나서 확 밀려오는 짜증에 머리를 벽에 박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심약한 남자아이와 우울 요정, 괴담이 도는 거리의 여자아이와 가난한 탈세자를 만난 지금 이 순간의 몰골이 완전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이윽고 몸이 좀 녹았는지 반짝하고 깨어난 푸른 요정이 살짝 내 옆으로 와서 자기는 따뜻해졌으니까 서로 안아주자고 얘기하는데 내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살짝 당황한 듯 표정을 짓고 다 괜찮을거라고, 행복을 빌어주겠다고 나를 토닥였다. 결국 좋은 꿈을 꾸었다.

언제나 꿈의 끝은 현실로 떨어지는 것이라니,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침대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짓고 갸웃거리는 푸른 요정이 귀여워서 일어날 수밖에. 저 녀석이 분명 '도움이 될테니 죽이지 말아달라'고 한 것 같은데 도움을 받고는 있는걸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결국에는 또 밖으로 나와서 푸릇한 가로수와 어찌되었든 나는 무료함에 못 이긴다는 듯이 쨍쨍한 햇빛이 나를 더 무료하게 만들고 짜증나게 하고 있었다. 멍 때리고 있는 도중, 지나가는 트램과 버스, 그리고 보행자 신호가 초록으로 변했다. 길을 건너가자. 길을 건너가자 그저 새의 무리가 푸드득 날아가고 내 고민도 놀란 새처럼 날아가면 좋겠네 하다가 멍 때리게 되고 그렇게 길 중간에서 트램에 치일 뻔했다.

어쨌든 여기 특유의 서늘한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봄이랑 구분이 거의 되지 않지만 봄 날씨보다 햇빛이 강한 것으로 구별하는 이 섬의 기후에서 왠지 형질고르기로 육종된 귤과 차나무를 보면 묘해지면서도 그네들 입장이려니 하는 여기, 시험정원에서 또 뭔 생각을 하고 납셨는지. 그래도 서늘한 바람이 기분좋은 이곳의 여름은 나를 발견하고는 반짝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 내 옆에 앉아 내 어깨에 기대어 칭얼대는 그런 귀여움의 계절이다. 그런데 봄아, 뜨겁고 귀찮아.

히이익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봄이가 불쌍해. 그리고 왠지 내가 폐를 끼쳤다면 물러서는게 맞죠라며 슬픈 표정을 짓는데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돼. 그러자 은근슬쩍 내 곁에 붙는 봄이가 안쓰러워. 이 공원 입구에 서는 트램이 땡땡 소리를 낼 적에 곤히 행복하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든 봄이와 난감한 일이 겹친 나는 황홀해할까 화낼까 망설이는 바보같은 상황에 빠져버리고 봄이를 얼러서 빨리 집으로 갈 생각을 했지만 이내 관뒀다. 이 아이를 화나게 해서 좋을 것 없고 순둥이 하나 어깨에 얹어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곤히 잠들어버리면… 그러면 난감하다. 그런데 지금 그러네 아이 참. 우선은 보통의 아이보다는 가벼운 듯한 그 아이를 업고 집까지 간다. 아아 전차삯 두 사람 분을 내야 해!

푸른 요정이 무료해하는 소파를 피해 봄이를 내 방의 침대에 뉘였다. 뒤척이며 왠지 웃어보이는 순진한 아이가 귀엽다가고 그저 녀석이 빨리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일어나렴. 여기는 내 집이고 너도 네 집으로 돌아가야지. 졸려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는 그게 좀 불쌍하기는 한데 그 뿐이야. 그래서 남서해안가를 따라가는 버스에 태워서 봄이를 보낸 저녁, 무사히 도착했을까나 하면서 전화도 한 번 돌리고 좀 짜증나는 하루를 닫아도 옳을까나 하면서 나는 내 집으로 다시 빨리듯 들어간다.